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익숙한 피 냄새와 시체를 소각하는 매캐한 연기 냄새를 맡으면서 시체 속에서 버둥거리는 길고 역겨운 존재를 꺼낸다. 얼마 전까지 숨이 붙어있었던 사냥꾼의 몸에서 길고 굵은 벌레를 뽑아낸다. 몸이 굵고 튼실하며 다리가 징그러울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걸 보아 꽤나 많은 피를 섭취한 듯하다. 그게 인간이든 짐승이든 간에 상관없이. 감상할 시간은 없다.

 

벌레를 바닥에 두고 있는 힘껏 짓밟는다. 이 벌레가 맛있게 먹어치운 피 중에서는 나의 동료들의 피도 있었을 것이다. 벌레에게 지배되어 피에 취해버린 사냥꾼 속에 죽어간 나의 동료들의 절규가 짓이겨진 벌레의 울음 속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다. 벌레를 밟은 나의 부츠 밑에서 탁한 피가 흘러나와 다른 이의 구두를 적신다. 구두의 주인은 나의 리그 동료, 발트르다.

 

언제 봐도 벌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처리하는 군. 정말 경이로운 리그의 맹약자답네

 

양철 가면 속에서 울려오는 목소리, 표정은 알 수 없다. 이내 몸을 굽힌 그는 벌레에서 나온 끈적한 피를 만지작거렸다.

 

자네도 알겠지만 요새 벌레를 가진 자들의 수가 늘고 있네. 사냥꾼들도 더러 있지만 그 중에서는 왜인지 사냥과 관련 없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고 있다네. 왜 그들에게서 벌레가 나오는 걸까? 매우 의문이로군

 

발트르가 우려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벌레들은 사냥꾼에게서 많이 발견되었다. 왜냐하면 발견될 만큼 벌레가 거대해지려면 피를 많이 섭취해야 하니까. 그런데 요새 사냥과 관련 없는 시민들에게서 이상하리만큼 벌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상한 의식으로 피라도 마시는 것일까? 하지만 내겐 그런 것을 신경 쓸 이유는 여유는 없다. 해야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난 여기서 돌아가도록 하지. 또 도움이 필요하다면 불러

 

발트르를 뒤로 한 채로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등대에 내 몸을 맡긴다. 몽롱한 기분이 들더니 잠시 뒤 그 장소가 나타났다. 사냥꾼의 공방, 커다란 달 그리고 인형. 나의 기척을 느꼈는지 인형은 서서히 일어났다. 눈을 끔뻑이면서 기계처럼 말을 한다.

 

어서오세요. 사냥꾼님. 무엇을 소망하시나요?”

 

말없이 팔을 건넨다. 사냥에서 내가 쓰러뜨렸던 야수들과 사냥꾼들의 피가 나의 팔을 타고 올라오는게 느껴진다. 그 타오름은 인형의 손길에서 멈춰 나를 위한 힘으로 변해 내게 흡수된다. 인형이 말 없이 나를 본다. 끝났다는 의미다. 이 과정을 몇 번이나 했는지 이미 세는 걸 포기한지 오래건만 매번 보이는 인형의 공허한 눈은 내 안의 무언가를 자극한다.

 

넌 날 사랑하나?”

인형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곤 전혀 몰랐다는 듯이. 하지만 이내 손을 입에 대고 웃는 시늉을 한다.

 

신은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할까요? 저는 인형, 당신들 인간이 만들었지요. 당신은 제게 사랑을 품으신 적이 있나요?

물론

저는 당신을 사랑한답니다. 당신이 날 그렇게 창조한 거 아닌가요?”

 

말없이 인형을 바라본다. 인형도 나를 바라본다. 인형의 눈동자 속에 내가 보이고 인형의 눈에 비친 나의 눈동자 속에 인형이 보인다. 현실에 비친 꿈, 그리고 그 꿈에 비친 현실인 것일까?

 

말없이 몸을 틀어 성당 구역으로 가는 묘비로 향했다. 그 아이는 잘 있을까? 사마리안이 잘 돌봐주었을 것이다.

 

현실에서 당신의 가치를 찾길 바라요

 

인형의 말을 들으며 묘비를 어루만진다. 의식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도 잠시 등대가 눈앞에 보인다. 나는 주변으로 넓고 넓은 야수가 싫어하는 침침한 향으로 가득한 항아리들이 즐비한 성당 구역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왔구나...”

 

발치에서 거적때기가 움찔거리길래 뭔가 했더니 사마리안이었다. 이 사람 음침해 보이긴 해도 사람들의 피난처로 성당을 제공하고 향을 열심히 피울 정도로 착한 사람이다. 이 험한 야남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도와주게 된 걸까.

 

오늘은 벌레를 죽이고 왔다. 넉넉하게 수은 비약을 챙겨왔으니까 향을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을거야

 

그에게 수은 비약들을 건넨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이 약품들은 사냥꾼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데, 벌레에게 오염된 사냥꾼들을 사냥하는 리그의 멤버들은 쉽게 이 비약들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사냥을 할 수 없는 사마리안에게는 귀한 약품일 것이다.

 

매번...도움을 받는군...미안해

 

괜찮다고 말하면서 성당 구역의 사람들을 둘러본다. 의자에서 졸고 있는 할매,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긁고 있는 할배, 거울 보면서 화장을 하고 있는 작부 아리안나, 화장을 하는 아리안나를 째려보고 있는 수녀 아데라, 그리고...

 

사냥꾼님!”

 

조르르 그녀가 달려 나온다. 붉은 리본의 소녀다. 엄마 비올라를 닮은 그녀의 금발이 찰랑거린다. 그녀를 챙기기 위해 매번 성당 구역을 방문하고 있다. 어두운 분위기의 성당 구역에서 그녀는 유일하게 밝은 존재다.그녀가 내 가족이라 챙기는 게 아니다, 난 그녀를 챙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고귀한 이유 같은 건 아니다. 내가 취향이 이상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의 외할아버지의 숨통을 내가 직접 끊었으니까. 


방실방실 웃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내가 죽인 개스코인의 눈동자가 보인다. 야수로 죽었으나 숨이 끊어지던 그 순간 그 눈만큼은 야수의 눈이 아닌 아버지의 눈이었다. 비올라의 시체와 구슬픈 오르골 소리, 그리고 야수로 변하는 개스코인이 소녀의 눈동자 안에서 춤을 춘다. 


-계속-



(예전에 써논 거 생각나서 다시 써봄, 내용 오류 있으면 지적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