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이런거 픽션인지 알았는데
실제로 오지기는 했나봄
중군(中軍)에서 백고초기(白高招旗)를 세우면 각 도수(刀手)는 모여서 대기하는데, 모두 갑옷을 입는다. 북 소리가 들리면 몸을 날려 왜도(倭刀)의 용법대로 머리를 낮추어 말의 다리를 베고, 몸을 일으켜 말의 머리를 베는 두 가지 도법(刀法) 뿐이다.
『무비지』, 比長刀
훈련대장 유혁연이 말하기를, "검술은 천하 어디에도 있지만 일본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나라 홀로 전하고 익히는 자가 없어 신의 마음이 항상 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중략) 신의 아랫사람 중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을 보내 검을 배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보내라" 하였다.
『승정원일기』 숙종 5년(1679) 7월 27일
검술은 유래가 오래되어... 수십 번을 안과 밖을 뛰어넘는 것이 마치 금수(禽獸)와 같으며, 더러 늘 경쟁을 시켜 사심(死心)을 앞다투어 발휘케 하는데 칼을 휘둘러 서로 치며 반드시 죽이기를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칼을 휘두르는 사이에 칼등으로 칼날을 받아쳐서 결국 다치지는 않으니 그 교묘하게 피하는 기술과 능숙하게 부딪치는 기술은 완연히 백원의
검법이 있습니다. 근기(近技)는 신묘하여 사람마다 검객이 아닌 자가 없고 기계의 정밀함도 다 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장검(長劍)과 철환(鐵丸)인데 철환은 비가 내리듯이 쏟아지고 칼은 숲이 서 있는 것과 같으나, 총을 쓰는 것은 칼을 쓰는 것에 비해 자못 뒤떨어집니다.
정탁 『약포집』 1593년 8월 15일 명나라 유생 호환에게 보낸 편지
왜이(倭夷)는 보통 호접진(蝴蝶陣)을 치는데, 전투시에는 부채를 휘두르는 것으로 호령을 삼는다. 한 사람이 부채를 휘두르면 무리들 모두가 칼을 춤추며 일어나 공중으로 칼날을 번뜩이며 재빨리 휘두른다. 우리 병사들이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다가는 한 칼에 베여 버린다.
쌍도(雙刀)는 위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아래를 공격하기 때문에 막기가 어렵다.
표창과 단도는 자루를 드러내지 않고 갑작스럽게 던지는 까닭에 예측할 수 없다.
『주해도편』 왜국사략
"사고수계(沙古愁戒)·간내비운소(幹乃飛雲所)·간로수계(幹老愁戒)·조음묘우(照音妙牛)는 칼을 잘 써서 우리 나라 살수를 보고 아이들 놀이와 같다고 하였고, 고사로문(古沙老文)은 칼과 총을 주조하는 법을 안다 하는데 이들 왜인을 어찌하여 머물러 두고 전에 내린 전교에 의하여 배우고 익히게 하지 않는가?"
『선조실록』 1594년 8월 2일
비망기로 일렀다.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왜적은 실로 상대하기가 어려우니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왜적은 철환(鐵丸)을 비 오듯 퍼붓는데 한번 맞기만 하면 곧바로 쓰러지고 근접해서는 칼을 사용하는데 그 검술이 지극히 기이하니 이들은 참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라고 하겠다.
『포저집』
산 위로 올라가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수만 명이 되니, 모든 군사들이 보고는 겁을 냈으나, 이미 칼을 빼들고 접전해 와서 갑자기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이때 제독이 인솔하던 군사는 모두 북방의 기마병으로 화기가 없고, 짧고 무딘 칼을 가지고 있었다. 적의 보병들은 모두 3, 4척이나 되는 긴 칼을 가졌는데 날카롭기가 비길 데 없었다. 그들과 충돌하여 싸울 적에 좌우로 후려치니 사람과 말이 모두 쓰러져 그들의 예봉을 감당할 자가 없었다.
『서애집』 벽제관 전투
그들은 칼집에서 칼을 뽑는 동시에 위력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한 거리에서 칼을 맞게 된다.
J. G. wood, 『The Natural History of Man』, 1868
Captain Applin, late commanding H.M.S. Legation Guard, Japan, and late Military Train:
"7년 전쯤, 일본에 거주하는 유럽인은 반드시 권총을 소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권총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칼을 든 일본인에게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On Military Equipment, Journal of the Royal United Service Institution. 1878
숙련된 일본 검사는 칼을 뽑는 순간 상대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 있다. 공격자가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방어할 기회는 없다고 보면 된다. 내가 들은바에 의하면 일본인에게 난도질당한 어떤 해병은 한번 베일 때마다 팔다리가 하나씩 잘려나갔다고 한다.
Alexander Michie, 『The Englishman in China』, 1900
올리펀트는 양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얼굴은 염증으로 잔뜩 부어 있었다. 그는 해군 수병의 도움을 받아서 내게 "손질된 청어처럼 깊은 칼집이 난" 나무 서까래를 보여줬다. 일본인 칼잡이는 적으로 만나기에는 너무 끔찍한 상대다.
William Blakeney, 『On the coasts of Cathay and Cipango forty years ago』, 1902
그 당시 조선이나 명나라 기록 보면
왜놈들 검술 오진다는게 많던데
- dc official App
하단공격도 실제로 있었고 ㄷ ㄷ - dc App
근데 애들 키 존나 작았다는데 평균 130이고 커봐야 150
싸움이 많아서 금방 발전함 - dc App
임진왜란때 검증 됐는데
키리토의 나라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허구언날 칼들고 싸우는데 발전 안하면 이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