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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스 동부, 카스피해 서부 연안에 있는 국가. 정식명칭은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이다.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분리독립했다
아제르바이잔 (Azerbaijan)
개요
카프카스 동부의 카스피해 서부 연안에 있는 국가.
위치 : 동구유럽
면적 : 8만 6600㎢
인구 : 817만 6000명(2002)
인구밀도 : 94.4명/㎢(2002)
수도 : 바쿠(Ba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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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 (Baku)
개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위치 : 아제르바이잔
인구 : 172만 7200명(1997)
내용
인구는 172만 7200명(1997)이다. 카스피해 서해안의 아프셰론반도 남해안에 있으며, 로스토프•트빌리시•바투미 등지로 통하는 철도와, 바투미로 통하는 송유관의 기점이 되어 있다. 바쿠라는 지명은 페르시아어의 ‘바트쿠베’ 즉 ‘산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공업은 석유정제•석유화학•황산•소다•아세틸렌•합성고무•석유굴착기•석유플랜트시설•전동기•조선•정면(精綿)•메리야스•합성섬유•공업약품•피혁•식품•담배 등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항만은 현대식 시설과 화물수송량을 자랑하며, 시가지는 해안에서부터 배후의 바쿠 구릉에 걸쳐서 전개되어 있다. 구릉 경사면에는 잘 정돈된 도로와 위압적인 건물들이 늘어서고 해안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전력수요의 태반은 몇 개의 가스터빈 발전소와 부수적으로 밍게차우르댐으로부터의 송전에 의존하고 있다.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중세에는 아제르바이잔인(人)의 교역도시로서 번영하였으며, 요새(13세기), 시르반샤 궁전(15세기) 등이 남아 있다. 18세기에는 바쿠칸의 거성(居城)이 되었으며, 1806년에 러시아에 병합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바쿠 유전에 외국자본이 투입되고 개발이 시작되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으며(1997년:11만 2천), 1989년 소련 붕괴에 앞서 주권을 선언한 신생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종합대학과 8개의 단과대학 및 고등전문학교가 있으며, 그 밖에 과학 아카데미•니자미 극장•니자미 박물관•민족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정체 : 공화제(대통령중심제)
공용어 : 아제르바이잔어
통화 : 마나트(Manat)
환율 : 4,886Manat = 1달러(2002.9)
1인당 국민총생산 : 610달러(2000)
면적은 8만 6600㎢, 인구는 817만 6000명(2002)이다. 인구밀도는 94.4명/㎢(2002)이다. 정식명칭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Republic of Azerbaijan)이다. 수도는 바쿠이고 공용어로 아제르바이잔어를 사용하고 있다. 북쪽은 러시아연방의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서북쪽은 그루지야, 서쪽은 아르메니아, 남쪽은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동쪽은 카스피해에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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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아제르바이잔의 농축산업
농업은 아제르바이잔의 주요 산업으로, 대규모 집단농장과 국영농업유통공사의 붕괴로 1990년대 중반까지 생산이 감소하였으나 이후 민간농업 기업들이 자금난을 극복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따라 다시 회복되고 있다. 국민총생산 중 농업의 비중은 33.5%이며, 국토의 48%인 420만ha가 농축산에 이용된다. 목장이 210만ha, 목초지가 10만ha이며 경지는 160만ha로 국토의 18%이다. 이중에서 사료작물 경작지가 41%이며 곡물 30%, 공예작물 23%, 채소•과일 6% 등이다. 주요 농업지대는 쿠라•아라크스 평야와 그 주변의 산기슭과 구릉에 펼쳐져 있으며, 목화•잎담배•포도•차(茶)•감자•쌀•멜론 등을 대량 생산한다. 목화의 주산지는 쿠라•아라크스 저지, 간자, 카자흐 등지로, 이곳에서 전국의 75%가 산출된다.
잎담배는 볼쇼이카프카스산맥의 남서지방에서 전국의 70% 이상이 산출된다. 포도주용 포도는 나히체반자치주, 카라바흐 산지, 쟈므호르, 셰마하, 큐르다미르, 카자흐, 아프셰론반도 등지에서 집중 재배된다. 북부와 서부는 하계 목장지대, 쿠라강 중류는 동계 목장지대로, 양•염소•소•돼지의 사육이 성하다. 나히체반자치주에서는 목화•담배•포도재배가 활발하며 소•양 등을 사육한다. 나고르노-카라바흐자치주는 보리•잎담배•목화•포도•채소 및 과일을 주로 재배하며 양잠도 성하다. 산지에서는 목축이 행해진다.
아제르바이잔의 광공업
아제르바이잔의 공업은 1996년까지 심각한 생산감소를 겪었으나, 1997년 이후 공업생산의 52.5%를 점유하고 있는 에너지공업의 발전에 힘입어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공업은 풍부한 광물 및 동력자원을 기초로 여러 분야에서 골고루 발달하였으나, 기간산업은 석유산업이다. 석유매장량은 10억t 정도이며 연간 산유량은 1000만t 이상으로 구소련 지역에서 러시아•카자흐스탄에 이어 3위이다. 1901년에는 세계 석유생산량의 50% 이상을 기록했으며, 1940년에 소련 지역 산유량의 71% 이상을 차지하였다. 1959년에도 15%를 점유하였으나, 그후 원유가격의 침체 등으로 큰 폭으로 감소하여 1989년에는 2.2%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바쿠유전의 개발이 늘어나면서 1998년 석유생산은 26%나 증가했고, 1998년 한 해에 외국인 투자계약액이 190억 달러에 달하였다.
석유는 주로 아프셰론반도, 쿠라•아라크스 저지, 카스피해 등지에서 채유되며, 카스피해 해저유전의 채유량이 전국의 80%를 점한다. 채유된 석유의 일부는 흑해(黑海) 연안의 바투미나 러시아의 소비지로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송된다. 천연가스는 1928년부터 아프셰론반도의 서남단, 로바탄•카라당 등지에서 다량 산출된다. 천연가스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트리빌시나 로스로프 등으로 수송된다. 석유가공•화학 및 기계공업이 바쿠를 중심으로 숨가이트, 렌코란 등지에서 발달하였으며, 시멘트 제조는 바쿠•간자•밍게차우르 등지에서 발달하였다. 특히 바쿠 지역은 대규모 석유화학공업지구이다. 광물로는 철광석, 동, 아연 등을 산출한다.
면직공업의 중심은 바쿠와 간자이며, 주요 양탄자 산출지는 카자흐•간자•나히체반 등지이다. 식품가공업은 바쿠•간자•하치마스•나히체반•스테파나케르트 등지에서 발달하였으며, 렌코란에는 대규모 종합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포도주는 샴호르•큐르다미르•아크스타파•한라르•간자 등지에서 양조되며, 홍차는 렌코란•아스타라•마살리•자카탈리 등지에서 가공•생산된다.
아제르바이잔의 무역
아제르바이잔의 주요 수출품은 광물•직물 제품, 기계•설비류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비금속류, 기계설비류, 가축류 등이다. 1999년 현재 수출액은 1170만 4000 달러이며 수입액은 180만 5000달러이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이란, 러시아, 우크라이나,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루지야 등으로 수출량의 대부분은 구소련 공화국으로 수출된다.
아제르바이잔의 교통
아제르바이잔의 철도 총연장은 2,125km이며 이중 60%가 전기로 운행된다(1993). 트랜스카프카스 철도가 국토의 동부를 종단하고, 국제선 철도가 바쿠에서 그루지야의 트빌리시를 경유하여 바투미와 모스크바까지 운행된다. 도로연장은 2만 4981km로 포장도로 2만 3057km, 비포장도로 1,924km이며 포장률은 92%이다(1998). 주요도로는 바쿠~살랴니~아스트라~예블라흐~아그담~칸캔디, 예블라흐~간자~카자흐, 바쿠~쿠바 간 도로이다.
정기 해상로는 바쿠~크라스노봇스크, 이란의 반다르안잘리~반다르노샤르 간에 개설되어 있다. 항공운송은 1931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바쿠는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인접국가의 수도와 항공로로 연결된다. 국내 주요항공로는 바쿠~나히체반 항로이다. 1996년 현재 공항 69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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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의 문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아제르바이잔은 11-13세기의 황금기에 버금가는 문화중흥을 경험였다. 예술, 교육에 대한 후원은 석유로 늘어나는 부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제르바이잔의 새로운 산업과 상업분야의 지식층은 기금을 마련하여 도서관과 학교, 병원 등을 설립하였다. 아제르바이잔 예술의 중흥은 러시아 제국내의 터키, 이슬람인들에게 영감을 주어 이슬람 세계 최초로 극장과 오페라하우스가 세워졌다.
부흥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예술가로는 극작가이며 철학자인 아크훈도프 (Akhundov)는 모국어인 아제르바이잔 터키어로 쓴 작품으로 아제르바이잔 언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작곡가이자 시인인 우제이어 하지베일리(Uzeir Hajibeyli)는 전통적인 악기와 테마를 사용하여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이슬람 세계에서 최초로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소련의 지배하에 아제르바이잔 문화의 표현은 제한받았으며, 러시아 문화에 의해 자리를 빼앗겼다.
스탈린 숙청기간인 1930년대 많은 아제르바이잔 작가나 지식인이 살해당하였으며, 그들의 작품과 기록을 없애는 잔인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또한 문화재, 이슬람교당, 도서관 등이 파괴당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후르시쵸프의 이완된 통치아래 아제르바이잔의 문화는 조심스레 부활하기 시작하여 스탈린 시대에 숙청된 작가의 작품이 복원, 출판되었다. 19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정책은 아제르바이잔 작가와 역사가에게 활력을 주어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적 작품, 문학적 고전작품의 재출판이 많아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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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제르바이잔...대략 잘 알려지지 않는 나라를 여행하는 거 같구려...사진 아주 잘 보았소..혹시 아르메니아 사진도 있으면 수고스럽지만 좀 올려주실 수 없겠소??
음악 뭔가요?
정말로 잘 정리해 주었소...............잘 보앗습니다.......
잘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