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폴케스 온천(Polques) -> 칠레 국경(이토 카혼)
어젯밤에 잠깐 일어나 쏟아질 것 같은 은하수가 가득한 밤하늘을 보면서
대충 다음날의 계획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폴케스가 마음에 드는 곳임에는 분명하지만,
이틀을 묵어도 딱히 즐길거리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또, 볼리비아 돈도 거의 바닥이 나고 있는 상황이라
아쉽지만 아침에 잠깐 몸을 담근 후 차를 얻어타서 칠레 국경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의 온천은 수증기가 하얗게 뿜어져 나와 분위기가 한층 더 멋집니다.
연신 여행객들을 실어나르는 지프들.
저 지프들 중 하나를 골라잡아 칠레 국경까지 태워달라고 해야 겠습니다.
물론 소정의 댓가를 지급하고서 말이죠.
뭔지모를 메뉴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뜨듯한 물이 땅에서 솟아 올라옵니다.
몇몇 포인트가 있었는데 식당이나 숙소 관리인들이 빨래를 하거나 변기를 가지고 와서 닦더군요.
플라스틱 통으로 되어있는 푸세식 변기를 통째로 들고와서 씻는모습에 경악했습니다.
물론 그 씻긴 물이 온천탕 안으로 들어가진 않습니다만.
수상식물인지 이끼인지 모를 것들이 잔뜩 살고 있습니다.
저 물들이 야생동물에게는 삶의 터전일듯.
물이 솟아오르는게 확연하게 보입니다.
여러 지프들에게 수소문하고 다니다가,
칠레 국경 근처 라구나 베르데라는 호수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 지프를 찾았습니다.
약 우리나라 돈 5천원 가량을 지불한다고 하니 문제없다며 차에 타라는 투어가이드.
저 말고 다른 나이 지긋한 노인분 4명정도가 차에 타고 있었습니다.
자전거만 타다가 앉는 차 시트는 안락함의 극치.
라구나 베르데까지 가는 여정.
온 사방이 흙과 풀한포기 없는 가파른 산맥 뿐.
흙먼지를 날리며 라구나 베르데까지 오는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습니다.
4륜구동의 위엄이랄까.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가 신기합니다.
아직 저녁도 안됬는데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옵니다.
근래 들어서 맞은 바람 중 최강의 위력.
매우 고요해 보이지만...
엄청난 바람이 귀를 때려서 너무 시끄러울 지경.
호수 가장자리는 웬 흰 거품들이 떼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치 솜털 같습니다.
황량한 곳에서의 샷.
저 뒤에서 한 자전거 여행자가 따라 붙었는데
프랭키입니다. 그게 누구냐면...
코파카바나에서 처음만나 라파즈에서 한번 더 만나고
우유니 한복판에서 또 한번 만난 프랑스 여행자입니다.
총 4번을 길 위에서 만나게 되네요. 더 웃긴건 둘다 그닥 신기해하지 않고 같이 달린다는 점.
프랭키의 라이딩 속도가 굉장히 빨라 따라붙는데 상당한 애를 먹었습니다.
맞바람도 굉장히 심하게 불고 모래길 천지라 바퀴가 자꾸 빠지는데도
뚱뚱한 타이어와 좋은 체력으로 항상 저보다 1분정도의 차이로 앞서나가는 프랭키.
자전거 탈때는 항상 누군가를 따라가는건 이상하게 힘이 더 듭니다.
엄청난 높이의 화산.
이 주변에는 6000m고도의 화산도 있다고 하니...
할말을 잃었습니다. 히말라야만 없었으면 이쪽이 짱먹을듯.
약 1시간 반 넘게 미친 바람과 비포장과의 사투를 벌인 끝에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국경 관리소의 모습.
조촐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쪽 국경은, 담이나 울타리, 경비대 따윈 없습니다.
사실 어디가 정확히 국경인지도 애매한 상황,
창고로 쓰이는 듯한 건물.
출국 절차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30일 단수비자인 탓에 입국날짜 기준으로 30일이 넘었는지만 체크하고(30일이 넘으면 소액의 벌금이 있음)
확인 후 바로 출국도장을 찍어주고 끝.
어떠한 안내도 없습니다.
근데, 출국 도장은 받았는데 칠레 입국도장은 어디서 받는거지...
많은 나라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이전까지의 나라들은
출국도장을 받고 바로 그 근처에 입국도장을 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볼리비아 출입국 관리소라 그런지 볼리비아 출국도장만 찍어주고 그냥 끝입니다.
...뭐 어쩌라는거야
일단 볼리비아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마지막 샷.
예상조차 할 수 없는 경외로운 풍경들과 착한 물가의 볼리비아였지만,
너무나 열악한 환경과 도로사정때문에 엄청난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길만 좋았어도 제 인생 최고의 여행지가 될 수 있었을텐데,
사람이 만든 길 보다 우유니 사막 한복판이 더 달리기 좋았으니 말 다했죠.
출국도장을 받았다고 바로 칠레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일 가까운 도시라고 할 만한 곳이 47km남아있네요.
길 사정은 나을것이 없습니다.
대체 뭘 먹고 사니 너네는...?
오후 4~5시가 되서 프랭키는 허허벌판에 홀로 서있는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공장을 찾습니다.
유창한 스페인어로 인부들에게 공장에서 하룻밤 자도 되냐고 묻자
인부들은 흔쾌히 허락하며 굉장히 환영해주었습니다.
저도 스페인어로 뭐라고 몇마디 하고는 싶은데 아는게 없으니
"Aqui....Chile??"(여기...칠레?) 라고 묻자
공사장 인부들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잘 생각해보니 약간 거뭇거뭇한 피부를 가진 인종이 대부분이었던 페루와 볼리비아와는 확연히 다르게
유럽사람같은 보통 백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물론 몇명은 여전히 메스티소(혼혈)의 모습이었지만.
컨테이너박스는 미칠듯이 불어대는 바람을 막아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최고의 공간.
프랭키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제가 고생하면서 달렸던 볼리비아 고원의 황야지대를 프랭키는 최고의 풍경이라고 칭찬합니다.
저도 그곳에서 경치를 감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길이 워낙 안좋아서 불평이 많았는데
프랭키는 당연한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제가 폴케스 온천에서 캠핑할 때, 프랭키도 식당 안에서 묵으며 밤에 별하늘을 보며 온천욕을 즐겼다는 얘기를 합니다.
아...그 무수한 별들을 보면서 왜 그렇게 할 생각을 못했지....
여행에 있어 정답은 없지만, 전 아직 본격적으로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지 싶네요.
프랭키와의 대화에서,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깨닫습니다.
나중에 이 여행을 추억하면서,
그런 경외로운 공간들에서 보낸 시간을 금방 훌륭한 경험이었다고 되새기게 되겠죠.
12월 2일
이토 카혼 ->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
공장 창문 너머로 거대한 화산이 보입니다.
저녀석이 아마 6000m높이의 화산일 텐데,
어제 인부에게 물으니 우리가 묵은 이 공장의 높이는 해발고도 4000m.
이미 여기선 100m단위는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
제가 프랭키에게 굉장히 감명을 받은것은,
그의 장비탓도 있습니다.
몇몇 부품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낡고, 급조했으며, 임시방편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들.
선인장 가시와 길에서 주운 고무줄로 핸들바에 침낭을 결속하고
어디서 구한건지 모를 다 낡아빠진 패니어 가방을 여기저기 수리해서 뒤에 매달고 다녔습니다.
완벽한 상태라고 말할 수 없는 그의 장비이지만,
그는 여행 자체를 즐기는 것 외에 다른것에는 크게 개의치 않아 보입니다.
여행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언제 저런 마인드로 살아갈려나...
아직 철들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30이 다되가는데 수준은 아직도 고등학생이니
짧지만 자주만난 친구, 프랭키와의 짧은 여행을 끝마칩니다.
볼리비아의 국경에서 저는 칠레로, 그는 아르헨티나로 향하기 때문이죠.
서로 파타고니아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던 칠레 직원들.
약간은 무뚝뚝하게 느껴졌던 볼리비아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됩니다만,
아직 본격적으로 부대낀건 아니니 섣부른 판단은 미뤄야겠죠.
남쪽에서 올라오는 몇몇 여행자로부터 들은 정보에 의하면,
이토카혼을 지나 칠레로 향하는 길은 오직 내리막길 뿐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그럴것이 해발 4000m에서 산 페드로 아타카마가 있는 높이는 약 2000m이니
내리막길만 있는것도 당연한 지사.
게다가 칠레 근처로 가니 정말 오랜만에 포장도로를 만납니다.
모래와 자갈 위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만나는 평탄한 아스팔트는 정말이지....
누가 아스팔트를 길위에 깔 생각을 처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사랑합니다.
정말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막이 있습니다.
미친듯이 내려갑니다.
브레이크가 다 닳아 없어질 정도.
아직 고도가 높은 곳이라 내려가는데 오들오들 떨립니다.
약 3~40분 넘게 내리막길만 미친듯이 내려오니
저 멀리 초록빛 나무들이 보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건조한 사막인 아타카마 사막의 주 관광지
산 페드로 아타카마 입니다.
몇분전까지만 해도 추위에 오들오들 떨렸는데 고도가 낮아지니 바로 뜨거운 태양열때문에 달궈져서
서둘러 긴팔을 벗어 재낍니다.
뭔가 간만에 크다고 할 수 있는 도시를 만난 듯.
경찰서같이 보이는 어딘가에 길을 물으려 들어갔는데...
마침 그곳이 출입국 사무소였습니다.
다행인건 맞는데, 만약 길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면 저는 입국도장 못찍고 밀입국자 신세가 되었을지도.
도대체 왜이렇게 알기 어렵게 해놓은건지
뭔가 다른나라에 비해 까다롭게 느껴지는 심사였습니다만,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공항 들어올 때 처럼 모든 짐을 풀어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더군요.
유제품이나 육류, 신선식품에 대한 검역을 빡세게 하나 봅니다.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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