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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톰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타프롬 사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울창한 정글에 뒤덮인 잊혀진 사원이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곳이죠.


입구에는 관광객들 상대로 연주를 하는 지뢰피해 군인들이 앉아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캄보디아 사람이나 태국 사람 구분 못하듯이 이들이 보기엔 한중일 삼국에서 온 사람들이 똑같이 보일법도 한데, 기가 막히게 국적을 맞춰냅니다.


한국 사람들이 온다 싶으면 한글 안내판 걸어놓고 아리랑을 연주하고, 중국 사람들이 오면 또 거기에 맞춰 간판을 바꾸고 중국 노래를 연주합니다.


워낙 지뢰 피해자들이 많은 데다가, 나라가 가난해서 정부 지원하기도 어려우니 이렇게라도 먹고 살라고 직업 교육을 시켜 공연을 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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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나타나는 타프롬 사원.


처음으로 했던 해외여행이 북경 패키지 관광이었는데, 아줌마 아저씨들의 부부동반 모임이 일행이었습니다. 그 일행이 가끔 "우리 캄보디아 여행 갔을 때 이랬는데.."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며 감짝 놀라며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었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만 해도 캄보디아와 앙코르와트는 무성한 밀림을 헤치고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아마존 열대우림과 동급의 오지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죠.


실상은 냉방 잘 되는 버스에서 내려서 조금만 걸으면 나오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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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원에서 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잊혀진 신전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만들어 냅니다.


반쯤 무너져서 이끼가 낀 돌기둥, 배경으로 서 있는 우거진 숲, 사원 안으로 뿌리를 뻗어오는 나무들까지.


원래는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여기서 찍으려고 했는데, 캄보디아 정부에서 돈을 너무 많이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하지요.


그 뒤로 툼레이더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하면서 유명세를 타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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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여기저기 많이 무너져 있는지라 어찌보면 건축 폐자재 야적장 분위기가 나기도 합니다.


건축 특성상 돌 블럭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게 무너져서 쌓여 있으니 세월의 흔적과 관록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왠지 폭격 맞은 폐허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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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프롬 사원이 갖는 특유의 분위기는 나무뿌리가 사원을 얽어 매면서 드러납니다.


뽕나무과의 나무들이라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담을 넘어오는 것 마냥 뿌리가 돌담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용암이 흘러내리다 굳은 것처럼 사원을 뒤덮고 있는 나무 뿌리.


반지의 제왕 영화에서처럼 고대의 나무 정령들이 깃들어서 움직이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나무가 성장하면서 그 뿌리가 사원을 점점 파고들고, 결국에는 돌을 부수고 벽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문화재 보존의 측면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입니다만


이미 너무 깊게 퍼져서 섣불리 나무를 제거했다가는 그대로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는데다가, 이 나무들이 없으면 타프롬 사원이 갖는 특징이 사라져버리는 지라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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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내부에서 바라본 하늘. 


원래는 벽에 나 있는 구멍에 각종 보석을 끼워넣어 햇빛을 반사시켰다고 하는데, 당연하게도 누군가가 다 빼가고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관광객들 입장 수입으로 이런거나 좀 복원해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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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사원에 뿌리를 뻗어 덩치를 키운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 위에 기생 덩굴까지 자라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만화가 중에 장 클로드 갈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그린 만화는 한 컷 한 컷이 다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세밀하고 웅장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국내에서는 '죽음의 행군'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판되기도 했지요. 그 책에 수록된 에피소드 중 하나를 보면, 주인공이 이끄는 군대가 버려진 사원에서 하룻밤 숙영하는데 '죽음의 신의 머리카락'이라고 불리는 덩굴들이 습격해서 사람들을 옭아매고 어둠 속으로 끌고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작가가 타프롬 사원의 모습에서 뭔가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무 덩굴과 뿌리가 버려진 사원을 파고들며 서서히 그 세력을 넓히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신비롭다가도 나중에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들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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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원 역시 바이욘 사원을 지은 자야바르만 7세가 만들었습니다. 어찌보면 고대 문명의 유명한 건축물들은 다 극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세계의 불가사의라고 꼽힐 정도로 위대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동력과 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왕이나 권력가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갖춤과 동시에 건축이나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야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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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프롬 사원 내부의 건물 중 하나, 통곡의 방.


원래 이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곳인데, 나중에 왕이 병에 걸리자 왕의 어머니가 이 곳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신기한 점은, 이 속에서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시끄럽게 굴어도 메아리가 치지 않는데 유독 사람이 가슴을 치면 그 소리가 마치 큰 북을 울린 것 마냥 방 안에 둥둥 메아리가 울린다는 점입니다. 다들 신기해하며 가슴을 치느라 나중에는 가슴이 아프고 멍이 들 정도.


이렇게 오전 일과가 끝납니다. 누가 일정 짠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패키지 여행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야말로 살인적인 여정입니다.


앙코르 톰, 타프롬, 앙코르 와트 등 유적지가 나름 한 동네에 몰려있긴 하지만 워낙 볼 거리가 많아서 적어도 이틀은 할애해야 할 듯 싶은데,


여행상품 구성하면서 이틀치 입장권 끊으면 가격도 뛰고, 일정이 널럴하면 본전 뽑으려는 고객들은 클레임도 걸고 하기 때문인지 이렇게 빡빡하게 돌아다니는 듯 합니다.


그나마 가이드가 동선 잘 짠 덕에 헤매지 않고, 냉방 잘 되는 전세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체력을 보충할 수 있다는 게 다행입니다. 습식 사우나 들어온 것 마냥 습도도 높고 더운데 길이라도 잃고 헤매면 체력이 방전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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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갑니다. 간단한 뷔페식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인데, 메인 요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조합해서 먹을 수 있는 쌀국수입니다.


면과 고기, 채소, 달걀 등을 원하는대로 그릇에 담아서 놓아두면 육수를 붓고 순식간에 끓여서 줍니다.


원래 면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동남아에서 먹는 쌀국수는 왠지 이국적인 향취 때문인지 아니면 다들 국수를 많이 먹으니 맛없게 만들면 금방 망해서 그런지 매 끼니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감탄하며 먹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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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든든히 채우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반데스레이 사원, 일명 여인들의 성채입니다.


규모로 보면 다른 사원들에 비해 비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작은 곳이지만, 담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보게 되는 아름다운 조각들은 그 크기를 잊게 만들어 줍니다.


그 무늬가 너무나도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남자들이 망치와 끌로 조각한 게 아니라 여인들이 바늘로 조각했을 거라는 뜻에서 여인들의 성채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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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데스레이 사원 내부 전경.


붉은 사암으로 건물을 세우고 조각을 했는데 보고 있노라면 돌이 아니라 나무에 조각해 놓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건물 전체가 세밀한 무늬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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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가 들어간 지붕. 워낙 세밀한 조각이라 사진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는 게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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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 높이 솟은 나무 한그루.


얼핏 보면 사원 안에서 자라나는 것 같지만 워낙 커서 착시현상이 일어나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다행히도 담장 밖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반데스레이도 타프롬처럼 나무들의 습격을 받았다면 굉장히 안타까울 뻔 했습니다. 워낙 세밀한 조각들이라 조금만 손상되어도 복구가 불가능 할 것처럼 보이는 예술품들이 가득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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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벽면에는 꽃이나 신화의 내용을 새겨놓은 것도 많지만 이렇게 여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석상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조건'의 저자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가 이 석상에 반해서 통채로 떼어가려다가 잡혀서 되돌려 놨다는 일화는 가이드들이 단골 소재로 써먹는 이야기입니다.


뭐, 실제로는 프랑스 박물관에 팔아먹으려고 훔친 거고, 비록 반데스레이 석상은 실패했지만 고고학 조사를 핑계로 꽤 많은 캄보디아 예술품들을 프랑스로 빼돌리는 데 성공하면서 나름 비난을 받기도 했지요. 사실 프랑스와 영국이 세계를 나눠먹던 시절에는 다른 나라 문화유산을 '학술적 조사'라는 명목하에 자국으로 반출하는 일이 워낙 빈번했던지라 앙드레 말로 본인은 "이게 불법인 줄 몰랐다"고 항변했다는 말도 있구요. 하긴 이집트에서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도 떼어가는 판국에 동남아시아 후진국의 석상 쯤이야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 직지심경도 프랑스로 끌려갔다가 2011년에 영구 임대 형식으로 겨우 돌아온 걸 생각하면, 영국과 프랑스의 문화를 구성하는 데 상당 부분은 남의 나라 약탈품이 기여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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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의 보석이라고도 불리는 반데스레이. 


장엄하고 호쾌한 느낌은 없지만 정교하고 세밀한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앙코르 유적도 따라오기 힘든 곳입니다.


빛의 각도에 따라 조각의 그림자가 바뀌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봐야 그 입체감과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기에, 사진 찍는 내내 '아.. 참 사진빨 안 받는다'라고 한탄하며 찍었다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요즘 나오는 3D 카메라로 찍으면 좀 나으려나요.


아쉬움은 남지만 구경할 곳이 많은데 시간은 적은 관계로 발걸음을 옮겨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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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입구에서 야자열매를 팔길래 목도 마르겠다 하나 구입해 봤습니다.


손도끼로 끝 부분을 몇 번 탁탁 치니까 물이 들어있는 속살이 드러납니다. 맛은 뭐 그냥 밍밍하지만 워낙 더운 날씨인지라 수분 보충 차원에서 달게 마셔줍니다.


속살도 조금 떼어서 먹어보니 아작아작 씹히면서 고소한 게 간식거리로 좋을 듯 한데... 아쉽게도 딱딱한 속을 파먹을 만한 도구가 없는 관계로 쉽게 떨어지는 끄트머리 부분만 조금 맛봅니다. 아깝다고 이 무거운 걸 계속 짊어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