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nummark="1" zoom-number=0 > data-nummark="2" zoom-number=1 > 노르웨이 (Norway)   유럽 북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서반부를 차지하는 나라. 위치 : 스칸디나비아 반도 서부 면적 : 32만 3758㎢ 인구 : 453만 7000명(2002) 인구밀도 : 14명/㎢(2002) 수도 : 오슬로 정체 : 입헌군주제 공용어 : 노르웨이어 통화 : 크로네 환율 : 7.5크로네 = 1달러(2002.9) 1인당 국민총생산 : 3만 4530달러(2000) 면적은 32만 3758㎢, 인구는 453만 7000명(2002)이다. 인구밀도는 14명/㎢(2002)이다. 정식명칭은 노르웨이왕국(Kingdom of Norway)이다. 수도는 오슬로이며, 공용어는 노르웨이어이다. 내륙부에서는 반도의 분수계를 경계로 하여 스웨덴 및 핀란드·러시아와 접경하고, 해안부는 북극해·노르웨이해·북해 및 스카게라크 해협에 면한다. 본국 외에 북극해의 스발바르 제도·얀마옌섬, 남대서양의 부베섬 등을 영유한다. data-nummark="3" zoom-number=2 > data-nummark="4" zoom-number=3 > data-nummark="5" zoom-number=4 > 인구는 50만 7467명(2000)이다. 스카게라크 해협으로부터 약 100km나 만입한 오슬로 피오르드 깊숙이 있으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노르웨이의 정치·문화·상공업의 중심지이며 부동항이다. 시가는 왕궁으로 통하는 칼 요한스로(路)를 축으로 하여 방사선으로 도로가 나 있고, 구시가의 도심부에서 북쪽과 북동쪽의 계곡을 따라서 공장지대가 늘어서 있다. 신시가의 주택구는 이 공장지대를 둘러싸고 있으며, 특히 북서·남동쪽으로 널리 발전하여 근대적인 아파트 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왕궁은 1848년에 건조된 것으로, 부근에 국회·시청사(시의 900년 축제를 기념하여 1950년 건립) 등이 있고, 부두 가까이에 있는 아케르스후스 성채는 130년경에 세워져 1319년~1380년까지 왕의 거성(居城)이었다. 오슬로는 하랄 하르드로데 3세에 의하여 1050년경에 창설, 14세기에는 한자동맹에 속하여 번영하였다. 1624년의 큰 화재 후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4세가 재건한 것을 기념하여 크리스티아니아로 개명하였다가 1925년에 다시 옛이름인 오슬로로 고쳤다. 금속·석탄·섬유제품·유지(油脂) 등을 수입하고, 목재·펄프·종이·어류 등을 수출한다. 공업도 활발하여 조선·금속·전기기구·기계·화학공업·의복·제지·양조 등 다방면에 미치고 있다. 많은 문화시설 가운데 주요한 것으로는 1811년에 창립한 오슬로대학교, 노벨연구소·시립미술관·비겔란박물관·비겔란공원(수많은 조각으로 유명) 등으로, 오슬로대학교 강당을 장식하는 뭉크의 벽화도 특기할 만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키박물관은 배후의 언덕에 보이는 점프대와 함께 이 나라 스키의 융성을 말해 주고 있다. 시 남서부에 있는 뷔그데이에는 해사(海事)에 관계한 전시물과 박물관이 있으며, 발굴된 바이킹의 배와 난센의 극지탐험대가 사용한 프람호(號), 노르웨이 탐험가 T.헤위에르달의 콘티키호 등의 실물이 전시되어 있고, 항해박물관 및 민속박물관도 있다. data-nummark="6" zoom-number=5 > data-nummark="7" zoom-number=6 > data-nummark="8" zoom-number=7 > data-nummark="9" zoom-number=8 > 노르웨이의 문화   북유럽의 신화를 담은 고시집(古詩集) 《에다 Edda》는 아이슬란드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절반이 9~11세기에 걸쳐 노르웨이에서 씌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3세기 전반 아이슬란드의 학자 스노리 스투를루손에 의해 노르웨이 왕조사(王朝史)로서 주목된 《헤임스크링글라 Heimskringla》와 함께 《신(新)에다 Younger Edda》가 씌어졌는데, 이 두 책에는 노르웨이의 신화적 전승(傳承)이나 당시의 시인들의 시(詩)가 많이 실려 있다. 노르웨이가 스웨덴·덴마크의 지배에 있었을 때는 노르웨이의 문화·문학의 공백시대였으나, 극작가 홀베르(Ludvig Holberg)는 매우 유명하였으며 그의 코미디들은 아직도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 공연된다. 노르웨이 문학이 독자적인 발전을 본 것은 덴마크 통치로부터 해방된 1814년 이후부터이다. 19세기 전반에 H.베르겔란, J.벨하벤의 2대 시인이 나오고, 후반의 북유럽 문학의 황금시대에는 B.뵈른슨, H.입센 등이 나왔다. 19세기 말부터 신(新)낭만주의 사조가 일어나 K.함순, S.운세트 등이 나왔으나, 노르웨이 문학은 입센 등에 의해 대표되는 강력한 사실주의에 특색이 있으며, H.킹, O.둔 등이 대작을 발표하고, 시 분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저항시를 쓴 A.외베를란, 항독전(抗獨戰)에서 전사한 N.그리그 등이 활약하였다. 전후(戰後)에는 덴마크에서 귀화한 A.산데모제와 T.베소스 등의 활약이 눈에 띈다. 노르웨이는 산이 많고 국토가 남북으로 길어 각지가 고립되기 쉬운 지형이기 때문에 지역주의의 전통이 뿌리깊게 박혀 있으며, 문화·스포츠·사회 등 여러 가지 활동이 지역 내 민간의 여러 조직을 통해서 실시된다. 제헌절인 5월 17일을 전국적으로 경축하는데, 보통 전통 민속의상을 입고 시가를 행진하거나 다른 축제행사들을 벌인다. 노르웨이는 많은 문화적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서 결혼식이나 다른 축제행사에서 섬세한 민속의상을 자주 볼 수 있다. 노르웨이의 미술   노르웨이는 그리스도교 전래 이전은 그로테스크한 괴수(怪獸)의 무늬, 추상적인 무늬 등으로 장식된 생활용구·제기(祭器) 등으로 대표되는 바이킹 미술이 있었고, 13세기 이후 유럽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로마네스크·고딕·앵글로노르만·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 양식 등의 모방이 시작되었다. 19세기 전반에는 회화(繪畵) 분야에서 풍경화가 J.달이 나와 노르웨이 근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고, 인상파시대에는 세기의 화가 E.뭉크 및 E.베렌숄 등이 나왔다. 20세기에 들어서자 P.크로그 등이 신풍(新風)을 일으켰다. 조각에서는 G.비겔란의 활약이 현저하여 오슬로의 프로그네르 공원(公園)에는 그의 작품 150점 이상이 장식되어 있으며, 건축가로서는 원시적 소재와 근대공예를 결합하여 바이킹 양식을 낳은 H.문테가 있다. data-nummark="10" zoom-number=9 > data-nummark="11" zoom-number=10 > data-nummark="12" zoom-number=11 > data-nummark="13" zoom-number=12 > data-nummark="14" zoom-number=13 > data-nummark="15" zoom-number=14 > 노르웨이의 왕국 성립   노르웨이는 북방문화권 중에서도 국가통일이 가장 뒤진 나라로서, 노르웨이인(人)의 조상인 노르드인은 8세기 말까지 남부에서 소국분열(小國分裂)의 상태에 있었다. 9세기에 들어서자 노르드인에 의한 해외진출이 급격히 활발해져서, 아일랜드에서는 반세기에 걸친 노르드인의 지배가 이루어졌다. 그 무렵 노르웨이 본토에서도 뒤늦게 통일국가 형성이 진척되어, 860년에 즉위한 하랄 미발왕(美髮王:harald Fairhair)이 노르웨이의 여러 지역을 정복하고 872년에 통일 왕국을 세웠는데, 그것이 노르게 왕국, 즉 노르웨이 왕국의 기원이다. 하랄왕에 패한 왕족·귀족들은 부하를 이끌고 아이슬란드를 비롯하여 셰틀랜드·오크니·헤브리디스 제도 등지에 정착지를 구하고, 그린란드·북아메리카 등지로 이주한 자도 있었다. 9세기 이래 노르드인은 바이킹으로서 에스파냐 남부로 진출하고, 다시 11세기 초에는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섬에 노르만국(國)을 건설하여 자주 비잔틴을 습격하였다. 10세기 이후 노르웨이왕국은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지속되어 다시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으나, 마그누스 1세(재위 1035∼1047) 때는 한때 덴마크왕을 겸하는 세력을 가졌다. 노르웨이가 그리스도교화(化)한 것도 그 무렵이며, 처음에는 함부르크·브레멘 대주교구에 속했다가 1152년에는 니다로스 대주교좌가 설치되었다. 12~13세기의 60년에 걸쳐 노르웨이는 헤브리디스제도 ·오크니제도 ·셰틀랜드제도 ·아이슬란드 등을 영토로 하여 종주권(宗主權)을 확립하였으나 국내에서는 대립항쟁이 그치지 않았고, 왕권(王權)이 쇠퇴하여, 1282∼1285년의 한자동맹의 경제봉쇄로 인해 경제적으로는 한자동맹에 굴복하였다. 노르웨이의 덴마크와 스웨덴 지배   14세기 후반, 노르웨이왕 호콘 6세가 덴마크 왕녀와 결혼한 뒤 덴마크의 세력이 노르웨이에 미쳐, 1397년 스웨덴을 포함한 3국에 의해 칼마르동맹(Union of Kalmar)이 성립되었다. 덴마크왕이 다른 두 나라 왕을 겸하는 국가연합인 칼마르 동맹은 그후 120여 년간 지속되다가 1523년에 스웨덴이 독립함으로써 와해되었으나, 덴마크 왕에 의한 노르웨이의 지배는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나폴레옹전쟁 때 덴마크가 나폴레옹 편에 가담했기 때문에 나폴레옹 몰락 후 1814년의 킬조약에 의해 노르웨이는 다시 동군 연맹(同君聯盟)이라는 형태로 스웨덴의 지배에 들게 되어, 스웨덴 왕 카를 14세(재위 1818∼1844:본래 프랑스 군인인 베르나도트)가 노르웨이 왕이 되었다. 카를 14세가 통치하였으나, 노르웨이는 노르웨이인이 제정한 헌법 밑에서 19세기를 통해 급속한 민주화의 진척을 보였다. 노르웨이의 독립왕국 형성   민주주의의 발전과 이에 따른 민족주의의 앙양으로, 노르웨이에서의 스웨덴왕 군주권(君主權)은 명목화되어 갔으며, 1905년에 노르웨이는 국민투표에 의해 일방적으로 동군연맹을 해체하고 완전 독립하여 덴마크 왕통(王統)의 호콘 7세를 국왕으로 받아들였다. 노르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중립유지에 성공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스 독일군의 침략을 받았다. data-nummark="16" zoom-number=15 > data-nummark="17" zoom-number=16 > data-nummark="18" zoom-number=17 > data-nummark="19" zoom-number=18 > data-nummark="20" zoom-number=19 > data-nummark="21" zoom-number=20 > data-nummark="22" zoom-number=21 > data-nummark="23" zoom-number=22 > data-nummark="24" zoom-number=23 > 로포텐제도 [ Lofoten Is. ]      노르웨이 북부 연안의 섬들. 위치 : 노르웨이 북부 연안 면적 : 약 1,430㎢ 면적 약 1,430km2. 아우스트보괴위 ·베스트보괴위 ·모스케네스와 기타의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잡한 피오르드 해안을 이루고 있으며, 지형은 기복이 심한 나암(裸岩)의 산지가 넓고, 저지에는 습지가 많다. 북극권 내에 위치하지만 북대서양 난류의 영향으로 기후가 온화하다. 근해의 대륙붕은 대구와 청어의 좋은 어장이다. data-nummark="25" zoom-number=24 > data-nummark="26" zoom-number=25 > data-nummark="28" zoom-number=27 > data-nummark="29" zoom-number=28 > data-nummark="30" zoom-number=29 > data-nummark="31" zoom-number=30 > data-nummark="32" zoom-number=31 > data-nummark="33" zoom-number=32 > data-nummark="34" zoom-number=33 > data-nummark="35" zoom-number=34 > data-nummark="36" zoom-number=35 > data-nummark="37" zoom-number=36 > data-nummark="38" zoom-number=37 > data-nummark="39" zoom-number=38 > data-nummark="40" zoom-number=39 > data-nummark="41" zoom-number=40 > data-nummark="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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