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여인의 단말마가 힘없이 허공에 흩어진다. 칼과 함께 세차게 뿜어진 핏줄기가 늑대의 얼굴에 튀며 비릿한 향을 풍겼다. 허리에 감았던 팔을 풀자 실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에마의 몸이 무너졌다.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보던 늑대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지금껏 쿠로와 늑대의 곁에서, 그들을 돌봐주었던 그녀는 이리 허망하게 가버린 것이다. 자신이, 이 손으로 죽였다. 아직도 따뜻한 그녀의 피가 턱을 따라 방울져 떨어졌다. 그는 몸을 돌려 천수각의 타는듯한 노을을 바라보았다. 새빨간 노을, 붉은 피, 그의 마음속에서도 불이 피어올랐다. 피처럼 붉은 불꽃이, 늑대에게서 흘러나와 다다미를 태운다. 그러나 늑대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고, 그는 머리 속으로 에마를 찔렀을 때의 그 느낌을 계속 되뇌였다. 업(業)을, 너무나도 많이 쌓았다.
그때, 강렬한 살기가 늑대의 가슴을 관통했다. 거대한 살기는 마치 오니가 짓누르는 것처럼 그의 사지를 옭아맸다.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경이적인 압력이다.
"세키로여…"
병환으로 약해진 것이 금세 드러나는, 그럼에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을 담은 중후한 목소리가 늑대의 이름을 불렀다.
전신(戰神), 검성(劍聖), 그를 칭하는 영광스러운 칭호는 수도 없이 많았다. 스스로가 빛바랜 세월이라 말하는 것처럼 서릿발 같이 새어버린 흰머리, 깊은 병환으로 갈비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은 언뜻 보면 안쓰러운 노인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검광과도 같이 날카롭고, 저토록 무방비한 자세에서조차 한 톨의 빈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서 있는 모습이 곧 무(武), 신체 자체가 곧 검. 그의 이름이야말로
'아시나 잇신'
점점 식어가는 에마의 몸을 안은 채, 잇신은 구슬픈 목소리로 읊조린다.
"붙임성이라곤 전혀 없었지만… 기이하게도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었지."
잇신의 손주, 아시나 겐이치로는 토모에류 검술을 계승하느라 아시나류를 제대로 익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무리 노력해도, 토모에의 편린조차 쫒지 못하는 재능이기에 아시나류 검술의 전승자로는 부적합했다.
잇신의 주치의이자 약사, 에마는 재능은 출중했으나 스스로가 살인술이 아닌 활인술을 배우겠노라 말했기에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베는 것에 미쳐야만 배울 수 있는 아시나류이기에, 그녀 또한 전승자로는 부적합했다.
아시나의 수많은 사무라이들, 분명 강했으나 그럼에도 잇신이 추구하는 강함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들 중 단 한 명도 그의 눈에 들지 못하였다.
그런 잇신의 눈에 든 것이 바로 늑대였다. 복수에 미치고, 베는 것에 미치고, 싸우는 것에 미친 남자. 재능도 출중하여, 그가 건네준 아시나류 검법서만으로도 아시나류의 오의를 배껴낼 만큼 더할 나위 없었다. 과연 올빼미가 그토록 극찬할만 한 남자였다. 잇신은 늑대를 아시나류의 전승자로 만들 셈이었다. 자신이 죽기 전에, 아시나류의 모든 극의를 알려주겠노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죽이는 것에 미치는 것은 아니된다.'
이전에 만났을 때 늑대의 눈동자 깊이 꿰뚫어보았다. 옛날의 성성이가 보여준, 원망과 업이 쌓인 수라의 눈이었다. 수라의 그림자를 보고 자신이 경고했거늘, 일이 이리도 틀어지고 말았다.
잇신은 에마를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번 싸움이 끝나면, 그녀를 아시나 성 가장 좋은 곳에 묻어주리라. 잇신이 몸을 일으키자 다시 한 번 파도 같은 살기가 늑대를 짓눌러왔다.
"자아, 수라로 전락하기 전에 죽여 주마."
조용한 발도. 도신에 새겨진 물결무늬가 화광에 춤추며 느릿하게 그 자태를 드리웠다. 그리고 검을 잡은 오른팔을 길게 늘어트린 채, 무방비하게 늑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자세를 잡은 늑대의 눈에는 그 무방비한 모습이, 불타는 산이 그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보였다. 머리속으로 그려본 수백의 검로(劍路)의 끝은 모두 늑대의 머리가 떨어지는 결말을 예고했다. 잔뜩 긴장한 채 그는 자세를 낮추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깊은 침묵. 원망의 불꽃이 다다미를 태우는 소리만이 천수각을 채우는 가운데, 잇신이 입을 열었다.
"다시 수라를… 벨 날이 올 줄이야앗!"
동시에 잇신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순식간에 늑대의 코앞까지 검이 짓쳐들어왔다. 무시무시한 속도. 수라장을 거쳐온 늑대가 아니었다면 단 일 합 만에 승부가 났으리라. 그러나 본능처럼 검을 튕겨내, 틈을 만들어낸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늑대는 검을 휘두른다.
"…!"
날카로운 검격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다. 촌척에 불과한 간격으로 검을 흘려낸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거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묘기. 자세가 무너진 늑대를 향해 잇신의 뒤돌아베기가 작렬한다.
그 순간 용수철처럼 늑대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검을 피해냈다. 쏙독새베기.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를 억지로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기울어진 채 힘을 흘리지 않고, 의수의 무게에 몸을 맡겨 뒤집는다. 거기에 몸이 회전하는 와중에도 검을 휘둘러 공격한다.
캉!
예상치 못한 일격일진데, 가볍게 튕겨내진다. 한 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잇신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역시 그가 눈여겨본 남자답게, 전투에 대한 이해도가 남달랐다. 강함은 형(形)에서 나오지 않는다. 수천의 단련과 전투에 즉각 대응하는 저 임기응변이야말로 진정 강함이라 할만 했다. 아시나의 사무라이들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별안간 잇신은 검을 검집에 다시 집어넣었다. 손잡이는 가볍게 잡는다. 굳은 몸에서 잔힘을 털어버린다. 아시나류의 자랑, 일문자는 강(强)의 검술. 그리고 지금 이것, '십문자'는 쾌(快)의 검술. 속도는 탈력으로부터 온다. 쓸데없는 힘을 모두 덜어버린 후에야 찾아오는 쾌검의 경지. 재빨리 베는 것만을 갈고닦은 아시나류의 오의다. 잇신의 십문자는 한 때 수라의 팔마저 베어냈다. 혹시라도 늑대의 팔을 베어낸다면, 성성이처럼 제정신으로 돌아올지도 모르지.
한편, 잇신의 자세를 본 늑대도 대응하기 위해 자세를 다시 잡았다.
'…!'
납도. 분명 십문자를 위한 자세다. 잇신은 분개했다. 아시나류의 창시자에게 그의 기술로 맞서겠다? 오만하기 짝이 없다. 늑대의 오만이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이끄리라.
똑같이 가볍게 몸을 숙인 자세로, 서로의 거리가 슬금슬금 가까워진다. 보통 사람의 열 걸음에 해당하는 거리가 잇신의 간격. 늑대가 마지막 걸음을 떼는 순간, 서로의 검이 폭발하듯 검집에서 뛰쳐나왔다.
정십자를 그리는 잇신의 십문자와, 기울어진 8자를 그리는 늑대의 십문자가 공중에서 얽히며 춤추었다.
하나로 느껴질 만큼 짧은 간격의 칼 소리가 두 번. 잇신의 눈이 부릅떠졌다. 세키로는 어느새 이 정도의 경지에까지 올랐단 말인가? 첫 합에 검을, 다음으로 팔을 쳐낼 생각으로 가한 공격이었다. 그런데 십문자와 정확히 같은 간격으로, 늑대의 검이 따라붙어 두 번 모두 튕겨낸 것이다.
늑대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처음 본 기술이었다면 분명 속절없이 당했으리라. 그러나 에마의 십문자로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경험했다면 볼 수 있다. 볼 수 있다면 대응할 수 있다. 고속 거합에는 고속 거합으로 맞선다. 에마에게 고마워할 일이었다.
당황한 잇신의 틈을 놓치지 않고, 늑대의 발차기가 그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검신으로 튕겨낸다. 그러나 늑대는 멈추지 않고 흐르는 듯한 연격으로 끊임없이 쳤다. 선봉사 권법의 오의, 선봉사 보살각. 수라의 모습으로 펼치는 보살각은 마치 불의 파도처럼 잇신을 밀어붙였다.
노쇠한 몸. 아무리 기술이 훌륭해도 낡고 병든 육신이 가해지는 충격을 이겨낼 리 만무하다. 세월이 야속하게도 누적된 충격이 마침내 내장까지 미치고야 말았다.
"크흡!"
갑작스런 토혈이 잇신의 자세를 무너뜨린다. 동시에 늑대의 검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하압!"
장저(掌低)로 칼날을 억누른다. 그러나 약해진 근력 탓에 칼날은 깊숙이 들어와 옆구리를 베어냈다. 잇신은 급하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연격을 펼치느라 많은 체력을 소모한 늑대도 추격하지 않고 잠시 숨을 골랐다. 잇신은 생각했다. 늑대는 아무래도 자신의 경지에 가까워왔던 모양이다. 자신의 '과거'의 경지에.
잇신은 다시금 칼을 칼집에 넣었다.
'또 십문자인가?'
그러나 자세가 달랐다. 다리를 넓게 벌려 자세를 잡은 채, 단전에 힘을 응축한다. 마침내 힘이 최대에 도달한 순간, 특이한 간격으로 벌어진 팔이 두 차례 휘둘러지며 강렬한 폭풍이 일어났다. 노쇠한 몸으로 펼치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기술. 천수각의 넓은 공간을 폭풍이 가득 채우며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잔불처럼 조용히 다다미를 태우던 원망의 불길이, 잇신의 폭풍에 반응해 불기둥이 되어 솟구쳐 올랐다.
'이런!'
늑대가 황급히 몸을 날렸다. 간신히 화마가 치미는 것은 피했으나, 솟구친 불기둥이 시야를 가려 잇신의 행동을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늑대의 이마가 위기감에 잔뜩 찌푸려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를 베어내겠다는 일념으로 다가오는 잇신의 무시무시한 기세를.
불기둥 너머로 어렴풋이 납도 자세로 달려오는 잇신의 그림자가 비친다. 첫 거합을 막고, 반격하리라. 늑대는 검을 굳게 쥐었다.
"흐아압!"
잇신의 고함과 함께 검이 빛을 갈랐다. 검성의 거합술답게, 뽑는 순간이 생략된듯한 검격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날카롭게 단련된 늑대의 본능은 그 첫 번째 검격을 막아냈다. 그런데…
'언제 다시 납도한거지?'
눈치챈 것은 반격을 하려던 찰나. 발도 순간은 '거의' 보지 못했으나, 다음의 납도 순간은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깨달은 순간, 어마어마한 검의 폭풍이 사방에서 그를 찢어놓았다.
오로지 베는 것. 그 한 가지에 마음을 둔다. 쓸데없는 힘을 덜어내고, 쓸데없는 잔심을 뱉어낸 후에야 쾌속(快速)의 검은 신속(神速)에 다다른다. 이 기술의 본질은 '그저 빨리 베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기술의 이름은 잇신(一心). 노년에 이르러 힘에 대한 갈망을 버리고서야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을 완성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16연격. 이미 베인 것조차 늑대는 눈치챌 수 없었다.
검풍이 지나가고, 마지막 한 번의 횡베기가 늑대의 목을 향해 쏘아진다. 검을 들어 막으려 해봤지만, 이미 끊어지고 베인 팔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촤악-
검의 궤적을 따라 피가 솟구친다. 목을 크게 베인 늑대가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잇신은 검을 크게 휘둘러 털었다. 예리한 칼날은 쉬이 핏방울을 떨쳐냈다. 잇신은 긴장을 풀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다가 한 마디했다.
"일어나라, 세키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늑대가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거리를 벌렸다. 저주받은 불사의 힘, 용윤. 용윤을 가진 자에게 한없이 불사에 가까운 힘을 주는 대신, 그 주변에서 생명력을 흡수하는 저주. 알고 있었다. 용윤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죽이면 될 뿐.'
검을 나누었고, 베었음에도 불구하고 늑대의 눈에는 여전히 수라의 그림자가 비친다. 이제는 손속을 두지 않으리라.
잇신이 검을 휘두름에 따라 일렁이는 불꽃이 모이고 흩어졌다. 그리고 그의 단전에 힘을 응축함에 따라, 도신의 물결무늬를 타고 불이 흘러나간다.
"흐으으읍-!"
힘을 담은 올려베기.
일견 굉장히 빈틈이 큰, 엉성한 동작이었지만 그 기세는 하늘을 가를 듯 했고, 검 끝에서는 불의 파도가 해일과도 같이 밀려왔다.
보이는 것은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어떤 특수한 장치도 없이 자신의 기량만으로 불을 다루는 것은 늑대에게도 상식 밖의 일이었다. 순식간에 화염이 그를 집어삼키고 날려버린다.
카드드득
바닥에 박은 검이 거칠게 다다미와 마루를 긁으며 늑대의 몸을 멈춰세웠다. 불길은 지나갔으나 잔염이 그의 몸에 원망처럼 들러붙은채 회복을 더디게 만든다. 변약수를 마신 이들이 불을 무서워하는 까닭은, 이처럼 불이야말로 불사의 회복력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타버린 허벅지를 딛고 억지로 몸을 일으킨 늑대에게 다시 칼이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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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늑대는 눈을 떴다. 몇 번이나 죽었지? 몇 번이나 일어났지? 이미 셀 수조차 없을 만큼 죽다 살아나길 반복한 듯하다. 화염을 두르는 잇신의 검술은 빈약한 한 자루의 도로 대응하기엔 택도 없었다. 번번이 밀려나서, 불에 태워진 후 목이 날아갈 뿐. 이미 걸치고 있던 옷은 넝마나 다름이 없었고, 용윤의 힘으로 회복함에도 불탄 자국들은 그의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쇠와 뼈로 만들어진 의수도 손상이 커져서 삐그덕 거리며 간신히 움직일 뿐이었다.
한편 잇신도 이미 한계에 가까운 듯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석양이 질 무렵부터 시작된 싸움은 어느덧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차라리 일국의 군대와 맞선다면 피로감이 덜 할 텐데, 죽여도 죽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는 것은 그의 육신과 정신에 막대한 부담을 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을 휘두른다. 불길을 머금은 칼의 궤적이 어두운 천수각을 밝히며 호선을 그렸다. 그러나 처음에 비하면 확연할 정도로 느린 속도. 땅으로 꺼지듯이 자세를 낮춘 늑대의 머리 위로 불꽃이 지나간다. 숙인 상태에서 좌수 장타. 타격을 위한 장타가 아닌, 밀어내기 위한 장타다. 무거운 의수가 잇신의 검을 밀어내며 그의 균형을 흔들었다.
"아직 멀었다, 세키로!"
순식간에 몇 합의 검격이 서로를 향한다. 점차 속도를 더해가며, 늑대의 검이 조금씩 잇신의 검을 밀어낸다. 그리고 잇신의 자세가 흔들린 순간, 숨겨놨던 의수의 장치가 발동한다.
타다다당!
순식간에 흩뿌려진 화약이 터지며 섬광과 폭음으로 시야를 흐린다. 급히 소매로 눈을 가렸지만 아주 잠깐, 찰나의 틈이 생기는 것만은 막을 수 없다. 늑대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잇신의 소매 너머로 자신을 덮쳐오는 흐릿한 그림자가 보인다. 지체없이 칼로 내려친다. 날카로운 칼날이 놈의 몸을 비집고, 토막 내는 감각이 손끝으로 전해 진다.
그리고 잇신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불길한 예감. 이윽고 시야를 회복한 잇신이 경악에 눈을 부릅뜬다. 허리가 잘린 채 허공에 뜬 에마. 동시에 그녀의 잘린 신체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늑대의 찌르기.
검을 들어 막는다.
역부족이다. 지치고 노쇠한 신체는 힘에서 밀린다.
검이 튕겨나가며 잇신의 가슴팍이 열렸다.
"…세키로여… 베어주지… 못한 건가…"
큰 별이 저물었다.
혼란한 전국시대, 전운이 끊이지 않던 세계에서 누구보다 밝게 빛났던 그의 이름은 아시나 잇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량이었지만, 노쇠한 신체는 결국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불사의 힘에 무릎을 꿇었다.
늑대는 쓰러진 잇신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살생의 붉은 유열에 그의 입꼬리가 전에 없이 귀에 가까워진다. 그때 그의 뒤로부터 거대한 그림자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그의 의부, 올빼미였다.
"이쪽도 일이 잘 풀렸다."
그의 왼손에는 아시나 겐이치로의 수급이 들려있었다. 그는 불사의 몸일진데 어찌… 그런 의문이 잠시 들었으나, 의부의 다른 손에 들린 칠흑빛 태도를 보는 순간 의문이 해소되었다. 또 다른 불사베기, 이름은 '개문'이라 하였던가. 겐이치로는 늙은 의부에게 제압당해, 칼까지 빼았기고는 불사베기로 참수당해 죽었으리라. 참으로 한심한 최후다.
"그나저나, 아무리 잇신이 늙었다지만 그를 이길 줄이야."
잇신이 쓰러지자마자 나타났다는 것은, 어디엔가 숨어서 상황을 줄곧 지켜봤다는 의미이리라. 만일 늑대가 진다면 소리 없이, 등 뒤에서 잇신을 찔렀으리라. 이기기 위해,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의부는 그리 말했었다. 올빼미는 자랑스럽다는 듯 늑대에게 속삭였다.
"역시 내 아들이다."
닌자로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몸에 갈고 닦아온 모든 기술을 전수했다. 전장에서 주워온 들개였으나, 이리도 훌륭하게 성장해 마침내는 검성조차 꺾어 보일 만큼 강해졌다. 어찌 자랑스럽지 않으린가.
아시나의 군주인 잇신, 그리고 그 후계자인 겐이치로는 제거했다. 불사의 힘의 원형인 용윤과 그 주인인 신성한 계승자도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게다가 아시나 지하에서 비밀리에 연구된 불사의 비법, 변약수를 사용한다면 불사의 군대마저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된다면 내부군조차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다.
올빼미는 불타는 천수각을 뒤로하고 난간에 섰다. 그리고 지금껏 수많은 멸시 속에서 감춰왔던 야망을 고함으로 질러냈다. 그의 이름, 올빼미가 아닌 자신의 진명을 온 세상에 떨치고자 하는 야망을…
"나, 우스이 우콘사…!"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올빼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검을 붙잡았다.
그의 가슴을 뚫고 나온 늑대의 검을.
분명 자신의 비기인 '그림자떨구기'. 뒤에서 접근해 역수로 급소를 찌르는 고속 암살 기술이었다. 아무리 성취감에 흥분했다지만 자신의 기술인데 눈치조차 못 챘다니, 훌륭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네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올빼미는 간신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늑대의 눈과 마주쳤다.
바닥이 없는, 심연을.
끝없는 심연의 눈동자 속에서는 한 마리 괴물이 온 세상을 불태울 듯한 모습으로 숨어있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다. 그래, 수십 년 전, 아시나 쟁탈전 때의 그놈이다. 진실을 깨달은 올빼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다.
"수라…!"
우드득.
늑대가 검을 쥔 손목을 꺾자, 뼈가 비틀리며 단숨에 상처를 벌려놓았다. 피 끓는 소리와 함께 올빼미의 거구가 무릎 꿇으며 쓰러졌다.
비록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거두어주고 길러준 의부를 단숨에 죽였다. 늑대는 웃는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불사베기를 주워들었다. 아, 생을 앗아가는 것은 이리도 기분이 좋구나. 이전에 미처 몰랐다.
늑대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인 불사베기 두 자루는 모두 그의 수중에 있다.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다.
뒤에서 한때 섬겼던 계승자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린다.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오른눈에서부터 원망의 화염이 먹물처럼 흘러내려 스스로의 몸을 태운다.
하늘의 달도 불타듯 일렁인다.
천수각도 불탄다.
그리고 이 세상도 불타야 마땅하리라.
념글 2트?
뒷부분 다들 안 좋아하길래 수정해옴
야설 아니라 개추줌
왜 정상적임?
왜에마랑안야스 - dc App
필력 개지리네
글쓰는게 업임?
전문가 냄새 물씬 난다
필요한걸 빠짐없이 묘사하면서도 문장에 늘어짐이 없네. 대단하다 ㄹㅇ. 게임 할 때 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무엇보다 글 읽으면서 게임 속 장면 or 컷신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는데, 게임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비틀었다 느껴지는 부분이나 반대로 게임과 완전히 떨어져서 혼자 논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음. 상상으로 덧댄 부분과 그대로 따른 부분의 밸런스가 정말 절묘하다.
글쓰는게 업이고 싶다..아직 많이 부족함
뭐야 왜 안 점자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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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로 옷이 불타버렸다고 했을 때 이제 시작인가 생각했었는데 왜 정상적인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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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주거
진짜 ㄱㅆㅆㅆㅅㅌㅊ 세키로 소설판 내주라
글 존나 잘쓰는데 잇신이랑 게이 섹스 할까봐 조마조마하고 봤다
에마 고기방패 미쳤노
것보다 겐붕이는 수라한테도 한심하다고 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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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 ㄱㅆㅅㅌㅊ
에마한테 꼭두각시술 쓸 줄 알았는데 정상적이네
개웃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