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캐나다순례(4)-Plymouth가 보여주는 진실과 허구(1)
푸른바다(68.100)
2003-08-25 12:55
추천 1
메이플라워호를 복원한 배이다. 그런데 규모로 볼때 102명이 그 여러날을 항해왔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너무 작고 초라한 느낌이 드는것이 사실이었다.(사진 상) 그리고 청교도인들이 이곳에 상륙할때 첫발을 딛은 돌로 믿고 있는 Plymouth rock의 모습이다.(사진 하) 1620년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후에 돌에 조각한 것이고 가운데는 둘로 갈라진것을 다시 붙인 흔적이 보인다.
보스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 때문에 명성이 높아진 도시이다.
그러나 또 하나 우리 신앙인 들에게는 매우 의미가 있는 도시로 주목할 것이 있는데
바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났던 청교도인들이
처음으로 신대륙을 발견하고 상륙한 곳이 바로 보스턴 근교에 위치한
\'Plymouth\'라는 사실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플리머스에는 청교도들이 처음 상륙할 때 밟았다는 Plymouth rock이 있고
그 옆에는 청교도들이 타고 왔다는 메이플라워 호의 복원품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모든 미국 초등학생들은 1620년 이곳에 상륙한 청교도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장면,
그 이듬해인 1621년 가을에 첫 수확을 감사드리는
최초의 추수감사제(Thanksgiving Day)에서 기도를 드리는 장면을 되풀이해서 배우며
한국 사람들이 백두산에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미국 사람들 중에서도 플리머스에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때문에 플리머스는 그야말로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성지로 되어 있는 것이다.
바다지기 자신도 보스턴을 방문하면서 신앙인으로서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성지의 개념을 갖고 찾아갔으나
이번 플리머스 방문에서 내가 본 것은 진실과 허구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
역사와 전설이 얼마나 뒤섞여 있느냐 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진실과 허구, 역사와 전설의 혼동의 상당 부분이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수가 있었다.
이는 청교도인들의 숭고한 신앙정신을 비하하거나 절대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사실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플리머스는 보스턴 시내에서 차로 1시간쯤 떨어진 교외의 해안가에 위치해 있는데
도착하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당시 청교도인들이 타고 온
메이플라워호를 복원한 \'메이플라워 II\'호다.
이 배는 원래의 메이플라워 호를 1955년 영국에서 복원하여 대서양을 항해,
1957년 플리머스에 도착한 후 전시되고 있다.
그런데 102명이 타고 왔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기가 작다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배는 많은 사람들에게 메이플라워 호 만큼 숭배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배다.
우선 이 배가 메이플라워 호와 같은 모양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메이플라워 호의 정확한 모양이나 구조 등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1955년 이 배를 복원할 당시 남아 있던 소수의 17, 18세기의 영국 배에 관한 기록을
참조하여 건조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우리가 몰랐던 사실은
원래 청교도들은 처음에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떠난 것이라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영국에서 떠난 것도 아니다.
이들은 영국 국교도의 신교도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로 탈출,
거기서 10년을 지내다가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전쟁이 임박해지자 다시 아메리카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Speedwell이라는 다소 작은 배를 빌려 네덜란드의 Delftshaven 항을 출발했다.
그리고 이들은 영국 Southampton에서 메이플라워 호와 합세했다.
메이플라워 호는 사실은 영국 상인 투자가들의 배였다.
청교도들이 아메리카까지 갈 여비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대서양 횡단 여비는 일반노동자 월급 1년분에 해당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상인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대신,
상인들의 투자상품을 싣고 가서 아메리카에서 이익을 보고 팔아 돈을 갚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메이플라워 호는 그 전에는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포도주 무역에 종사하던 상선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을 떠나서 조금 항해하다가 스피드웰 호에 물이 차기 시작하여
할 수 없이 일부 사람들은 메이플라워 호에 옮겨타고 나머지는 영국에 남게 되었다.
따라서 메이플라워 호에 탔던 102명은 모두 종교적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찾은 청교도들은 아니고 일부는 신대륙 무역으로 돈을 벌려는 모험가들,
일부는 상인들에게 고용되어 상품을 거래하기 위해 탄 사람들이었다.
과연 그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른바 Philgrims Farther(이 말 자체가 차별적인 용어다. 배에 탔던 사람은 남자뿐만 아니라 많은 여자와 어린이들이 있었다)는
순수한 종교적 열정에 불타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메이플라워 호에는 따라서 많은 무역품을 실었기 때문에,
그리고 예정에 없던 승객까지 과잉승선을 하였기 때문에 공간이 매우 협소하였다.
66일 동안 항해하는 동안 승객들은 제대로 누울 자리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메이플라워 호는 1620년 승객들을 플리머스에 내려주고
이듬해 4월까지 있다가 영국으로 되돌아갔는데
이후 배의 행방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 알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전시되고 있는 배는 메이플라워호를 복원한 배라는 이야기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의 허구는 메이플라워 호에 탄 청교도 102명은
1620년 11월 21일 플리머스에서 빤히 보이는 케이프코드 끝인 프로비던스 타운에 도착했다.
여기서 그들은 원주민들이 땅속에 묻어놓은 옥수수를 발견하고
이를 압수(안내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 무슨 권리로 압수했는지?
오히려 도둑질했다고 해야 맞을 텐데)한다.
그러나 물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12월 21일 작은 보트에 18명을 태워
물을 찾아 케이프 코드 만을 횡단하다가 지금의 플리머스 근처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이곳에 상륙하게 된다.
따라서 18세기 이후 흔히 그려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메이플라워 호에서 내린 청교도들이 이곳 플리머스에서
상륙을 기념하는 기도를 드리는 장면은 허구다.
사실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 지방에 상륙한 것 자체가 우연이다.
원래 그들이 영국 왕으로부터 살도록 허가받은 땅은 버지니아였는데
항로를 잘못 잡아 이곳으로 왔을 뿐이다.
청교도인들이 상륙할 때 첫발을 딛었다고 주장되어져서
보관 전시되고 있는 Plymouth rock의 경우 거짓은 더욱 심해진다.
원래 처음 이곳에 상륙한 청교도들 가운데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플리머스 록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바위라면 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사실 이미 프로비던스 타운에 상륙한 뒤인데 그 다음에 다시 어디에 상륙했건
별로 중요한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무려 120년이 지난 1741년이 되어서야 이곳 플리머스 교회의 장로인
Faunce(당시 93세였다고 한다)가 자신이 어렸을 때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온 사람들로 부터
들었다고 하면서 이 바위를 지목하여 청교도들의 최초상륙지라고 주장했다
(당시 이곳은 번잡한 부두 한 가운데 있는 평범한 바위였다).
왜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무려 93세가 되어서야 최초로 밝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곳을 지키는 안내인도 여기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마치 자신이 본 듯이 청교도들이 보트를 타고 와서 찬 바닷물에 발을 적시기 싫어서
이 바위를 밟고 상륙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어쨌든 그 당시에는 아무도 이 노인의 말을 안 믿었는지 그 후 30년 동안 아무 일도 없다가
1774년(미국 독립혁명전쟁이 한참이었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곳을 공식기념물로 지정하게 된다.
당시의 선정적인 언론에서도 이를 크게 기사로 다뤘다고 한다.
결국 바다지기의 생각으로는 이 바위는 미국 독립혁명전쟁 과정에서
미국 국민들을 단결시키기 위한 하나의 심볼을 찾고 있던
당시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구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한다.
한 노인의 말 말고는 이것이 진짜 그 \'돌\'인지 증명할 길은 없다.
사실 그게 뭐가 중요한걸까?
이 돌의 중요성은 오로지 정치적 상징물로서의 가치일 뿐이다.
그 뒤에 이 돌은 많은 수난을 겪게 된다.
1774년 이 돌을 시청으로 옮기기 위해 20 마리의 황소가 끌고 가다가
돌을 두 동강 내기도 했고, 절반은 바닷물 속에 잠겨 침식되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바위의 일부를 조금씩 잘라 갔는데
일부는 필그림즈 홀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보존되기 시작한 것은 1921년부터이다.
안내인의 말로는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하나같은 반응은
\"에게! 겨우 이거 보려고 이렇게 먼 길을 왔어? 나는 훨씬 큰 바위인줄 알았는데...\"라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돌 자체는 지극히 평범하고
크기도 우리 아낙네들이 시냇가에서 빨래 돌로 쓰는 정도의 작은 것이다.
미국 사람들의 반응 자체가 바로 이 돌이 얼마나 미국 사람들의 머리 속에
상징 조작되어 위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 하겠다.
사실 이런 느낌들을 동행한 가족들에게 모두 말할수는 없었다.
혹시 신앙적으로 실망할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특별이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집의 세 아이들에게는.
그러나 글에는 분명한 사실을 기술해야 하기에 적어 보는 것이다.
아마 다음편에 몇가지 허구를 더 적어야 할듯 싶다.
헛..그런 사실이...잼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