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nummark="1" zoom-number=0 > alta), 또는 수오미(Suomi:호수의 나라)라고 한다. 보트니아만(灣)과 핀란드만에 면하고, 옛소련과 스웨덴 사이에 위치한다. 주로 동쪽으로부터 이주해온 피노우그리아계(系)의 언어를 사용하는 핀인(人)과, 나중에 남부로 이주해온 스웨덴인(人)으로 구성되어 있고, 19세기 초까지는 스웨덴의 일부였다. 국기(國旗)에는 흰색 바탕에 청십자(靑十字)가 그려져 있으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강한 유대를 가지고 있다. 스웨덴과 옛소련이라는 2대 강국에 끼여 있어 역사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왔으며, 종교적으로도 국민의 대다수는 프로테스탄트로 친서구적(親西歐的) 국민감정이 강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러시아의 막강한 압력으로 부득이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data-nummark="3" zoom-number=2 > 핀란드의 주민   핀인(좁은 뜻의 핀人, 즉 핀란드人)은 우랄·볼가 지역으로부터 이동하여 에스토니아에서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많은 혼혈이 있었지만 피노우그리아 어족(語族)에 속하는 핀란드어를 유지해 온 핀인들이 핀란드에 정주한 것은 8세기의 일이다. 5세기에 처음으로 올란드(아흐베난마)섬에 이주해왔던 스웨덴인들 역시 바다를 건너 들어왔으며, 13세기경에는 해안지역에 꽤 많은 취락이 형성되었다.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국민은 93%,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국민은 6%, 그밖에 랩인 2,500여 명이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영어를 사용할 줄 안다.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국어로서 쓰이고 있으나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국민은 전체적으로 출생률이 낮아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해마다 낮아지고 있으며 언어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 일은 없다. 종교는 국민의 88%가 루터파(派)의 프로테스탄트에 속하며 그리스정교도가 1%이다. 인구는 남쪽 지방에 밀집하여 분포하고 북쪽 지방은 인구가 드물다. 헬싱키를 포함한 우시마 지방에서는 인구밀도가 100인/㎢에 이르지만 랩인들이 사는 라피 지방에서는 2인/㎢에 불과하다. 주요 도시는 헬싱키·탐페레·투르쿠 등 세 도시이고 특히 헬싱키는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1997년 현재 도시인구비율은 64%(320만 명)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data-nummark="4" zoom-number=3 > data-nummark="5" zoom-number=4 > data-nummark="6" zoom-number=5 > data-nummark="7" zoom-number=6 > data-nummark="8" zoom-number=7 > data-nummark="9" zoom-number=8 > data-nummark="10" zoom-number=9 > data-nummark="11" zoom-number=10 > data-nummark="12" zoom-number=11 > data-nummark="13" zoom-number=12 > data-nummark="14" zoom-number=13 > 핀란드의 임업      핀란드는 국토의 75%인 약 2,600만ha가 삼림으로 뒤덮여 있어 축적량(蓄積量)이나 성장률 모두 대단히 높다. 게다가 수종(樹種)의 약 80%가 소나무·가문비나무 등의 유용재(有用材)이므로 임산자원은 이 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바탕을 이루고 있다. 임산물 및 그 가공품은 이 나라 수출품의 상위권을 독점하고 있으며, 종이 및 판지, 나무제품 제재목(製材木), 펄프 등이 전체 수출액의 50%를 상회하고 있다. data-nummark="15" zoom-number=14 > data-nummark="16" zoom-number=15 > data-nummark="17" zoom-number=16 > data-nummark="18" zoom-number=17 > 핀란드의 교통과 통신   data-nummark="19" zoom-number=18 > 헬싱키 (Helsinki)   핀란드의 수도. 위치 : 핀란드 핀란드만(灣)에 돌출한 작은 곶(串)과 그곳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 data-nummark="20" zoom-number=19 > 핀란드의 외교      핀란드는 약 1,300km에 걸쳐 러시아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외교적 입장이 복잡 미묘하다. 1948년 우호불가침·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하여 친러 중립정책을 유지하였으며, 1982년 3월 대통령 코이비스토가 소련을 방문, 우호노선 계속을 확약하였다. 구소련 붕괴 후인 1992년 1월에 우호불가침·상호원조 조약을 대신하는 기본조약을 러시아와 체결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석유 수입의 2/3를 소련에 의존하기 때문에 소련과의 장기 에너지협정(1976∼1985)을 체결하였다. 기본 외교방침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국가들과 협조하는 평화외교이다. 1955년에 UN(United Nations:국제연합) 및 북유럽이사회에 가맹하였고 1961년에는 EFTA(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유럽자유무역연합)에 참가하였다. 한편 1973년 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COMECON(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경제상호원조회의)과도 경계·과학·기술협력원조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75년에는 전유럽 안보협력회의를 개최, 헬싱키선언이 이루어졌다. 1995년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가입 후 친서방 정책을 펴고 있다. 핀란드의 군사      1947년 파리조약에 의해 육군·해군·함정 총톤수·군용기 총수 등에 제한을 받아 폭격기·핵무기·미사일 등의 보유는 금지되어 있다. 8∼11개월의 징병제도가 실시되고 있으며, 병력은 육군 2만 7300명, 해군 2,500명, 공군 3,000명, 국경경비대 4,000명, 예비역 70만여 명이 있다. 1980년 가을 헬싱키 주변에 소련제 SAM 3 지대공미사일을 배치하였다. 1998년 현재 국방비는 20억 달러이다. data-nummark="21" zoom-number=20 > data-nummark="22" zoom-number=21 > data-nummark="23" zoom-number=22 > data-nummark="24" zoom-number=23 > data-nummark="25" zoom-number=24 > data-nummark="26" zoom-number=25 > data-nummark="27" zoom-number=26 > data-nummark="28" zoom-number=27 > data-nummark="29" zoom-number=28 > data-nummark="30" zoom-number=29 > data-nummark="31" zoom-number=30 > data-nummark="32" zoom-number=31 > data-nummark="33" zoom-number=32 > data-nummark="34" zoom-number=33 > data-nummark="35" zoom-number=34 > data-nummark="36" zoom-number=35 > data-nummark="37" zoom-number=36 > 스웨덴령 시대의 핀란드   볼가강(江) 유역의 원주지를 떠나 차차 서쪽으로 진출하여 핀란드에 정착한 핀인들에게 로마 가톨릭교가 전파된 것은 12세기였다. 핀란드는 가톨릭 교세의 확장과 동시에 스웨덴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기 시작하여 13세기에는 스웨덴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 스웨덴은 관대한 지배체제를 유지하여 핀인들에게 자치를 허용하였다. 따라서 지주귀족을 중심으로 민족문화가 형성되었으며, 또 종교개혁시대에는 루터파의 프로테스탄트가 전국에 고루 보급되었다. 그 후 17세기 스웨덴의 전성기에는 핀란드 자치의회가 설치된 데 이어 오보(현재의 투르쿠)에 핀란드대학(헬싱키대학교)이 설립되었다. 이와 같이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핀란드에 침략의 눈길을 돌린 것은 러시아였다. 여러 차례 병합을 기도하다가 북방 전쟁의 결과 체결된 1721년에 뉘스타트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핀란드 남부의 영토였던 카렐리야 지협(地峽)을 탈취하고 나폴레옹전쟁이 한창이던 1809년에 전국토를 병합하였다. 이에 민족주의 정신이 발현되기 시작하여 1935년에는 민족주의 정신의 구심(求心)으로서 50편의 시가(詩歌), 22,795행으로 이루어진 민족서사시 《칼레발라》가 뢴로트에 의해 복원 편집되기도 하였다. 이는 예로부터 칼레바의 나라(영웅의 나라라는 뜻), 즉 핀란드에 전승되어온 장대한 민족서사시로 핀인(人)과 랩인의 싸움이 그 중심을 이루며 신화적 요소와 영웅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령 시대의 핀란드   러시아는 엄격한 지배정책을 실행, 1835년에 핀란드 의회의 입법권을 정지시키고, 1902년에는 핀란드군(軍)을 러시아군에 편입시키는 한편 러시아어(語)를 공용어로 정하는 등 러시아화(化)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이에 대해 핀인(人)의 민족주의 열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으며, 시벨리우스의 애국교향시 《핀란디아》가 만들어진 것은 민족정신의 발로였다. 《핀란디아》는 조국 핀란드의 신비스러운 자연과 가혹한 운명을 깊이 공감하는 민족의 소리로서, 민중으로 하여금 강렬한 조국애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공연이 금지되기까지 하였다. 1904년에는 러시아 총독 보브리코프가 암살되고,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발하자 독립을 선언, 1918년에는 공화제를 실시하여 처음으로 독립된 통일국가를 이룩하였다. 1920년에는 러시아도 이를 승인하여 핀란드 공화국이 성립하였다. 독립공화국 시대의 핀란드      핀란드가 독립 후 평화를 누린 것은 불과 20년간으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핀란드는 또다시 소련의 침입이라는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소련은 나치스 독일의 침입을 예방한다는 구실로 공격해오자 이에 대항하는 핀란드와 소련 사이에 전쟁(제1차 소련·핀란드 전쟁)이 발발하였다. 핀란드 국민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막대한 희생을 치른 끝에 마침내 굴복, 1940년에는 비푸리(비보르크)를 포함한 남동부 지역과 카렐리야 지협의 항코(항고)반도를 30년 동안 소련에 빌려주기로 하고 휴전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전쟁의 패전은 국민들의 반소(反蘇) 감정을 고조시켰으며, 1941년에는 독일의 대(對)소련전쟁에 호응하여 또다시 소련과 전쟁을 일으켜서 1940년에 잃어버렸던 영토를 일단 회복하였다. 그러나 1944년에는 다시 소련에 항복하여 1940년의 모스크바조약을 인정하고 카렐리야 지방, 페트사모지방, 발트해상의 몇몇의 섬 등을 소련에 할양하고 배상금을 지불하였다. 전후 핀란드의 최대 과제는 대소(對蘇)평화유지, 대소배상의 완제(完濟), 경제부흥의 3가지였으나 이를 모두 완수하여 1952년에는 제15회 올림픽경기대회를 헬싱키에서 개최하는 등 국력을 신장하였다. 핀란드의 정치      1919년 7월 17일 제정된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직접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대통령은 외교, 국방 등 대외정책을 주관하고 총리는 내정을 담당하며 외교정책은 대통령과 협조한다. 1956년 이래 대통령직을 맡아 인접국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한편 유럽 안보수뇌회의를 주재하는 등 동서 데탕트에 공헌한 대통령 케코넨(Urho Kekkonen)이 1981년 10월 사임하여, 1982년 1월 사회민주당 당수 M.코이비스토가 제9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핀란드에서 좌파계의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1982년 2월에 출범한 총리 소르사(사회민주당)의 3당 중도좌파 내각은 같은 해 12월 사퇴하고, 1983년 3월의 총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이 제1당을 확보함에 따라 다시 총리 소르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중앙당·스웨덴인민당·지방당의 4당의 제4차 내각이 발족하였다. 1988년 코이비스토가 대통령으로 재선되었으며, 1994년 제11대 대통령에 M.아티사리가 선출되었다. 1999년 3월 총선 결과 기존 연정의 주도 정당인 사회민주당이 1995년 선거에 비해 12석이 감소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였으나 51석으로 제1당은 유지하게 되었다. 이로써 사회민주당·보수당·좌익연합·스웨덴인당·녹색당 등 기존연정을 구성하는 5개 정당을 기반으로 총리 파보 리포넨(Paavo Lipponen)의 제2기 정부가 출범하였다. 2000년 2월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외무장관 타르야 할로넨(Tarja Halonen)이 핀란드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핀란드 국회는 단원제로 임기 4년, 200인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의원은 15개 선거구에서 비례대표제에 의한 보통선거로 선출한다. 2000년 3월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 및 내각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data-nummark="38" zoom-number=37 > data-nummark="39" zoom-number=38 > data-nummark="40" zoom-number=39 > data-nummark="41" zoom-number=40 > data-nummark="45" zoom-number=44 > my blog: DREAM WORKSHOP ★제가 절대 안찍었음 그냥 해외 사이트에서 가져다 편집만 했습니다. 이해 바랍니다.^^;; ★ ♬2004年 모두 행복 하시고, 새해 福 많이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