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너무 상관없는 시우닷 페르디다 하루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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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먹었다

아침: 찌그러진 철 냄비에 커피가루를 탈탈 털어놓고 끓인 커피. 가루가 입에 거치적거리기도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콜롬비아 커피 마신다는 거에 괜히 우쭐해진다. 루이비통 핸드백 공장에서 실밥을 뜯는 느낌이랄까(별로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남들 다 맛있다니까 그저 맛있다. 국자로 퍼서 싸구려 플라스틱 컵에다 마신다.

점심: 야외에서 DIY샌드위치를 각자 만들어 먹는다. 식빵, 양파, 햄, 토마토, 마요네즈가 가득 놓여 있고. 우리는 단식 끝낸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보통 여자는 한 개나 한 개 반. 남자는 두 개를 먹는다. 나는 세 개 먹는다. 나 말고 두 명 더 그랬다.

저녁: 현지 가이드들과 여행사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요리를 해준다. 주 메뉴는 스파게티. 인심 좀 썼다 싶으면, 소시지가 추가된다. 한 번은 쇠고기가 나왔다. 고기라면 환장하는 서양 친구들도 씹다 뱉었다. 안 삼켜진다.

후식: 오레오 쿠키의 짝퉁 크레오 쿠키를 하나씩 준다. 남들 안 먹으면 내가 다 챙겨 먹는다.

간식: 파인애플을 두 번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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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아침: 대부분 6시에서 6시 30분 사이에 일어난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잔다. 뾰족하게 할 게 없으니 오스트랄로 피테쿠스틱한 삶으로 회귀한다.

점심: 걷는다(날씨 좋으면 수영도 시켜준다. 몸매에 자신 없으면 안 해도 된다. 몸매에 자신 없지만 나는 했다.)

저녁: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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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감독님 이렇게 고개를 쳐박고 수영하면 있어 보이나요?

 

“꼭 이렇게 밥 먹는 것까지 찍어야겠어?”

일행 중 오스트리아 여자 아이였다. 식사 시간에 촬영이 진행된다는 것에 심기가 불편해진 듯 했다. 그렇다고 밥상 머리에서 너무 날카롭잖아.

“낮에도 그렇고, 나도 내 모습 나가는 거 싫어.”

이번엔 늘 얌전하던 스위스 여자였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보다 진지한 목적으로 시우닷 페르디다를 방문한 친구였다. 일행들에게 미리 양해까지 구했지만, 그녀들은 불편해 했다. 더군다나 개울가에서 수영할 때는 카메라에 그 모습이 담길까봐 무척이나 짜증을 냈다. 당연하다. 나 같아도 그러겠다. 자신들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질 권리가 있다. 그 것도 호젓한 시간을 갖기 위한 여행에선 더더욱 그렇다. 반면에 우리는 여행 프로를 찍기 위해 왔다. 생생한 여행의 현장을 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죄할 수 있겠니. 웃통을 모기떼에 드러내고 자해라고 할까?

“얘도 먹고 살아야지.”

벨기에 아저씨였다. 사생활과 개인주의를 존중하는 서양에 이런 사람도 있었나? 내가 이거 못 찍으면 당장 굶어 죽는 줄 아셨을까?

“좀 찍겠다는데 찍히면 좀 어때?”

“내가 원래 한국 애를 입양하려고 했었어. 88 올림픽 때문에 한국 입양이 전면 통제되면서, 콜롬비아 아이를 입양한 거야.”

그래서 내가 남 같지 않았나? 한국 아이를 입양했다면, 지금쯤 아이들 데리고 북한산에 오르며 오이를 부러뜨려 먹었을까? 외교관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생활을 한 아저씨는 요트까지 있는 걸로 봐서 벨기에에서도 중산층 이상은 되는 듯 했다. 이 집 식구들은 대체로 조금 특이했다. 낳아준 부모의 나라에 온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서, 큰 아들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내심 침을 삼켰다.

“돌덩어리에 수풀. 그게 유적이야? 어쩌라고? 딱 질색이야. 쇼핑이 최고야. 여행은.”

그래 차라리 딸이랑 이야기를 해보자.

“뒤쳐져서 오는데 소가 나한테 달려드는 거야. 쇠뿔로 나를 들이받았다니까. 그 때 어디 있었어? 그거 찍었으면 진짜 재밌었을 텐데.”

이 진지하지 못한 남매. 온가족이 둘러앉아 맞담배를 펴대는 가족. 뻘소리와 헛소리를 반반씩 섞어 대화를 이어나가는 산만한 부류.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나는 그들과 전생에 한 가족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럼 이제 편을 나눠 보자. 까칠한 아이들은 알아서 자기네들끼 어울렸다. 어차피 다 내 편이 될 순 없다. 벨기에 가족은 확실히 접수했다. 그리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만나 사랑을 꽃피우고 있는 네덜란드 커플도 내 세력권 안으로 들어왔다. 내 가공할 세치혀로 주구장창 나불대는 쓸데없는 수다에 제법 흥미로워했다. 일단 내 수다에 흥미로워한다면 게임은 끝이다. 내 나불거림은 처음부터 무시하면 몰라도, 일단 한 번 귀를 기울이면 빠져나올 재간이 없다. 중독성이 강하고, 사람의 혼을 빼놓는 끈끈이 주걱같은 더러운 접착력이 있다. 이들은 이제 카메라 감독님이 아무 예고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도, 활짝 웃으며 방송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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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 여기가 코기족이 사는 집이야.”

비앙카는 성큼성큼 오두막집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거침이 없다. 그렇다고 무례한 것도 아니다. 원래 외지인들이 인디오에게 다가가는 것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 말을 걸거나 아이를 안았다. 그러면 또 인디오들도 그녀를 놔두었다. 하지만 우리들이 말을 걸거나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강력하게 제지했다. 이 곳 인디오들은 외지인들을 극도로 경계한다. 무고하게 많은 이들이 외부인들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유 없는 경계는 없다. 가해자는 쉽게 잊고, 쉽게 이해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가슴에 멍울처럼 정체된 아픔과 슬픔은 쉽게 녹아내리지 않는다.

“그렇게 들어가도 돼?”

“괜찮아, 들어와.”

비앙카가 집주인인양 들어오라고 했다. 우리는 다른 일행보타 약간 뒤쳐져 있었다. 난 일단 그녀말만 듣기로 했다. 왠지 그녀는 믿음직했다. 갑자기 부모가 들이닥치면 ‘얘가 들어가자고 했어요’ 그러면서 비앙카를 가리킬 것이다. 안에는 5살 가량 된 인디오 꼬마애가 있었고, 두 개의 부대자루가 천정에 매달려 있었다. 꼬마가가 연신 부대자루를 흔들고 있었고, 그 안에는 아기가 울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닭과 병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더럽고 위태로워 보였다. 질병의 온상에 아이들이 방치되어 있는 건 아닐까? 부대자루에 아이를 넣어 두다니... 등골이 오싹했다. 그런데 또 한 부대자루는 조용하기만 하다.

“비앙카 한 쪽은 왜 이렇게 조용하지?”

“나도 모르겠어.”

그 때 엄마가 들어왔다. ‘어쩌나, 큰일 났다’. 우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비앙카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비앙카는 확실히 부드러운 힘이 있는 아이다. 그녀는 오히려 아기 안색을 살피며 건강 여부를 물었다. 그녀라면 인디오들이 세상과 섞일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뜻한 아이. 소통이 무엇인이 아는 아이. 그리고 우리가 오두막을 나오자마자 5살짜리 소년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마도 엄마가 아이를 혼내는 듯 했다. 왜 외부인을 집안에 들였는냐고 꾸짖는 것이 분명했다. 비앙카! 내가 들어가지 말쟀잖아. 다른 세상을 존중하지 못하는 무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그 이름은 바로, 비앙카^^;

‘비앙카가 들어가자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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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만 걸으면 시우닷 페르디다가 보일 거예요.”

세 번 째 날 드디어 시우닷 페르디다를 보는 날이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숲이고 물이고, 모기고, 벌레다. 모기는 여전히 맹렬했고, 길은 걸을만 했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드디어 시우닷 페르디다가 ‘짠’ 하고 나타난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가이드들은 한결같이 셋째 날이 가장 쉽다고 했다. 그들 말대로 두 시간 정도 걸었나? 드디어 시우닷 페르디다에 다 왔다는 것이다. 셋째 날은 거의 공짜잖아. 좀 뭔가 어려운 길을 걷다 걷다가 힘들게 시우닷 페르디다가 저 멀리서부터 보이고 그래야 감동적일 텐데. 고생한 거에 비해 텔레비전에선 썰렁하면 너무 억울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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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200계단 더 남았어요.”

내 방정맞은 걱정을 누군가 읽은 걸까? 물길을 건너고 산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왔다. 거기서부터 시우닷 페르디다 유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1200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다리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벨기에 아저씨도 그 말에 힘이 빠졌는지 헉헉 거렸다. 우린 쭈그려 앉아 같이 심난해 했다. 이미 남은 힘을 깔끔하게 소진했는데, 그 때부터 다시 시작이라니. 아저씨가 이렇게 그래도 곁에 있어주니 너무나 감사했다. 약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처지를 가슴깊이 이해할 때. 그 연대감이 주는 감동은 결코 작지 않았다.

“나 먼저 올라간다.”

“아저씨이이이”

그 연대감이 습자지처럼 얄팍한 것이었나요. 벨기에 아저씨가 가쁜 숨은 여전히 몰아쉬면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서셨다. 사투를 벌이며 오른다고까지 말하기엔 부끄러운 난이도의 산행인데, 그렇다고 포테토칩 부러뜨리는 것처럼 우스운 건 또 절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했는데 허벅지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못 걷겠다. 쥐가 나 버린 것이다. 군대 시절에도 행군 때 나는 쓰러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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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해보고 싶었다. 내 운동화와 시우닷 페르디다 전경

‘여기서 쓰러지면 앞으로 인생도 패배자가 될 거야.’

당시 조교의 말은 살 떨리게 무서웠다. 나는 그 때 패배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외로움과 내 자신에 대한 실망은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어떻게든 걸어야 한다. ‘낙오자’라는 말은 너무 무섭다.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 빨리 봐 버렸을 때의 무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평상시 나라면 발을 동동 구르며 억울해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다리의 마비가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 못 걷게 되면 그 땐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 기다려보는 것. 고통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기다려 보는 것. 그리고 내 몸이 일으키는 반응을 해독하는 것. 나는 꼴찌로 뒤쳐졌지만, 그리고 촬영이라는 내가 해결해야할 숙제가 있었지만 그렇게 쭈그려 앉아서 숲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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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개의 계단

‘150 계단’

‘560 계단’

‘세지 말자’

‘대충 900계단’

‘분명 1200계단 한참 전에 지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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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지 못한 다리로 절뚝이며 계단 하나하나를 밟아 나갔다.이제 올라갈 계단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3일 내내 그토록 바라던 마지막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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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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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주한 씨우닷 페르디다는 사진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염려했던 배탈, 설사는 트레킹이 끝날 즈음에 도졌고, 거의 전 참가자들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힘들어했다. 날씨 운도 다 했는지, 비가 억수로 퍼붓는 길을 걸어야 했고, 카메라는 빗물에 고장 나서 촬영을 제대로 못 마쳤으며, 녹음해야 하는 마이크는 숲길에서 잃어 버렸다. 그 와중에도 신령한 녹음으로 우거진 아름다운 산과 구름에 휩싸인 시우닷 페르디다는 놀랍고 웅장했다. 딱 하나를 목표로 매진하고, 그 것을 얻어내고, 성취감의 여운까지 고스란히 맛보고 있다.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눈에 들어오는 황홀한 자태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또 한 번 해냈다. 산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한 나는, 산 속에서 발산하는 질 좋은 산소를 즐기며 아침을 맞았고, 그물 침대에서 코 골며 잘 수 있었으며, 언제 집에 돌아갈까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배탈, 설사로 고생을 해도 내 몸을 믿으며 기다렸고, 비가 철철 나는 그 순간에도 종아리에 힘을 주며 정성을 다해 걸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열정을 불사른다는 것, 그런 느낌을 명료하게 느낄 때 가슴이 뜨거워진다. 별로 눈물을 흘릴 필요도 없고, 그럴만한 이유도 없었는데 나는 감독님 몰래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제 그만 울어야지. 멍청한 울보 여행자는 이번이 마지막 우는 거라며 눈물 몇 방울을 서둘러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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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밥 먹을 때는 모두 하이에나다. 그 중 내가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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