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산 세바스티앙(San Sebastian)

항상 이 미친 바람을 설명할 길이 없어 답답했는데
이 사진 한장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저렇게 바람에 날리고 있는게 아니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저런 모양으로 굳어진 나무인 겁니다.
뭐 그게 그거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또다시 아르헨티나 입니다.
생에 마지막 칠레에서의 시간이 되겠군요.

어제 잤던 쉼터 벽 안에 몇km떨어진 곳에 머물기 좋은 대피소 하나가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곳인가 봅니다.
여행자들이 이미 다녀간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오른쪽에 깨알같은 드래곤볼 낙서는 덤.

문은 조금 부실해 보이기는 한데

안쪽은 완벽하다시피 깨끗하고 안락합니다.
어제 조금만 더 달릴껄 그랬나 봅니다.

먹을게 별로 없어 한참 배고플 시점에
자전거를 싣고 가던 아저씨들이 내려서 물도 주고 먹을것도 바리바리 싸줍니다.

전거를 탄다는 공통 관심사 하나만으로 이렇게 도와주다니
언제나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맛있습니다.
그럼 됐지요.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너른 황야...
이제 이 풍광도 머지않아 볼 수 없겠죠.

아르헨티나와 칠레 사이의 도로는 공사중이라 그런지 열악한 상태였습니다.

다시 찾은 아르헨티나.
일반적으로 칠레 건물들이 아르헨티나에 비해 더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었습니다.
그에비해 아르헨티나는 좀 더 낡은 것들이 많았구요.
페루와 볼리비아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저것은 바로 대서양.

우수아이아 288km.
정말 다왔습니다.
2000km남았다고 했을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 참 빠르네요.

무리하지 않고 도로 옆에서 무난하게 캠핑.
2월 16일
리오 그란데(Rio Grande)

아르헨티나의 넓은 황야 곳곳에서는 에스탄시아(Estancia), 목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냥 우리나라의 목장 개념은 아니고, 가축과 밭도 함께 하며
일정 금액을 내고 입장하면 말도 타볼 수 있고 고기도 먹을 수 있고 숙박도 가능한 곳이 많았습니다.
일종의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겠죠.
땅이 넓으니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을 듯.

우수아이아에 닿기 전,
꽤 큰 도시인 리오 그란데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뭔가 마을 초입에는 공장이나 물류센터 따위가 많았습니다.

교회도 겸하는 목장도 있습니다.

밤에 보면 깜짝 놀랄듯...
약간 기괴합니다.

마을에서 하루 묵어보려고 했으나,
남미 밑쪽으로 내려와서는 숙박비가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캠핑장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없구요.
인구밀도가 극도로 적은 탓인지는 몰라도 물가가 너무 비쌉니다.
(참고로 저곳은 아르헨티나지만 티에라 델 푸에고에 사는 칠레인들은 4000명정도라고 합니다.
티에라 델 푸에고는 남한 크기만한 섬 입니다.)

결국 도시를 빠져나와 강가 옆에 쓸만한 평지가 있길래 캠핑을 하기로 결정.

몇몇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이길래 시도해 보았지만
야속한 물고기들은 오늘도 제 바늘에 물려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2월 17일
톨윈(Tolhuin)

이제 이정표에는 3개의 장소만 표시됩니다.
작은 마을 톨윈.
세상의 끝 도시라고 불리우는 우수아이아.
남미 도로가 실제로 끝나는 라파타이아.
160km면 내일이면 닿을 거리.

그러나, 여정의 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마지막이 다 되어서도 스포크는 또다시 말썽을 일으킵니다.
이번에는 스포크를 고칠 수 있는 장비를 전부 구입해놓아서 수리가 가능하긴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도로 한복판에서 짐 다 풀고 바퀴 뜯어 스포크 교환하는게 여간 귀찮고 힘든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작업에 착수하려고 하는 순간 만난 구원의 손길.
사실 아까 몇번 지나치긴 했는데, 간단한 인사만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전거에 문제가 있냐며 자전거 전문가가 있다고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스위스에서 4주 휴가를 내서 부자가 함께 남미를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팀, 로이 라는 이름의 부자.
오른쪽의 두분은 둘다 가이드였는데, 운전&여행 가이드와 자전거 전문 가이드.
그러니까 차에 여러가지 짐을 싣고 자전거를 따라가는 식으로 여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전거 전문가 답게, 굉장히 손쉽게 제 스포크를 갈아 해치웁니다.
거기에 배가 고플거라며 점심을 함께 해줍니다.
자전거의 말썽이 인연을 또 하나 만들어 주었네요.

자전거에 짐을 달 필요가 없으니 매우 편해보입니다.
그에 반해 제 자전거는...
그냥 미안할 다름.

오늘의 목적지는 톨윈까지라고 합니다.
저와 목적지가 같아서, 마을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그들이 한꺼번에 많은 얘기를 해서
다 알아듣는데 애를 먹긴 했는데,
모두 톨윈의 빵집을 꼭 방문하라고 추천합니다.
아니, 애초에 저를 빵집에서 기다리겠으니 그곳으로 오라고 합니다.
파타고니아에서 제일 유명한 빵집이라고 까지 말하는데
대체 어느정도 크길래 그렇게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 정보도 없는, 우수아이아에 가기 전 존재하는 작은 마을에 뭔가 흥미로운 것이 있는 것 같아
그들의 말을 듣기로 합니다.

뒤를 따라가겠다고 말하니
로이 아저씨 왈 "따라와. 할수 있으면 ㅋ"
이라고...
...뭔가 승부욕이 올라왔지만 어차피 질 듯...

정말 유명하긴 한 모양인지 얼마 안가 톨윈의 빵집 광고 간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라 유니온(La Union)이라는 이름의 빵집.

톨윈까지는 그렇게 거리가 멀지 않아 금새 닿을 수 있었습니다.
약 1~2시간 정도 소요한 것 같습니다.

톨윈만 오면, 우수아이아는 하루만에 도착이 가능합니다.
애초에 이 넓은 땅에 큰 길은 하나 뿐이라,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이 길을 왕래했겠죠.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차를 고치던 마을주민이 절 보고 바로 빵집을 찾고 있냐고 묻습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유명하길래 저를 보자마자 빵집가자라고 난리인지...
점점 기대, 혹은 그에 반하여 올수도 있는 실망감에 대비하는중.

주민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빵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 봤을때는 분명, 작은 규모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파타고니아에서 제일 유명할 정도의 크기도 아닌 것 같아 보였습니다만,
손님은 정말 쩔게 많아 보입니다.

투박한 간판 디자인에 건물 외관이지만,
수많은 여행자가 방문한 흔적이 스티커로서 남아있습니다.
밖에도 몇몇 투어링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보입니다.

엄청난 수의 스티커.

일단 로이 부자 일행을 찾으러 입장.

내부에는 갖가지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보입니다.
아니 그전에, 일단 사람이 엄청 많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초콜렛도 한 섹션을 다 차지할 만큼 자리해 있습니다.

살짝 느끼해보이는 크림빵.

엠빠나다는 역시 빠질 수 없는 메뉴.
아르헨티나 고유의 무언가라고 할 수 있는 몇안되는 음식.

사실 굉장히 좋은 빵집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은 없어 보이는 빵집입니다.
더욱이 사람들이 이 빵집에 대해 언급했던 이유가 궁금해지는 시점.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찾아왔나 봅니다.

정말 미어 터집니다.

구석진 자리에서 팀 로이 부자 일행과 재회합니다.
생각보다 빨리 와서 의외라고 놀라 하더군요.
어디서 잘거냐고 묻자 자신들은 근처 호수의 캠핑장에서 묵을 거라고 합니다.
이미 오두막 예약이 끝났다고 하네요.
저도 일전에 지도에서 봐둔 곳이 그 캠핑장이라 저도 간다고 하니
이 빵집에서 숙박이 가능하다고 이곳에서 묵으라고 합니다.
뭔...빵집에서 자라고? ...무슨소리인지 어리둥절 합니다.
갑자기 가이드분이 일어나서 빵집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뭐라뭐라 설명을 합니다.
빵집 주인은 무료로 잘 수 있다고 하면서 자전거를 들고 따라오라며 저를 빵집 뒤로 안내합니다.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된 상황...빵집에서 재워준다니 이게 무슨소리인거지..

중간에 사진도 찍어주심.

빵집의 창고와 조리실 등으로 쓰이는 것 처럼 보이는 건물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더니, 머리가 뽀글뽀글한 한 사람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줍니다.
이건...군대에서의 인도인접 비슷한 느낌이랄까.
뽀글뽀글한 수염을 가진 사람은 제게 환영인사를 합니다.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데,
라 유니온 빵집은 예전부터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이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 저를 보자마자 빵집을 찾는거냐며 물었던 것이고
팀 로이 부자도 제게 빵집에 방문할 것을 추천했던 것이죠.
이제야 모든 의문점이 풀립니다.
한가지 궁금했던 것이 있어서, 왜 처음보는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을 아무런 댓가없이 재우는 것이냐며 묻자
뽀글뽀글머리 친구는 자기도 잘 모른다며 일종의 봉사 개념이 아닐까 하고 답합니다.
사실 알고보니 그 뽀글뽀글 머리 친구도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 빵집에서만 5일째 묵고 있다네요.

하던일 마저 끝내고 안내를 더 해주겠다며 칼을 갈던 뽀글뽀글 친구.
이름은 까먹었습니다. 제가 안그래도 이름을 잘 못외우는데
외국인 이름은 더더욱 외우기 힘들어서...

어두운 창고의 문을 열어 들어선 순간
작지만 아담한 마당이 나옵니다.
이때의 느낌은...
살벌하고 혼잡한 바깥 황무지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아늑한 세이프존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여기저기 새가 날아다니고 여행자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긴 정말이지...천국이 따로없어...
특히 놀랍도록 신선했던 건 새들이 새장안에 갇힌 게 아니라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었다는 점.
너무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녀석들 때문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더합니다.

아마 빵집을 운영하는 주인의 가족들의 집인 것 같습니다.

격하게 반겨주던 작은 강아지...인데
이녀석, 제 다리를 갑자기 겁탈하려 합니다.
아니 이런 미친...귀여워서 놀아줄려고 했더니!??!

그러다 또 으르렁거리며 짖어대던 녀석.
...욕구불만이구나...안타깝도다.
(2화에서 계속)
좋았겠네요 강아지도 귀여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