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포르베니르(Porvenir)

'헉 헉 헉...X됐다...'

푼타 아레나스에서 티에라 델 푸에고로 향하는 배는 아침 9시경에 있었습니다.
느긋히 늑장을 부린 탓에 시간이 매우 촉박해서 항구까지 미친듯이 페달을 밟았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출발시간이 거의 다다랐음에도
아직 차와 사람들을 싣고 있는 배.
승선권을 재빨리 구입하고 일단 배에 오릅니다.

1시간에서 1시간 반정도의 짧은 항해이기에 배가 무식하게 크지는 않아 보입니다만,
그래도 저 안에 꽤나 많은 차와 사람이 들어갑니다.

비행기에 대한 로망이 사라진 지금,
탈것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배입니다.
일단 넓직하니 돌아다니기에도 좋고 탁 트인게 답답함이 없습니다.

빈틈없이 자리를 가득 메우는 자동차들.

역시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자전거, 오토바이 여행자들도 많이 보입니다.
우수아이아는 많은 여행자들의 출발지, 또는 목적지가 되어주니까요.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장소가 될, 티에라 델 푸에고 섬으로 출발합니다.

낡은 느낌의 건물과 배들이 가득했던 푼타 아레나스.

천천히 이동.

굉장히 큰 항구 도시였습니다.

반대쪽에는 차들이 학교 매점에서 줄 서있듯 빼곡히 들어차있네요.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던 강아지 한마리.

기념사진 안찍을 수 없습니다만,
강력한 역광.

시설 자체는 뭐 없습니다.
간단한 음료와 샌드위치 정도 구입할 수 있었는데, 뭐 안봐도 뻔히 가격은 비싸겠지요.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편하게 쇼파를 차지해 놓아서 앉을곳이 없습니다.

짧은 항해 끝에, 티에라 델 푸에고의 초입 마을, 포르베니르가 멀리 보입니다.

추운 날씨에도 사진을 찍고자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네요.

크게 다른 환경은 아닌 것 같은 티에라 델 푸에고의 모습.

포르베니르 항구에 도착.

푼타 아레나스보다도 더 낡아보이는 배들이 땅 위에 서 있었습니다.

이제 우수아이아까지는 약 5~6일정도만 달리면 될것으로 예상.

원래 살고 있었던 원주민, 야간족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뭐, 유럽인들이 와서 다 때려 잡았겠지만.
남미에 대해 알아보는 사람들이 한번 쯤 가질수도 있는 가정인데,
만약 남미에 스페인과 포르투칼 사람들이 쳐들어오지 않고 계속 남미 원주민들이 발전했다면
지금 이 땅들은 어떤 모습일까 사뭇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오토바이 여행자들은 배에서 내린 후 쏜살같이 내달립니다.

저는 굶주린 배를 채울겸 잠시 쉬어가기로.

갯벌도 있길래 뭐 줏어먹을것 없나 기웃거려 봤지만,
물썩은내만 진동을 합니다.

라면이나 먹자.

마을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서,
저 멀리 바닷가에서 수면위로 뭔가 들락날락 하는 검은 것이 보입니다.

돌고래 여러마리가 수면위로 점프하면서 놀고 있더군요.
사진기의 한계로 자세히 찍지 못한것이 아쉬움.

거친 도로를 따라 바다와 들판을 끼고 달립니다.

빙하를 봄으로써 더이상 목표로 한 목적지도 없기에,
이제 남은 여정은 여행의 마무리에 대한 의무감이 더 큽니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 완전히 끝내고자 하는.
사실 살면서 시작만 해놓고 흐지부지 마무리 짓지 못하고 끝나버린 일들이 너무 허다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좀 줄어들 줄 알았는데, 핑계거리만 생기면 다시 그짓을 하고 있더군요.
이번 여행도 사실, 힘든 시간이 많았는데, 몇번이고 중도포기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참고 참아서 결국 어떤식으로든 마무리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세상의 끝이라는, 끝판왕에 어울리는 타이틀과
마지막 스테이지에 어울릴 만한 고즈넉한 풍경과 바다의 모습이네요.

갈림길에 거센 풍랑을 맞으며 외로이 서있던 쉼터 하나.

마젤란 해협을 배경으로 한컷.

쉼터는 거센 바람을 못이겨서 인지 여기저기 창문이 부셔져 있고
동물들이 와서 응가를 싸놓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그 안에는 자전거 여행자들이 머물다 갔는지
주변 정보에 대한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설마 이것도 낙서라고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버려진 낡은 쉼터입니다.)
인상적인 건 여우를 조심하라는 글귀입니다.
텐트를 다 찢어놓는다는군요.

이분은 아르마니아에서 중국, 호주, 남미를 여행했나 봅니다.
아 진짜 부럽...
저도 언젠간 1~2년 잡아놓고 크게 여행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뭐, 돈이 있어야 하겠지만...

바람도 딱 막아주니 자기에 적당히 괜찮은 것 같아서 열심히 응가도 치우고
날카로운 유리조각도 발로 열심히 치워줍니다.

텐트는 깔개로, 따뜻한 침낭을 피고 저녁은 초코 씨리얼.
옆에서 미처 치울수 없는 잔변때문에 냄새가 조금씩 올라오긴 했지만,
여행이 길어지면서 이런것 따윈 묻지 않으면 신경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씨리얼 먹다가
소리한번 질러서 옆에서 풀뜯는 양들 주목한번 시키고.
점점 이상한것에 취미를 두는 걸 보니 이제 집에 갈 때가 다 된것 같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