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까지 말한 프리데가 입을 잠시 다물었다. 그러나 입은 다물었지만 눈은 다물지 못했다. 수도녀의 정갈한 로브조차 가리지 못한 혐오로 가득찬 눈은 계속해서 증오의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낸 결론이 겨우 현실부정인가. 나는 발음 하나하나를 끊어서 다시 말해주었다.


"떠나길 원하면, 가랑이를 벌리라고."


프리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위대한 론돌의 왕이시여. 분명 유리아도 기다리고 있을..."


"그 년은 반쯤 망자가 되서 너무 헐렁했어."


프리데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어디보자, 우리 눈장애년은 장작을 구해올 때마다 한 번씩 먹었지. 이리나인가 하는 년은 앞이 안 보인대서 옷좀 갈아입고 박아대니 '이곤! 이곤!'하면서 신음을 질렀고."


프리데는 듣기 싫다는 듯 아예 나를 외면했다. 나는 그 턱을 쥐어채고는 시선을 강제로 마주쳤다.


"시리스라는 년은 다 끝나고 만족한 척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할아버지 시체 위에서 박아줬어.

귀때기에 집착하던 개같은 년은 귀를 뜯어버리고 귀에 박아줬지. 앙리인가 하는 년은 몸이 너무 박살나서 칼을 꼽은 곳에 박아봤어. 입이 아니라 면상에 박는 건 처음이라 신선하긴 했는데 별로 조이진 않더라고."


프리데는 당장이라도 낫을 휘두를 기세였다.


"당신이...그러고도."


"존나 비싸게 구네. 진짜 여기를 지키고 싶으면 낫이 아니라 허리를 휘두르라고. 날 죽이면 내가 바로 포기할 거 같아? 경고하는 데, 내가 한 번 뒤질때마다 플레이도 좀 과격해질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네가 진짜 잘 조여주면 생각보다 빨리 끝날지도 모르잖아?"


이를 악문 프리데의 입술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설령 한 번 죽이더라도 내가 몇번이고 다시 도전하면, 결국 최후는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핥아보았다. 프리데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나를 피하지 않았다.


"....!"


그때 지하에서, 무언가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말뚝에 박혀있는 이상한 놈이던가. 별로 신경쓸 대상은 아니었다.


"자, 그럼."


나는 힘이 풀린 프리데의 손에서 낫을 쥐어챘다. 그리고 낫 끝으로 프리데의 후드를 들춰내며 말했다.


"벗어."


프리데가 떨리는 몸으로 일어나 천천히 로브를 벗기 시작했다.


-쿠웅!


지하에서 무언가가 뽑히고,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


무언가의 말소리, 아직은 지하의 울림에 가려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신부님!"

"신경쓰지마, 마저 벗어."


자기의 수도녀라 이건가. 주제파악 못하긴. 나는 분위기를 방해하는 새끼를 싫어한다. 만약 진짜로 방해한다면 기필코 회화세계째로 저 미친 할아범을 불태울 것이다.

프리데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옷을 풀어헤쳤다. 속도는 느렸지만, 결국 그 속에 있을 과실을 생각하면 인내심은 아직 내게 넉넉히 남아있었다.


"운동하는 년이 그렇게 조인다던데, 정말 생각해보면 내가 박은 년들 중에선 그나마 시리스가 제일 좋았지. 면상은 좀 별로였어도."


그러나 프리데는 어디까지나 한 세계를 지키는 여자. 시리스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명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가 더!"


목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이젠 몇몇 단어를 식별가능한 수준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프리데의 옷자락도 전부 사라져, 이제 눕히기만 하면 되는 꼴이었다. 시발, 방해 못하게 사다리라도 타고 올라가야 하나. 여기까지 와놓고 기다릴 순 없었다.


"잠시만, 저 개새끼좀 치우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신부인지 뭔지의 눈깔을 파서 다시 말뚝에 박아둘 것이다.


"...!"


그리고 식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거대한 대가리가 바로 내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언제 왔던 거지?


"시, 시발! 뒤지고 싶어? 지금 방해하면!"


나는 아까 단편적으로 들린 단어를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뇌속에 재생되었다.


'죄송합니다....당신의 기사이면서도...'


빌헬름, 왜 지금 빌헬름의 목소리가? 아리안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다..."

"뭐, 뭐가 아니라는 건데 이 미친 노인네야!"


고개를 가로저은 아리안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프리데보다....빌헬름이 더 조인다."


나는 기겁하며 칼을 휘둘렀다. 휘둘러진 칼. 그러나 거대한 아리안델의 면상에 박힌 칼은 뽑혀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리안델이 천천히 팔을 들어 내 칼을 뽑아내었다.

도망쳐야한다. 뼛조각, 뼛조각을 어디에 뒀었지?


"론돌의 왕의 다크 링을 맛보도록 할까."


길다란 손톱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