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는 왜 플레이어의 반대 성별로 등장할까?'라는 의문에서 나온 잡생각이야
제목은 거창하게 지었지만 나도 정신분석학 쪽을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야, 그러니까 진짜로 표면적인 부분만 다루고 있어
(아마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보면 오류 같은 것도 있을 거라고 생각함)
그냥 이런 시각도 있구나 하고 가볍게 봐줬으면 좋겠어
편의상 융철학 부분은 까만 글씨, 닼소 세계관은 파란 글씨로 쓸게
1. 병든 인간(homo patiens), 저주를 짊어진 인간
융은 현대인의 정신장애가 합리주의적 태도와 이분법적 사고에서 왔다고 말했어
인간은 합리주의적 이성으로 자연을 정복했다고 믿지, 그래서 더이상 자연물(숲, 산, 동물 등)에게서 도움을 얻지 못해
또 인간은 이분법적인 선악, 흑백 개념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하기를 강요받아
다크소울에서 불은 인간 이성을 의미해. 불의 힘으로 고룡과 거목뿐이었던 무의 시대(자연)은 정복되지
또 불과 함께 뜨거움과 차가움,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생겨나(이분법적 사고)
인간은 사회적인 관계에 의해 형성된 자아상과 내면의 그림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
이런 내적인 분열을 숨기기 위해 인간은 내적 모순을 억압해. 이 억압으로 의식과 무의식은 단절되고 인간 정신은 병들게 돼
인간은 불의 시대의 주민이야(사회적 자아상), 하지만 인간성의 어둠을 지니고 있어(내면의 그림자)
이 내적 모순은 그윈을 필두로 한 신의 계보, 또는 인간 자신에 의해 억압받아. 하지만 결국 다크 링과 저주의 형태로 표출되고 말지
결국 우리 현대인, 그리고 재의 귀인은 이 병든 정신, 저주를 해소할 필요가 있어
2. 자기실현(Selbstverwirklichung), 불의 찬탈자
자아(ego)는 의식의 중심이야. 우리가 일반적으로 '나'를 말하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아를 가리키는 거야.
의식이 섬이라면 무의식은 그 섬을 띄운 바다야. 무의식의 바다에는 그림자(schatten), 아니마(anima)또는 아니무스(animus)등의 원형이 존재해.
우리는 자아가 이상적인 존재이기를 소망해. 특히 사회적인 요구나 역할, 기대에 부응하려고 할 때 탄생하는 측면이 페르소나(persona)야.
이를테면 우리는 장소에 따라(학교, 회사, 가정) 다른 역할을 가져(학생, 회사원, 부모 또는 자식). 그리고 각 역할에 맞는 사회적 행동양식을 갖고 있어.
한마디로 페르소나는 자아와 사회가 타협한 결과물이야. 그래서 가면으로 비유돼.
건강한 페르소나는 자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탄력성을 잃은 페르소나는 그림자(schatten)을 억압해 정신을 병들게 해
이런 페르소나는 주어진 역할 또는 책임에 최대한 충실하려는 경향성을 가져.
재의 귀인은 화방녀에 의해 왕의 장작을 모으는 역할을 부여받아
또 불사자의 사명에 의해 그에게는 불의 시대를 연장할 책임이 있어(이런 역할, 책임 모두 재의 귀인의 페르조나를 구성해)
만일 인간성의 어둠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없다면 그는 페르조나의 요구에 따라 사명을 완수하겠지만
그 결과는 쓸쓸할 정도로 초라해(태초의 불을 계승하는 자 엔딩), 이는 그림자(schatten) 등의 무의식과의 합일을 도외시한 귀결이야
자아가 이상적이기를 소망하기 때문에 우리는 열등하거나 부정적인 부분,
사회적으로 또는 이성에 의해 용납되기 어려운 부분을 무의식 영역에 쫓아내. 이것들이 모인 게 그림자(schatten)야
우리는 의식적인 영역의 열등함, 부정함은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어. 하지만 무의식 영역에는 그 통제가 닿지 않아.
의식 생활에서의 구현이 적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져. 그리고 꿈을 포함한 무의식 생활에서 더 강하게, 더 병적으로 표출돼
불의 시대가 인정하지 않는 인간성의 어둠은 억압되고 추방당해
우라실, 작은 론도, 고리의 도시, 사냥의 숲이나 불사의 처형장...모두 인간성의 어둠을 외면하려는 시도야
하지만 인간성은 외면당할수록, 억압받을수록 더 짙은 심연, 더 강한 저주로 표출될 뿐이야
무의식의 그림자 영역보다 깊이 들어가면 존재하는 게 페르소나와 대립되는 개념인 아니마(anima) 그리고 아니무스(animus)야
영혼의 인도자인 이 요소는 주인과 반대되는 성별의 형태로 의인화되어 존재해
즉 남성에게는 여성적인 형태의 아니마가, 여성에게는 남성적인 형태의 아니무스가 존재하지.
일반적으로 아니마는 기분, 반응, 충동의 형태로, 아니무스는 행위, 신앙, 열망의 형태로 나타나
아스토라의 앙리는 플레이어가 선택한 성별(재의 귀인의 성별)과 반대대는 성별로 등장해
앙리는 그(그녀)에게 대응되는 장작의 왕인 엘드리치에게 도달할 때까지 책형의 숲 입구에서부터 꾸준히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아
물론 앙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망자의 왕의 반려가 되는 일이야. 아래에서 설명할게.
자아(ego)는 건강해지기 위해 무의식의 바닥, 근원에 존재하는 자기(Selbst)에 도달해야 해.
자아가 의식의 중심인 것처럼, 자기는 의식+무의식의 중심이야. 자기란 곧 정신의 총체성이며 전일성(wholeness)이야.
위에서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의 분열이 정신질환의 원인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그 치료는 자기(selbst)의 회복으로 가능할 거야.
융철학에서 가장 큰 과제는 자기실현(Selbstverwirklichung)이야.
자기실현은 3단계로 가능해.
1) 그림자의 통합: 인격의 어두운 측면을 인정하고 통찰과 선한 의지로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2)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의 통합: 생물학적, 인격적 이성성(異性性)을 발견하고 분화, 발전시켜 통합시킨다
3) 자기인식(self realization): '무엇이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원래 무엇이었는가'의 인식으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세계관을 구축한다
이는 재의 귀인이 망자의 왕이 되는 과정과 유사해
1) 재의 귀인은 론돌의 요엘과 만나 론돌의 사상에 교화되어 인간성의 어둠을 인정하고 진정한 힘을 수용해(그림자의 통합, 검은 고리 5개)
2) 또 앙리와의 결혼으로 검은 고리 3개를 더 얻지, 이는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와의 합일을 의미해
3) 마지막으로 왕들의 화신을 쓰러뜨린 재의 귀인은 '인간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가 아닌 '인간은 원래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불의 시대를 끝내고 어둠의 왕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자기인식. 새로운 세계관 구축)
"Make Londor whole"이라는 마지막 나레이션에서 이 과정이 총체성, 전일성(wholeness)의 회복을 의미함은 한번 더 강조돼
이 5+3=8의 등식은 수비학적으로 보면 힘과 지혜의 합일로 자웅동체(완성성)에 이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건 완전 끼워맞추는 거라 회색 글씨로 씀
요약
1. 인간성이 소울의 저주로 나타나는 것은 무의식 영역에 억압당한 그림자(schatten)가 표출되는 것의 은유
2. 태초의 불을 계승하는 것은 페르소나의 요구에 순응하는 자아(ego)의 은유
3. 요엘을 통해 인간성의 어둠을 인정하고, 앙리와 결혼하는 과정을 거쳐 망자의 왕이 되는 것은
그림자(schatten)과 통합되고,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와의 합일을 이루어, 자기실현(Selbstverwirklichung)에 성공하는 과정의 은유
독특한 해석 추
음 어느정도 그럴듯한 프롬뇌였다 - dc App
좋은 해석 추. 다만 개인적으로는 어느 쪽도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네. 론돌에서 보기에는 망자의 왕이 자기실현인거고, 불사자의 숙명을 따르자면 불의 계승이 자기실현인거고.
좋은 글이네요 추천 드렸읍니다 물론 읽지는 않았읍니다
아들러 같은 관점에서 보면 도덕적, 희생적 숭고함이 강조되는 불의 계승이 더 바람직한 자기실현일수도 있어 이건 어디까지나 융 관점에서 쓴거라(닼소에선 인간성=어둠이 크게 강조되는 것 같기도 하고)
융 심리학 다이스키~ 심연은 어느 의미에선 자기=집단무의식에 가까운 것일지도...
집단무의식 얘긴 내가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뺐는데 나도 어느정도 그렇게 생각해
ㄴ ㅇㅇdlc2에서 설교자들이 언급하는 심연은 마치 저승 같음. 그리고 격리지인 고리의 도시 안의 그들이 어떻게 외부의 지식에 그렇게 해박한 지도, 심연이 집단무의식 같은 것이라고 하면 설명되고. dlc2의 심연 늪에서 인간성으로 의태되는 것을 생각하면 에반게리온의 LCL 같기도함.
연결고리 없을때 '시공간이 비틀려서' 라고 하면 되는거라 해석에 큰 의미 없긴함
미친놈
ㄴㅋㅋㅋㅋㅋ 이 한마디에 빵터짐
ㄴ쉬,,,불,,,
그러면 화방녀의 가면은 화방녀의 페르소나가 되는건가. 그런데 두개의 엔딩은 그렇게 된다 쳐도 배신 엔딩과 이스터 에그로 폄하되는 강탈엔딩은 어찌되는거임?
가면이란건 은유적 표현이지 가면=페르소나라는건 아님
자아가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이해한뒤 선택을 할 수 없으니 다른길을 찾은게 불끄는 엔딩이고 아니마 아니무스의 합일 없이 그림자로 향하는게 강탈엔딩이라 봐야하는건가.
물론 불의 계승이라는 역할에 완전히 속박되어 있고, 개성이라는 게 거의 드러나지 않는 화방녀는 페르소나가 극대화된 에고는 맞음
성야객//화방녀는 오프닝에 시야를 막는 가면을 씀으로서 시작하고 눈을 얻음으로서 다른 미래를 보는 모습이 있어서 은유적 표현을 정말로 쓴것같아서 그럼.
아하 그런 의미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함. 가면을 쓴다는 건 개인성의 상실이고, 눈(시력)을 잃는 건 신성의 획득과 연결됨. 눈을 되찾는 건 신성의 상실=인간성의 회복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어느 엔딩과도 다른 인간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불의 계승의 끝은 융철학 관점에서 보면 페르조나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내적자아와의 합일도 이루지 않는 게으른 에고가 되어버려서 일부러 안썼음... 단지 (게임 밖 세계를 사는 우리의)융철학적인 관점에서 그렇다는 거고 다크소울 세계관 내에서는 가장 비장미 돋는 엔딩이라고 생각해서, 내 깜냥으론 그걸 해석 못할 뿐
성야객//내적자아와의 합일 부분은 화방녀와 루드레스를 비롯한 장작의 왕들로 대치가능하지 않음?
둘다 계승의 끝을 알고있고 화방녀의 합류가 없으면 계승의 끝 자체가 불가능하잖음.
그리고 화방녀는 배신이 싫다면 자신에게서 눈을 빼앗아 가라고 분명하게 말함.
일단 플레이어를 남성이라고 전제하면 화방녀도 아니마의 은유라고 볼 부분이 있긴함 단지 나는 론돌엔딩의 과정과 자기실현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것에 착안한거라 대치 가능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글의 의도가 퇴색돼서...
ㄴ잘몰라서 그런가 하고 하는거임... 목따다가 앉혀야하는 장작의 왕들이 전부 남성인지라 이들 그 중 특히 배신하는방법을 몰라도 배신을 속삭이는 루드레스가 아니무스의 역할을 해줄수 있지 않나 싶었는데 정작 화방녀의 전향이 없으면 제대로 이어지지 않네.
ㄴ말해준 루드레스나 장작의 왕들 같은 경우는 융심리학 자체보다는 융 영향받은 조셉켐벨의 영웅서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게 더 직관적이고 흥미로울 거 같음 생각해볼 부분같긴 한데 디게 어려운 얘기가 될것 같네
ㄴ기대해봄
그냥 프롬도 딱 론돌엔딩 부분에서만 저거 따온게 아닐까
루드레스는 노현자 원형에 가깝지 않을까함. 노현자 원형이 때때로 길을 잘못 인도하는 자가 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스승이나 아버지의 이미지를 가진 인도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재의 귀인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고 다른 가능성(선택)도 제시해주는 게 거기에 가깝지 않을까함.
또한 노현자는 아니마의 수호자가 되기도 하니, 화방녀를 아니마 쪽으로 본다면 연결할수도 있을 것 같고. 이 경우 불의 계승의 끝은 자기 극복이라고 해야될까? 불에 이끌리는 재의 본성을 넘어서는 선택을 하는 것이니.
노현자가 나왔으면 태모Great Mother가 빠지면 섭섭한데 딱히 알맞는 인물이 없네. 베르카가 성모 마리아와 묘한 유사성을 가진 것과 본디 이단이며 어둠과 관계 있는 것을 생각하면 거기에 어울리지도 모르지만... 그외에 트릭스터 원형으로는 신을 속여 이득을 취한다는 것에서 설리번이 있고, 영원의 소년 원형은 아버지가 요구하는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짱박힌 무명왕이 어울릴지도.
단순 타락이지 인정이나 수긍이 아니라서 무효
융보다 사르트르 할배가 닼소엔 더 먹힐듯
한신0//무명왕은 장작이 아니니 로스릭이 소년에 어울릴듯
댓글 보면 찬탈자 엔딩과 다른엔딩의 기반 철학이 다른거였네...
몇천만개가 넘는겜중에서 이런겜은 닼소박에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