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3일.


붓기는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날이 되니 더 부어버려 깁스를 달고 출근했다.

병원에서 삐었다고 했으니까 금방 낫겠지.

대신 상차나 하차에선 제외되고 바코드나 분류를 하게 되었다.

상하차와 바코드, 분류는 업무 강도가 완전히 다른 일.

비교하자면 10과 4 정도로 차이가 났다.

빨리 낫는게 도와주는 것. 나도 알고있긴 했다.

최대한 발을 덜 써서 빨리 낫는게 더 잘하는 일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들 죽어라 일하는데 모른척하고 편한일만 할 수가 없었다.

중간중간 한 발을 뒤로 쭉 빼고, 발레하듯 상 하차도 도왔다.

자세가 불편하니 움직일때마다 발목과 허리가 아팠다.

그래도 어떻게 눈 감고 쉬운 일만..

갈수록 팔꿈치도 아파왔다.

레일 위에서 택배들을 밀 때, 발목이 힘을 못 받으니 그만큼 팔꿈치에 무리가 갔다.

하지만 차마 티는 못 냈다. 오히려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무리해서 일했다.

주변의 시선과 압박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에 나아지고 있는 척이라도 해야했다.

결국은 조장형의 권유로 물류에서 빠져 지원조란 곳으로 가게 되었다.

임시로나마 요양 좀 하다 오라는 말이었다.



이 부분부터는 기억이 뒤섞여 확실하게 쓰기가 힘들다.

지원조.

출근이라고는 써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건 상하차에 익숙해져있어서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도 별 일이 없었다.

해봤자 방이나 물건 정리 혹은 종이 코팅 정도?

요양이란 말에 맞게, 앉아있는게 업무의 대부분.

지원조란 조 자체가 일종의 복지, 부상자에 대한 배려로 존재하는 부서였다.

애초에 택배일에 복지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렇게 쉬긴 쉬고는 있었지만 초조한건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씹고 있지는 않을까, 남들은 다 일하는데 난 뭐하는거냐

같은 압박감과

정말 이게 잘하는 일인건가, 난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같은 후회들로 매일을 죄책감에 휩싸여 살았다.

다 내 탓이다. 내가 조금만 조심했어도 피해는 끼치지 않았을텐데.....

붓기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갈수록 이물감? 발목 어딘가가 불편하다는 느낌만 더 강해질 뿐이었다.

결국은 부모님의 권유로 다른 정형외과에 가 보기로 했다.

진단은.. 발목 인대 부분파열.



초여름의 땀, 때와 먼지들로 꼬질해진 깁스의 냄새는 시큼했다.

인대 부분파열.

믿겨지지가 않았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이렇게 큰 사고는 남들한테나 일어나는 일일거라 생각했는데....

벙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거기다가 팔꿈치 통증도 점점 심해지고.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인대 파열만 놓고 본다면 별 것 아닐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의 절망감이 있었다.

계속되던 난타전 끝에 맞은 피니셔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인대 파열이라면 일은 고사하고 출퇴근하며 타는 셔틀버스조차도 무리일 듯 싶었다.

....



입원하며 산재 신청을 넣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형식적인 움직임이었을 뿐, 실제로는 의욕도 희망도 없었다.

다만 무서웠을 뿐.

일을 하던 동안 그나마 남긴 것이라고 할만한 것. 돈.

그 돈마저 전부 병원비로 날리게 될까봐,

결국은 남은 것 하나 없이 몸만 병신인채 남을까 무서웠을 뿐이다.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을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중간에 뛰쳐나오게 되어 고생할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신경써줬지만 갚은 것 하나 없이 산재 신청이나 넣게 된 수치심,

그깟 몸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한 나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

이 부분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악. 겪었던 것들 중 가장 밑바닥이었다.

이제야 하나 해보는건가 싶었건만 몸까지 병신으로 만들었구나..

팔꿈치는 방 문고리도 돌리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허리는 망치로 쳐 꺾어놓은 것처럼 묵직하게 눌리고

발목이야 말 할 것도 없이

최악이었다.



처음 일주일정도는 혼자 병실을 썼다.

다시 낮과 밤이 바뀌었다.

일어나기 귀찮아 아침 식사마저 빼버리고 점심쯤에나 일어났다

할 일이라고는 오전 오후로 2번 물리치료.

일어나면 유투브를 틀어놓고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점심 먹고 다시 핸드폰.

그리고는 저녁을 먹고 다시 핸드폰을 했다.

저녁이 되면 잊으려 치워둔 회의감과 막막함이 다시 숨통을 졸랐다.

뛰어다니던, 러시아에서 다짐하던, 군대에서 생각하던, 희망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떠올랐다는 말은 이상하다

초점이 바뀌는 것이다

초점이 바뀌어 흐릿하던 뒷배경이 선명해지는 것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답답함만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 때가 오면 깊히 가라앉는다.

쇠사슬에 묶힌채 발버둥치는 것처럼, 시끄러운 동영상과 음악도 소용이 없다.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끌어당겨진다.

어떠한 것도 닿지 않지만 어떠한 것도 놓을 수 없는 그런 순간.

손을 휘저어도 물거품조차 나지 않을것만 같은 그런 순간에 삼켜지는 것이다.



산재고 뭐고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날 모를만한 곳,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다쳤다는 사실도 군필이라는 사실도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다는 사실도

전부 버릴 수 있다면..

그 즈음부터 노트북을 가져와 게임을 했다.

디아블로 2를 그때 전부 깼다.

발목이 다쳤다는 건, 단순한 부상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좌절감과 패배감이 있었다.

낫건 낫지 않건간에 더 이상은 어떤것도 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매일을 돈에 허덕이던 상황에서 당첨된 복권을 잃어버린 것과 같았다.

행운은 이번으로 끝났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테지.

한심함을 견딜 수 없었다.

탓할 사람조차 없었다.

J를 만난 것은 그러던 중이었다.

난 자신이 없었다. 매일 곧 있으면 떠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J는 떠나가지 않았다.

이해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지도 않았던 내 절룩거림.

그런 것을 이해한다고 해 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얼마 되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고마움이 다른 성질의 것으로 변해버렸을 쯤. J는 떠나갔다.

지독하게도 파고들은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느 순간, 또 어느 순간을 되뇌였다.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소금싸막 4를 이 때 썼다.

그러다보니, 어느정도의 생활로 돌아올 수 있을 때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또 흘러갔다.

그리고 그 과정동안 생긴 또 다른 일.

보잘것 없던 내겐 과분했던 인연을 만난 것과 흘려버린게 그것이다.



Y형.

형이라기엔 아빠뻘이었고 삼촌이라기엔 생각이 젊으셨다.

내 입장에서 이해해주고 어른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다.

깨달은 것도 남은 것도 없는 내 얘기를 듣고 특별하다고 해주기도 했고.

우연히 같은 병실에 입원.

그 이상으로, 너무나도 잘 대해주신 분이었다.

세대가 달랐음에도 이해하려 애쓰고 공감하며 얘기하곤 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밥도 맛 없고, 잘 맞는 사람들끼리 모였다며 밤에 컵라면과 포도 한 박스에 냉동식품을 사온 적도 있었다.

한밤중에 병실을 탈출해서 치킨집에 편의점까지 갔던 적도 있었고.

그 날, 돌아가려니까 병원 문도 잠겨있고 간호사도 전화를 안 받아 2층 창문을 넘어서 들어왔더랜다.

재미있었다.

아무에게도 내보일 수 없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 괜찮다며 엄지를 세워주던 형.

갇혀있던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쌓이다 쌓이다 부담감과 죄책감이 되어 도망치게 만들었다.

도망. 그 말이 꼭 맞다.

나는 도망치게 되었다.

결국은 변하지 않는 내 스스로에게서, 그럼에도 괜찮다던 형에게서 도망쳤다.



사실 풀어보자면 병원 근처도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지만,

중학생때부터 자주 다녔던 동네. 이 정도로만 써놓는게 제일 깔끔할 듯 하다.

디아블로를 전부 깨고 J가 떠나간 이후.

때때로 나가던 산책마저 꽤 지겨워질 즈음,

퇴원하게 되었다.

다행이었던 건 산재도 인정되고 어느정도 회복되었다는 것.

하지만 정신은 피폐했다.

회복이라곤 해도 당시로썬 전혀 실감나지 않던 수준.

평생 절뚝거리며 다녀야 하는걸까 불안했다.

단순한 상하차 하나조차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는 패배감한심함.

그리고, 그 야릇한 쾌감.

한동안은 그것들에 중독되어 살았다.

얼마 후 깁스를 풀었다.

다시 pc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퇴원 이후의 생활은, 뙤약볕 아래에서 사는 것과 같았다.

한여름의 날씨처럼 뜨겁고 따가운 볕.

내리쬐이는 후회와 열등감을 그늘조차 없이 그대로 받아내는 것 같았다.

어지러웠다.

운동이라도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조차도 안되었으니까..

거기다 J를 생각하면 견딜수없이 불안해지고 우울해지곤 했다.

다시 만나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 같았다.

당시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상황에서 다시 만난다고?

안 봐도 알 법한 이야기. 똑같은 일만 되풀이될게 뻔하다.

호구란 말처럼, 다시 호랑이 입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꼴인 것.

하지만 그럼에도, 마냥 다시 만나기를 바랬었다.


내 인생에 대한 회의, 상태에 대한 불만, 바뀌지 않는 역겨움.

지쳐가고 쳐져가는 것에 대한 슬픔. 불안함.

툭 치면 금방이라도 쏟아질것만 같아.

더럽게, 사무치게 외롭고 고독하면서도 괜히 친절한 사람들에게 꼬장을 부려.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내가 만나고 싶어하는 건 좋아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나일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 순간순간의 모든 ' 나 ' 들. 그 모습들과 흔적들에 그리움을 느껴.

피해의식과 부끄러움, 공격성과 교만함이 그 증거지.

자격지심에 찌든 내 모습을 본다면, 너는 눈물을 흘릴까?

내가 나를 그리워하는 것은 떼어낼 수 없기 때문이겠지.

이런 내 모습이라도 떼어낼 수 없기 때문에 널 그리워하는 거겠지.

....

내가 가진 것들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부끄럽게 행동하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하는거야.


7월 23일의 일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내 사정이 어쨌건간에, 이후로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

그리고 불현듯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달라진게 하나 있었다.

어느정도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된 것.

만성감기를 달고 살다가 한번 지독하게 독감을 겪고 나아버린 것과 같았다.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만,

바닥까지 내려가고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토록 내가 피하려고 했던 모습들.

J를, 부상을, 정신을 핑계로 방구석에만 틀어박혀있는 내 모습.

역겨웠다.

역겹다고 생각하면서 똑같이 행동하는 것 역시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바꿀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외면하려고 했을 때보다 별 것 아니게 느껴졌다.

닥치는대로 뭐라도 바꿔보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 어느정도 자리잡은 후 다시 J에게 연락하겠다.

드러내기 부끄러웠던 것을 바꿔놓고 떳떳하게 매듭을 짓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보자.

소금싸막 5, 6을 이 즈음에 썼다.



사실은 그래놓고 꽤 오래 더 헤메였다.

바뀌어야 한다! 생각하면서 부담감에 얽매이기도 하고.

또 도망치듯 PC방에서 밤 새고 돌아오고..

그래도 조금씩 생활을 바꿔보려 했다.

청소나 설겆이같은 집안일도 미루지 않았고,

저녁마다 솔직하게 일기를 썼다.

20대라는, 귀중한 시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거냐..

답이 나오지 않아서 책이라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동안 도서관을 다녔다.

갖가지 공부를 하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미생과 소설을 읽었다.

공부는 엄두가 나지 않아 책만 잡히는대로 읽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우연찮게 닿게 된 J와의 연락.

많은 얘기를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그로인해 실감했다.

J에게 있어선 꼭 나였을, 나여야만 했을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과

내가 운명이라 믿는다고 상대방도 똑같이 느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어쩌다 잘 맞은 타이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거기다 나 역시도 그렇게 떳떳하지 못했고.

또다시 무력감이 엄습했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많았지만 잡히는 건 없었다.

헛소리만 떠들고 다녔구나...

그동안 하나하나 조심스레 쌓았던 것들이 무색할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진 것 같았다.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더뎌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저녁마다 일기엔 ~하자, ~할거다 같은 말이나 쓰고 있으니..

웃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꾸미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 없을것만 같았다.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핏물을 빼는 고깃덩이처럼 희끄무레죽죽한 색깔처럼 느껴졌다.

변할거라고 다짐했던 것들.

군대에서의 운동과 전역하고서의 일기.

다쳐서 절뚝거리는 몸은 갈수록 근육마저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일기는 쓸 것도 없었다만 쓴대도 진심없는 거짓말뿐이었다.

달력의 숫자가 쌓여갈수록 몸과 정신은 둔탁해져갔다.

생각만 할 뿐이었다.



이대로 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이물감마저 희미해져 갔다.

시끌벅적하던 13호 태풍, 링링이 상륙한 건 그 즈음.

태풍이란 말을 들으니 마음이 요동쳤다.

어떤 초조함, 강박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가고 싶었다.

태풍이 탁한 하늘을 씻어가듯, 나도 이 빌어먹는 생활을 씻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몸으로 어딜...

설레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설레임마저 삼켜내야 한다고 비웃고 있었다.

밖에 나가고 싶다.

내내 미세먼지로 탁하던 하늘이었지만 태풍이 오는 날 만큼은 맑겠지.

바다가 보이는 우리동네 뒷산.

뒷산으로 가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싶다.

하지만 나는 나가지 못할거야.

이런 몸으로, 이런 체력으로....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거지. 고작 동네 뒷산인데도 체력을 따지다니..

하늘을 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걸릴 것 없는 맑은 하늘. 그 너머로 떨어지는 불덩이.

걸리는 것 없이 선명할 풍경.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태풍이 부는 날, 더 맑을수도 없을 날.

그 하늘과 노을마저 보지 못하고 흘려버리게 된다면 견딜 수 없을것만 같았다.

거기다가 어린애같은 억지도 있었다.

내 몸이 이렇게까지 망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태풍에도 산을 갈 정도로 아직 튼튼하다고 믿고싶은..

무엇보다도 태풍을 산 정상에도 제대로 느껴보고도 싶은 억지.



결과만 말한다면 가게 된 건 한낮이었다.

태풍이 그치고 난 이후라면 보아도 소용이 없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면서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오후로 넘어가면 세력권에서 벗어난다는 말에 낮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끝내주게 선명했다.

비록 노을도 보지 못하고 하늘도 꾸물거리긴 했지만 그런게 무슨 소용이냐.

그리고 정말 죽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물가 위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배를 까 뒤집고 펄떡거리는 나무들이 있었다.

마른 옷을 힘차게 터는 것처럼 바람이 바뀔 때마다 팡팡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또 산기슭부터 휘몰아치는 기류에 정상까지 날아오른 나뭇가지.

눈 내리듯 뿌옇게 파도치는 빗방울들.

비가 아플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정말 죽을수도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건, 중요한 경험이야.

내 자존심, 두려움, 불안함, 부질없음을 실감시켜주거든.

자연이 얼마나 가까이 존재하는지,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겠더라.

빗방울도 따가웠고. 빗물의 결, 파도치는 비부터 눈 내리는듯한 하얀 뿌엶.

새처럼 날아다나는 나뭇잎과 거짓말처럼 휘어지던 나무들.

잎들이 다 뒤집혀 색깔도 허옇게 질린 것 같았어.


9월 7일 일기.



죽는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후련함을 느꼈다.

바람에 떠밀려 비탈을 구르게 될까 나뭇가지를 꽉 붙잡으면서도 더 세게 불었으면 싶었다.

소리를 질렀다.

바람소리와 나무소리에 묻혀 뻗어나가지도 못했지만, 목이 쉴 때까지 질러댔다.

얼마 지르지도 못하고 금방 쉬어버려 힘이 빠졌다.

뉴스에서 겁을 주던것처럼 강하지는 않았다.

2시간쯤 지나자 점차 약해졌다.

빗방울도 바람도 사그라들면서 조용해져가기 시작했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나니 발목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살아있다는 사실.

오직 살아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다음날도 산을 올랐다.

신경을 끄기 시작하니 발목도 잠잠해졌다.

비가 온 후에다 날씨까지 습해지니 날벌레와 거미줄이 꽤 많았다.

중간에 파리매가 팔에 앉아서 기절할만큼 놀랐다. 그리고 내가 놀랐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단정지었던 내 인생.

하지만 링링이 있었고 파리매가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이미 몇 번이고 그냥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잖아.

지금은 모두 보너스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