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CEO 현지 채용 나서도.... 미국 유학생들 ‘시큰둥’


유학생 절반 미국 체류 선호…한국 취업했다 유턴하는 사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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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계 금융의 심장 뉴욕에는 국경과 나이를 초월한 글로벌 인재들이 한데 모여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에 근무하는 성유헌(29·가명) 씨도 그중 한 명으로, 현재 리스크 관리팀에서 분석 업무를 맡고 있다. 성 씨는 대학 시절 미국행을 택했다. 아주대 재학 중 학교 복수 학위 프로그램으로 뉴욕주립대 유학길에 올랐다.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할 때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기회의 땅에서 마음껏 능력을 펼쳐 보겠다는 포부로 미국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미국 사회에 ‘진입’한 이후 다시 한 번 ‘점프’해 선망했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성 씨의 하루 일과는 오전 8시 30분 미팅으로 시작된다. 업무 후에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국인들과의 비공식 모임을 통해 친분을 쌓고 정보를 교류하곤 한다. 20여 명이 모이는 이 모임에는 유학 후 미국에 정착한 이들이 상당수다. 모두 “유학까지 와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현지 취업을 택한 이들이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 때문에 간혹 한국으로의 ‘유턴’을 고민하기도 하지만 “한국에 가더라도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겠다”고 말한다.

“한국에 가면 신경 쓸 게 많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자기 할 일만 하면 나머지 부분에선 자유롭다는 것이에요. 출퇴근 시간이나 재택근무 여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죠. 한국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눈치를 많이 보는 분위기였어요. 여기서는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또 승진 가능성도 크게 열려 있어 일을 잘하면 무한대로 인정해 주죠.”

성 씨는 연봉에도 만족한다고 답했다. 학사 졸업 후 초봉 9000만 원에서 시작해 이내 1억 원 연봉을 돌파했다. 현재 3년 차인 성 씨의 연봉은 1억2000만 원 수준이다. 성 씨는 미국 기업에 취업하지 못해 불가피하게 한국으로 간 사례는 있어도 굳이 한국행을 택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유학생들이 한 번 미국으로 건너가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국내 명문대 재학생도 해외 취업을 희망하며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는 분위기는 이상할 것 없는 현실로, 스스로 미국을 희망한다는 점에서 ‘인재 유출’이라는 표현이 적합한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한국 대기업보다 미국 벤처가 낫다”


실 제로 미국에서 유학 후 귀국을 꺼리는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국과학재단(NSF)의 2012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이공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연구 인력 중 미국 내 체류를 희망한 비율은 1998~2001년 41.1%에서 2006~2009년 45.4%로 높아졌다. 2008년부터 4년간 이공계 대학원생과 학부생 13만3302명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같은 기간 외국인 과학 인재 유입은 5만412명에 그쳐 국내를 떠난 유학생이 2.6배 더 많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이공계 인력 유·출입 실태 조사’를 보면 이공계 대학원생은 2006년 1만866명이 해외로 나갔지만 2011년에는 1만2240명이 국내를 빠져나가 연평균 2.4% 증가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국내에서 일하는 이공계 박사 14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7.2%는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부족한 연구 환경’이 52.3%로 가장 많고 이어 ‘자녀 교육(14.0%)’, ‘외국 정착(7.8%)’, ‘임금 수준(6.4%)’ 등이 뒤를 이었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 내 이공계 박사 학위자의 평균 연봉은 6881만 원으로, 미국 내 박사 평균 9317만 원(달러당 1156원으로 계산)의 74% 수준이다.

미국으로의 이동은 특히 이공계 분야에서 활발하다. 전 세계적인 엔지니어 부족 현상 속에 한국 IT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 공대 출신을 영입하려는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박소라 커리어케어 글로벌사업본부 수석 컨설턴트는 “한국 엔지니어들이 일을 잘하고 스마트하면서도 근면 성실하다는 평판이 있다”며 “좋은 미국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재를 영입하려는 수요가 증가했다. 이공계 종사자들은 미국에 기회를 두드리고 있고 기회도 많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경우는 미국에 뿌리내리기 위한 의도를 강하게 갖고 있다. 박소라 수석 컨설턴트는 “미국 상위권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들은 미국 현지 취업이 관계화돼 있다. 그러한 우수한 두뇌들이 열심히 공부해 미국 땅에 정착하는 게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 진출에 가장 큰 걸림돌은 ‘언어’이지만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분야 개발자들은 언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기술이 있으면 취업이 가능한 분위기다. 한국에선 인재들이 벤처나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반면 미국에선 벤처도 ‘신의 직장’으로 통한다. “한국의 대기업보다 미국의 벤처가 낫다”는 인식이 엔지니어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엔지니어들은 소규모 벤처를 통해 미국 본토에 진입한 후 다시 한 번 취업 문을 두드리곤 한다.

‘미국으로의 탈출’ 혹은 ‘새 땅에서의 새 출발’을 기대하며 뒤늦게 미국행을 택하는 인재들도 많다. 인텔에서 연구원으로 종사하는 A 씨는 한국 중견 벤처에서 5년 정도 근무한 후 미국 뉴욕주립대에 박사과정을 밟았다. 한국에서 엔지니어로 살기 쉽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선 업무 환경이 힘들었어요. 야근은 물론 주말에도 끊임없이 일해야 했고 휴가를 1주일 내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죠. 2년 반 동안 휴가 없이 일만 하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미국에서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2 세에 박사 유학길에 올라 4년 반을 공부에 매진한 후 인텔에 취업했다. 현재 그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에요. 동료와 얘기가 되면 휴가를 3주 연속 쓸 수도 있고 주말에 일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죠.” 연봉도 두둑이 챙기고 있다. A 씨가 다니는 인텔은 박사급 인재의 최소 연봉이 1억 원이며 매년 2000만~3000만 원의 보너스를 받는다. 연차가 올라갈 때마다 연봉이 매년 5~10% 인상되고 능력에 따라 스톡옵션도 지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