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보는 국궁은 다양한 재료를 조립해서 만든 복합궁이다. 전통적인 복합궁을 각궁(角弓)이라고 하는데,
당시 한국에는 나지 않는 물소의 뿔이 주요 재료였기에 제대로 만든 각궁은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각궁은 활의 몸체(활대)를 산뽕나무로 만들었다. 그리고 표면을 실로 감고 옻칠을 한 다음 얇게 편 물소뿔을 활대에 덧대고
아교와 같은 접착제로 붙인다. 그 위는 다시 실과 가죽으로 단단히 감아둔다.
활은 평상시에 왼쪽처럼 보관하다가 전투가 있을 때 활시위(현)를 연결해 우리가 흔히 하는 활의 형태로 만들었다.
항상 오른쪽처럼 활시위를 연결해두면 활대가 휘어버려 화살의 위력과 사거리가 급감하기 때문에
안 쓸 때는 반드시 시위를 벗겨서 보관해야했다.
또한 활시위를 걸었다고해서 바로 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위를 건 다음에는 활대(활의 몸체)를 자신이 쏘는 형태로 맞춰야한다.
활대의 윗부분이 오그라들지는 않았는지, 시위의 수평이 맞는지를 꼼꼼히 살펴야하며
휘어진 부분이 있으면 타지 않게 불에 쬐어 조정을 충분히 해둬야만 사수의 솜씨대로 살을 날릴 수 있었다.
그림의 왼쪽부터 일본활, 몽골(중국)활, 국궁이다.
몽골활이나 국궁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차이점이 꽤나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일본활은 보기에도 알 수 있듯이 매우 거대하다.
일본궁은 220cm가 표준 길이이며 이것보다 더 길면 길었지 짧은 것은 거의 없다.
국궁과 몽골활이 80~130cm가 평균인 것을 볼 때 2배이상 길이가 길다.
때문에 활을 쏘는 자세도 많이 다른데, 국궁과 몽골활은 활대의 중심부분을 쥐고, 반대손으로 시위를 당기지만
일본궁은 활대의 1/3 지점을 쥐고, 반대손으로 시위를 당기는 사법을 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일본의 활은 크기가 큰 것인가?
그 이유는 일본 특유의 다습한 기후에 있다.
앞서말한 국궁이나 몽골활 같은 복합궁은 2가지 이상의 재료를 합쳐서 만든다.
탄성이 서로 다른 나무와 물소뿔처럼 2가지 이상의 재료가 결합하면 1가지 재료로 만든 단일궁보다 훨씬 위력과 사거리가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복합궁도 큰 단점이 있었으니,
고온다습한 곳에서는 2가지 재료를 묶어놨던 접착제(아교)가 녹아 활이 망가져버린다는 것이다.
일본은 매우 습기가 많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일본의 활은 이런 복합궁 형태로 발달할 수 없었고,
하나의 재료만 사용해서 만드는 단일궁으로밖에 발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과 똑같았던 것이 바로 영국의 롱보우이다.
롱보우 역시 복합궁을 습기가 많아 복합궁을 사용하기 어려웠던 영국이 주목으로 활을 만들어 사용하게 된 것이 롱보우의 기원이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일자로 매끈한 활대를 볼 수 있다.
활을 크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복합궁은 서로 다른 탄성을 가진 물질을 교묘하게 조립해 작은 크기로도 훨씬 더 높은 위력과 사정거리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단일궁은 하나의 물질만 가지고 만들어야하므로 복합궁만큼의 위력과 사정거리를 가지려면 필연적으로 활대 자체를 크게 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영국은 활을 만들기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나무인 주목(yew)이 많아서 이 주목으로 롱보우를 만들어 유럽을 휩쓸었지만
일본에는 주목 같은 좋은 나무조차 없었다.
그래서 일본은 좋은 활을 만들지 못했고, 전국시대에서 일부 가문이나 승병들이 소수 사용하긴 했지만
워낙 사거리도 짧고 위력도 약해 거의 의미가 없었다.
일부 다이묘들은 조선과 여진의 복합궁을 수입해와서 사용하려했지만, 비싼 돈을 들여 수입해와도 일본의 기후에선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망가져버려 큰 효용성은 없었다고 한다.
정보추
지식추
공돌이추
겐붕이추
겐붕이 존나 금수저였노
튜토겐붕활이랑 토모에겐붕이활이랑 다른거였네ㅋㅋㅋㅋ
개추
일본 전국시대 때 원거리 무기는 활보다는 왠지 조총(일본명 타네가시마)이 라는 인식이 강한것 같더라
ㄷㄷ개추 - dc App
고증이랑 별개로 3년전 병사들은 불화살 잘만 쏘던데 그냥 총기발달로 안 쓰는 거 아님?
도적때라 총살 돈없어서 활쓴거 아닐까
겐붕이 활이 비대칭인 이유가 있었네 - dc App
ㅋ
일본 활은 브리튼 롱보우랑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위로 존나 길다는 거임 왜냐하면 활을 소형화 시키기엔 기술력이 부족하고 말을 타면서 쏘자니 활이 바닥에 끌리는 개병신같은 상황이 나타나니 위로 주우우욱 늘렷음
덤으로 활 소형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는 조선이 있음
단일궁이라고 하기엔 쟤네들 다른목재 접합해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정 보추
오나미 무사들 활 들고있지 않나?
오카미
걔네가 든 활도 겐붕이꺼가 워낙 커서 그렇지 오카미 상체보다 길다
이래서 애네들한테 조총이 널리퍼졌구나 활쓸려해도 저ㅈㄹ이고 그렇다고 원거리무기를 안쓸수도없는상황에서 나온게 조총
영국이랑 존나 큰 차이가 하나 있잖아 신장이랑 다리길이 ㅋㅋ 존나 짧아서 어쩔수가 없지
저 때는 영국도 존나 작았음 게르만 애들이나 컷지
급이다름 영국 13세기 평균신장 164고 좆본 평균신장 148임 성인남자기준 - dc App
지금보다 차이 더크네
8.37 / 13 세기때 일본 평균신장 156으로 아는데
조선활도 그냥 몽골활에서 나온거던데
물소뿔이용하는것부터 몽골기술가져온게 맞다는게 정설임 근데 삼국시대이전부터 복합궁을 제작해서 사용한 사료가있고 합성궁도 몽골기술이 들어오기전부터 존재했고 재료와 손질의 차이법만있음 - dc App
좆본이 저 좆병신같이 큰활쓸때가 13세기경인데 기원후 222년 고구려의 산상왕이 손권한테 야 니 출세하셨네요 하고 각궁을 선물로 보냈음 그때 각궁은 고구려기술로 제작된걸로 이후 몽골재료랑 기술수입전의것으로 소의 갈비뼈를 이용한 각궁이었음 각궁이라하긴좀 어폐가있는데 여튼 몽골기술들어오기 수백년전에도 합성활에관한 기술은 있었음 - dc App
복합궁이랑 합성궁의 차이는 복합궁은 나무를 여러종류쓴거라보면되고 합성궁은 나무랑 다른재료(동물의 뼈, 강철 등등)을 활대에 아교같은걸로 접합시킨것을 말한다보면됨 - dc App
인왕에선 활 잘만 나오는데 그냥 게임 플레이랑 안맞아서 안나오는거지
굳이 판타지게임에서 고증할이유는없긴한데 따지자면 고증오류임 인왕에서나오는활은 잡몹이쓰는활을 보면 일본활이아니라 영국식 롱보우에 일본식장식을해둔것처럼보임 자세하게안봐서 맞다아니다를 확실하게못하겠긴한데 - dc App
좆본식활은 크게 네 종류임 교토 비슈 사츠마 에도 이렇게 4갠데 공통점은 전부 다 존나큰거임 활이 뒤지게 크다보니까 드로잉 렝스(활시위당기는거리)가 귀 뒤쪽까지 당겨야했음 보통 왼손으로 활대를 잡으면 오른손으로 당겨서 오른쪽젖꼭지까지만땡겨도 ㅈㄴ많이땡기는거임 - dc App
여담인데 아마존여전사가 젖탱이 짜른다는 말이 나온 이유도 거기있는거고 시위를 ㅈㄴ땡겨야되니까 명중률이 심각하게떨어지게되고 본문에도있던데 이게 활이 질질끌림 좆본인 키가 좆만한것도있는데 활이 너무 컸거든 그래서 아랫쪽을 잡고쏘게됨 그러니까 뒤지게 안맞는거임 - dc App
일본의 유명한 검사가 쓴 오륜서란 책에 활이란건 30보밖에선 유효살상도안되고 치명적이지도않다라고적음 하즈야리라고 활의 길이가 2미터가 넘다보니 활대윗쪽 끝에 15센티가량의 단검을 붙여서 총검처럼 사용한게 유용한 사용법이란 말도있음 - dc App
ㄴ 일본도 짧은 활 있엇는데
8.37 / 뭔 걔가 혼자 쓴걸로 그게 확실한 의견이면 신립이 조총 병신이라 했다는것도 확실한 의견이냐 ㅋㅋㅋ 그래서 털렷고
신립 사례는 조선인이 일본 총 평가한 거고 오륜서는 무기 전문가가 활에 관해 쓴 건데 당연히 신뢰도가 차이가 나지 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