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라 레오나 호텔(La Leona Hotel)

피츠 로이 등산을 끝내고 다음날.
오랜만에 5시간 넘게 걸어서 허벅지고 무릎이고 곳곳이 쑤십니다.

다음 목적지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
이전에도 큰 빙하를 투어할 수 있는 기회가 몇번 있었지만
페리토 모레노가 찾는 사람도 제일 많고 규모도 상당히 크다고 들어서 잘 참아 왔습니다.
페리토 모레노가 그런 저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지 의문입니다.
그나저나, 이제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보면 큼지막한 볼거리는 어느정도 정리가 됩니다.
이제 마지막 여행지인 우수아이아로 달리는 일만 남은 거겠죠.
4개월이라는 시간, 여행으로서는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바삐 일상을 지낼 때는 알 수 없었던 시간의 크기.
이 여행의 5개월이라는 갭은 여행 끝난 후 제가 감당해야 할 시간이 될 것입니다.

어제보다 날씨가 더 우중충한게
차라리 어제 그정도라도 보고 온게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

작은 등산마을, 엘 찰텐.
챠오.

황량한 들판에는 과나코가 종종 보입니다.
풀안포기 안보이는 볼리비아 고원지대에서도 살고 있던 놈들이니 뭐
여기서 사는건 일도 아닐 듯.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지라 자전거를 최고 기어로 놓고 달려도 힘들지가 않습니다.
서풍이 굉장히 강하게 부는지라...

저 멀리 비에드마 호수에 위치한 비에드마 빙하가 보입니다.(동명)
저쪽은 페리토 모레노보단 사람이 적겠군요.
몇몇 지나가는 배가 보였습니다.
여행 내내 느낀건데,
남미에 와서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는 것.
특히 아르헨티나는 여행이 아니어도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엘 칼라파테까지 130km.
내일 도착 예정.

넓직한 호수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쓸쓸한 곳...
인구밀도 빽빽한 한국에서 평생을 살고
여행도 유럽이나 일본처럼 남는 땅이 거의 없는 곳만 다녔었는데
차원이 다른 대형 나라들을 오니, 이런 부분이 참 이국적입니다.
압도적으로 큰 아무곳에도 쓰이지 않는 평야가 많다는 것.
경외심과 공포심, 특별한 의미의 외로움을 함께 불러 일으킵니다.

아르헨티나 도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바람주의 표지판.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저정도 붑니다.
지금은 그나마 측면으로 불어서 어떻게든 자전거를 타고 있지만 그것도 몹시 위험.
핸들이 바람 세기에 지맘대로 꺾여서 굉장히 아슬아슬.

점프를 잘 하는 과나코.

집한채 보기 힘든 넓은 평야에서 다리 근처에 한 호텔이 자리해 있습니다.
제가 '호텔'임에도 들어온 이유는, 표지판에 캠핑장을 겸하고 있다고 써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룻밤에 100페소...약 만원 가량의 캠핑비.
상당히 비싼 가격이지만, 그렇다고 못잘만한 가격도 아니기에 하룻밤 묵어가기로 합니다.
놀라운건 이 아무것도 없는, 전봇대도 연결되지 않은 황무지에서 인터넷이 된다는 것.
...다만, 구글 검색따위는 꿈도 못꾸고 카톡 메세지 확인 정도만 가능.

저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프랑스에서 온 사람인데, 말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흥미로운건 그의 자전거.
없는 게 없는 모든 걸 다 가진 완벽한 투어바이크.

일단 미친듯이 부는 바람을 막을만한 나무뒤에 텐트를 설치하고

호텔 주변을 구경삼아 어슬렁 거리는데 어린 과나코가 한마리 있습니다.

헉...어렸을 때 부터 사람손에 길들여져서인지 전혀 겁을 내지 않고
오히려 사람곁으로 다가오더군요.

굉장히 눈이 예뻐서 귀엽게 생겼음에도
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생기기도 했고
사슴과 낙타를 합쳐놓은 모양새?







넌 입벌리면 안되겠다...

바람이 조금 강하게 불어서 긴장 뽝 하고 캠프파이어를 만듭니다.
나무들은 바싹 말라있어 불피우기에는 최적.

오랫동안 함께 한 자전거도 꽤 많이 정이 들었습니다.

이 여행자는 휴대용 커피머신까지 있었습니다.
그릇이 그을리지 않는 휘발유 버너에, 발전기, 노트북, 핸드폰, GPS...
여지껏 보아왔던 그 어떤 여행자보다도 최고의 장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볼리비아에서 만났던 프랭키가 생각이 나더군요.
핸들 가방을 도로에 떨어진 고무줄과 우유니에서 구한 선인장 가시로 지탱하고 있었는데
뭐, 각자의 여행이 있겠지만, 참 탐나는 장비들입니다.

호텔 주변에는 염소나 양, 개 따위가 어슬렁 어슬렁 산책하고 있습니다.

딱히 묶어놓거나 풀어놓지 않아도, 어차피 갈데도 없으니 그냥 여기 있는 듯.
2월 1일
엘 칼라파테(El Calafate)

라 레오나는 엘 찰텐과 엘 칼라파테 사이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호텔&음식점&편의점.
그래서 잠깐잠깐 들르는 관광버스나 차량이 많이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어제 같이 지냈던 자전거 여행자의 장비.
핸드폰 충전기도 있습니다.

발전기는 앞바퀴에...
이젠 이게 자전거인지 캠핑카인지
요강만 있으면 완벽할듯.

어제는 오토바이 여행자도 옆에 텐트를 쳤었습니다.
남미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는 오토바이 여행자들.
그래도 같은 이륜차라 그런지 지나가면 서로 손흔들어 주었습니다.

편하긴 하겠다...

함께 사진찍고 헤어지자며 오토바이에 달린 고프로를 이용.

핸드폰을 리모컨으로 이용.
대단한 장비들이야 정말...

엘 칼라파테로 출발.

아르헨티노 호수 너머로 희끗희끗한 것이 보입니다.
이 주변에 도시는 엘 칼라파테 하나이니 바로 저곳이겠군요.

엘 칼라파테가 30km남은 교차점.
사실 30km면 못해도 2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충분한 거리인데,
방향을 서쪽으로 트니 미친듯한 맞바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식한 바람에 제대로 나아갈수 없는 상황에서 거의 3~4시간이나 걸려 엘 칼라파테에 도착합니다.

후...정말 너무 힘들었어...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어 아쉬울 다름인 고행기.
사실 힘든거 일일이 다 썼다면 여행기의 반 이상이 힘들고 죽고싶었다 라는 내용으로만 채워졌을 듯.

그래도 도시에 들어서니 한숨 놓입니다.

엘 칼라파테는 엘 찰텐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엘 찰텐은 도시라고 하기엔 뭐하고 마을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 것 같은 느낌.

엘 찰텐에도 꽤 많은 캠핑장이 있습니다.
몇번 왔다갔다도 하며너 찾은 최적의 장소.
값도 비싸지 않고 사람도 적당히 적고 인터넷도 잘 되고.
다만 캠핑장 관리하는 할아버지가 너무 느릿느릿해서 영수증 써주는거 기다리다가 늙어버릴 뻔.

아르헨티나 페소가 모잘라서 환전을 좀 하러 여기저기 뒤졌는데
환율이 내키지가 않아서 공예상품점까지 들어갔다가
전의 한 도시에서 한번 만났던 여행자 친구를 다시 만납니다.
저는 기억을 못했지만, 그들은 저를 확실히 기억하더군요.
일전에 핸드폰 충전기를 잃어 버렸을 때 영어로 통역을 도와주었던 커플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전역을 여행하면서 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더군요.
이 친구 덕분에 환전할 때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일본&아르헨티나 부부.
뭐 우리나라 사람도 그렇겠지만, 일본인이 스페인어를 쓰면 스페인어가 일본어처럼 들립니다.
영어처럼 심하게 굴리는 발음이 적고 비교적 또박또박 잘 들리는 특성이 일본어와 비슷한 느낌도 있고
일본 특유의 억양도 우리에겐 잘 들리는 편이고.

시내 구경을 이곳저곳 하고 다닙니다.
여기도 공룡뼈가 많이 발견되나 봅니다.
땅이 이렇게 넓은데 한번도 안썼을 곳이 대부분이니,
묻혀있는 공룡 뼈는 훨씬 더 많을 듯.

말 여행자?

빙하 투어를 신청하기 위해 투어사무소를 찾습니다.
엘 칼라파테에 지겹도록 발에 채이는게 사무실이니 못찾을 일은 없겠더군요.

그냥 전망대만 보고 오는 투어와
미니 아이스, 빅 아이스 투어가 있습니다.
제가 신청한 미니 아이스 트래킹만 해도 약 10만원 가까이.
정말 크게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여기까지 와서 안보기도 참 뭐한 가격.
걷는 걸 싫어해서 빅 아이스를 안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려나요.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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