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2일은 여권발급까지 끝내고 미루고 미뤄왔던 캠코더도 정했다.

21일, 꽤나 많은 감정들을 매듭지은 덕분이겠지.

내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던 캠코더 문제..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느낌의 "보이후드" 를 만들어보자고,

전역하면 20대의 순간들을 찍어 다큐멘터리로 만들자고 생각했던 만큼 캠코더는 비싼 제품을 사고 싶었다.

성능은 고프로나 핸드폰이 훨씬 괜찮다 하더라도 캠코더의 느낌이 좋아 무조건 캠코더를 사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찾아보려니 아는 것도 없었고 생각보다 배터리도 오래 가지 못하고,, 음,,

언제나 현실은 시궁창 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히 괴리가 있다.

내가 생각했던 행복회로와 현실에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럴수록 더 빨리 움직여야 하지만..

마냥 미뤄놓고만 싶다.

어쩌면 이렇게 스스로 고통받는 것을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5.

우유니 소금사막

상병 4호봉쯤이었나? 불현듯 생각했다.

이제 전역만 하면 학교에 다니고 일에 찌들어 살 때는 상상도 못 해봤던 다큐멘터리 속 나라들을 갈 수 있겠다고.

전역만 하면 일도, 학교도, 부모님도, 국방부도 막지 않으니까, 정말로 가 볼수 있겠다고..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외국의 어떤 유명한 방송사가 선정한 장소.. 남미.. 모험.. 소금 사막으로 가보자고 결심했다.
어제 부랴부랴 알아본 비행기값은 왕복 400만원쯤.
결국은 내 나태함으로 또다시 기회를 잃고 말았다.
못해도 1달, 2주 전에라도 예약해 찾아뵜다면 좋은 가격이 있었을 수도 있을 텐데
언제나 똑같은 후회의 연속 그리고 체념.
결국 목적지를 바꿔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시베리아 횡단열차, 아프리카, 사막, 바다, 호수... 도시보다는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보고 싶었다.
연금술사에서 사막을 건너던 산티아고처럼,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책의 저자처럼,
나도 거대한 광경 앞에서 배낭 하나만을 멘 채로 주저앉아 내가 쥔 부끄러운 모든 것들을 흘려보낼수만 있다면...
그냥 적당히 자고 걷고 먹고하는 것이라면 굳이 외국에까지 나갈 필요가 있을까?
고생하고 싶어 사막, 초원을 가고싶다고 하는데 막상 가서 밖에서 먹고 자면 훈련 뛰던거랑 똑같은 것 아닌가?
거기다가 시간도 거의 없다.. 초조하다..

조금씩이나마 스스로를 밖으로 밀어내려 했던 노력마저 쓸모없게 난 다시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이런저런 핑계들로..


6

회사원도 학생도 군인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말.

버텨라.

이곳이 힘들다면 바깥은 지옥이다. 그러니까 버텨라.

비어가는 통장과는 다르게 쌓야가는 지갑 속 영수증처럼,

나이가 들수록 따져봐도 소용없고 무시하고 흘릴수만도 없는 말

오늘을 버틸 것인가 내일을 잡을 것인가

아무도 답해줄 수 없는 답답한 질문은 점점 무거워져 대개는 그냥 외면해버린다.

삶에 의미가 없다는, 행복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곧장 아이들을 떠올리곤 한다,

아이들은 사는데 지겨움이란 것이 없으니까.

어른은 매너리즘, 삶에서 벗어나려 여행한다.

여행이란 것은, 그것이 해외던 게임이던 이 매너리즘으로부터의 도피.

여행이란 것이 특별한 건 그것이 지겹지 않으니 그럴 것이지만,

난 이 여행에까지 회의를 느끼고 있다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라면 부모님과 싸우고 뛰쳐나와 헤메던 밤거리와 마찬가지일 것이고

뭔가 새로운 것을 먹는 것도 역시 집 앞 푸드카나 무슨무슨 체인점을 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 관람하기 위해? 이 역시 해외직구가, 인터넷이 있는데 피곤하기밖에 더 하겠어?..

정말 내가 부모님에게 선심 쓰듯 말했던 여행이란 것도 역시 책임으로써의 도피밖에 안 되었다.

여행?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던, 어떤 일을 겪던 결국 느끼는 감정이란 건 다 지독하게 무기력한 지금과 같지 않겠나

결국은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떠밀린 건데.

이쯤 되면 오히려 부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때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거든.


7.

기다리고 기다렸던 택배도 받고나면 시들해지듯, 목표를 세워도 끝나면 똑같다

어떤 목표를 세우든, 누구에게 인정받든, 얼마를 벌든, 원래 그릇이 변하지 않는다면 난 언제고 다시 이렇게 스스로를 파괴할 것이다.

애초에 목표를 세우고 해낸다고 해도 나라는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내게는 2가지 정반대의 욕구가 있다.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 목표라기보다 그냥 막연하게 되고 싶다,라는 욕구

돈과 명예, 나.

밖, 안.

모든 중독들을 떨쳐내고 현명해지는 나를 꿈꾸지만 가십거리, 돈, 여자에 집착하며 더 추해져간다.

자아를 찾는것을 꿈꾸지만 당장 내 모습이 바꿀 수 있는건 허세, 게임, 잘 만든 허구뿐인 것 같아 더 빈 수레가 되어간다.

허세를 부릴수록 진짜 나와의 괴리감이 허무하고

게임에 집착할수록 분노만 쌓여간다.

잘 만든 영화, 노래도 끝나고 나면 결국은 남의 얘기.

그냥 달딜한 독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헤어나오지 못한다.

정답은 알고 있는데 한번 한번으로는 너무나도 미미하기에 실천하지 못할 뿐..

가지지 못했고 가질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가진 것처럼 보여지기 위한 허세와 분노, 거짓말만 늘어가는 악순환

내 인생의 책임은 내가 지는것인데도, 유니세프의 난민을 보는 것마냥 방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