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인 유학생 90%가 찐따에 속할 확률이 높다는 건, 개인을 비하하는 말이 아니라 이 구조 자체가 그렇게 설계돼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더 잔인한 사실은, 대부분은 끝내 그걸 자각하지 못한 채 “그래도 일본은 선진국이니까”라는 말로 하루를 버틴다는 점이다.


그래서 리턴의 주기가 생긴다. 3년, 5년, 10년. 이 숫자는 우연이 아니다. 대략 한 번쯤은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라는 자각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침팬지로 치면, 자신이 끝내 알파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이때 두 갈래로 갈린다. 끝까지 모른 척하며 잔존하거나, 인지하고 돌아간다. 리턴은 실패가 아니라 인식의 결과다. 자기가 찐따 포지션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더 이상 그 구조 안에 머무를 이유가 사라진다.


본인에게도, 한국인 집단 내부에서도 어중간하다. 일본인에게는 영원한 외부자, 한국인 사회에서는 미묘한 경쟁자. 어느 쪽에서도 충분한 유대관계를 쌓지 못한 채, 고립이 일상화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정치적 위치는 고착된다. 찐따는 찐따로 굳어진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진짜 무서운 건, 지위가 낮은 개체일수록 정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밀려난 이유를 ‘운’, ‘성격’, ‘일본 사회가 폐쇄적이어서’ 정도로 설명한다. 


한국인 유학생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찐따 포지션에 있다는 자각이 없다. 아니, 자각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속인다. “난 일본인이랑도 잘 지내”, “굳이 일본 애들이랑 안 어울려도 돼”, “실력으로 증명하면 된다” 같은 말은 전부 그루밍 없는 개체의 자기암시다.


국인 유학생은 보통 대다수 알파메일도 아니고, 알파를 보좌하는 핵심 동맹도 아니다. 애매하게 떠 있는 수컷 침팬지와 같은 위치다. 힘이 조금 있어도, 실력이 있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집단은 등을 돌린다.


일본 유학에 온 한국인들 중 90% 이상이 ‘찐따 포지션’에 속할 확률이 높다는 주장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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