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은 눈을 떴다.

아니, 어쩌면 눈을 감은것인지도 모른다. 확실한것은 직전에 눈알이 잔뜩 달린 탯줄들을 뭉갠것 뿐이었다.

아니, 그 또한 확실하지 않다네.

게르만의 목소리였다. 그는 더 이상 휠체어에 앉아있지 않았다.
남아있던 하나의 다리마저 어디론가 사라진 그를 인형이 목마태운 상태였다.

물론, 게르만의 다리는 그를 사랑했답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들이 그렇게 만든것 아닌가요?

과연, 일리있는 말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다리는 더 이상 그 노구에 깔려 고통받을 이유가 없으리라.
그때 어디에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질척.질척.  

어떤 연체동물이 기어가는 소리 같기도, 혹은 파도치는 물소리 같기도 하다.

소리의 정체는 학장 윌럼이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요량으로 보였지만 그는 사고의 입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이를 모두 뽑아낸 상태였다.

몽롱하다. 윌럼 노인의 모습이 원래 저렇게 뿌옇던가?

상념은 곧 학장의 입에서 나는 질척이는 소리를 더 듣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아델라의 목소리에 의해 깨졌다.

멍청하긴.
질척이는 소리는 단지 우물거림으로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되려 그것은 야남의 주민들이 원하기에 나는것이다.

그 무지함을 견딜 수 없던것이 혼자뿐은 아니었는지 노파가 호리병에 아델라를 가두어버렸다.

아가야, 고민이라도 있니?

고민이라. 고민은 언제나 많다. 그렇게 답하자 노파는 웃으며 호리병을 건넸다.

의미는 자명하다. 고민없이 호리병을 들어 그 안에 든 것을 입 안에 쏟아넣었다.

질척, 질척, 우리를 더 높은 사고로 인도하는 물소리가 들리시나요?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얼마간 입속에서 굴리다 아델라를 씹어 삼키자 그제서야 소리가 났다.

질척.

쫄깃하기를 바랐건만 아델라의 식감은 물컹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더 이상 아무도 없었다.

아니, 원래 이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희뿌연 공기를 헤쳐나가자 로렌스와 루드비히, 그리고 아멜리아의 실루엣이 보였다.

로렌스가 양손에 두개골을 들고 둘 중 어느것이 자신의 두개골이 자신의 것인지 고민하는 사이 루드비히가 신성 월광검으로 내리쳐 진짜 두개골을 판별하자고 정중히 제안했다.

과연 아멜리아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황금혈정석이 되어있었다.

아니, 되었다는 표현은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애시당초 그녀의 본질은 황금혈정석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집어들어 무기에 박아넣으려 했으나 아름다운 이질적인 장송의 칼날은 어디론가 사라진 채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질적인 장송의 칼날 같은것은 수중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황금혈정석, 아니 아멜리아는 더 이상 필요없어졌다.

근처에서 시체를 다지던 개스코인 신부에게 던져주니 물방울 혈정석으로 변한 자신의 아내와 말동무를 시키겠다며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오, 멋져라!

무엇이 멋진지 물어보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깁니다, 여기에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엔 다시 태어난 자의 시체더미에 파묻힌 미콜라시의 모습이 있었다.

오, 코스. 누군가는 코슴이라 부르겠지. 롬에게 그러하셨듯이 우리에게 사고의 눈을 주소서, 주소서.

하지만 미콜라시로서는 영원토록 사고의 눈을 받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코스의 시체는 이미 저쪽에 널부러져 자신의 유자에 의해 태반을 먹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모의 시체에 태반을 밀어넣는 유자의 모습은 흐뭇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곧 흥미를 잃고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닻에 몸이 꿰뚫려 처량하게 비명을 지르는 레이디마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정작 그 닻을 든 혹 난 머리(상어거인)은 신경쓰지 않고 배가 부른지 나른하게 앉아있었다.

만약 그녀가 라쿠요를 우물에 버리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모를 일이다.

이곳은 이미 충분히 평화로웠으므로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계속해서 유리창 끝에 부서지는 달빛을 감상하며 나아가다 한 무리의 사냥꾼들을 만났다.

피에 취한 사냥꾼들은 계속해서 야수병 환자들을 향해 계단 아래로 달려가고, 그 위에 매달린 아미그달라는 부지런히 그들을 계단 위로 올려보내고 있었다.

계단 아래에서는 늙은 사냥꾼 듀라가 야수병 환자들에게 반쯤 먹혀가며 자신의 개틀링건으로 야수를 향한 러브레터를 벽에 새기고 있었다.

하지만 로랑의 은빛 야수들은 머리가 옆으로 돌아가 있었기에 듀라의 애달픈 고백을 제대로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런 애달프고 안타까운 장면을 오래 보고 있기란 힘든 일이었기에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계단을 달려 내려가 올려보내지기를 반복하는 사냥꾼들을 뒤로 했다.

사람은 자고로 따스한 광경에서 위안을 얻으며 살아가야 하는 법이다.

이를테면 저쪽에서 메르고를 끌어안고 기쁜듯이 얼러대는 야남 여왕같이 말이다.

야남의 그림자들과 메르고의 유모 역시 그 광경을 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마 여왕이 안고 있는것은 사실 붉은 젤리나 그 비슷한 무언가일 것이다.

진짜 메르고는 옛저녁에 성배던전에 공물로 바쳐버렸지만 굳이 그런 중요하지도 않은 사실을 알려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보라, 저 위대한 혈족의 여왕 애나리스 또한 그 광경을 따스한 눈빛으로 보고있지 않은가.

그녀는 잔에 가득 담긴 피의 타락을 홀짝이며...
이런, 잔에 담긴건 피의 타락이 아니라 벌레였던 모양이다.

기겁하며 잔을 내던진 애나리스를 보고 발트르가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애나리스는 발트르를 일갈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알프레드가 헨릭을 바퀴로 갈아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 처형단은 리그와 동69맹이며 혈족과 적대하니 마찬가지로 애나리스를 위해 리그인 헨릭을 갈아버리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쪽에 다소곳히 앉아있는 성직자야수의 배우자는 누구란 말인가? 물론 카인허스트 피의 까마귀일 것이다.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헨릭을 살리려 애쓰는 롬을 뒤로 하고 성직자야수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다가가기 전까지만 해도 화목했던 성직자야수와 피의 까마귀의 모습은 어느샌가 치정싸움으로 변해있었다.

듣자하니 성직자야수가 까마귀 에일린과 바람을 피운 모양이었다.

치열하게 싸우는 피의 까마귀와 에일린의 사이로 갑작스레 발트르가 끼어들었다.

공정명대한 판결을 내려주겠노라 말하는 발트르를 바라보는 두 까마귀의 의심섞인 눈초리는 곧 무한궤도 톱에 갈려 흔적도 남지 않았다.

발트르는 다진 고기가 된 두 까마귀를 세심히 모아 일대 일 비율로 뭉쳐 성직자 야수에게 건넸다.

경단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성직자 야수를 축복하는 야생 까마귀들의 모습이란 아름다운 것이었다.

과연 리그의 주인다운 완벽한 해결이라 할 수 있겠다.

감상에 빠져있는동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람~~람~---람 람 람~~~

고개를 돌리자 흐느껴 우는 멘시스의 뇌를 위로하는 발광녀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서 함께 위로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단념했다.

멘시스의 뇌가 눈이 부실 정도로 지나치게 아름다운 탓이었다.

저런 아름다움은 멀리서 보기에 그만한것이 없지만 가까이 두면 독이 되는 종류의 것이다.

반면 가까이 두어 도움이 되는것은...

그래, 지성과 미모, 강함을 두루 갖춘 저 이브리에타스와도 같은 것이다.

귀여운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로즈마리누스를 들어 분사하자 이브리에타스는 간지럽다는 듯한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그 모습을 오래도록 감상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로즈마리누스에 이브리에타스의 몸이 몽땅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브리에타스가 낸 소리와 몸짓은 고통스럽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별의 아이들이 그 녹아버린 잔해에 모여 빨아먹는 모습을 보니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성직자 야수가 있던 곳으로 가보니 브라도르가 그 가죽을 벗겨 뒤집어쓰고 고기 경단을 씹어먹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시몬이 혹여나 경단의 파편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빛이었지만 브라도르는 조각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알뜰하게 먹었기에 결국 시몬은 배를 곯았다.

그러던 중 시몬이 쓸데없이 살갑게 다가와 동행해도 되겠느냐 물었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에게는 바퀴도 무한궤도톱도 없었기에 갈은 고기가 될 걱정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수락의 뜻을 전하자 시몬은 기뻐하며 브라도르의 머리에 화살을 명중시켰다.

계속 길을 가다보니 루드비히의 머리가 굴러다니기에 붙들었다.

선량한 사냥꾼이여, 로렌스를 보셨나요?

간단히 주변을 살피자 곧 두개의 두개골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것이 로렌스의 진짜 두개골인지 알 수 없기에 하나를 시몬에게 맡기고 함께 루드비히에게 가 질문했다.

저는 결코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단코, 정말입니다.

영문을 모르겠는 소리만 해대기에 대충 근처에 굴러다니는 신성 월광검을 머리에 꽂아주고 길을 떠났다.

곧 개스코인 신부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그는 황금 혈정석이 된 아멜리아를 마찬가지로 물방울 혈정석이 된 자신의 아내를 위해 가져와 두었지만 실제로 그 둘이 대화를 하고 있는건지 알아볼 수가 없어 곤란한 모양이었다.

오랜시간 고민하던 그는 좋은 생각이 난 듯 자신의 야수사냥의 도끼를 꺼내더니 곧 그곳에 아멜리아와 자신의 아내를 박아넣었다.

그리고 곧 어디에선가 어울리지도 않는 붉은 리본을 꺼내더니 자신의 도끼 손잡이에 묶었다.

듣자하니 개스코인 신부의 딸인 모양이었다.

그의 가족 사랑은 눈여겨볼만 하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라며 오르골을 꺼내 멜로디를 틀었지만,
자신의 등장 음악이라고 착각한 메르고의 유모에 의해 개스코인 신부는 물론 야수사냥의 도끼마저 형체를 알 수 없이 파괴되었다.

비극적인 모습이었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것이 없기에 계속해서 길을 나아갔다.

미콜라시의 미라와 애나리스의 살점을 지나 발가벗고 노는 발트르와 알프레드를 만나고,
마침내 다시 게르만을 만났다.

아니, 다시라는 표현은 이상하다.
이번이 첫 만남 아니었던가?

애초에 그의 이름이 게르만이라는것은 어떻게 안 것일까?

하지만 그런 의문은 곧 쓸모없는것이 되었다.

그의 손에 들린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름다웠다.

그것은 위대했다.

그것은 이질적이었다.

이질적인 장송의 칼날을 들고 두 다리로 일어선 게르만이 목숨을 맡기겠냐고 물어왔다.

물론, 이질적인 장송을 위해서라면 목숨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그것을 위해 몇번이나 죽어왔지 않은가?



게르만이

목을 향해

장송의 칼날을




다.

질끈 감은 눈을 떴다.

눈앞에는 고요한 아침의 야남에 드리우는 햇살...따위는 없었다.

어리둥절해 옆을 바라보자 게르만이 자신의 빈 손을 보고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애초에 게르만의 손 안에 이질적인 장송의 칼날은 없었던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이 모든 악몽은 영원히 계속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