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캐나다순례(5)-Plymouth가 보여주는 진실과 허구(2)....질문 한 가지!!
푸른바다(68.100)
2003-08-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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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Wampanoag족 추장 Massasoit의 동상.(사진 상) 이곳에 상륙한 청교도들에게 은혜를 베푼어 주어 생존하도록 했는데 청교도들과 그 후손들은 원주민 수 백만 명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고 그들이 갖고있던 문화를 파괴했는데 마사소이트 추장은 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그래서 추장의 동상 옆에는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을 비판하면서 이를 National Day of Mourning(애통의 날)으로 선포한다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협회의 기념판을 볼수 있다.
보스턴은 처음(미국의 대부분이 처음 방문하는 곳이긴 하지만)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눈에 정감이 가는 도시였다.
유수한 대학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를 잡고있어 학구적인 분위기와 함께
어느 곳에서나 젊음이 넘치는 것을 느낄수 있었고
특히 교회들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도시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듯 했고
울창한 녹음과 함께 도심을 가르는 챨스강과 그 위를 미끄러지듯 나가고 있는
수많은 요트들이 보스턴을 매우 풍성하게 하는 듯 했다.
그러나 Plymouth에서 발견한 허구는
미국의 치부 또는 역사의 허구를 보는 듯 해서 입맛이 습쓸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앞 글에서 메이 플라워 호와 Plymouth rock에 숨겨진 허구를 지적을 했었는데
그 외에도 느껴진 가려진 진실을 말해 보려고 한다.
플리머스 록 바로 뒤에 있는 언덕을 올라가면 어떤 관광지에서도 쉽게 볼수 있는
플리머스 밀랍박물관(Plymouth National Wax Museum)이 나온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바다경치는 일품이다.
그런데 박물관 바로 앞에는 원주민 Wampanoag족 추장 Massasoit의 동상과
네이티브 아메리칸(소위 인디언이라고 불리웠던 아메리카 원주민)협회의 기념판이 있다.
플리머스에 상륙한 청교도들은 원주민들의 눈에는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식량도 충분하지 않았고 낯선 땅에서 농사짓는 법도 몰랐으며
숲 속에서 사냥하는 방법도 몰랐다.
마사소이트 추장은 이들에게 옥수수 씨를 주고 그 재배법을 가르쳐 주어서
겨울을 넘기게 한 은인이다.
그러나 이들 청교도들과 그 후손들이 결국 원주민 수 백만 명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고 그들이 갖고있던 문화를 파괴할 줄 마사소이트 추장이 어떻게 알았으랴.
그래서인지 마사소이트 추장 동상 옆에는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을 비판하면서
이를 National Day of Mourning(애통의 날)으로 선포한다는
네이티브 아메리탄 협회의 기념판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청교도들에게는 추수감사절일지 모르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이 날이 재앙의 날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판으로 생각이 되었다.
많은 그림에는 청교도들이 갑옷을 입고 당당하게 상륙하는 순간에
인디언 한 사람이 마치 복종하듯이 고개를 숙이면서 무언가 바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고
마소사이트 추장이 베풀어 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마소사이트 추장의 동상과 그 앞에 새겨진 동판들을 보면서
가려지고 왜곡되어진 진실을 발견하는 듯 했다.
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한 시기는 바로 초 겨울이었다.
보스턴은 겨울에 매우 쌀쌀하다.
이를 통해 예상해 보면 당시의 청교도들의 고생을 알수 있을 것 같다.
보스턴이 자리한 뉴잉글랜드 지방의 겨울은 혹독하다.
눈이 무릎 넘어서까지 쌓이고 기온은 영하 30도 이하까지 내려간다.
12월에 이곳에 도착한 청교도들로서는 식량도, 옷도, 약도 충분하지 못했다.
거기다 긴 항해에 지치고 낯선 땅의 물과 음식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 결과 1620년 겨울 동안에 거의 절반이 사망한다.
청교도들은 사망자의 수를 원주민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무덤의 봉분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1621년 10월, 청교도들은 고생 끝에 첫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풍성했다.
이들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을 도와준 원주민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축제를 열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추수감사절>로 알려진 행사다.
그러나 이 행사는 순수하게 축제였을 뿐 종교적 색채는 없었다.
만약 종교행사였다면 원주민들을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축제에는 살아남은 청교도 50명과 원주민 90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후 영국으로부터 많은 이민들이 들어옴에 따라 차츰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미화하고
종교적으로 해석하게 되었고 마침내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정기적으로 치러진 것은 아니었다.
186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만들었지만
날짜는 제 각각이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쇼핑 기간을 늘이기 위해
11월 세 번째 목요일로 날짜를 옮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41년 의회에서 최종적으로 11월 네 번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하기로
법률로 정함으로써 오늘날의 추수감사절 날짜가 확정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추수감사절 유래는
사실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를 알수 있다.
유럽인이 오기 전에 이 지역에는 약 5만 명 이상의 원주민들이
코네티컷, 케이프코드 등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 싸우면서도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청교도를 포함한 유럽인의 도착은 이들에게는 크나큰 재앙을 의미했다.
유럽인이 오기 전에 이 지역에는 약 5만 명 이상의 원주민들이
코네티컷, 케이프코드 등에 흩어져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 싸우면서도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청교도를 포함한 유럽인의 도착은 이들에게는 크나큰 재앙을 의미했다.
유럽인에 묻어온 천연두, 황열병에 저항력이 없는 원주민들은 대규모로 쓰러졌다.
유럽인들은 이들을 노예로 잡아 영국이나 서인도에 팔아넘겼다.
이들의 땅을 빼앗고 추방했다.
저항하는 원주민들은 용서 없이 살해했다.
미스틱(Mystic) 호수 사건에서는 영국인들은 원주민 마을을 포위하고 불을 질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7백명을 살해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7명에 불과했는데 전부 노예로 팔렸다.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이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어진 일이었다.
오랫동안 서로 전쟁을 하면서도 여자, 아이 등 비전투원은 결코 죽이는 습관이 없었던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의 이런 잔혹함에 크게 놀라 먼 곳으로 도망가거나 숨었다.
사실 필그림 들이 플리머스에 상륙하던 당시에는
이미 이 지역의 2천여명의 원주민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는데
이는 유럽인과 접촉한 후 불과 몇년만에 일어난 인종 말살의 결과였다.
[미국 민중의 역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라는 유명한 책을 쓴
보스턴 대학교의 하워드 진(Howard Zinn) 교수는 이렇게 쓰고있다.
[필그림이 뉴잉글랜드에 왔을 때 그들 역시 주인 없는 빈 땅에 온 것이 아니라
인디언 종족들이 이미 살고 있던 영토에 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식민지 총독은 인디언들이 이 땅에 대한 “자연적” 권리는 있지만
“법률적” 권리는 없다고 선포하고 따라서 이 지역을 법률적으로 “진공상태”라고 변명했다.
필그림들은 또 성경을 인용하여 이 땅을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저항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땅을 원하였고 이에 방해되는 인디언들을 없앨 것을 원하였다.
그러자 한 백인 상인의 죽음을 구실로 하여 1636년 인디언에 대한 전쟁을 일으켰다.
그들은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노예로 잡았으며 땅은 압수했다.
곡식은 불질렀다]
(Howard Zinn,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HarperCollins, 1999, pp. 13-14).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아 이 땅에 온 청교도들은 바로 이와 같이
1만년 전부터 조상대대로 이 땅에 살아 온 원주민들의 자유와 생명과 땅을 빼앗음으로써
자신들의 역사를 구축해 갔던 것이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질문 한가지!!)
제가 아직 컴퓨터에 익숙하질 않아서.......
사진을 전 늘 두장만 올리는데 사실은 더 많이 올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또 올려 드릴 사진도 많이 있구요.
그래서 질문을 드리는데 두장 이상을 이곳에 글과 함께 올리려면
어떻게 하는지 방법 좀 누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림없으면.....재미없소.
다른 계정으로 사진을 올리시고 HTML태그 써서 그사진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다른 분 여러개 올린거 수정으로 보시고 태그 확인하세요...
님의 글과 사진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앞으로도 멋진 활동 기대할게요~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