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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우닷 페르디다(Ciudad Perdida) - 잃어버린 도시(스페인어로 잃어버린 도시라는 뜻이다). 콜롬비아 지역에서 발생한 고대 타이로나 문명의 유적으로, 흔히 맞추픽추와 비교된다. 몇몇 유물은 맞추픽추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될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도굴꾼에 의해 외부 세계에 알려졌으며, 최근까지도 게릴라의 납치가 빈번하여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곳이다. 엄청난 모기와 퍼붓는 비, 진창인 산길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게 두루 고약한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 약간의 정신력과 그 정신력보다 약간 더 강한 체력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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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우닷 페르디다 트레킹 해보는 건 어때?”

3년 전 타강가에서 카즈마(일본인 여행 친구)는 씨우닷 페르디다(잃어버린 도시) 트레킹을 하고 싶어 했다. 6일 동안 20만 원 가까이 되는 엄청난 비용에 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깨달은 건데, 트레킹은 대부분 비싸다. 혹 그 나라의 경제적 수준을 고려해서 굉히 싼 가격을 기대했다면, 그런 나라도 있긴 하다(간만에 박민우식 허접논리 문장 등장-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는 당시에 6만 원 정도였다). 씨우닷 페르디다 트레킹은 게릴라가 관리하는 마약재배지를 지나쳐야 하는데, 그 때는 게릴라들이 관광객들에게 ‘삥’을 뜯는다고 했다. 이 얼마나 스릴 넘치게 귀여운 상황인가? 그들이 원하는 ‘삥’ 몇 푼 쥐어주면, 게릴라와 기념촬영도 하고, 이메일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거잖아. 카즈마는 너무 가고 싶었는지, 나를 꼬드겼고 귀 얇은 나는 얼마든지 꼬드김에 넘어갔다. 마음은 이미 홀랑 넘어갔지만 돈이 없었기 때문에 ‘쏘리하게 됐다’며 ‘너나 가’라고 했다. 카즈마는 ‘싸나이 의리’를 들먹이며 자기도 괜찮다고 했다. 불필요한 의리 타령에 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고, 나보다 아홉 살 어린 카즈마는 나를 제압하는 경제력으로 나를 속상하게 했다. 한국에선 대학 나온 늙은 아저씨가 다 나처럼 가난한진 않다고 누누이 가르쳐줘도 늘 의혹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실 돈 주고 밀림 속에서 6일간 고생고생 하다 오는 걸 내심 이해할 수 없기도 했다. 가난하다는 게 때로는 좋은 거구나. 나는 그 때 몇 십만 원만 더 있어도, 트레킹을 할 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 까딱하면 트레킹을 할 뻔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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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곳을 촬영하면 우리 나라에서 센세이션 좀 일으킬 겁니다.”

방송에 눈이 멀어, 나는 EBS 제작진에게 요따위 감언이설을 남발했다. 이왕에 하는 거 끝내주는 볼거리가 하나쯤은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라며 제법 의식 있는 여행자인척 했다. 그런데 사실 사진상으로 본 씨우닷 페르디다는 정말 초라했다. 감히 맞추픽추와 비교할 만한 풍광이 아니었다.

‘사진발이 약한 거겠지’

관광객의 발길이 아무래도 얼마 없으니, 찍힌 사진도 부족하겠지. 그래서일 거야. 실물은 훨씬 괜찮을 거야. 함부로 주장하다가 막상 갔는데, 볼 거 없으면 그 송구함은 또 어떻게 감당하지? 무려 6일간의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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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만, 나는 왜 이번 여행에서 씨우닷 페르디다를 과감하게 집어 넣었을까?

진심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맞추픽추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감춰진 도시를 보여준다는 것. 나처럼 허접한 체력과 나약한 의지력, 도시의 카페라테를 좋아하는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 비실비실 아슬아슬 비틀거리며 결국엔 정상에 오르는 내 꼴을 보면 꽤 감동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가기로 한 날부터 나는 밤새 뒤척이며 다가올 고생길에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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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는 비닐 봉지를 모을 수 있을 만큼 모았다. 대형 슈퍼마켓 야채코너에 가서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무려 열 칸의 두루마리 봉지를 뜯어냈다. 초대형 검정 봉지 몇 개는 돈을 주고 샀고, 가끔 슈퍼에서 과자 사고 남은 봉지도 모두 챙겼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비가 오는 트레킹 코스. 진창과 모기떼, 더위와 수도 없이 이어지는 물길. 산넘고 물 많이 건너는 길. 그래서 비닐 봉지에 모든 물건을 다 집어 넣는다. 준비를 할수록 우울해진다. 아주아주 멋지지 않으면 안 돼. 씨우닷 페르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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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설사약을 털어 넣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송PD님과 나의 배탈은 좀처럼 안정이 되질 않는다. 산행을 하면서 배탈이 계속되면 어쩌지? 설사의 무서움은 나보다 송PD님이 더 절절이 느끼시리라. 자다 깨서 똥 누러 세 번 이상 가본 사람은 그 고통을 안다(송PD님이 그랬다). 자다가도 꿈속에서 지를까봐 결국 잠도 설치게 된다. 산을 탈 때 신호가 오면, 그건 또 어쩌는가? 우리만 가는 것도 아닌데…. 일행들 사이에서 옆길로 빠져서 잠깐 누면 된다고? 꼴랑 우리만 여행하는 게 아니다. 한 여행사에서 보통 열 댓명이 같이 움직인다.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인데 그들과 숲길에 쭈그려 앉은 채 눈 마주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같은 팀 사람 눈만 피하면 된다고? 여행사가 몇 개 더 있다. 그러면 그 여행객만 피하면 된다고? 거기서 농사짓고, 말 키우는 사람들을 무시하는가? 카우보이들이라고 동양에서 온 여행객, 산속에서 똥 싼다고 안 비웃을 줄 아는가? 드문드문 산골 깊숙한 곳에 터를 잡은 인디언들은 또 어쩌고. 긴 머리 삼단같이 긴 인디언이 신성한 자신들의 영역에 똥 싼다고 창이라도 들고 달려들면 어쩌는가? 송PD님과 나는 떠나는 날 아침까지 설사와 복통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래도 가야한다. 시간이 없다. 트레킹 끝나고 짐만 챙겨서 공항으로 떠야한다.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너무 바쁜 티 낸다고 생색낸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생색낼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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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같이 갈 비앙카예요.”

하루를 배탈과 고열로 고생하고, 원래 출발하기로 한 날보다 하루 늦게 여정을 시작했다.

“내가 귀여운 한국 사람들이랑 같이 간다고 일부러 꼬셔서 같이 가는 거예요.”

여행사 직원 아주머니는 생색내며 으시댔다.

“나, 비앙카야. 꼭 오늘 가야 한다고 졸랐더니, 한국 사람이랑 같이 가도 좋으면 그렇게 하라는데?”

불과 몇십 초만에 들통날 거짓말로, 이 여행사에 대한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일하는 재원. 거기다 헬스와 트레킹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전에는 산티아고 길 갔다 왔어. 재밌어. 힘들긴, 그냥 걸으면 되는 걸.”

엘 까미노 산 티아고 길. 순례자의 길로 불리는 곳.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의 길, 한달 이상 걷기만 한다는 그 길. 그렇게 걷다 보면 가슴에 북받치는 감동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뜨거운 눈물을 바닥에 철철 쏟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그 영험하고 감동적인 길을 이렇게 간단히 치부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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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혼자 가면 좀 썰렁할 것 같았는데.”

감독님은 일행이 생긴 거에 대해 흡족해 하셨다. 아니, 감독님 아니죠. 그게 아니죠. 가뜩이나 운동신경이 둔한 나는 산 오르는 걸 밥 먹듯이 하는 가녀린 여자(언뜻 보기에)와 함께한다는 걸 상상해 보세요. 내가 아무리 고생해도, 비앙카가 씩씩하게 산에 오르면 나만 ‘쑈’ 하는 꼴이 되잖아요. 이럴 땐 차라리, 태릉선수촌에서 갓 출시된 늠름한 유도선수나 해병대랑 가는 게 낫죠. 나만 쩔쩔 매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잖아요. 한 여름 정글에, 고열과 설사 참고 악전고투하는데 생색이 안 나다뇨. 일단 한 번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후, 링겔 꽂고선 ‘어떻게든 트레킹을 하겠어욧’. 이런 장면 하나 찍고 시작했어야 하지 않나요(그레이 아나토미를 너무 즐겨 봤나?).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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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이 늦은 우리는 닥치고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먼저 출발한 일행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한부 소녀의 마지막 잎새를 녹즙으로 갈아 마셔도 유분수지. 거기다가 남들보다 더 빨리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다고 시청률이 대박나는 것도 아니고, 감사의 보너스가 하사되는 것도 아니잖아?

“산행을 즐기지 않는 출연자가 불편해요!”

“우울한 표정으로 자기만 고생한다고 생색내는 것 같아요.”

이런 공포의 시청 후기가 게시판에 올라오면 얼마나 섭섭할까? 다 집어 치우고 아픈 몸 뉘여주고 쌍화탕과 뜨끈한 김치찌개로 내 몸을 보살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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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무를 수 없다. 루비콘의 강을 건넌 것이다. 나는 해낼 수 있다. 늘 엄살을 피우고 두려워하다가도 막상 해보면 그럭저럭 해냈다. 나를 믿자.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강하다고. 민우야, 파이팅!

PS: 위 사진은 내용과 심하게 상관이 없습니다. 마지막 사진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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