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적부터 동북아 3국,즉 중국,한국,일본의 역사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직접 인접국을 순회하며 역사의 연관성을 찾아 보고 느껴보는 것이 꿈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일반인이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1989년 부터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면서 꿈에만 그리던 일본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15년전의 감회를 살려서 몇자 적어본다... 여행일정 : 1989년 7월 1일~30일(30일 VISA) ←당시로서는 한달간의 비자가 사실상 불가능하였으나 부산에 있는 일본영사관의 담당자를 찾아가서 한달간의 계획표를 보여 주고 겨우 허락을 받음) 1. 오후 5시 30분 부산발 부관페리호를 타고 기대와 흥분속에 시모노세키로 향하던 중 대마도 근처에서 촬영 data-nummark="1" zoom-number=0 > 3. 큐슈의 아소산 전경. 마치 분지와도 같지만 사실은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분화구의 내부이다. 분화구의 폭이 최대 24Km이다. 이 분화구의 안에 아소(阿蘇)라고 하는 도시가 자리잡고 있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관광지임. data-nummark="2" zoom-number=1 > 5.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주로 유스호스텔을 많이 이용함. 큐슈(九州)의 太宰府(태재부,일본명 다자이후)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의 멸망으로 백제의 왕족과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와서 통치했다고 하는 유서깊은 지역임. data-nummark="3" zoom-number=2 > 7. 일본의 시내버스 내부 당시로서는 시내버스 내부가 너무나 깨끗한 것이 인상적이어서 한장 찍어 보았음. 앞쪽의 베낭은 나의 고된 여행의 동반자임. data-nummark="4" zoom-number=3 > 9. 나라(奈良)시내 일부 \"나라\"라는 말은 백제인들이 이 땅에 터를 잡으면서 \"여기가 바로 우리 나라다\"라는 뜻으로 지명을 \"나라\"라고 했다는 설이 있음. data-nummark="5" zoom-number=4 > 11. 사슴이 뛰어 나올지 모르니 주의하라는 나라시내의 표지판. 정말 자연친화적인 도시답다. data-nummark="6" zoom-number=5 > 13. 교토의 전통골목 이 골목이 만들어진 시기가 수백년 전이라 함. data-nummark="7" zoom-number=6 > 15. 견고하기 이를데 없는 성벽. 일본인은 항상 자기가 맡은 일은 항상 최선을 다하는 pro정신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성곽의 치밀함은 과히 놀랍다. data-nummark="8" zoom-number=7 > 17. 이동수단의 대부분을 히치하이킹으로 했으나 기동성 확보를 위해 아래의 열차표를 구입함. : 방학중 학생들을 대상으로 11,300엔(당시 원화로 5만 5천원 정도로 생각됨)의 \"청춘18열차표\"라는 것을 판매하였는데 일주일 동안 일반열차(신칸센등 고급기종 제외)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승차권임. data-nummark="9" zoom-number=8 > 19. 우리나라의 연인숙과 같은 여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때로는 Youth hostel로, 때로는 공원의 벤치에서, 때로는 관공서의 뜰에서 일본에서 흔한 거지들과 동침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잠잘곳을 못찾으면 아래와 같은 막노동꾼들이 집단 거주하는 허름한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아래 여관에서 일박하고 나오는데 주인인 할머니가 마루 끝에 무릎을 꿇고서 신발을 신고 있는 나에게 계속해서 \"아리가토우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하면서 머리를 숙인다. 너무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 했던 기억이 난다. data-nummark="10" zoom-number=9 > 21. 파리의 에펠탑을 그대로 Copy한 동경타워. 높이는 333m. 전망대가 중간과 상층부 두군데가 있는데 엘리베이터 요금을 따로 받음. 경비 절약을 위해 중간층까지만 올라감.-_-; data-nummark="11" zoom-number=10 > 23. 당시로서는 \"조선\"이라는 말만 들어도 섬찟햇는데, 우에노공원앞에서 조총련소속 학생들이 \"조선통일 평화대행진 지지 투쟁 결행\"이라고 적힌 천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1988년 한국의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이 나자 북한은 1989년 여름, 제13회 세계청년축전을 개최하였다. 그때 남한의 임수경이라는 대학생이 제 3국을 거쳐 평양에 들어가 남한 대표로 참석했는데 그 당시로서는 큰 이슈였었다. 임수경은 세계청년축전을 마치고 귀환루트를 판문점으로 하고자 했고 남한 정부는 처음에는 이를 거절하였다가 뒤에 허가를 했다. 그녀는 휴전후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아래 사진은 임수경의 판문점통과를 지지하는 시위이다. 저는 이 사진을 찍고 나서 갑자기 불쑥 나타난 조총련 청년 두명과 한참의 시비끝에 그들에 의해 이끌려 가다가 필사(?)의 뿌리치기를 하여 도망쳐 나왔음. data-nummark="12" zoom-number=11 > 후기: 창고속에 들어 있던 먼지묻은 앨범을 꺼내어 스캔하여 마치 디카로 촬영한 것처름(일반 사진은 카트 시킨다고 해서리..) 포토샵에서 약간의 작업을 하여 여러분들께 선보입니다. 그동안 구경만 하다가 저도 참여해 볼려고 하니 손이 많이 가는 군요. 이제 사진속의 청년은 불혹을 넘겼습니다. 89년 2월 대학을 졸업했으나 그때는 취직도 못한 백수였습니다만, 지금은 뭘하면서 먹고 살까요? ^^* 끝으로 여러분들도 젊은 시절에 많은 곳을 다녀서 더 많은 견문과 지식을 쌓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