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 황무지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맑게 개어있다 싶다가도 비가 내리고, 갑자기 추워진다 싶으면 하얀 솜 같은 눈이 내리고, 이윽고 다시 맑아지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이런 날씨에 볼멘소리를 내는 마도학자들도 있었지만 이런 종잡을 수 없는 기후를 좋아하는 마도학자도 적잖이 있었고, 시인도 이런 예측하기 어려운 하늘을 마음에 들어하는 측이었다. 특히나 땅에 눈이 내려앉아 새하얀 들판이 되는 날에는 평소보다 더 길게 산책을 하며 눈 내린 땅의 고요함을 만끽하곤 했다.


그렇지만 오늘의 날씨는 유난히 거친 편이었다.


휘익, 하고 거센 소리와 함께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겨울, 이름처럼 하얀 눈밭처럼 반짝이는 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바람에 날아갈 뻔한 박새는 허둥대며 시인의 목도리 속으로 파고들고자 날개를 퍼덕거리고, 시인은 그런 박새에게 기꺼이 코트 속을 보금자리로 내주었다.

박새는 따뜻한 은신처에 안심한 듯 기분 좋게 재잘거리고, 시인도 조그맣지만 확실한 온기에 미소 짓는다.


시인은 이런 바람과 그 바람이 가져다주는 추위를 사랑하는 편이었기에 이대로 산책을 계속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품속의 자그만 박새는 은신처 속에 가만히 숨어있는 것보다는 그 하얗고 조그만 날개를 파닥거리거나, 탁 트인 경관을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걸 시인은 알고 있기에, 잠시 이 거센 바람을 피할 장소를 찾기로 했다.

그리고 눈앞에는 얼마 전 타임키퍼가 가져다 놓은 정거장에 때마침 붉은 버스가 멈춰서있었다. 그 장소는 시인의 작은 친구가 안심하고 적당히 바람을 피하고, 풍경을 바라보며 돌아다니기에 적당해보였기에. 시인은 잠시 그곳에 들어가기로 했다.








붉은 차량은 내가 자리에 앉으니 천천히, 이내 빠르게 걷는 정도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겨울을 꺼내주려고 했지만 아직 코트 안이 편한 건지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나도 조금 더 겨울의 은신처 역할을 하기로 했다. 조그맣게 지저귀며 몸을 기대어오는 나의 작은 친구.


나도 잠시간 쉬어볼까 하는 생각에 육지가 눈으로 하얗게 치장하고 있는 걸 바라보며, 차체에 몸을 기댄다.

차량은 바람은 막아줬지만 추위까지 막아줄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싸늘한 기운이 벽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아, 이 추위. 사랑하는 고향이 생각나는 바람. 어쩐지 옛 기억이 떠오르는 추위. 옛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풍경.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곳을 생각나게 하는 바람. 그들의 사상에 반하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끌려갔던 곳에서의 일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잊고 싶었는데. 




짐짝마냥 열차 한구석에 실려서 끌려간 그곳. 익숙할 터임에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악취. 피비린내. 고통 어린 흔적이 가득했던 열악한 그곳.


체제에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시를 쓴 시인. 마도학자.

그 두 사실이 겹치며 나의 위치는 참으로 알기 쉽게 저 깊숙이 추락했다.


무어라 소리치며 윽박지르는 경찰들, 거친 억양으로 내뱉는 욕설, 기분 나쁘게 미소 지으면서 앞섶을 푸는 덩치 큰 사내들,

같은 죄로 끌려왔을 터인, 고통뿐인 이곳에서 그나마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동지라고 생각했던 이들마저도.


어쩐지 축축한 듯하면서 한기가 파고드는 방. 살 속을 파고들고자 비집고 들어오는 남성기.

살을 째는듯한 고통. 저항하려고 할 때마다 가해지는 폭력.

입 안에 번지는 철향. 역하고 비릿한 냄새.


반항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야 차라리 빠르게 끝난다는 걸 알아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야릇한 시선. 비릿한 손짓.

내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목소리. 고통과는 다른 감각에 떨려오는 몸뚱아리.

모욕적인 언사. 폭력적인 언행.

그리고 시야 가득히 퍼지는 흰색, 흰색, 흰색―――


―――아, 내가 사랑하는 하얀색은, 이런 탁한 백색이 아닌 겨울의 눈 내린 들판 같은 깨끗하고 고요한 백색이건만.


"우, 윽……"


기억과 함께 목을 타고 올라오는 구역질. 토해낼 것조차 없는데도, 토해내고 싶은 건 토해낼 수 없는데도.

현재형이 과거분사로 변했어도,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이 몸뚱아리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겨울이 지저귀었다. 마치 괜찮냐고 묻는 듯, 슬쩍 머리를 내밀고 내 낯빛을 들여다본다.


"괜, 찮아……그냥, 옛날 생각이……나서……."


쥐어짜낸 소리. 울렁이는 머리. 올라오는 토기.

아아, 분명 내 표정은 그리 좋은 꼴은 아니겠지. 그래도 이 자그마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벗에게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을 건넨다.

제대로 해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쓰라린 기억마저도 언젠가 흘러지나가리라. 믿는다. 믿어야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은 그저 품속에 숨긴 박새의 자그마한 온기를 느끼며, 이 추위가 지나가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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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첫빠따

노꼴이지만 올리고 봄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