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유학을 권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선택의 책임이 전적으로 본인에게 귀속됨을 확인하기 위하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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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유학을 준비할 때, 이상할 정도로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일본은 살기 괜찮다”, “유학생 대우도 나쁘지 않다”, “취업도 생각보다 된다” 같은 말만 했다. 학원 상담을 받아도, 주변 선배 이야기를 들어도, 공통적으로 들리는 건 좋은 이야기뿐이었다. 그때는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선택을 정당화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와보니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수업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토론은 거의 없었다.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의견을 부딪히는 것도 조심스러운 공기 속에서 흘러갔다. 공부가 깊어졌다기보다는, 형식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일본어는 늘었지만, 그게 곧 실력이 되지는 않았다. 시험과 레포트는 요령의 문제였고, 성적은 노력보다 적응 속도가 갈랐다.


활은 안정적이었지만, 그만큼 고립되어 있었다. 큰 사건도 없고, 극적인 불행도 없었다. 다만 조금씩, 조용히 외국인이라는 위치가 체감되기 시작했다. 행정 절차, 아르바이트, 인간관계 어디에서든 설명해야 할 것이 하나 더 붙었다. 불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한 발짝 밖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취업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현실은 더 분명해졌다. 일본어를 잘한다는 말은 생각보다 기준이 높았다. 잘한다는 건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 미묘한 뉘앙스를 틀리지 않고 읽어내는 능력이었다. 그 선을 넘지 못하면, 아무리 성실해도 “외국인 문과”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같은 조건이라면 일본인이 선택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실패한 사람들은 조용해지고, 성공한 사람들만 전면에 나온다. 학원은 중립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결정에 도움이 되는 말만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빠진 말이 많다. 유학이 잘 안 되었을 때의 이야기, 돌아갈 때의 애매함, 남아도 불안한 상태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아보면, “다들 좋다더라”는 말이 가장 위험했다. 누가 책임지는 말도 아니고, 끝까지 함께 가주는 말도 아니었다. 다만 선택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말이었을 뿐이다. 일본유학이 모두에게 나쁜 선택이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문과라면, 충분히 의심하고, 충분히 계산하고, 최악의 경우까지 상상한 뒤에 와야 한다.


가장 힘든 건 실패가 아니라, 애매해지는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상태.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설명해야 하는 이력으로 남는 것. 그건 유학을 결정할 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다. 일본유학은 가기 전엔 다들 좋다더라. 그래서 더더욱, 스스로에게는 솔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