“살렌토를 가야할까, 말아야 할까?”
“가지 말죠. 커피 이야기는 인도네시아 편에서도 나왔다면서요.”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매력적인 장소를 우선적으로 가야한다. 지금까지 어둡고 왜곡되었던 콜롬비아가 아닌 밝고 화사한 곳들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커피 농장이 있는 살렌토를 가는게 옳은 일일까?
‘커피’
콜롬비아는 세계 2번째 커피 생산 대국이다. 콜롬비아에서 커피 이야기를 하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거겠지. 하지만 커피 농장이 시각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울까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결국 농장이란 이야기인데, 농장만 주구장창 보연다면 너무 밋밋하다.
“아침에 도착해서 아니다 싶으면 다음 장소로 옮기자.”
송PD님의 의견대로 우리는 야간 버스를 탔다. 잠은 버스에서 잔다. 그렇게 하면 하루를 벌 수 있다. 아침에 커피 농장을 간다. 갔는데 예상대로 너무 무난하면 곧장 버스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됐다. 한 밤중에 짐을 바리바리 싸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하는 순간은 쓰러질 듯 피곤했지만 버스 안에 들어가면 실컷 잘 수 있다. 그 생각만으로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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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진짜 버스운이 없는 편이예요.”
수많은 고급 2층 버스를 한참 지나자, 우리를 태우고 갈 초라한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낙심의 순간을 카메라 감독님은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고 계셨다. 그렇다고 우리가 타게될 버스가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재수가 좋지 않은 것이다. 좁고 낡은 버스인데다, 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 더욱 끔찍했다(이렇게 작고 낡은 버스엔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이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야 한다. 버스 승차감은 예상보다 훨씬 펑키했고, 화장실 바로 옆에 앉은 나는 승객들이 드나들 때마다 문소리와 소변냄새의 협공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깟 공격에 굴복할 피로가 아니었다. 거기다 밤새 그 누구도 똥은 누지 않았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우리 모두는 목을 가슴에 파묻고 황새처럼 우아하게 야간버스의 취침시간을 즐겼다. 그 피로는 사실 꽤 기분 좋은 것이었는데, 강렬한 의욕을 동반한 피로였다. 나는 처음의 가혹한 스케줄에 슬슬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건 두 분의 감독님을 보며 배운 값진 교훈이기도 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완벽주의와 자부심. 자발적은 욕심과 열정. 내가 닮고 싶은 미래였다. 자유의지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는 아름답다. 눈부시다.
<o:p>
목이 너무 꺾인 상태로 밤새 자다보니, 목뼈가 시큰거렸다. 밤의 기운은 모두 사라지고 어엿한 아침이었다. 이렇게 깊이 잤구나. 내가 좋아하는 시간, 밤새 짐작했던 바깥 풍경을 드디어 확인할 수 있는 시간. 달콤한 바람으로 초록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놀랍게도 감독님의 카메라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자고 있는 모습을 찍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창밖을 보며 무슨 말이든 해야할 것 같았다.
“안데스 산의 저 아름다움을 보세요.”
“...”
“지구의 아름다움의 끝은 어디일까요.”
비몽사몽간에 잘도 지껄인다고 나름 뿌듯해하고 있었다.
“민우씨 그렇게 느끼한 말은 편집할 수밖에 없어.”
송PD님의 지적에 지재우 카메라 감독님은 버스 안에서 박장대소를 하셨다.
“자기가 말 꺼내놓고 뒷감당 못하더니, 아름다움의 끝은 어디냐니? 하하. 민우야 아름다움의 끝은 어디야?”
사춘기때라면 이정도의 쪽팔림이면 충분히 가출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때도 버스 창만 좀 컸다면 밖으로 폴짝 뛰어내리고 싶었다. 맘에도 없는 미사여구로 망신의 끝은 어디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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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얼굴이 왜 그래요?”
광부처럼 얼굴 전체가 거뭇했다. 콧속까지 새까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그 맑은 안데스 산속을 지나오는데 오직 버스 하나에서 뿜어내는 매연의 힘으로 우린 얼굴과 코끝이 새까매져버린 것이다. 목까지 칼칼했다. 이렇게 고생고생해서 온 살렌토인데, 별 거 없으면 정말 억울하겠다 싶었다.
“일단 묵지는 않을 거예요. 짐만 맡길 수 있을까요?”
영국인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아저씨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걱정말고 짐은 방에 놔둬요.”
당연히 돈을 드릴 생각이었지만, 비용에 대해 묻지 않는 게 약간은 불안했다. 영국인 할아버지는 꽤 들뜬 표정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우선 지프를 빌려서 마을 인근을 보고 싶은데요.”
그리고 우린 50년도 넘은 지프를 빌려 마을 관광을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자갈길을 지나고, 말이 풀을 뜯는 꽤 우아한 농장을 지났다. 평범해 보이는 집 몇 채가 눈에 띄었고, 기다란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까진 평범하다. 카메라 감독님도 별 반응이 없으시다. 그렇다면 커피 농장에서 커피 따는 사람들이나 몇 명 만나보고 얼른 다음 목적지로 떠나야 한다. 터미널에 가서 버스 시간을 알아봐야 한다. 지프차가 골목길을 어기적어기적 올라가면서 광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 낚시를 하다가 고래나 턱없이 큰 물고기가 낚싯줄을 당겨오면, 숙련된 어부는 그 거대한 입질에 마른침을 삼킨다. 그리고 침착하게 다음 동작을 계산해야 한다. 감당이 안 되면 풀어주어야 하고, 대결을 하고 싶다면 발바닥에 힘을 주고 숨을 가다듬어야 한다. 여행자로서 나는 숙련된 어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긴장시킬 수 있는 물고기는 그렇게 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남극이거나 세렝게티의 초원일 필요도 없다. 내 깜냥을 넘어서면 나는 감동하고, 흥분할 수밖에 없다.
살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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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른 침을 삼켰고, 예측 못한 아름다움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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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무얼 기대하는가?
왜 우리는 그 지리한 짐싸기와
그 고독한 불안감을 무릅쓰고
기필코 떠나려고만 하는 걸까?
그건 살렌토 같은 곳을 만나기 위해서일 거야
막연했지만
꼭 필요했던 가슴속 결핍을
벅차게 충족시켜주는 곳
그런 곳을 언젠가는 만날 거라는 기대 때문이지
\"다른 일정을 줄이더라도 여기선 하루 더 묵읍시다. 진짜 최곤데. 최고!\"
드디어 송PD님이 최고라는 칭찬을 내 혈육같은 콜롬비아에 하사하셨다.
우거진 수풀에 대롱거리는 그네가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겠지만, 아마 당신은 이런 묘한 카타르시스에 동의하지 않을까?
당신에겐 나의 살렌토가 혹 싱거울 수 있더라도
이들의 웃음과 마주하면
결국 당신도 나처럼 살렌토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을 거야.
나는 이 곳에서 늙어 죽을 수 있을까?
잘 편집된 화면뒤에 이런 고강도의 노동이 숨어 있는줄,,,,어찌 알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