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횡단철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꼭 시간이 몸뚱이와 페어링된 것처럼,
가만히 있으니 시간이 더 더디게 갔다.
뭐 다른게 있다면 가끔씩 자리 날 때 내려가 앉거나 잠깐 캠코더로 사진 찍는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금방금방 사람들이 와서 비켜줘야 했음.
좀이 쑤신다고 해야할까, 밖도 서늘하니 어디로든 뛰달리고 싶었다.
슥슥 지나가는 흰갈색의 벌판을 보며 상상할 뿐이었음.
출발 전 영화나 드라마를 준비하라던 말을 무시했던 게 아쉬웠다.
원래도 혼자 다니던 터라 별 상관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뿐인 공간에서의 고립과 남들과의 공간에서의 고립은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먹음직스런 독버섯들 사이에서 굶어가는 것처럼,
근처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조용히 있으려니 유난히 더 외롭게 느껴졌다.
전역하고부터 생긴 자기과시가 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어느정도 체력이 붙고 나서부터는 전보다 운동을 즐기기 시작했음.
미필때는 달리기같은 건 상상도 안 했지만 지금은 가끔 답답하면 뛰곤 한다.
그래서 중간, 정차했을 때 나가서 뛰어다녔다.
막 여기저기 쏘다니는 건 민망해서 제자리 뛰기나 조금씩.
안에서 창문으로 킥킥대는 꼬맹이들을 보니 뭔가 자부심도 생겼음.
그래서 내친김에 컵라면도 샀다.
매점에서 제일 비싼 컵라면이었지만, 질러버렸다.
카레같은 소스에 비벼먹는 건데 모르고 국물만듦...
이상한 흐름이지만, 자부심이 생겨서 돈을 쓰는데 망설임이 없어진 것.
여자 앞에서 카드 긁는 그런 느낌하고 비슷할 듯 하다.
심지어 꽤 비싼 것으로 사고 다시 차 안으로.
좀 달리고 나니 심장도 쿵쿵거리는 게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뭐라도 얘기할까? 했는데 말할 사람이 없었음.
애들한테 계속 말 걸기도 민망하고.
그렇다고 22살에 찰흙이나 주물럭거리는 건 더 그렇고..
해서 내 침대로 올라갔다.
사실 출발 전부터 숲튽훈에서 시작해 김장훈에게 빠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허니, 소나기, 나와 같다면.
그래서 데이터도 끊기고 볼 것도 없어서 받아놓은 숲튽훈 노래만 들었다.
그 중에서도 정동하의 나와 같다면만 수십번은 들었던 것 같음.
21년만에 세종에서 울려퍼지는 거 말고.
슬슬 2층 생활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1층 눈치본다고 내려가기 망설이지 않을 정도는 되었음.
그래서 자리가 빌 때마다 n드라이브에서 옛날 사진들하고 그렌라간 내려받기 해놓고 내려갔다.
사두었던 잼?에 따듯한 물도 타 마시고, 꼬맹이 동생이랑 찰흙으로 놀기도 하고.
빈자리에 앉아있기도 하고, 다시 올라가 정리도 하고.
무의미하지만 꽤나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
문득,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배낭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도, 창 밖에 러시아 벌판이 보이는 것도.
전역한지 한달도 채 안되었는데도 벌써 민간인처럼 살고 있구나.
금방이라도 후임의 속삭임이 들릴 것 같으면서도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한달만에 꿈처럼 희미해진, 표현하기 힘든.. 붕 뜬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가 오후쯤, 라면먹고 그렌라간도 다시 돌려봤다.
귀국이라면 먼 미래도 아니었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간다면 전과 똑같을게 분명해 답답했다.
이대로 살게되면 어떤 사람이 되는걸까.
나도 부모님만큼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거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에서는 자신이 없었다.
끈기도 없으면서 재능? 목표?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남들에게 있어 부끄럽지 않을 조건,
토익 토플 상위권에 자격증과 대학 졸업장 정도는 돼야겠지.
근데 나는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다.
그냥 살다보니 살아졌고 살고 있는 것 뿐.
열정이나 꿈 같은 비아그라도 다 떨어졌다.
번데기나 성충이나 똑같이 안에서 꿈틀대는 밀웜일 뿐이다.
아
고민이라도 해보자.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직업적으로 하고 싶은 게 없다면 버킷리스트라도 적어보자.
'직업' 고민에 비해 쓸데없어 보여도 당장 시작할 수 있을만한 것들로.
간단한 것부터 써보자.
일단 무덤 앞에서 밤 새기.
평소에도 가끔 눈 뜨고 머리 감을 정도로 겁이 많던 나다.
극한의 공포를 이겨냄으로써 자잘한 공포까지 전부 털어버리고 싶었다.
2년동안 금ㄸ.
언젠가 일본인의 2년 수기를 읽고 해보자고 생각했었다. 상쾌한 아침을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상하차로 3개월 버티기.
말하기도 민망한 약한 체력을 근성으로 극복한다.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사관으로 재입대하기.
말뚝 박을 생각은 없다. 딱 훈련소 수료식까지만이라도.. 훈련병일때의 순수했던 만족감, 그게 그리웠다.
해남에서 1년 살기.
땅 끝 마을이라는 이름에 생각했다.
생각만 했던,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방식들 모두 실험해보자.
등등..
볼품없지만 소중한 목표들이었다.
노후처럼 너무 멀지도 않고 직업처럼 막막하지도 않다.
당장이라도 돌아간다면 할 수 있는 것들.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하고싶은 거 다 해보자.
정말 필요했던 건 직업같은게 아니다.
썩어빠진 무기력함을 없애는 것. 곪아 비틀어진 생각 자체를 바꿔버리는 거다.
그동안은 이따구로 살아왔지만, 앞으로까지 이럴 필요는 없다.
정신병자라는 단어에 먹혀버릴까봐, 정상인이 아닌 행동을 하면서도 피하기만 했다.
내 상태를 인정해버리면 내 인생에 되돌릴 수 없는 빨간 줄이 그어질것만 같았다.
그게 대수냐.
어차피 살면서 한 번 겪을 일이었다면 차라리 잘 된거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겪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상하차도 해보고 재입대도 해보자.
해보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다.
혼자 러시아에 와있는것도 20살엔 상상조차 불가능했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내 불가능함의 범위를 좁혀가는 것. 그것만 생각하자.
정말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저녁이었다.
이날의 일기.
계속해서 만나고 헤어지면서 굉장히 나약하고 줏대없이 흔들리고 있었어.
생각. 행동. 말이 모두 따로 놀고 있어서.
내게 가장 큰 답답함은 무기력함. 무의미?
이대로 돌아가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국은 쳇바퀴일것만 같다는, 그런 불안감.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건 이 무기력함을 떨쳐내는 것.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활력이 넘치고
다른 목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로 사고할 수 있을만한 줏대를 세우는 것.
상하차도 해보고, 재입대도 해보고, 해남에서 1년동안 살아보기도 하자.
행복의 정복은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고 비극의 고흐도 되어보는 것이니까.
그때 가서 해보고 후회해도 늦지 않아.
러시아에 온 것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말 행동하기 위해서.
괜찮아.
살아있는 한, 기회는 있다.
스토익의 말처럼 감정의 끝은 자기연민이고 생각의 끝은 다른 지평이니까.
22살이면 어떻고 고졸이면 또 어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막막하고 답 없지. 현실적이니까. 행복회로가 아니라.
그래도 계속 생각하자. 어떻게 살아갈지부터 어떻게 죽을지까지.
이번 여행의 의미는 몰랐었어. 며칠이나 지났으면서도 지독하게 시달렸고 시달렸지.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것.
이번 여행의 의미는 "계기를 만드는 것."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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