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에 가게 되는 일을 계기로 나는 외국여행의 큰 첫발을 내디뎠었다. 외국여행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두려움과 설렘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출국일이 다가왔고, 처음으로 혼자서 지내는 외지 생활이 시작되었다. 알파벳과 be 동사도 모르던 시절의 그때. 항상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친구들, 가족들을 볼 수 없고, 전화도 할 수 없는 상황. 이 고립된 상황이 나를 변화시켰다.
변화는 조용히 다가왔다. 혼자 지내는 만큼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평소 가볍게 지나치는 것들을 조금 더 깊게 보게 되었고, 나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한국과는 모든 게 달랐던 미국. 생각의 틀을 완전히 깨버리는 시간이었다. 자유분방한 미국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원래 낙천적인 성격에 얼굴까지 두꺼워졌다.
2008.11월 미국의 추석 땡스 기빙 데이가 있는 달이다. 이 기간에 많은 친구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온다. 딱히 갈 곳이 없어 무작정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어렸을 적 소위 '부랄친구'였던 친구가 보고 싶다는 메일이 왔다. 캘리포니아와 캔자스는 거리가 상당했다.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처음 미국에 도착해 센프란시스코 공항에서 길을 잃고 비행기를 놓친 때를 생각하니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는 보고 싶은데 용기가 부족했다.
땡스 기빙 데이를 일주일 남기고 나도 모르게 덜컥 표를 구매해 버렸다. 그때의 심장 떨림은 정말이지... 하하.
LAX에 도착했다. 그래도 석 달을 공부 했다고 영어가 조금은 들리고 또 된다. 신기했다. 말이 조금 통하니 두려움은 곧 재미로 변했고 친구를 만나 떠났던 일주일간의 캘리포니아 여행은 나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 막연히 여행을 동경하고, 꿈꾸며 지냈던 것 같다.
다시 캔자스에 돌아오니 부족한 영어를 조금 더 키우고 싶다는 생각, 빨리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의욕이 넘쳤다. 매일 손에 들고 다녔던 영어 사전도 더는 들고 다니지 않았다.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렇게 겨울 방학이 되었고 나는 또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못했다. 겨울 방학만 기다리며 여행을 꿈꾼 나는 답답했다. 두 학기가 끝나고 본과 편입과 귀국의 기로에서 귀국을 선택했고 귀국길은 1달의 여행으로 꾸며졌다. 스탑 오버를 이용해 뉴욕에서 15일 엘에이에서 15일 여행을 떠났다.
뉴욕 여행. 한국에서 매일 같이 보던 절친한 친구 한 놈이 뉴저지에 1년간 있을 예정이니 들어가기 전에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 뉴욕으로 떠났다. 한국에서 보다가 미국에서 보니 두 배 더 반가웠다. 친구네 집에 짐을 내리고 친구가 학원을 가는 새벽에 같이 나가 친구네 큰아버지 가게 일을 아주 잠깐 도와드리고, 받은 샌드위치 하나를 반으로 잘라 하나는 아침에, 나머지 반 개는 여행을 다니다 배가 고프면 먹었다. 친구가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친구와 집에 돌아가서 저녁을 해결했다. 이동은 지하철을 이용했고, 기억에 하루, 7일, 보름 동안 무제한으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표가 있었다. 보름 정도 되는 것을 구매했고 그렇게 다닌 15일간의 뉴욕 여행. 한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서의 처음으로 혼자서 다녔던 것 같다. 보가닉 가든의 벚꽃 향연. 숨이 막혔다. 누가 미국에 가게 된다면 뉴욕은 가지 말라고 했던가. 뉴욕 정말이지 끝내줬다.
보름간 신세를 진 식구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엘에이로 떠났다. 두 번째 엘에이. 바닷가에서 천연 수족관을 발견했다. 썰물에 바닷물이 빠지면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웅덩이에 가득했다. 수많은 웅덩이가 있었고 각 수조엔 다른 생물들이 가득했다. 아름다웠다. 보름간 머물면서 이런 천연 수족관을 몇 개고 찾아다녔다. 밀물이 들어올 때엔 돌아가야 했는데, 한 날은 밀물이 들어오는 해 질 녘에 이동하는 고래떼를 보았다. 태어나서 야생 고래를 처음 보았고, 그렇게 많은 고래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턱관절이 빠진 듯 입을 벌린 채 한참을 지켜보다가 밀물에 돌아가는 길이 많이 잠겨 있어서 난감하기도 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었고 어느새 귀국일이 다가왔다.
한국에 돌아오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모든 게 그대로지만 무언가 달랐다.
다음 여행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미국을 다시 가고 싶었지만 두 세달 돈을 벌어선 절대로 갈 수 없었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헬스장에서 트레이너 일을 하며 돈을 착실히 모았다. 겨울 방학이 돌아왔고, 배낭 여행자의 천국이라는 방콕행 비행기를 구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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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부터는 전에 운영했던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
2010년 1월.
벌어놓은 돈으로 갈 수 있는 태국에 대한 여행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2월.
이때 당시엔 헬스장에서 나와 개인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한 친구를 두 달간 도와주었고, 일이 마무리 될 즈음 나는 '급'으로 표를 예매하고 배낭 하나에 3일 치 옷과 친구에게 백업용으로 빌린 노트북,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과 일기장이 되어주는 카메라를 어깨에 걸치고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2010.02.11 그렇게 태국으로 떠났다.

am10:05 비행기. am6시에 의정부에서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지만, 시간을 잘못 맞춰와서 7시까지 버스를 기다린 후에 버스에 타지만 눈이 5미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많이 와서 버스가 50cc 스쿠터보다 느린 속도로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평소면 1시간이면 갈 거리에 눈 덕분에 가는 길마다 사고 일색에 심한 교통체증에 비행기를 놓칠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에 휩싸였다.

2시간 30분만에 도착한 공항엔

그렇다. 역시 나를 기다리는 비행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뭐 어찌 되었든 다행히 다음 비행기에 자리가 있어서 다음 비행기에 안착하게 되었다.

갑작스레 내린 눈에 비행기에 쌓인 눈을 녹이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대기번호 4번이라는 말에
"금방 되겠구나"했지만. 이화면을 다섯 시간을 보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하아..

버스 놓칠까 봐 아침도 안 먹고 달렸건만 오후가 되어서야 먹을 수 있었던 기내식.

정신과 시간과의 싸움 끝에 도착한 타이공항

이곳만 넘으면 이제 외쿡인

꽤 멋들어졌던 타이공항

지칠 대로 지쳐선 택시를 타게 되는데 이때 처음으로 태국 사람의 인심을 느끼게 되었다.
600밧트. 나중에 알게 되지만 300밧이면 갈 수 있었다. 아저씨 어쩐지 미소가 아주 아름다웠다 했어요^^;
(35밧이 천원)

다음에 꼭 다시 만나요 아저씨!
뭐 그땐 몰랐으니깐 그래도 나름대로 편하게 방콕 안에 있는 카오산 로드에 내리게 되었다

수많은 외국인. 이곳이 정말 태국인가 싶을 정도로 현지인들은 보이지도 않고 외국인들이 넘쳐났다.
숙소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난감하게 이럴때 길눈은 한없이 어두워진다.
카오산 로드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던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아닌지 어떤 한국인 여성 두 분이 친절하게도 "오늘 도착하셨죠?" 하며 말을 건네왔다. 고맙게도 그 두 분이 길을 설명해 주셔서 감을 잡고는 가이드북 잠시 펼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 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단골인 서브웨이. 이상한 것은 태국에 머물며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지도에 눈을 뜨고 별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었던 동대문 게스트 하우스.
피곤해서 짐을 바로 내려버리고 싶었지만 몇 군데만 더 가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찾아갔던 디디엠은 자리가 없었다.

거의 모든 게스트하우스에서 여행사업무도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관광을 좋아하지 않아 이용할 일이 없을 줄 알았지만, 버스티켓은 꽤 유용했다. 굳이 터미널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더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 준다.

다시 동대문으로 와서 짐이라기엔 민망한 배낭을 내리고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처음 겪는 도미토리. 24인실이라 처음엔 당황했지만 되려 많은 여행객을 만날 수 있어서 도움도 많이 되었고 신식건물의 깔끔함과 빵빵한 에어컨 덕분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어렵사리 도착한 태국의 첫날밤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비행기 놓쳤을때 심정.. 저도 겪어봐서 알죠. 고생고생해서 가셨네요. 재미있게 잘 보고있습니다.
나중에 올라올 남부버스 이야기에 비하면 이 상황은 너무 귀여운 에피소드랍니다 ㅠㅠ 앞으로 많이 지켜봐주세요!
언뜻 처녀의 여행기로 읽었네요. 허벅다리굵은 처녀가 여행하는구나 하고^^ 처음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