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기는 중)




   

이봐, 사냥꾼. 혹시 햄윅의 무덤거리 소문을 들었나?”

 

마흔 네 번째 벌레를 밟아죽이며 발트르가 말했다.

무슨 소문?”

요새 새로운 무리의 사냥꾼들이 햄윅의 무덤거리를 마구잡이로 뒤지고 다닌다는거야.”

, 그 무덤거리에 신기한 거라도 있나? 할머니 마녀들이 꽤나 취향인 녀석인들인가보군

아니, 그런 시시한 거면 이렇게 내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겠지

발트르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어투를 바꿨다. 투구에 가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까지와 분위기가 다르다.

그들은 혈족을 찾고 있다고 한다. 폐성 카인허스트로 가는 길을 말이야.”

 

카인허스트? 혈족의 명맥은 끊어진 지 오래일 텐데. 게다가 그 곳은 단 두 사람만이 알고 있다. 혈족 여왕 애나리스 그리고 나.

 

햄윅의 무덤 거리가 카인허스트랑 무슨 관련인지 아직도 모르겠는걸

 

혈족은 더 이상 세상 밖으로 꺼내어지면 안 된다. 2의 로가리우스가, 2의 처형단과 혈족 간 대전쟁이 벌어지는 건 안 된다. 내 손으로 죽이는 건 알프레드 하나면 족하다.

 

그래,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걸 조사하는 놈들을 조심하게. 손가락을 서로 교차한 문양을 상징으로 쓰는 놈들인데 방해되는 것들은 가리지 않고 치우나봐. 아무 것도 안 한 시민들도 말이야. 스스로를 르네상스 교단이라 하더군

 

알바 아니야. 애초에 겹치는 동선도 없고, 난 성배나 돌러 갈거야

 

, 뭐 그렇다면야. 하여튼 조심하게. 꽤 많은 수의 맹약자가 당했어

 

신경 정도는 써 주지

발트르를 뒤로 한 채 등대로 향한다. 시야가 몽롱해지고 잠시 뒤에 그 장소가 나타난다. 사냥꾼의 공방. 커다란 달 그리고 집 그리고 인형. 하지만 인형하고 떠들려고 온 것이 아니다. 서둘러 묘비에 가서 야남 시가지 등불에서 일어난다. 그 소녀를 봐야한다.

 

창문을 두드린다.

오셨군요!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나요?”

금발에 벽안을 가진 귀여운 소녀다. 그리고 나는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개스코인 신부를 말이다. 그는 야수가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소녀만큼은 그러지 않아야한다. 소녀와 즐거운 이야기를 한다. 엄청 큰 돼지가 하수도에 산다는 것, 오늘도 세 뚱땡이들은 죽어나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달이 예쁘다는 것.

전 달이 좋아요. 달이 있으니까 그나마 밤에 덜 무섭거든요. 밤에는 야수들이 울부짖고 비명소리가 들려와요. 정말 무서워요

혼자니까 더 그렇겠구나

소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끄덕인다. 빨간 리본이 같이 따라 움직인다. 참 잘 어울린다.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도 다 절 응원하실 거 에요. 가끔씩 너무 힘들 때는 오르골을 틀어요.”

태엽이 돌아간 오르골이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어딘가 쓸쓸하면서 편안한 멜로디다.

 

사냥꾼 님은 야남에 어떻게 오신건가요?”

 

언젠가 소녀가 말했었다. 그때, 그 누구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라 깜짝 놀랐었다. 이곳에서 문을 두드리면 사냥의 밤이니 꺼지라느니, 이방인은 믿을 수 없다느니 욕만 들었었다.

 

창백한 피요? 그 피는 상당히 희귀한 건가보네요. 뛰어난 사냥꾼인 당신도 찾기 힘들어하니 말이에요.”

 

사실 나도 그게 뭔지 아직 모른다. 막연하게 따라가고만 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궁금해하는 소녀를 가만히 놔둘 순 없지.

 

아하, 치료제로군요. 확실히 그것만 있다면 야남 시민들을 치료할 수 있겠네요. 역시 멋지시네요 사냥꾼 님. 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느덧, 밤이 깊어지고 소녀가 잠들었다. 내가 있는 것만으로 편안하게 잘 수 있다고 한다니까 이렇게라도 최소한의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버지를 죽인다는 건, 설령 야수라 하더라도, 괴로운 것이다.

 

잠든 소녀에게 담요를 덮어준 뒤, 문을 잠그고 나왔다. 안전할 것이다.

 

 

 

 

그렇군요. 소녀가 혼자 살고 있다니. 꽤나 무섭겠네요

 

문 너머에서 여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이오셰프카, 치료제를 만들고 있다는 의사다. 치료제를 위해 협력 중이다. 오늘도 그녀의 부탁을 받아 피를 구해오는 길이었다. 그녀에게 소녀의 사정을 들려주자 꽤나 동정하는 모습이다.

 

, 그렇다면 조금 위험할지 모르겠지만. 소녀를 이 곳 보건소로 데려오는 건 어때요? 이 곳은 꽤나 넓고 소녀가 사는 방보다 훨씬 방어 시설이 좋아요. 저도 무기를 들 수 있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소녀를 보건소로 데려오라는 것 같다. 확실히 데려오는 과정이 조심스럽긴 하겠지만 데려만 온다면 외롭지 않고 그리고 안전하게 그녀를 지켜줄 수 있다.

 

좋아, 생각해보지. 그리고 오랜만에 피 좀 나누어줘. 수혈액 외에도 여분이 필요해

 

좋아요. 대신 수은 비약 좀 몇 개 구해다 주세요. 마침 샘플용으로 쓸 것들이 다 떨어졌거든요. 구시가지 쪽에 거래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부활이 임박했다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거에요

알겠다. 물품은 잘 준비해둘 수 있도록 해 줘

 

등대로 가기 전, 반짝거리는 물체를 주웠다. 손가락들이 교차된 그림이 그려진 금반지다. 소녀가 좋아하겠군, 챙겨놓았다가 다음에 갈 때 줘야겠다. 분명히 좋아할 것이다. 등대를 통해 구시가지로 한다. 더 이상 기관총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이 먼저인지 야수가 먼저인지 구별하지 못 하면 야수나 다름없다. 그래서 죽였다. 자욱한 연기 너머에서 한 남자가 다가온다. 부활이 임박했다, 속삭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말 없이 수은 비약들이 가득 담긴 주머니를 건넸다.

 

고생하십쇼. 우리들의 부활을 위해. 다시금 부활하리라

 

이상한 말과 함께 남자는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이상한 놈들이다. 등대로 향해 이오셰프카의 진료소로 향한다. 문을 두드린다. 대답이 없다. 몇 번을 다시 두드리지만 대답이 없다. 이상하군. 어차피 수혈액이 급한 것도 아니니까 우선은 소녀에게 가보자. 이 반지라면 엄청 좋아할 것이다.

 

 

소녀가 없다. 방문은 열려 있는 상태다. 오르골만이 남아있다.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