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옆에 위치한 한 캠핑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루에 100페소..만원 정도. 부담되는 가격이었지만,
마을같은 것이 없는 이 주변에서 부러진 자전거로는 딱히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헨리가 유료 캠핑장이 괜찮냐고 물어서 나쁘진 않지만
나는 돈이 안드는 야생캠핑이 더 낫다고 말하니
자기들은 지난 3일동안 여행하면서 씻지 못하고 계속 프리캠핑만 해서
오늘은 샤워좀 하고싶어서 유료 캠핑장에 온 것이니 이해를 부탁한다고 말합니다.
뭐, 만원 정도 지불해서 뜨듯한 물에 샤워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분주하게 무언가를 준비합니다.
가지고 있는 도구들로 밀가루 반죽을 하더니 뭔가를 만들기 시작하는 헨리.
니콜라스는 긴 머리채를 부여잡고 불을 때웁니다.
고기라도 구워먹으려는 것인가?
알고보니 그들이 만드는 것은 피자.
아니..여행중에 피자를 만든다고?
하긴, 피자의 개념이 우리나라와 외국과는 많이 다르긴 합니다만,
그래도 라면따위 보다야 만드는 수고가 훨씬 많은 피자를
여행중에 부족한 재료로 만든다는 것이 대단한 정성이라고 생각됬습니다.
사진 찍히는 걸 매우 좋아하던 그들.
핸드폰 외에는 사진기가 따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 베낭에서 토마토니 밀가루니 소스니 있을 건 다나옵니다.
저도 저 수고를 들여 만든 피자를 그냥 얻어먹기 미안해서 가지고 있던 오렌지나 빵, 과자등을 내옵니다.
어둑어둑해져서야 같이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스페인어를 좀 배워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이런곳에서 드네요.
숯 조각이 조금 씹히기도 했지만, 헨리가 만든 피자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딱 좋은 퀄리티였습니다.
12월 29일
비야리노 호수(Lago Villarino)
아침을 커피 한잔으로 간단하게 때우고 나서,
오늘도 걷기여행을 시작할 준비를 합니다.
저의 목적지는 다음 마을인 비야 라 앙고스투라 라는 곳으로
그곳에서 자전거를 고쳐야만 다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걸어서 갈 경우 약 내일이나 내일모레 정도에 도착이 가능한 거리입니다.
전의 캠핑장에서 누가 볼리비아에서 구입한 신발을 훔쳐가서
허접한 슬리퍼로 여행을 하고 있는 절 보더니
헨리가 자신의 신발을 흔쾌히 내줍니다.
헨리가 신발 밑을 보라고 해서 힘든 자세(?)로 밑창을 봤더니
"NEVER SAY NEVER.
EVERYTHING IS POSIBLE"
이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한참 포기를 생각하고 여행에 권태를 느끼고 있을 때,
굉장한 힘이 된 문구입니다.
평소 때 봤다면 별로 특별할 것이 없었겠지만,
굉장히 기억에 남는 신발 밑창(?)입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다시 출발.
저는 그나마 짐을 어깨에 올리지 않고 자전거에 싣고 가는거라 조금 낫긴 합니다만
어차피 조금만 걸어도 체력이 방전되는 저주받은 몸을 가지고 있어서
힘든건 매한가지.
씨에떼 라고스가 있는 길은 상당히 아름다웠습니다.
다만 포장도로는 끊겼다 나타났다를 반복합니다.
짐이 무거워서 재정비를 자주 합니다.
참 힘들어 보였습니다.
짐 몇개를 제 자전거에 얹으라니까 가벼운 텐트정도만 제가 줍니다
짐 하나 통째로 줘도 상관없는데...
엄청 힘든 표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며 웃어보이던 호세.
힘들어도 즐겁다며 계속 신나합니다.
그러면서 제게 알려준 말은 무이 깐사도.(Muy Cansado, 너무 힘들다)
그러니까 짐 자전거에 올리라니깐...
어디선가 나무지팡이 하나를 구해서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계속 흔들어 대던 헨리.
자국의 운전자들을 욕합니다.
저도 페루만큼은 아니지만 아르헨티나 여행자들 운전 진짜 막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국인들도 똑같이 생각하나 봅니다.
페루의 운전자들은 약간 레이싱게임 하듯 미친놈마냥 운전한다면,
아르헨티나의 여행자들은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자동차가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운전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연신 마테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걷더니
기어코 저에게 한잔을 권합니다.
전에도 마테차 몇번 마셔봐서 별로 저랑 안맞는 차이긴 한데,
책에서 마테차를 거부하는건 굉장한 실례라고 써 있는 걸 봐서
최대한 싫은 내색 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원샷을 합니다.
맛을 최대한 안느끼려고 그렇게 먹었던 건데,
제가 맛있어서 다 마셔버리는 줄 알고 기분이 좋았는지 계속 마테차를 줍니다.
결국 배부르다는 핑계로 겨우 권유 릴레이를 끊을 수 있었던.
아르헨티나 사람들 마테차 광팬입니다. 커피는 아침에나 먹는 정도 일 정도로...
씨에테 라고스에서는 요 일행 말고도
걷거나 히치하이킹 하는 베낭여행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경치가 꽤나 아름다웠기 때문.
점심은 앉아서 파스타로 해결.
물은 그냥 흐르는 강물 떠먹으면 됩니다.
물이 너무 맑고 차서 대충 물을 떠도 이물질 떠나니는 게 전혀 안보일 정도입니다.
또 날씨가 흐릿흐릿 합니다.
짐 두개를 한번에 들고...
탈진 직전까지 가는 호세.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이는 계곡같은 곳도 보입니다.
숲 보기 힘든 여행이었는데,
오랜만에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차들어있는 풍경을 보는군요.
갑자기 쏟아지는 빗발에 황급히 방수커버로 베낭과 몸을 보호하는 그들.
저는 우비를 입고 있었고 가방은 원래 방수라 안심.
빗속을 헤치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따라붙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전에 2~3일정도 동행했던 줄리엔.
저보다 길을 더 돌아와서 그 빠른 속도로 달렸음에도 다시 만나게 된 것이죠.
제가 자전거가 망가져서 이 친구들과 걸으면서 나아가고 있다니
스페인어도 하나도 모르면서 어떻게 대화가 가능했냐고 궁금해 합니다.
님은...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별의별 언어를 다하니까 이해를 못하겠지만,
말이 안통해도 급하면 어떻게든 된단다...
앞으로의 정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던 줄리엔.
그의 자전거는 진짜 좋아보입니다.
다른건 둘째치고 36개의 바퀴살과 무게를 덜어주는 뒷트레일러가 너무 부러웠습니다.
트레일러 메달고 가는거 별로 안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걸 바퀴가 부러져서야 알다니.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아 나가는 줄리엔.
애초에 너무 스피드가 빨라서 따라잡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길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길 기원합니다.
파타고니아에서는 날씨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합니다.
비는 계속 왔다 그쳤다를 반복.
차라리 계속 오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편합니다.
떠들면서 밥도 오래먹고 걸으니,
오늘도 마을에 닿지 못하고 얼마못가 캠핑포인트를 찾습니다.
온통 펜스로 도배가 되어있는 아르헨티나 땅이라 프리캠핑할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만,
그들의 현지인 감각으로 기가막히게 캠핑할 장소를 찾아냅니다.
도로 바로 옆이긴 하지만, 나무들로 둘러쌓여 있고
일단 지대가 꽤 높아서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바로 캠핑파이어 작업에 착수하는 헨리.
솜씨가 상병 말정도의 병사가 하는 작업 수준.
비가 와서 나무들이 꽤 젖었음에도 어디서 덜 젖은 나무들을 구해와서
기름으로 손쉽게 불을 붙입니다.
흐린 날씨로 온도가 조금 추웠는 데 딱 알맞은 캠프파이어.
젖은 옷가지들도 말립니다.
저녁은 스프 이것저것을 마구 섞은
알수없는 죽.
뭔진 모르겠지만, 먹으면 맛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스페인어로 한참 얘기하다가
영어로 대략적인 내용을 제게 설명해주는 식으로.
다만 영어가 굉장히 서툴러서 거의 단어를 토막토막 형식으로 제공받아서
심도있는 얘기를 하진 못했습니다.
저는 피곤해서 일찍 텐트에 들어갔지만,
새벽 2시가 넘도록 웃고 떠들던 헨리와 일행들.
뭐, 저도 누워서 미생본다고 정신이 없어서 크게 신경쓰이진 않았습니다.
12월 30일
비야 라 앙고스투라(Villa la angostura)
아침에 도로위를 지나가는 한 자전거 여행자 부부를 멈춰 세워서
스포크 유무를 물었지만 안타갑게도 바퀴 사이즈가 저랑 달랐습니다.
다음 마을인 비야 라 앙고스투라에 가면 자전거 가게가 많을 거라고 했지만
오늘 안가면 다음날이 31이라 문을 여는 지 닫는 지 모르겠다며
(그 다음날은 1월 1일이라 닫는것이 확실)
아마 조금 서둘러야 할 거라고 합니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진 저는,
짐을 싸고 내려오는 일행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라하는 것 같던 일행은
제가 자전거를 타고 먼저 가는 시늉을 하니 그제서야 이해하며,
아쉬워 하면서도 기분좋게 작별인사를 해줍니다.
그들과의 마지막 기념사진.
2박 3일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겁게 얘기하고, 여행을 지속하게 해주는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헨리는 가족의 근황을 페이스북으로 계속 알려주면서 저의 안부를 물어옵니다.
언젠간 꼭 한번 한국에 찾아오겠다는 헨리.
지금 아르헨티나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죠.
어쨋거나 스포크 한쪽이 부러져서 불안불안한 상태였지만,
다음마을까지는 30km가 채 안남아서 일단 저의 행운을 믿어보기로 하고
뱀처럼 울렁울렁거리는 뒷바퀴를 바라보며 앞으로 조심스럽게 라이딩을 했습니다.
다행히 조심스럽게 탄 덕분인지 다음 마을까지 별 탈 없이 올 수 있었지만,
한쪽에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네요.
덕분에 교통이 조금 정체됩니다.
아무도 안다쳤기를 바랄 뿐.
저기 보이는 희끗희끗한 건물들 지나서 더 가면 마을이 나타납니다.
교통통제가 풀리기를 기다리며 한장.
하도 오래되서 검은색 바지가 색이 다 바랬습니다.
처음엔 조금 막혀있던 차들이 어느새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긴 줄을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얼마안가 통제가 풀립니다.
다음 마을인 비야 라 앙고스투라 도착!
이 부근은 전부 관광지라서 그런지 건물생김새들은 이쁘지만
너무 가격이 비쌉니다.
칠레보다도 더 한 느낌.
캠핑장조차도 싼 곳이 만 2천원은 줘야 묵을 수 있습니다.
일단 자전거를 고쳐야 하기에 캠핑장 하나를 찾아서 묵기로 합니다.

저의 짧은 걷기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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