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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는 것보단 기대하는 편이 좋다. 사람은 그래야 귀엽다. 초탈한 듯한 태도로 무심한 사람은 동굴에 들어가 벽면수행을 하면 된다. ‘기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기대가 성큼성큼 커질 때는 실망이 두렵다. 반대로 기대가 없다면, 채워지는 시간이 건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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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야타페에서 한 번 탁 터져 주면 좋은데”

이번 콜롬비아 여행에서 기대치가 가장 높은 곳은 구야타페였다. 우리는 살렌토에서 구야타페로 향했다.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마을 구야타페. 인터넷으로 콜롬비아를 검색하면서 구야타페 마을의 엘 페뇰이라는 산봉우리를 알게 되었다. 처음 그 화면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설악산 흔들 바위의 아빠 정도 되는 돌산이 우뚝 서 있었다. 아니 그런 표현은 옳지 못하다. 설악한 흔들 바위는 구아탸파 엘 페뇰의 미니어처쯤 될 것이다. 그런 돌산이 뜬금없이 우뚝 솟아 있었다. 거기서 끝났다면 그리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 꼭대기에서 바라본 호수들이 장관이었다. 호수들이라고 표현한 건 호수가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수 사이사이로 길과 땅이 절묘하게 구획을 나누고 있었다. 지구를 뒤덮은 거대한 그물이라고나 할까? 그런 모양새였다. 이 건 정말 누가 봐도 입을 다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이번 여행의 비장의 무기다. 나는 흐뭇했다. 우리 모두 구야타페 엘 페놀에 대해선 확신이 있었다. 사진만으로 본 거지만 그 볼거리의 묵직함이 한 수 위였다. 이제 관건은 얼마나 숨이 탁 막히게 좋을 것인가?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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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멀리서 엘 뻬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감탄할 틈도 없이 싱겁게 덜커덕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저 돌산 꼭대기에 오르는 것으로 일과를 끝마칠 것이다.

“세수 하고 와. 그게 뭐야, 얼굴이?”

카메라 감독님이 카메라에 녹화된 내 얼굴을 보여 주었다. 밀가루를 곱게 쳐바른 달걀 귀신이 안경을 쓰고 있었다.

“너무 타서 선크림을 발랐는데, 티 많이 나나요?”

“너무 티나.”

강한 햇빛에 너무 돌아다녀서, 얼굴이 다 벗겨지고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감춘다고 선크림을 발랐더니 흉측함이 극대화되었다. 개그스러운 얼굴이 호러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차라리 웃기게 생긴 편이 낫다. 근처 식당의 화장실에서 비누칠을 빡빡하며 얼굴을 씻어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요즘 썬크림은 스토커처럼 피부에 착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마찰열로 불도 붙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빡빡 문질렀지만, 말끔하게 지워지지는 않았다. 덕분에 벗겨진 곳은 벗겨진 대로, 하얗게 떡칠한 부분은 떡칠한 대로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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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630개(대충 그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걸 오르면 정상이다. 나는 계단 전문가나 계단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얼마나 높은 건지 짐작하지 못한다. 바위 틈 사이에 얼기설기 이어진 계단의 모습이 귀여웠다. 원래 자연 그대로가 가장 좋은 거겠지만, 이 계단이 없었다면 밧줄을 타고 해발 1900m의 산을 올라야 한다. 내 둔한 운동신경으론 의심 없이 죽을 것이다. 재수 좋으면 중상을 입고 구급차에 실려가거나…. 그러니 감사히 오른다. 쉬지 않고 오른다. 아무래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을테니까, 더 빨리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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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씨, 이 산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도 있으니까 정상에서 감정을 잘 이야기해 줘요.”

송PD님의 표정은 비장했다. 정상에서 느낀 감회를 멋지게 말해야 한다. 살렌토에서 느끼한 발언으로 개망신의 상처도 있고 해서, 이번엔 정말 잘해 보고 싶었다. 담백하면서도 감동할 수 있는 말. 어렵긴 하다. 그래도 해내야 한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꾸미지 말자. 느낀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지. 멋지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자. 솔직하게. 진솔하게. 헉헉대며 올라가면서도 ‘감동의 한 마디’ 생각 뿐이었다.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또 나를 괴롭혔다. 꾸미지 않은 모습을 어떻게 보이지?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워 보일까? 정상이 가까워진다. 땀이 흐르고,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한다. ‘감동의 한 마디’를 할 때가 다가왔다. 카메라 감독님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를 쫓았다. 아, 드디어 정상이다. 그래. 적당히 헉헉대고 있으니 훨씬 더 실감나겠다. 좋았어. 자자, 잘 해야 한다. 민우. 그리고 주위로 펼쳐진 광경을 바라 본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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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늘 두려웠어요.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좋은 곳을 봐도 둔감해지면 어쩌나 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요. 하지만 보세요. 제 오만을, 제 걱정을 뒤덮는 저 모습을요.”

훌륭하다. 하늘이 주신 세치혀는 결코 녹슬지 않았구나. 내 스스로가 대견해서 치킨 한 마리에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해주고 싶었다.

“아, 왜 난 이런 것만 보면 눈물이 나지.”

매우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려고 한 순간, 망나니같은 세치혀는 후속곡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버린 것이다. 방송사고다. 난 손으로 카메라 감독님께 다가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럴 리가 없다. 미친 거 아냐? 왜 그래, 박민우! 예습을 철저히 한 곳이다. 사진에서 본 것과 똑같다.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내 망막을 꽉 채우는 풍경을 보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그건 내 머릿속 계산과 별개로 움직이는 감동이었다.

“왜 울어?”

카메라 감독님도 당황하셨다. 녹음이 다 되는 건데, 나에게 질문을 한 것이다. 왜 우는 것일까? 카메라는 바로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아, 벗겨지고 분칠한 얼굴에 눈물까지 흘리다니. 완벽하게 망가지는구나. 진짜 숨고 싶다. 심약한 눈물은 좀처럼 멈출 것 같지가 않다.

“왜 울어?”

...

“그냥 이 놀라운 광경을 보면서 제 자신이 작아지고, 하찮아지는 그 감정에. 울컥해지는...”

횡설수설이다. 무언가 잘 해보겠다고 하면 늘 이런 식이다. 다 망쳤다.

‘그래, 왜 우니. 민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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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왜 우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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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내 기대를 압도하는 자연이 고마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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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된 것이 기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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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곳을 바라보는 이 순간

눈이 멀거나

숨통이 끊어져있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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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여행하고 싶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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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고마워서

너무 고마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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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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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울었어요.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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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야타페 엘 뻬뇰 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