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일본인 우선주의’ 담론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특히 체류 외국인에 대해 ‘총량제(상한선)’를 검토하겠다는 발언은 단순한 이민 정책 논의를 넘어, 일본 사회 전반에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 흐름이 특정 국적에 국한되지 않고, 언제든 다음 대상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 내에서 가장 먼저 표적이 되고 있는 집단은 중국인 유학생과 중국 국적 체류자들이다. 부동산 문제, 안보 담론,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중국은 정치적으로 ‘비판하기 쉬운 존재’가 되었고, 그 여파가 개인 단위의 중국인 체류자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배제 논리는 결코 중국인에게서 멈추지 않는다. 일본 사회가 한 번 “외국인은 관리·통제의 대상”이라는 프레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 다음 순서는 매우 빠르게 바뀔 수 있다.


그 다음 대상이 한국인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인은 일본에서 오랜 기간 **‘가깝지만 불편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문화적으로는 익숙하고, 인적 교류도 많으며, 유학생·취업자·연구자 비중도 적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 문제, 외교 갈등, 스포츠나 미디어를 통한 감정적 대립이 반복되면서, 정치적 상황이 악화될 때마다 가장 쉽게 감정이 투사되는 집단이기도 하다. 즉, “위험한 외국인”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해질 경우, 한국인은 언제든 다시 호출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특히 체류 외국인 총량제라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이는 개인의 능력이나 기여도, 체류 목적과 무관하게 국적과 숫자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발상에 가깝다. 한 번 이 논리가 제도화되면, “왜 중국인은 줄이는데 한국인은 괜찮은가”, “왜 유학생은 되고 취업자는 안 되는가”라는 식의 질문이 뒤따르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대체로 합리적 기준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필요와 대중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런 담론이 경제적 불안과 결합할 때다. 일본은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 청년층의 불안정한 고용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은 언제나 “편리한 책임 전가 대상”이 된다. 집이 비싸지면 외국인 탓, 일자리가 줄어들면 외국인 탓, 대학 경쟁이 치열해지면 외국인 유학생 탓이라는 단순한 구도가 만들어지기 쉽다. 이때 국적 간 서열화와 혐오의 확산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한국인 유학생이나 재일 한국인에게 특히 불안한 지점은, ‘모범적인 외국인’이라는 보호막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한국인은 일본어를 잘하고, 규칙을 지키며, 일본 사회에 잘 적응한다”는 이미지가 일정 부분 방어막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인 우선주의’는 그런 개별적 평가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핵심은 더 이상 “어떤 외국인인가”가 아니라, “외국인인가 아닌가”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움직임이 진짜로 문제 삼아야 할 지점은 특정 정치인의 발언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일본 사회가 다문화 공존의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점진적 배제와 선별의 방향으로 갈 것인지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는 신호다. 중국인 유학생을 향한 시선이 거칠어진 지금, 한국인 역시 그 흐름을 남의 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혐오는 항상 가장 눈에 띄는 집단에서 시작하지만, 결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의 ‘다음 차례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과장이 아니라, 충분히 현실적인 우려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 한국인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