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의 일이었다. 그 전쟁 참전 용사들이 되려 징병제를 강하게 반대했으며 수많은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직후 징병제가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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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징병제를 폐하라(1) 2001. 4. 24. 화요일딴지 지정 군사전문가 펜더 본 위원, FX를 까발린다란 기사를 내 보내고 나서 또다시 강호를 떠나 있었다. 멋드러진 출수로 FX를 박살내려 하였지만, 아직 강호의 무술에 익숙지 않아 초식부터 어그러진 부분 조금 눈에 거슬렸다. 아, 간만에 한번 초식 펼치니까 운기조식도 생각 만큼 안 되드라. FX 기사를 보면서, 이틀 만에 33장 치느라 오타 많고 눈에 거슬린 부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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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쓴 펜더라는 딴지일보 국방분야 기자가 있다. 이 사람은 전면전만 아닐 뿐 나름 참전용사이긴 한데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참전용사이다. 이 당시 육군콘돔부대, 그러니까 별들의 무덤에서 복무했으며 당시 펜더는 2사단에서 무장공비에게 살해 당하고 팬티만 입은 채로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표종욱 일병과 동기이다. 표종욱 일병을 살해한 무장공비는 표종욱 일병의 전투복을 빼앗아 입고 국군 행세를 했다. 펜더 기자는 징병제에만 존재하는 수많은 결함들을 온 몸으로 체험, 그것도 실전까지 겪으면서 경험한 인물이다. 징병제에 대한 경험을 다 해 본 인물이라 되려 징병제를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대가 되게 이상한 게, 참전용사들이 되려 반전주의자가 되며 장기복무를 안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 사진이 뭐냐 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사건으로 일본에게 한 방 먹은 미국 측에서 일본 본토 타격작전으로 둘리틀 특공대를 결성했는데 둘리틀 특공대는 총 16대의 폭격기에 총 80명의 인원이 참가한 타격작전으로, 이것은 제임스 해롤드 둘리틀 중령 본인(사진상에서는 키가 작은 장교가 둘리틀. 검은 모자가 장교, 밝은색 모자가 부사관이다.)이 탑승한 기체 승무원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리처드 유진 콜(키가 제일 큰 장교가 헨리 포터 중위, 둘리틀 옆이 리처드 유진 콜 중위이다.) 중위가 둘리틀 특공대에서 제일 나중에 죽은 사람인데 104살까지 살고 영면했다. 이 리처드 유진 콜 중위는 이 작전의 공로로 명예 훈장을 수훈했으며 계속 복무했으면 대장까지 보장 됨에도 불구하고 중령까지만 복무하고 제대했다. 이런 식으로 참전 용사들은 진급이 잘되는데도 의외로 오래 복무하는 사람이 없이 어지간하면 군문을 나가는데 전쟁을 봤기 때문이다.
참고로 둘리틀 작전은 일본 각지를 폭격해 총 52명의 사망자를 냈는데 이건 미국 전쟁사에서도 기념비적인 대첩으로 인정해주는 이유가, 적지 본토를 항공기로 타격에 성공한 첫 사건이기 때문이다.(웃기게도, 둘리틀 본인은 이 작전이 끝난 직후, 본인이 패잔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문에 미국에 귀환하자 사람들이 둘리틀 대첩이라고 부르며 본인을 승장 대우해주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이 당시는 1942년으로 미국에는 아직 공군이 없던 시절이었다. 이 사건이 미국에게 얼마나 대첩으로 인식되냐 하면 미군들은 아예 이걸 "둘리틀 대첩"으로 부르고 80명 전원에게 명예훈장이 수여되었으며, 심지어 제임스 해롤드 둘리틀은 작전에 중령으로 참가한 뒤 이 대첩의 공로로 대령은 달아보지도 못하고 중령에서 바로 준장 됐다. 이거 성공시켰다고 장성급 장교가 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둘리틀은 예비역 대위로 살고 있었는데 진주만 공습이 터지는 바람에 미군 측에서는 누가 비행기 조종 잘 하는 사람 없나 물색하던 도중 슈나이더컵에서 우승한 둘리틀을 발견해 소령으로 진급시키고 현역으로 복귀시켰는데 둘리틀 특공대를 창설하면서 소령에 진급한 지 몇 개월 못 채우고 중령으로 또 진급시킨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대위와 준장이 같은 나이라는 매우 파격적인 진급을 한 것이다. 그리고 제임스 해롤드 둘리틀은 미국에 공군이 창설되자 소장 진급과 동시에 공군으로 전군했다.
개인적으로 징병제를 반대하게 된 계기가 하나 있다. 학사 출신이고, 소속 부대는 모 군단 사령부 예하 직할대로 소속 사단이 없다. 거기서 수많은 참모들과 직접 만나고, 그들의 생리를 계속 봐왔던 사람인지라 '왜 저런 사람이 영관급 장교일까?'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작전 1장교라는 인간은 자기가 할 일을 계원들에게 분산시켜서 일을 하고 보름동안 해야 할 일을 그런 방식으로 하루에 다 해버리고 그렇게 병사들의 노고로 중령에 진급하고도 자기가 유능하다고 뻐기는 이런 일을 목도하면서 개인적으로 '저런 장교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깊게 생각해보고, 내 처지와 비교해 보니 답이 나왔다. 강제로 군복무를 시키니 안 할 수는 없고 결국 뭘로 내몰리든 내몰리는 처지라서 저렇게 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런 결론이 나오니까 그 작전 1장교를 욕할 수도 없었다. 소령으로 제대하면 생계가 막히는데, 어떻게든 중령은 달아야 그나마 제대하고 나서도 먹고 사는데 저게 가족을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몸부림이라서 탓할 수 없는 노릇이 되었다. 또한 징병제에 계급정년이 있는 군대의 구조로 인해, 없는 군공을 억지로 만드는 일이 빈번해 불필요한 일을 계속 반복해, 자꾸 군의 피로를 누적시킨다. 진급을 못 하면 강제로 쫓겨나는 미친 구조의 군대라서 계속 공을 세웠다고 해야 하니...
통계적으로 군필자라 하더라도 복무 강도가 약한 부대에서 근무했던 인원일수록 징병제를 찬성하는 성향이 강해진다., 군대가 그렇게 편한 곳인 줄 아니까. 반면 군대에서 진짜 전투를 치뤘던 사람은 징병제를 반대한다. 전쟁이 뭔지 아니까.
진심으로 유익한 내용
일제의잔재 파시즘 제국주의 징병제폐지 미국처럼 모병제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