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때 주의사항: 게임 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사와 아이템 문구를 바탕으로 최대한 개연성 있게 풀어내고자 노력했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뇌피셜 돌린거나 다름없어서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함.

게임 내 설정으로 '이건 왜 이렇게 썼음?' 이라고 물어보면 최대한 답변해보도록 하겠음.


100kb 분량이라 하루에 1편씩 업로드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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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릴리-


멀리서 메아리치는 새의 노랫소리에 눈을 뜬다. 이곳은 늪의 독기가 올라오는 극한의 땅, 새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그녀다.

남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수백, 수천 번을 본 풍경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위로는 깎아지른 단애절벽, 아래로는 발 딛을 곳 없는 천 길 낭떠러지. 떨어진다면 분명 죽으리라. 이곳에 막 왔을 때는 발을 헛디뎌 떨어질뻔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늪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독기는 반응을 느리게 만들고, 짙은 안개는 지형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그만큼 실력이 빠르게 상승해나갔다.

남자는 단전에 힘을 모았다. 뜨거운 기운이 단전을 지나 허벅지, 종아리를 통해 발로 퍼져나간다.


“흡!”


작지만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발을 딛고 있던 나무가 활대처럼 낭창하게 휜다. 성인 남성의 몸뚱이만큼 두꺼운 나무가 비명을 질러댄다. 이윽고 한계에 다다른 나무 기둥이 반대로 튕겨지며 남자를 화살처럼 쏘아 보냈다. 순식간에 수십 보 거리를 도약한 사내가 전방의 나뭇가지를 잡아채고는 공중재비를 돌았다. 그리고 몸 전체에 반동을 주어 다시 한 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흡사 원숭이와도 같은 몸놀림. 이곳에서 수천의 밤을 보내며 얻은 그만의 특기였다.


그렇게 몇 개의 나무를 거침없이 지나치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무릎까지 오는 물이 가득하고, 높게 솟아오른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있는 저수지. 그곳의 가장 높은 나무의 꼭대기에 쿠노이치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물총새."

"왔구나, 성성이."


쿠노이치가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물을 밟았다. 사람이 뛰어내린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퐁-하고 튀어 올랐다 물속으로 사라졌다.

물총새와 성성이. 그들 스스로 붙인 이름은 아니었다. 종종 이 낭떠러지 계곡에 수련을 오는 쏙독새 무리가 붙인 이름이었다. 남자는 낭떠러지에서의 움직임이 흡사 원숭이와 같다고 해서 '성성이', 여자는 물 위에서의 움직임이 흡사 사냥을 하는 물총새와도 같다고 해서 '물총새'라는 이명으로 불렸다. 그 별명이 썩 마음에 들었기에 이제는 이 두 명도 서로를 물총새와 성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준비는 됐어?"


성성이는 말없이 허리춤에 맨 도끼를 빼들었다. 무거운 흑철의 도끼. 그 무게와 투박함 때문에 베기보다는 때려 부수는 무기에 가까워 닌자에게 어울리는 무기는 아니었지만, 성성이의 기민한 움직임 덕에 무서울 정도로 일격의 파괴력을 살린 무기가 되었다.

한편, 물총새는 등짐으로 메고 있던 거대한 노다치를 빼들었다. 저 가녀린 몸에 훌륭히 대비되는, 무기 주인의 키와 비슷할 정도로 길고 커다란 태도였다.


물총새는 태도를 든 채로 왼손의 검지를 입에 물었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독특한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를 피리처럼 불어 물총새 울음소리와도 같은 것을 낸다.


피릴리-

…그리고 피리 소리는 짐승을 끌어들인다.


-끼야악-!!!


날카로운 기성과 함께 저수지 안쪽에서부터 원숭이 여러 마리가 달려 나왔다. 특이하게도 원숭이들은 삿갓을 쓰고 두 자루의 소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낭인 무사를 흉내내는듯한 모습. 이 원숭이들은 계곡에서 수련하는 닌자들을 보고 무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의 원숭이들은 인간을 본 따 강해졌다. 그리고 성성이와 물총새도 다시 이 원숭이를 본 따 강해졌다.

물총새와 성성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나무 열매를 가지고 티격태격하던 사이었으나, 지금은 서로의 훈련 상대가 되어 실력을 갈고 닦는데 여념이 없었다.


도끼를 움켜쥔 성성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들은 한낱 짐승 따위가 아니다. 계곡 밖으로 나간다면 어지간한 사무라이조차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원숭이였다. 그런 원숭이가 도합 십여 마리. 수련의 막바지에 들었으나 얕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끼에엑!


고함과 함께 원숭이가 달려들었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크게 휘두르는 교차베기.


'하지만 타격점이 너무 높지.'


생각보다도 먼저 몸이 반응한다. 성성이는 밑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 원숭이의 배후를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림 같은 발차기. 등을 걷어차인 원숭이가 붕 떠서 날아갔다. 동시에 그는 무거운 도끼를 축으로 삼아 빠르게 공중제비를 넘어 따라붙었다. 본래는 쏙독새들의 기술이나, 이런 식으로도 응용할 수 있었다. 다음 순간 원숭이의 목을 노린 그의 발차기가 작렬했다.

첨벙-

공격이 들어가는 느낌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물속에 처박힌 원숭이는 기절하여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움찔.

순간 목덜미의 솜털이 서며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성성이는 공중으로 높게 도약했다. 그의 느낌대로, 방금까지 그가 서있던 자리에 소태도가 스치듯이 수면을 가르고 지나갔다.

대련이라고 했지만 손속을 두지는 않는다. 패배하면 물러나지만 싸울 때는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것이 이들이었다. 성성이는 도약한 채로 몸을 뒤집어 공격자의 머리를 밟고 다시 뛰어올랐다. 그리고 지면으로 내려오면서 목덜미를 잡아채 던졌다. 그 자신의 무게에 더해 낙하하는 속도까지 담아낸 던지기. 원숭이는 마치 대포로 발사한 듯 낭떠러지 밑으로 쏘아져 사라졌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숭이니까. 아마도.


잠깐 숨을 돌리며 물총새를 본다. 그녀는 그 거대한 태도를 믿기지 않는 속도로 휘둘러 주변의 원숭이들과 겨루고 있었다. 유연하면서도 무게가 실린 교묘한 공격에 원숭이들은 그녀의 근처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뒤로 살금살금 접근하는 원숭이가 보였다. 배후를 노리려는 모양. 이미 높게 들어 올린 소태도를 보고 성성이는 지체 없이 갈고리를 던졌다.


-끼엑?!


갈고리에 체중을 실어 당기자 원숭이가 맥없이 딸려 날아왔다. 날아오는 원숭이의 얼굴을 돌려차기로 꺾어버린 성성이가 심기 불편한 얼굴로 불만을 쏟아냈다.


"뒤."


물총새는 그 말을 듣곤 잠깐 성성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베시시- 하고 웃어보였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실력은 뛰어났으나 빈틈투성이. 닌자는 정을 주지 않는다지만, 이미 수년을 함께한 물총새에게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불만 표시를 한 성성이는 다른 원숭이를 상대하기 위해 도끼를 고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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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고된 싸움이 끝나고 주변에는 만신창이가 된 원숭이들이 뻗어있었다. 성성이와 물총새의 완벽한 승리였다. 이제 이곳에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다. 둘은 호수를 내려가 나무를 타고 이동했다.


"내일이 마지막이구나."


물총새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스승 없는 닌자로써 이곳에 모인 둘이었지만, 앞으로도 함께일지 아닐지는 누구도 몰랐다. 같은 주군을 섬기게 될지, 함께 떠돌이 닌자로써 생활하게 될지, 아니면 전장에서 적으로 만날지, 예상할 수 없는 것이 닌자의 삶이었다.


"…"


그러나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성성이는 나무에 걸터앉아 조용히 조각을 깎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물총새는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다 자신의 잠자리로 떠났다.


서걱-서걱-

나무 토막을 깎는 것은 잡념을 다스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 빚어내는 형상은 다양하다. 골짜기의 다양한 동물들, 부처상, 심지어는 나무토막을 깎아 만든 나무까지. 지금 깎고 있는 건…


"잘 된 것 같군."


달빛에 조각한 것을 비춰본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고리 형상의 그것은, 마치 달을 감싸안은 듯 달빛을 둘렀다.

…반지였다.

반지 뒤에는 작게 '물총새'라고 이름을 새겨놓았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반지를 깎아내길 수 일, 마침내 걸작이 완성된 것이다.


성성이라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과연 이 반지를 줄 수 있을지.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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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성성이…!"


눈이 번쩍 뜨인다. 물총새의 부름에 성성이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빛으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


"원숭이들이 공격받고 있는 것 같아."

"…?"


귀를 기울이자 흉포한 짐승의 포효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방향은 저수지 쪽, 원숭이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그 원숭이들… 우리 친구잖아…"


'친구'라.

칼을 들고 설치는 짐승이 친구라는 말을 하는 것인가. 성성이는 여전히 이해 못하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도와줘야지…"


성성이는 묵묵부답이었다. 자신의 '친구'가 공격받는 상황에 마음이 급해진 물총새가 거친 동작으로 일어났다.


"네가 안 가겠다면, 나 혼자서라도 가겠어."


그리고는 절벽을 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홀로 남은 성성이는 조용히 그녀의 눈빛을 되뇌었다. 무척 실망스럽다는 눈빛.


'친구’


전란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잃고 이 낭떠러지에 들어온 그에게 친구란 참 생소한 단어였다. 많은 세월을 함께 보낸 것은 사실이다. 성성이는 원숭이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되뇌어보았다.


쉽게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이곳에서 과일을 두고 다툰 적이 있었다.

나무를 타다가 미끄러진 그를 비웃고는 구해준 적이 있었다.

이곳에 온지 1년쯤 되는 날, 원숭이들이 나무바가지에 이상한 액체를 담아서 가져온 적이 있었다. 귀하디 귀한 과일로 만든 원숭이술이었다.

속에서 불이 나올 만큼 뜨거운 맛이, 반할만큼 맛있었다.


성성이는 도끼를 들고 일어섰다. 가슴 한 편이 무거웠다.


'생각해보니 술값을 낸 적이 없었군.'


그저 그뿐인 이유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나무가 거칠게 휘며 성성이의 몸이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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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허엉-!


포효 소리가 지척에 이르렀다. 동시에 원숭이들의 힘없는 비명소리도 들려왔다. 성성이는 곧장 적의 존재를 눈에 담았다. 적의 정체는…

거대한, 거대하고 거대한 원숭이 단 한 마리였다.

커도 너무 컸다. 놈의 머리통은 사람을 통째로 씹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고, 놈의 흉물스런 손톱은 하나하나가 성성이의 팔뚝만한 크기였다. 심지어 어찌나 단단한지, 맞서고 있는 물총새의 태도와 부딪히자 금속을 때린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흡사 옛 전승에나 나올 법한 신령에 비견될 모습이었다.


"성성이!"


물총새의 다급한 외침에 정신을 차린 성성이가 갈고리로 날아올랐다. 나무에 발을 딛자마자 힘을 모아 놈을 향해 도약한다. 그리고 왼손에 잡은 도끼를 힘껏 내려친다. 체중을 실은 파괴적인 일격-

투욱-


"…?"


단단한 뼈를 친 느낌도 아닌, 살을 잘라낸 느낌도 아닌, 주먹으로 북을 친 것 같은 느낌.

예상하던 감각이 아니기에 당황한 성성이에게 놈의 신경질적인 주먹이 날아왔다. 그 자신의 신체만한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급하게 몸을 뒤집어 흘려보낸다. 어지간한 짐승놈이 아니었다. 바위도 쪼개는 일격일진데 털가죽조차 뚫지 못하고 도끼가 튕겨져 나온 것이다.


"이게… 사자원숭이…"


물총새의 겁에 질린 중얼거림이 들렸다.

사자원숭이.

물론 성성이도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이 낭떠러지 계곡의 주인이라고. 그러나 물총새와 성성이가 수련하던 몇 년 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기에 단순한 소문으로 치부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러나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사자원숭이가 왜 나타났는지가 아니었다. 어떻게 물총새와 원숭이들을 안전하게 퇴각시킬지가 문제였다. 다만 대부분의 원숭이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황이라 선택지가 없었다.

성성이가 도끼를 고쳐 잡았다. 퇴각은 불능. 그렇다면 저것을 죽이는 수밖에 없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차갑게 식은 눈으로 물총새와 눈빛을 교환한다. 몇 년간 함께 수련했기에 서로의 움직임은 수족과도 같다.

먼저 움직인 쪽은 물총새였다. 이곳은 물로 가득 찬 장소. 사자원숭이가 이 얕은 물에 얼마나 제약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물에서의 움직임은 성성이조차 물총새를 쫒을 수 없다. 그녀는 이름 그대로 물총새. 물총새가 수면에 발을 튕기며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사자원숭이도 곧장 물총새를 쫒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성성이는 갈고리를 걸어 나무 위로 올라갔다. 할 일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이윽고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온 물총새가 성성이가 매달린 나무 아래로 놈을 유인해왔다. 기회는 지금.


성성이는 뛰어내리며 힘차게 도끼를 휘둘렀다. 노리는 곳은 아까처럼 목덜미가 아닌 머리통.

가죽이 얆은 곳을 노려 골통을 쪼개놓을 생각이었다.


퍽-

느낌이 왔다. 하지만 약하다. 이마의 얆은 가죽을 뚫긴 했으나 두개골을 쪼개지 못하고 도끼가 튕겨 나오고 말았다.

어차피 한 번에 뚫리리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아마 실금 정도는 났겠지. 성성이는 침착하게 갈고리를 던져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한편 사자원숭이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저수조를 굴러다녔다. 고작 이마에 생채기가 난 정도로 저 난리라니, 엄살이 심한 놈이었다.

그러나 엄살이 심한 것과 반대로 지능만은 뛰어난 것인지 곧장 성성이가 매달린 나무로 돌진해왔다.


쿵-

한 방. 단 한 방에 커다란 나무가 뿌리 채 뽑혀 쓰러졌다. 실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이었다. 그러나 놈의 목적이었던 성성이는 이미 다른 나무로 이동한 후였다. 사자원숭이가 성성이를 쫒아 달리려던 찰나,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피리릿-!

날카로운 고음에 사자원숭이가 귀를 싸매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녀의 피리소리는 짐승을 끌어들이고, 짐승을 미치게 한다. 날카로운 음파가 뇌를 헤집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성성이가 다시 한 번 도약했다. 양손으로 굳게 잡은 도끼가 달빛을 갈라낸다.


우드득-

바위조차 쪼개는 일격이 아까와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작렬한다. 도끼는 두개골을 부수고 들어가 뇌수와 피를 사방으로 튀겼다. 동시에 그 거체가 무너져 내렸다.


'들어갔다.'


놈이 신물인지 영물인지 알 바 없지만, 생물인 이상 머리통을 쪼개면 죽기 마련이다. 성성이는 도끼를 뽑아내려 놈의 머리를 밟았다. 꽤나 깊게 박힌 것인지 쉽사리 뽑히지 않았다.


그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머리를 쪼갰기에 풀어놓은 긴장, 그리고 도끼를 뽑는 것에 쏟은 신경.


"성성이!"


다급하게 외친 목소리가 성성이의 귀를 파고든다. 성성이가 물총새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어둡다.

처음엔 달빛을 구름의 그림자가 가린 줄 알았다.

다음엔 달빛이 가려진 것이 아닌, 거대한 벽이 그의 시야를 가로막은 것임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그것이 사자원숭이의 손아귀임을 알아차렸다.


천지가 뒤집힌다.

다음 순간 성성이가 알아챈 것은,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눈앞에 핏물이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다음 그가 알아챈 것은, 시뻘겋게 핏발이 선 거대한 두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크게 벌어진 입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를 통째로 집어삼킬 기세였다.


죽음.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의 몸을 관통하려던 찰나-


푸욱-

가죽 찢는 소리와 함께 사자원숭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피 끓는 소리와 함께 놈은 저수지에 몸을 뉘였다.

간신히 눈동자를 굴려 바라보니 달빛에 빛나는 인영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총새, 그녀의 태도가 사자원숭이의 목을 관통한 것이다.


"…물총새…"


성성이는 나지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녀가 눈물을 터뜨리며 무너져 내리듯이 성성이에게 안겨왔다.

죽을 만큼 아팠다.

아까 사자원숭이에게 맞았을 때 부러진 갈비뼈가 내장을 찌르는 것인지,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다만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앓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아, 미안미안."


물총새가 황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제서야 성성이는 피 끓는 소리와 함께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힘겹게 수면에 몸을 뉘인 성성이의 손을 물총새가 꼭 붙잡았다.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을 보니 긴장이 풀렸다. 그녀는 울보였다.

한참을 울던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런 위험한 일 관두고 내려가서 같이 살자."


갑작스런 고백. 피가 사방에 산재한 곳에서 뜬금없이 고백을 받다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헛웃음이 나온다.


"왜 웃는데!"


성성이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품을 뒤져 반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조심스레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눈대중으로 만들어야 했던 반지지만 놀라울 정도로 그녀의 손가락에 꼭 맞았다. 마치 원래 그녀의 것이었던 것처럼.

갑작스레 반지를 받은 물총새의 눈이 보름달처럼 크게 떠진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이… 이게 뭐야?”

“네 거야.”


모든 것을 잃고 이곳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모든 것을 잃은 것을 그녀를 만났다. 비록 짐승들이지만 친구를 만들었다.


'나갈 때는 모든 것을 얻어서 나가는 건가.'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고, 죽을 듯이 아팠다. 그렇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성성이는 그녀와 맞잡은 손에 힘을 꾹 주었다.


"같이 가자."


그 말을 끝으로 한계에 다다른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따뜻한 그녀의 손을 느끼며 성성이는 잠깐 눈을 붙이려고 했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는 또렷해지는 소리를 들었다.


크르르릉-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목을 관통시켰기에 풀어놓은 긴장,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쏟은 신경.


성성이가 본 물총새의 마지막 모습은,

피 칠갑을 한 사자원숭이가 그녀를 거칠게 붙잡아,

그 커다란 송곳니와 턱으로,

그녀의 가녀린 신체를,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토막 내고 짓이겨,

그 흉포한 목구멍 속으로 삼켜지는 것이었다.


당혹감에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이 뇌리에 새겨진다.

붙잡히며 튕겨 나온 한 방울 눈물이 얼굴에 묻었다.

피분수가 뿜어지며 달빛에 붉은 무지개를 그려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으나 억지로 일어섰다.

가족을 잃은 이후 처음으로 고함을 질렀다.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굳게 쥐었다.


그는 도끼를 들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내, 그보다 한창 작은 체구의 인영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원숭이들, 그들은 성성이를 억지로 붙잡아 낭떠러지 아래로 끌어내렸다.

싸움은 끝이었다.

원숭이들은 여기서 더 잃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낭떠러지 계곡에는-

고통에 가득 찬 사자 원숭이의 포효와

원망에 가득 찬 닌자 성성이의 절규가


불길한 화음을 이루며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