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C 시대는 약 20년동안 안정적으로 상승세를 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분열의 조짐이 보인, 암흑기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렇게 1979년에 CART(Championship Auto Racing Teams, 챔피언십 자동차 레이싱 팀)가 설립, 전국 챔피언십을 주관하게 되면서 분열되었다.
CART는 USAC의 보수적 태도와 상업화 실패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팀 연합이었고, 이들의 목표는 팀 중심의 운영과 개혁이었다.
1979 전국 챔피언십은 USAC와 CART가 각각 주관하는 2개의 챔피언십이 있었다. 스타 드라이버와 강팀들은 모두 CART에 참가했기 때문에 인기와 위상은 CART가 더 높았다.
둘의 갈등은 더 깊어졌고, 결국 법정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1979 인디 500을 맡은 USAC는 CART 소속 팀의 참가를 거부했고, CART는 법원에 제소했다. 법원은 CART 편을 들어줘 USAC는 참가를 허용해야만 했다.
정리하면, USAC 챔피언십은 주요 팀이 대거 이탈했고, CART 시리즈는 인기, 중계 및 마케팅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인디 500 역시 주관은 USAC였지만 참가 팀은 대부분이 CART 소속이었다.
1980년대 들어서 CART는 미국 오픈 휠 레이싱의 주도권을 잡았고, USAC는 인디 500만 운영하는 신세로 몰락한다.
1984년부터는 인디 500도 CART와 공동으러 주관하게 되었다.
USAC를 밀어내고 새롭게 자리잡은 CART는 성공적이었다. 현재 인디카 시리즈의 '오벌, 로드, 시가지' 모두에서 래이스를 개최하는 것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또한 기술 발전도 상당했다. 이 당시 CART는 아주 빨라서 F1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CART의 시대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복잡한 운영 구조는 또 분열을 초래했다.
토니 헐먼(WW2 후 IMS를 매입하여 레이스를 재개했음.)의 손자 토니 조지는 CART에 불만이 있었다.
CART는 점차 외국 브랜드가 되어간다(당시 CART는 엔진, 드라이버 등 외국인 비중이 높았다)
CART에서 인디 500의 비중이 감소했다
그래서 토니 조지는 미국 중심의 레이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IRL(Indy Racing League, 인디 레이싱 리그)를 1996년에 창설했다.
그렇게 미국의 오픈 휠 레이싱은 2번째 분열을 겪게 된다.
CART와 IRL의 대립 구조
팀 중심, 국제화 vs 인디애나폴리스 중심, 미국 중심
F1급 수준의 기술과 드라이버 vs 저비용, 인디 500 보존
이후 인디 500은 IRL의 일부가 되었고, IRL은 1996년부터 CART 팀의 참가를 금지했는데
이것은 둘의 분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에 CART는 브라질, 일본, 오세아니아 등 글로벌 전략을 강화했으며, 더 많은 TV 중계권을 확보했다.
1996년에는 인디 500 대신 미시간에서 U.S. 500을 개최했으나 흥행에 실패한다.
U.S. 500은 실패했지만 CART의 전략이 성공하면서 1990년대 말-2000년에는 크개 성장한다.
인기, 기술, 전반적인 수준 모두 F1급이었고, 몬토야 등 F1으로 드라이버를 배출하기도 했다.
한편 IRL은 낮은 수준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다.
분열과 위기를 잘 넘긴듯 했던 CART는 2001년부터 새로운 위기가 찾아온다.
먼저 인디 500의 부재는 중계권과 스폰 이탈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대중의 관심도 줄어들었고 분열의 장기화로 NASCAR에게 시장 점유율을 내줬다.
F1과 맞먹는 수준의 기술 발전은 비용 폭증으로 이어졌고, 그러던 중 IRL은 CART와 기술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CART의 경영권 싸움과 잦은 CEO 교체라는 내부 혼란까지 있었다.
2002년, CART 설립의 주체 로저 펜스키가 소유한 팀 펜스키는 당시 가장 강하고 인기있는 팀이었다. 팀 펜스키는 IRL로 넘어가기로 결정하면서 CART는 큰 타격을 입는다.
CART와 IRL의 앞으로 운명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얘넨 진짜 미국스러운 역사구만ㅋㅋㅋ
챔프카는 터보였지. 그래서 소리는 별로였어
재밌게 보고 있음 계속 써줘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