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라파즈
"으어......미치겠네...."
달의 계곡과 레슬링을 관람하고 온 다음날.
저는 원인모를 복통과 설사에 시달렸습니다.
처음에는 뭔가를 잘못먹은 줄 알고 여느때 설사처럼 지나면 좀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동반되는 엄청난 고통의 복통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창자안에서 미꾸라지가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태어나서 배가 그렇게 아프기는 정말 처음입니다.
사전을 찾아가며 '설사'라는 단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약국에서 지사제도 구입해 먹어보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봤지만
복통과 설사는 도저히 멈출줄을 몰랐습니다.
너무 배가 아파 아무것도 먹지 않아보았지만 급기야 물까지 내보내는(?) 상황.
인터넷이 되는 지붕 아래에서 열심히 정보를 뒤져보니
이건 물갈이 증세였습니다.
해외나 환경이 급작스럽게 변하면 걸리기 쉽다는 물갈이.
가만히 지난 몇일간의 행적을 떠올려 봅니다.
페루, 볼리비아의 고지대는 물이 귀해서 수돗물같은건 함부로 먹지 말라고 해서
수돗물은 끓여먹은것 밖에 없는데...그것도 라면정도
그러다 달의 계곡과 캠핑장에서 먹었던 정수기 물을 떠올립니다.
정수기라고는 하나, 필터가 없어보이는 출처 분명의 정수기를 닮은 수돗물이었을 지도.
아마 범인은 그 물로 추정됩니다.
원인이야 어찌됐든, 엄청난 고통과 설사, 열과 몸살로 라파즈 시내는 커녕 캠핑장안에서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
그냥 화장실 근처 의자에 누워서 설사가 도질때 마다 변소 들락날락하는 정도...
아마 화장실을 대략 하루에 20번은 간듯...
급기야는 엄청난 고열로 소변을 보다가 화장실에서 기절까지 합니다.
물론 저 사진은 후에 설명을 돕고자 찍은 사진.
아무도 화장실에 안들어와서 바지벗은채로 화장실에 얼마간일지 모를 시간을 쓰러져 있다 깼습니다.
물갈이라는 질병이 이렇게 힘든거였나...
많이 아픈 얼굴.
10월 13일
라파즈 -> 오루로로 향하는 길
설사와 복통은 며칠간 계속 됐습니다.
그래도 약 2~3일 지나자 어느정도 참을만한 수준으로 복통이 가라앉아서 (설사는 계속)
더이상 볼것 없는 라파즈를 떠나기로 마음먹습니다.
애초에 볼리비아를 온 목적,
아니, 남미 여행의 목적이 우유니였고,
지금 그 우유니는 여기서 아주 멀지 않습니다.
중간에 아스팔트가 없는 길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 구간에서 버스를 이용한다면
버스이용시간 포함해서 약3~4일 정도의 거리.
앤드류는 다 낫기전에는 떠나지 않는게 좋다고 충고했지만
어딘가 시간에 쫒기는 기분이 든 저는 그의 충고를 무시하고 캠핑장을 떠납니다.
앤드류도 제가 떠날때 뭔가 질병에 걸려서 텐트안에서 골골대고 있었습니다.
어딘가 도로위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지만, 그 이후 다시 만나는 일은 안타깝게도 없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미국에서 보내고 온 그와는 페이스북으로 근황을 묻곤 하는데
지금 이 여행기를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거의 여행이 끝나가는 분위기더군요.
무튼 아무리 설사를 하고 배가 아파도...
페달을 돌릴려면 어떻게든 배는 채워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식당에 들렀으나
평소같으면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을 닭고기음식을 절반을 채 먹다 포기합니다.
캠핑장을 떠난지 얼마 안가 저의 결심은 실수였다는 것을 꺠닫습니다.
몸도 성치 않은데, 캠핑장을 올때 내려왔던 내리막길의 시간을 감안하면
오늘은 라파즈도 못벗어나고 하루종일 오르막만 오를 판입니다.
몸살은 계속되고, 5분주기로 뱃속에서 빨랫감을 쥐어짜는 고통이 밀려오고
진지하게 여자들이 생리하면 이정도의 고통일까 생각하다가
다시 고통을 느껴보니 제가 더 아플것 같다는 추측마저 들었습니다.
미칠듯한 오르막의 연속...
점심이 지났는데도 아직 라파즈...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러다가 오늘 10km 가고 텐트치게 생겼습니다.
이미 체력은 방전...
속이 안좋아 밥도 얼마 못먹어 힘도 안나고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이미 옛적에 포기.
배가 아플때는 멈춰서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고통이 사그라들면 다시 걷기를 반복.
그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뒤에서 한 카고가 제 앞을 막아섭니다.
라파즈에서 사무직으로 일한다는 한 아저씨가 유창한 영어로 제게 도움을 권합니다.
평소같으면 이정도의 길은 혼자 가보겠다고 사양을 했겠지만
지금 이 아저씨의 제안은 천사가 내미는 구원의 손길...!
콴(이름이 잘 기억이 안남)이라는 이 아저씨는 너 정말 대단하다면서
자전거 올리고 내리는 것까지 도와주며 극진하게 도와주었습니다.
정말 죽다 살았다는 건 이럴때 말하는 거죠.
평소 보던 볼리비아인들과 다르게 백인의 느낌이 강했고 소득수준도 꽤나 높아보이는 것처럼 짐작됐습니다.
쿨하게 멋진 여행을 기원해주고 일터로 떠나는 아저씨.
평지로 나오니 정말 살 것 같았습니다.
라파즈에서 우유니 사이에는 오루로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 도시 까지는 파나메리카나가 지어져 있기 때문에 길은 굉장히 좋은 편입니다.
게다가 공사를 새로 하는지 다 만들어 놓고 자동차의 통행을 금지시킨 도로가 있어
자전거로 달려봤는데 공사하는 사람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달려도 되는구나 싶어 빈 차도를 혼자 차지하며 미친듯이 달렸습니다.
중간중간에 설사가 도져 흙더미 뒤 곳곳에 흔적을 남긴것만 빼고 참 라이딩 하기 좋았습니다.
전에 있던 도로를 싹 다 걷어낸 흔적.
이날은 저녁이 되서 복통이 도지고 바람도 심하게 불어 도로 옆 바람을 막아주는 초원에서 일찍 텐트를 쳤습니다.
그날 밤에는 설사로 바깥을 10번은 들락날락 거렸던 것 같습니다.
응가하면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들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10월 14일
오루로
"으...으으으으...."
아침부터 또다시 도진 복통과 열,
그리고 뜨겁게 내리쬔 햇살이 달군 텐트 안에서
저는 쓰러져 아무것도 못하고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더워서 텐트문을 열고 잠시 열을 식히다가 잠깐 기절을 한건지 잠이 든건지 모르겠는데
눈을 뜨니 웬 볼리비아인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저를 내려다보며 심각하게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
아마 제가 텐트안에서 죽거나 기절한 줄 알았나 봅니다.
제가 괜찮다고 고맙다고 스페인어로 얘기하자
씨익 웃으며 자신들의 가축들을 보살피러 다시 돌아가는 볼리비아인들.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텐트를 접고 바람을 쐬니 열이 좀 내려갑니다.
오루로로 가는 길.
언제쯤 나올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워낙에 기운이 없어 속도가 안났기 때문입니다.
결국 얼마 못가 작은 마을에 호텔 표지판을 보고 오늘 오루로 가는것을 포기합니다.
하루에 8천원하는 한 시골에 있는 호텔.
1인실이 제공되는 것은 좋았지만 인터넷이 전혀 안되는 호텔에 티비와 전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 호텔방에서
저는 2일을 쉬게 됩니다.
2틀을 쉬며 복통과 열도 꽤 가라앉고 기운도 어느정도 되찾아 가고 있었지만
인터넷이 안되서 할께 정말 너무 없었습니다.
혹시 몰라 핸드폰에 받아둔 에뮬레이터로 포켓몬스터나 미스터 드릴러 등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뭔가 이상한 것들을 팔고 또 한국 과자들로만 진열대가 채워져 있었던 요상한 호텔.
그나저나 이 물갈이는 무슨 설사와 복통이 일주일 내내 계속 되네요.
10월 16일
오루로(Oruro)
작은 호텔에서 이틀을 묵고, 다시 우유니를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여전히 설사는 낫지 않았지만, 그래도 복통은 많이 가라앉은 상태.
그냥 이런길이 계속입니다.
페루에서는 낯선 풍경에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이 땅이 조금씩 지겨워 지고 있습니다.
여행하면서 만나는 모든 풍경이 다 반가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전거 여행이라는 건 참 인생과 비슷합니다.
기쁨의 순간과 고통의 순간, 아무것도 아닌 지루함의 순간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는.
그래도 이날은 참 많이 달렸습니다.
해가 어둑어둑 해져서 오루로를 약 25km정도 남긴 상황인데
평소같으면 대충 아무데나 들어가서 텐트치고 잤겠지만
이상하게 이날은 뭔가 모를 오기가 생겼습니다.
오루로가 그렇게 안전한 동네는 아닌 것 같았는데,
미친건지 하도 아파서 정신이 나간건지
밤 10시가 넘게 페달을 밟아가며 오루로 시내까지 옵니다.
너무 늦은 밤이라 숙소를 못찾아 대충 여인숙 같은 곳에서 하루를 일단 무사히 넘깁니다.
뭔가 정신없는 나날들입니다.
다음날, 오루로는 3~4월에 열리는 카니발이 아니면 딱히 볼 것이 없는 도시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무것도 안 보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카니발이 워낙 유명한 도시라 곳곳에서 관련된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루로만의 특징이 있는건지 포스터나 조형물들을 보면 약간은 기괴하고 공포심을 자아내는
분장이나 가면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카니발을 볼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타이밍이 크게 어긋나서 불가능 했습니다.
오루로의 느낌은 뭐랄까..
그냥...무난한 도시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재래시장도 있었는데 뭔가 이상한 걸 팔고 있었습니다.
암만 봐도 먹는건 아닌데...
용도가 정말 궁금했던 정체모를 것들.
책에서 본 죽은 새끼 라마를 정말로 팔고 있었습니다.
주술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향이나, 음...저주용품?
성인용품같기도하고...도저히 뭔지 모를 그런것들.
오루로의 전경.
공사중인 건물.
지지대가 나무로 되어있는게 심히 불안해 보입니다.
정말 페루 볼리비아의 도시들은 하나같이 가파르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몇달후에 있을 카니발 연습을 하고 있던 오루로 시민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 노래에 다같이 춤을 추는데 굉장히 즐거워 보였습니다.
오루로 역시 잠깐 쉬어간다는 느낌으로 며칠을 묵었습니다.
우유니까지는 거리상으로는 약 2~3일에 닿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문제는 오루로에서 우유니까지는 포장도로가 없습니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힘든 몸으로 여행을 망치기 싫었고
라파즈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주변의 풍경들을 보건데 분명 우유니까지도 별거없는 황량한 풍경이 계속될 것이고
더군다나 비포장도로에서 또 고생하기 싫어 버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쉬는동안 물갈이는 거의 완치됩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물갈이...엄청난 복통...흑 다신 걸리기 싫다...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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