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마지막 볼거리였던 빙하도 구경하고
이제 우수아이아로 향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자주 애용했던 대형마트.

먹을것을 잔뜩 싣는 바람에 자전거가 천근만근.
가방이 모자라서 뒤에 백팩도 들쳐업고 다닙니다.

거세게 부는 순풍 덕에 엘 칼라파테에서 나오는 길은 수월합니다.

고프로를 헬멧에 하나씩 얹고 달리던 오토바이 여행자들.

엄청나게 넓은 황무지.

넓은 땅의 개념이 다시 서게 되는 곳입니다.

빙하 녹은 물이 저 멀리 강이되어 흐르고 있네요.

갈림길에서 한창 뭔가를 만들고 있는 공장 안 사람들에게 물어서
텐트장소를 허락받습니다.
벽이 없는 허허벌판에서 자기엔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부는 중.

낡고 작은 건물 한채를 발견.

누군가가 맥주 조금 마시는 용도 외에는 찾지 않았을 그런 곳.
창문이 시원하게 뚫렸지만 그래도 벽이 있어 어느정도 바람을 막아줍니다.

나쁘지 않은 곳일세.

하루의 일과는 수프로 마무리.
일전에 텐트안에서 수프를 질펀하게 흘리는 대참사가 발생해
아직도 텐트안에서 수프 쩔어붙은 냄새가 시큼시큼 납니다.
바람부는 날에는 항상 조심.

그 다음의 나날들.
묵묵히 남쪽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우수아이아가 드디어 이정표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금은 우수아이아로 가기 전 거치는 큰 도시중 하나인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 중.

하루는 미친바람을 달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 근처에 다다랐는데

관리소 같은 곳에서 친절한 사람들에게 허락을 받고 텐트 칠 곳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바람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했던 짓다 만 벽은
전혀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고,
오히려 불어오는 바람을 한곳으로 모으는 효과가 나서
텐트가 미친듯이 펄럭여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계속 잠을 자도록 노력해보다가, 불가능임을 깨닫고 다른 곳을 찾아 나섭니다.

바로, 반대편에 있던 모터실.
허락을 재차 맡고 싶었으나 시간이 늦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텐트를 깔고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어
텐트를 깔개삼아 침낭을 피고 누웠습니다.
바람이 불어오지 않으니 이것만큼 편한 것이 없더군요.

아늑아늑.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본격적으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는데
밖에서 강한 헤드라이트가 이쪽을 비춰옵니다.
직감적으로 아. 이건 경찰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저도 기본적으로 허락 받지 않고 건물에 들어간 셈이니 뭔가 문제가 있겠다 싶었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습니다.
군대 두돈반 비슷하게 생긴 작은 트럭에 제 자전거 전부와 저를 데리고
국경 근처의 경찰서로 향한 그들.
아르헨티나 경찰은 워낙 단호해서 뭐라고 말도 못했습니다.
경찰서 안에서는 영어를 할 줄 아는 경찰(정확히는 국경 수비대 같아 보였음)를 데리고 와
형식적인 검사일 뿐이라고 안심시키며 제가 가진 짐을 전부 다 열어
하나하나 세세히 확인하는 중.
어찌보면 당연한 절차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뭔가 간첩으로 의심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진 않았습니다만,
영어를 할 줄 아는 경찰이 절차가 끝나면 경찰서에 주차장 겸 창고같은 곳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텐트를 칠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겁니다.
차라리 편하게 잘 수 있게 되니 속이 편합니다

경찰서 숙소에 딸려있는 주차장 겸 창고.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허락을 맡고 자는 셈이니 차라리 마음이 편합니다.
오밤중에 생쇼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무례하게 굴었다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에.

바람은 막아주지만, 그래도 강풍에 지붕이나 문 따위의 틈새로 들려오는 바람새는 소리가
굉장히 살벌합니다.

제가 타고 온 트럭.
매우 경제적인 크기의 카고.

역시 소고기의 나라답게 경찰서고 학교고 어딜가나 고기굽는 화덕이 존재합니다.

다음날, 국경을 넘어 칠레로 입성.

아르헨티나 - 칠레 간의 국경은 하도 많이 넘어서 이젠 너무 귀찮습니다.
둘이 무슨 조약같은것 맺어서 편하게 왔다리갔다리 하면 안되나 하고 상당히 이기적인 생각도 합니다.

국경을 지나 멀리 보이는 마젤란 해협.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도로.
끝판왕 다운 분위기와 날씨입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도저히 갈수가 없는
미친 바람이 불어댑니다.
과장없이, 정말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바람.
이런곳에서 사람이 살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주변에는 바람을 막아줄 만한 그 어떤 언덕이나 나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세게 부는지 표현할 방법은 없고,
동영상 첨부로 보여드리는 수밖에는...

이런 강풍속에서는 걸어가는것도 무리라고 판단,
지도에서 나와있지 않던 작은 마을 안으로 일단 피신합니다.

푼타 아레나스까지 일단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상책.
저녁 밤버스이지만 마을에서 기다려 보기로 합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운동장 옆 큰 벽에서 몇시간을 죽치고 있다가

엄습하는 한기에 못이겨 식당에 들어가 밥 한끼 때우고 허락을 받은 뒤 버스를 기다립니다.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의 끝의 날씨...
2월 12일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

밤새 버스로 푼타아레나스까지 왔습니다.
강한 바람에 양옆으로 많이 흔들리는 버스가 굉장히 불안했지만 다행히 별 탈은 없었네요.
호스텔을 겸하는 캠핑장에 자리가 딱 하나 있어서 텐트 사이를 비집고 제 텐트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햇빛받으며 팔자좋게 자던 녀석.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는 어떻게 보면 진정한 '땅끝'마을입니다.
우수아이아가 있는 티에라 델 푸에고는 섬이기 때문이죠.
미 대륙의 진정한 끝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만,
사실 아무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푼타 아레나스에서는 딱히 크게 볼일은 없고 시내 구경 정도가 저의 계획.

바닷가 마을답게 해산물이 가득가득합니다.

공예품상점도 있습니다.
펭귄을 많이 만들어 놓았더군요.

고급져 보이는 식당들도.

해군&해양 박물관도 방문합니다.

말 그대로, 푼타 아레나스의 옛 모습과 해군, 바다에 관련된 전시품들이 있습니다.
지역이 지역인지라 역사를 바다와 함께 한 도시라고 할 수 있겠죠.

이쪽방면의 덕후(?)분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해군의 무기들.

티에라 델 푸에고의 국경 문제로 아르헨티나 따위의 나라들과 꽤나 싸웠나 봅니다.
영어 설명이 없었기에 대충 사진과 전시품을 감상하는 쪽으로.

좌초된 배 목록도...
많기도 합니다.

남극이 가까운 지역인지라 탐험도구들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남극 관련 정보를 읽어보다가
어니스트 섀클턴이라는 탐험가의 일대기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한, 미친 사람입니다. 혹시나 뭔지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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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실이나 배 안의 모습도 재현되어 있습니다.

바이오 쇼크?

저딴 걸 입고 이부근 바다에 잠수했다간 얼어 죽을것같아...
그냥 적당히 볼만한 박물관이었습니다.

시내 중앙 광장에는 마젤란 동상이 거대하게.

사람들이 와서 열심히 발바닥 각질을 벗겨주고 있습니다.

바닷가로 나오면 넓은 바다와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이.

낡은 나무기둥 위에 새들이 가득합니다.

펭귄도 아닌것이 희안하게 생겼는데...

저걸 가마우지라고 부르던가?

맞는것 같습니다. 기러기와 가마우지들.
가끔 도로위에서 강한 바람에 공중에서 후진하는 녀석들을 볼 수 있었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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