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렇게 깊이 들어가니?”
“두 시간 정도 들어가야 한다고 그랬어.”
비앙카는 뭐가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이다. 박민우는 뭐가 그렇게 우울한지 계속 다리를 떨며 초조한 티를 낸다.
“이거 먹어!”
그녀는 주머니에서 과도를 꺼내, 아보카도 껍질을 벗긴다. 아보카도를 과일처럼 먹다니. 캘리포니아 롤에 넣거나, 샐러드에 쓰이는 느끼한 열매인데(사실 나도 아주 좋아한다). 어! 이렇게 먹어도 맛있잖아. 수분이 풍부하고 열량도 충분해서, 산행을 오를 때 매우 요긴한 열매임을 나도 알아챈다. 순간 짜증이 확 밀려든다. 비앙카, 너 모르는 게 없구나. 산이 다 네 안방 같구나! 걷기 시작하면 그 때부턴 얼마나 더 노련하게 잘난 척 할 거야?
“원래 6일인데, 한 이틀 정도 더 그 곳에 있을 생각이야. 정글에서 그렇게 며칠 더 잘 수 있다니, 너무 좋아!”
“에이, 막상 그래도 가면 또 집이 그리울 거야. 6일도 짧은 시간이 아니야.”
“아마존에선 한 달 동안 그렇게 살아봤어!”
“…”
사진 설명 - 늘 신난 비앙카. 사진은 좀 못 나왔는데. 갖고 있는게 없음.
한달을, 아마존에서? 간만에 내가 싫어할 만한 아이를 만났다. 너, 정말 이럴래? 그렇게 눈 말똥말똥 순진한 표정으로 나를 능멸하다니.
“비앙카, 난 도시에서 자라서 그런지 이런 곳에 오면 좀 무서워. 잠자리도 불편하고.”
“씨티 보이, 나만 믿어. 같이 재밌게 가 보자.”
비앙카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걱정 말라고 했다. 또 한 번 짜증이 치밀어 올라야 하는데, 정말 비앙카만 믿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 비앙카. 너만 믿을게. 내가 비록 너로 인해 하찮아 보여도, 나는 이 산행에서 큰 사고 없이 내려오기만 하면 된다고. 너라면 나 숲에서 똥 눌 때 망도 봐주고 그럴 것 같아.
“가방 안에 짐을 모두 꺼내세요.”
2003년, 영국인과 이스라엘 배낭 여행객은 시우닷 페르디다에서 게릴라에게 납치되었다. 몇 달 후에 풀려나긴 했지만(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 신나게 얻어 맞았겠지)..., 어쨌든 게릴라도 출몰하고 그랬던 곳이라 경비가 삼엄하다. 밀림 입구를 지키는 군인들은 우리 짐을 샅샅이 뒤졌다(기보다는 그런 척 했다). 비닐 봉지에 둘둘 담긴 속옷과 양말이 마구 튀어나왔다. 봤지, 비앙카? 나도 완전 초짜는 아니라고. 나는 슈퍼마켓에서 훔친 두루마리 봉지들이 괜히 자랑스러웠다. 넌 어쩜 비닐봉지 하나도 준비 안 했냐? 하나, 줘?
트레킹의 첫째날과 둘째날! 해발 800m 정도의 야트막한 산을 오른다. 산 높이는 만만하지만, 내내 오르막이라 트레킹 코스 중 가장 난코스다.
‘난코스’
‘난코스’
‘난코스’
시작한지 30분도 안 돼, 난코스는 너무도 뻔뻔하게 본모습을 드러냈다. 온통 진흙바닥이다. 수제비반죽 같은 땅바닥은 내 발을 삼킬 듯 질척거렸다. 이런 길이 오르막이라니.
“도저히 안 되겠어. 이대론 더 이상 안 돼.”
송PD님과 카메라 감독님은 이구동성으로 이 상황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출연자는 스태프들 노동량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카메라 감독님은 뒤에서 혹은 앞에서 출연자를 담아야 한다. 어쩔 땐 뛰어야 하고, 어쩔 땐 한참 후에 쫓아야 한다. 그냥 걷기에도 땀이 물처럼 쏟아진다.
“짐을 운반해줄 사람이 없을까?”
히말라야를 비롯해, 힘들다는 트레킹은 모두 섭렵했던 두 분이 혀를 내두른다. 원래 짐 옮기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면, 미리 말하고 돈을 내야 한다. 아, 내가 이렇게 기념비적으로 힘든 곳을 가고 있구나. 두고두고 잘난척 할 거리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지금 도저히 짐을 옮길 수가 없어요.”
현지 가이드 로베르토는 ‘노 프로블레마(걱정마)’를 외쳤다.
‘휘익’
로베르토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휘파람과 함께 카우보이들이 말을 타고 산길을 내려왔다. 날렵하고 가벼운 솜씨로 우리네 짐을 채가더니, 이랴이랴 산 속으로 사라졌다. 제법 황홀하고 친절한 장면이군.
‘나?’
나는 조금의 불평도 없이 성큼성큼 산을 오르고 있었다. 때로는 멀찌감치 앞서나가 다른 일행들이 못 쫓아올 정도였다. 오늘을 기다린 용수철처럼 사뿐사뿐 튕겨 올랐다. 이런 반전은 사실 트레킹 초반에 나에겐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반쯤 실성했기 때문이다. 극도의 공포심으로 인해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지는 ‘표백 증후군’ 현상이 일어난다. 이 병명은 순전히 내 멋대로 지은 이름으로, 고생이 시작된다 싶으면 뇌 속이 텅텅 방전되는 증상을 의미한다. 오래달리기 첫 바퀴를 돌 때나, 군대에서 행군할 때도 그랬다. 모든 생각은 OFF 상태고, 몸만 움직인다. 설사? 이미 닥치고 쥐죽은 듯 고요하다. 아침까지 괄약근 뚫고 나오려던 똥도 이젠 찍소리 못하고 패닉 상태로 진입했다. 길이 지랄 맞은지, 내 발목이 시큰거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입 헤 벌리고 걷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약발은 영원하지 않다.
사진설명: 콜롬비아 친구 필리페가 찍은 사진, 귀에 물들어 가서 두드리고 있는데 춤추는 줄 알았다고 함.
사진 설명: 현지 가이드 로드리고. 이 친구 역시 사진보다 실물이 낫다. 감독님이 모델 시켜도 되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촬영을 해야 한다고, 촬영을!”
다큐멘타리를 찍는 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 입장에서야 아 한 사람이 걷는구나. 이러면서 보면 끝이지만, 그 한 사람이 걷는 장면. 그리고 그가 쉴 때 바라보는 풍경, 그와 같이는 일행, 특이한 동물이나 식물. 이런 것들을 일일이 찍어줘야 한다. 그러니 일행보다 늦어질 수가 없다. 가이드 로베르토는 이러다간 날이 어두워진다고 했다. 날이 어두워진다고 꼭 필요한 장면을 안 찍을 수도 없다는 송PD님의 말씀은 너무도 당연했다. 서두르면서 꼭 찍을 것만 찍으며 같이 움직였지만, 해는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주위가 어둑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때까지도 나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얼이 빠져서 걷는 건 그리 나쁜 게 아니로구나. 모르핀 주사처럼 고통을 잊게 해 준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도, 진흙더미에 신발이 쑥 벗겨져도 걷기만 했다. 그리고 해가 사라졌다. 해가 사라지면 산길은 지옥길로 돌변한다.
“촬영이고 뭐고 그냥 걸어야겠어.”
과연 오늘 안에 숙소까지 갈 수 있을까? 훤한 대낮에도 엉덩이 종기처럼 고약한 길이었는데, 어둠에 숨어버리자 이루 말할 수 없이 악랄했다. 대낮에 조심조심 가끔 미끌어지던 패턴이, 미끄러지다가 가끔 걷는 수준으로 뒤바뀌었다. 가지고 있는 랜턴은 총 두 개, 실날 같은 빛에 의지해서 당나귀와 총 여섯명(두 명의 가이드, 비앙카, 나, 촬영감독님, 송PD님)의 아슬아슬 곡예 산행이 시작됐다.
“세 시간만 걸으면 돼.”
로베르토가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천기를 누설했다.
‘세 시간만!’
‘세 시간만!’
‘세 시간만!’
장담컨대 그 세 시간은 평생 오지 않을 것이다. 그때부터 슬슬 나는 정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르핀이 필요하다. 감내할 수 없는 공포심이 내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듯 했다.
‘으악!’
우리는 사이좋게 비명을 지르며 차례로 넘어지고 엎어지곤 했다.
“으아아아악!”
나였다. 비명이 유달리 길었던 건 왼쪽 다리가 쑥 빠지는 느낌이 들더니 바닥이 닿지 않는 것이다. 가랑이에 걸쳐져서 더 미끄러지지는 않았지만 섬뜩했다. 벼랑이었던 것이다. 그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돌아오는 길에 봤더니 3m 정도 되는 높이였다) 모르니까 더 무서웠다. 고마운 가랑이가 없었다면, 아주 허무하게 죽었을 것이다. 1초 안에 후다닥 죽는 죽음. 진이 다 빠지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으아아아악!”
이번에도 나였다. 이 번에는 계단 사이에 커다란 구멍이었다. 다리 하나가 통째로 빠졌다. 모든 사람이 달려들어서 나를 끌어냈다. 안 돼. 더 이상 가면 안 돼. 이 밤길을 앞으로도 최소한 두 시간. 어떻게 걸어? 뭐가 보여야 걷든지 하지. 들리는 건 물 흐르는 소리 뿐, 그 소리마저 저주의 곡소리처럼 들렸다.
“민우, 당나귀가 도망갔어.”
“괜찮아. 다 괜찮아.”
“우리 짐 실은 당나귀가 도망갔다니까.”
“괜찮다니까.”
나는 이미 패닉 상태였다. 카우보이가 채간 짐을 중간 지점에서 당나귀가 이어 받았는데 한 밤중에 이 당나귀가 숲속에서 암 당나귀를 만나 도주를 해버린 것이다. 원주민들은 당나귀를 찾아 어둠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공포에 질려 어떤 상황도 상관 없이 멍해 있었다. 비앙카가 괜찮으냐고 묻는 줄로만 알았다. 한 밤에 사랑 좀 하겠다고 사라진 당나귀를 이 어둠속 숲에서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과연 오늘 내에 숙소에 도착해 잠을 잘 수 있을까? 땀에 찌든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민우 하늘 좀 봐!”
여전히 쾌활한 비앙카는 하늘을 가리켰다. 깨끗한 하늘에 크리스탈처럼 윤택한 별들이 펼쳐져 있다.
“아!‘
길 양쪽으로 키큰 나무들이 나란히 정렬해 있었다. 달빛을 받아 겨우 윤곽만 보였지만, 그 나무들은 하늘에 커다란 삼각형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별이 촘촘히 박힌 거대한 선박처럼 보였다. 하늘을 나는 배. 하록 선장이 우주를 항해했던 그 거대한 항공모함처럼 그렇게 황홀한 모습으로 우리를 내려 보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 덕에 지금의 고생이 단숨에 씻겨 져 내린 것 같았다는 식의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고통은 고통이고, 짜증과 심란함은 여전하다. 분명한 건 이렇게 띄엄띄엄 있을 경이로움을 허투루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로 이런 짧은 순간의 경이로움이 내 여행의 이유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사진은 타강가 사진이예요.^^ - 내일 트레킹 이야기를 끝내야겠죠?)
이렇게 고생해서 힘들게 탄생시킨 여행기에 립흘이 없다는건.....여기 립흘 하나 드립니다. 목숨 걸곤 시도한 힘든 트레킹 후기를 편안하게 다리꼬고 집에서 키득거리며 보는 제가 좀 많이 미안하네요. ㅋㅋ...어차피 인생사 다 그런거....흠..
우왕 굳ㅋ 멋있네요
ㅋㅋㅋㅋ왜이렇게 재밌어요...ㅋㅋㅋ 근데 왜 립흘이 없냐고...ㅋㅋㅋ빨리 다음꺼 올려줘요..ㅋㅋ
재밌게 잘봤습니다..멋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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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세계테마기행이 다르게 보일거 같구만요
아 진짜 웃기고 너무 재밌다 뇌 방전.ㅋㅋ
솔직히말해서 여행자체는 이야기거리가 충분한데 글쓴이 필력이 후달려서 노잼입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라고 추천드려요
콜롬비아에 아마존이 있었음? - bl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