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보기: 1편


야스 없다고 개객끼들아


viewimage.php?id=2bafdf2bf6dd3eb279bec4b0&no=24b0d769e1d32ca73fec82fa11d028313f7ca0229f7ff0a914a04ad5fe5f9e18b102c234ebdf12a0feaf6f5d7782b5c3796048d3e4b9a02455fa05242ab29e8703ae3a17e95f53d2



어두운 숲 속의 나무둥치 위, 거적때기가 올려져있다.

언뜻 보기에는 쓰레기를 얹어놓은 듯하나,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도 아닌 듯하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면, 얼마나 정돈하지 않은 것인지 산발이 된 머리카락, 땟국물과 핏자국으로 얼룩진 넝마 같은 옷차림, 그리고 무기력하게 텅 빈 눈동자를 가진 사내인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우윽…"


상처가 쑤시는지 남자는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의 이름은 성성이. 이전에 사자원숭이에게서 입은 부상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것인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일이 있었던 것이 벌써 세 달이나 흘렀다. 원숭이들에게 끌려내려간 그는 2주에 가까운 기간 동안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물론 원숭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방법을 알고 있을 리 만무하고, 간신히 약초 정도만 발라놨기에 상처는 크게 호전되지도 않았다.

그는 정신이든 순간부터 사자원숭이를 죽이러 갈 기세로 도끼를 잡았으나, 원숭이들이 자신들을 죽이고 가라는 듯 바닥에 드러누웠기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낭떠러지 계곡을 떠났다.


원숭이들은 떠나는 그의 손에 둥글고 작은 물건을 쥐어주었다.

…물총새의 반지였다.

언제 어떻게 가져온 것인지는 몰라도, 원숭이들도 본능적으로 그것이 소중한 물건인 줄 알았나보다.

이제와서 이런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만…

차마 버리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원숭이들과 작별하고 정처없이 떠났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그도 모르는 상황이다. 또다시 모든 것을 잃은 성성이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그는 숲 속을 떠돌면서 강도질을 통해 간신히 연명하고 있었다.


우걱우걱.

며칠 전, 근처를 지나던 병사들을 습격한 터라 주먹밥 몇 알 정도는 남아 있었다. 그는 한 입 크게 베어물고 열심히 씹어 삼켰다. 맛없다. 하지만 이조차 사치스러운 음식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몇 입 정도 먹다보니 매실 장아찌가 그 붉은 자태를 드러낸다. 이 주먹밥에서 유일하게 '맛'이라는게 존재하는 부분이다. 그는 매실을 먹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꺄아아악


멀리서부터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까부터 소란스러운 느낌이 들더니, 숲의 강도 무리가 누군가를 덮친 모양이다. 그러나 자신이 신경 쓸 바는 아니다.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입을 벌린다.


"살려주세요!"


흠칫.

벼락이라도 맞은 양, 성성이의 몸이 굳는다. 그럴 리 없겠지만, 분명 물총새의 목소리였다. 그의 손에서 주먹밥이 스르르 미끄러진다. 성성이는 도끼를 뽑아들고 몸을 날렸다.


----------


"우효~ 초귀여운 미소녀 발견다쟤~"

"가지고 놀다 유곽에나 팔아버리자고."


사내가 3명. 그들에게 둘러쌓인 소녀가 하나. 사내들은 저마다 칼을 한 자루씩 가지고 소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나무에 가로막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지자, 소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얌전히 있으면 다치지는 않을 거다."


사내 중 하나가 더러운 욕망을 풀려는 듯, 자신의 허리띠를 풀기 시작한다. 그때,

바스락-

풀을 밟는 소리가 들리며, 나무 그림자로부터 귀신이 나타난다.


"형님, 저 녀석…"

"숲의 귀신인가?"


얼마 전부터 귀신같은 솜씨의 강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검은 도끼를 쓴다 들었는데, 아무래도 저 녀석인 듯하다.

형님이라 불린 남자가 칼을 겨누었다.


"귀신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얌전히 지나가라. 우리도 굳이 쫒진 않을 테니."

"…"


귀신, 성성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왼손으로부터 무엇인가가 화살처럼 쏘아진다.


퍽!

불의의 기습. 키가 작은 남자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눈알 한 쪽이 툭 튀어나온다. 즉사.

평범한 돌팔매지만, 성성이의 손에 들어간 돌멩이는 곧 흉기가 된다.


"이 새끼가!!"


'형님'이 칼을 빼들고 달려든다. 상단세에서 내려치기. 하지만 중심이 너무 높다. 원숭이만도 못한 칼질. 성성이가 슬쩍 옆으로 피하자 거친 참격이 허공을 가른다. 그대로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그림처럼 반 바퀴 회전한 남자에게 성성이의 도끼가 벼락처럼 떨어져내린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끼를 들고, 성성이는 남은 한 사람을 쳐다본다. 흡사 오니와도 같은 그 모습에, 놈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친다.


"으흐흑…"


바로 눈앞에서 머리통이 터져나가고 몸이 토막 나는 걸 보게 된 소녀는 소매로 간신히 입을 틀어막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혼절하지 않은 게 다행인 상황. 성성이는 조심스레 소녀에게 다가갔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커다란 눈망울. 또렷한 이목구비. 약간 갈색이 섞여들어간 머리. 물총새의 숨겨진 여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한 외모였다. 그러나 물총새 본인은 아니었다. 역시나.

크게 한숨 쉰 성성이는 시체들을 대충 풀숲으로 던져버렸다. 놔두면 산짐승들이 알아서 치우리라. 그러고는 아무데나 앉아서 아까 못 마친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우걱우걱.

붉은 매실 장아찌가 보인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본다. 어느샌가 소녀는 울음을 그치고 그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소녀의 시선은 그가 먹고 있는 주먹밥에 꽂혀있었다. 아마도 배고프단 뜻이리라. 성성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주먹밥을 내밀었다.

소녀의 얼굴이 확 밝아지더니 떨리는 손으로 주먹밥을 받아들었다. 그러더니 크게 한 입, 매실 장아찌와 함께 밥을 베어문다.

또 다시 장아찌를 잃은 성성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맛있어요…"

"응?"

"너무 맛있어요."


물어보니 마지막으로 먹을 것을 입에 데본지가 사흘이라고 한다. 마지막 한 입까지 야무지게 삼키자, 소녀는 다시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한참 자라나야 할 나이에 주먹밥 반 쪽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리라. 성성이는 주머니에서 마지막 주먹밥을 꺼내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또 표정이 확 밝아진다. 꾀죄죄한 몰골인데도 이리 웃으니 꽤 귀여운 외모다. 정말로 물총새와 닮았다.


"에마라고 합니다."

"…?"

"소녀의 이름은 에마입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조잘조잘 잘도 떠든다. 성성이는 묵묵하게 소녀의 말을 들으며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소녀의 이름은 에마. 나이는 아직 열 살도 채 안 된 모양이다. 산 속 마을에서 살고 있었는데 전쟁으로 인해 마을이 파괴되면서 떠돌고 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부모도 죽어버리고, 일행들과도 떨어져서 방금 큰 봉변을 당할 뻔 한 모양. 슬프지만 혼란한 시대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이기도 했다.

충분히 배를 채웠는지, 에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성성이의 엉망인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약초를 뭉쳐 만든 것 같은 환약이었다. 산 속에 살던 터라 약초 캐는 일을 어렸을 때부터 해온 모양. 에마는 꼭꼭 씹어먹으라면서 성성이의 손에 그것을 쥐어주었다.


'엄청 쓰군.'


몸에 좋은 약은 쓰다더니, 먹자마자 통증이 좀 가라앉는 것이 느껴진다. 에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쭉 내밀었다. 뭔가 도움이 되었다는 게 참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나으리의 성함은 무엇이옵니까?"


이름이라. 첫 번째 이름은 낭떠러지 계곡을 들어갈 떄 버렸다. 성성이라는 이름도 낭떠러지 계곡을 나올 때 버릴 것이라 다짐 했건만, 이렇게 뜬금없는 장소에서 물총새와 닮은 아이를 만났다. 이것도 무슨 인연 같은 게 아닐까. 적어도 성성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성성이."

"그럼 앞으로 성성이라 불러도 되겠사옵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성성이와 소녀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


"성성이, 약 먹을 시간이옵니다."

"…"


억지로 꾹꾹 씹어먹는다. 어째 갈수록 맛이 써지는 것이, 자신을 대상으로 무슨 생체실험이라도 하는가 싶었다. 그래도 몸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었으므로 이래저래 참아줄 만은 했다.

에마는 꼭 딸인 것처럼 성성이를 잘도 따라다녔다. 이 숲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약초를 캐고, 가끔 먹을 수 있는 버섯이나 생선도 가져왔다. 그러면 성성이가 그것들을 가지고 대충 토막치고 굽는 방식으로 요리하는 것이었다. 혹시 주변으로 병사들이 오는 날은 잔치를 하는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술이나 주먹밥 같은 것은 숲에선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피골이 상접했던 그녀의 얼굴에도 슬슬 살이 붙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몸 상태가 좀 나아지자 성성이는 다시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날의 분노와 아픔과 원망을, 이렇게 조각을 하는 도중에는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각품 자체에는 관심이 없어서 에마에게 그것을 주곤 했는데, 그렇게 해서 에마가 받은 조각의 종류만 한 다스가 넘어갈 지경이었다.

에마는 성성이의 옆에 들러붙어서 조각하는 모습을 보더니, 이내 지루해졌는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좋아하느냐?"

"어렸을 때 소녀의 아버지께서 자주 연주해주셨사옵니다."


그 말을 듣고 성성이는 머뭇거리다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속세와 담을 쌓다시피 살아온 그였기에 아는 곡은 단 하나 밖에 없었다.

…물총새가 종종 불러주던 노래다…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음색의 휘파람 소리가 숲에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에마는 휘파람 소리에 자기 멋대로 가사를 붙여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음치였다…

…정말 물총새랑 똑같았다…

마음이 저린 탓에 휘파람 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끝까지 연주를 마친다. 에마는 휘파람을 잠시 따라해보더니 성성이를 보고 말했다.


"오늘은 좀 더 멀리까지 나가볼까 합니다."


에마는 겁도 없는지 참 잘도 돌아다녔다.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이 강도질로 먹고 사는 걸 보면서도. 약초와 식량을 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충분히 위험한 일이었다.


"…오늘은 멀리 나가지 말도록 하여라."

"에, 어째서 입니까?"


성성이는 느낄 수 있었다. 불길한 기운이 이 지역 전체에 감돌고 있음을. 생명이 가득해야 할 숲이 오늘따라 조용하다. 분명 어디선가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는 건, 곧 전투가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어째서 입니까, 성성이?"


에마는 성성이의 팔을 껴안고 대답을 재촉했다. 그는 그저 짧게 한 마디만 했다.


"…위험하다."


어린 에마는 불만스럽다는 듯 볼을 부풀렸다. 아마 충분한 설명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까부터 가슴께가 저릿저릿한 것이, 성성이의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다. 오늘은 좀 쉬어야만 할 것 같았다. 성성이는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붙였다.


----------


꿈 속.

익숙한 꿈이다. 아니, 악몽이다.

물총새가 허무하게 간 뒤로, 성성이는 항상 악몽을 꾼다. 달빛이 내리는 호수에서 성성이와 사자원숭이는 사투를 벌인다. 무거운 도끼는 놈의 발톱을 튕겨내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사자원숭이의 공격을 피해낸다. 길게 뻗어진 놈의 팔을 차고 뛰어오른다. 양손으로 굳게 잡은 흑철 도끼가 놈의 머리통을 부숴놓는다. 그러나 성성이는 멈추지 않는다. 두 번, 세 번, 멈추지 않고 계속 도끼로 내려찍는다. 부수고 토막내서 완전히 곤죽을 만들어놓는다.


"헉… 헉…"


거친 숨을 내뱉는다. 도끼에서 핏방울과 뇌수가 뚝뚝 떨어진다. 그는 얼굴에 튄 피와 파편들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뒤를 돌아본다.


'물총새…'


멀리서 어렴풋이 그녀가 보인다. 다음 순간…


콰직.

그녀의 뒤로부터 사자원숭이의 머리통이 나타나 그녀를 씹어삼킨다. 손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는다. 한 줌 핏물이 된 그녀의 시신과 그 파편이 물을 타고 흘러내려온다. 파편 사이로 그녀의 구멍 뚫린 손가락이 보인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원망과 광기에 젖어, 도끼로 사자원숭이의 시체를 난자한다.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왜 그리도 부주의했나, 왜 그리도 약했나!

도끼질을 하는 와중에 놈의 몸은 서서히 핏물로 변한다. 몸 전체가 피로 만든 곤약처럼 물렁해지며 점점 물에 녹아 없어진다. 핏물이 달빛을 받아 그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춘다.

붉게 빛나는 눈, 날카로운 송곳니.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성성이의 모습은 흡사 오니에 가깝다.

성성이의 눈으로부터 불꽃이 조금씩 새어나온다. 기름에 불을 붙인 것처럼, 사방에 낭자한 피도 같이 불타기 시작한다. 원망의 화염이, 그를 감싸 안았다. 성성이는 고통에 비명 질렀다. 육신의 고통 때문이 아니다. 찢기고 갈라져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으으으윽!"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함께 눈이 떠졌다. 물총새가 죽은 이후로 매일같이 같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보는, 스스로가 오니가 된 모습은 하루가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바닥없는 심연과 마주하는 듯 한 붉은 눈동자는 성성이에게조차 공포를 심어주었다.


"하아…"


억눌린 한숨을 크게 내뱉는다. 그제야 성성이는 주변에 열기가 가득한 걸 깨달았다. 근처에 불이라도 났나 싶었지만 그런 징조는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


왼팔을 들어보니 팔에 눌려있던 풀이 검게 그을린 흔적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오른쪽 팔이 비해 왼쪽 팔에는 털이 조금 더 자라있었다. 손톱도 왜인지 짐승의 것처럼 뾰족하게 자라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뭐가 되었든 썩 좋은 것은 아니리라. 다행스럽게도 서로 자는 시간이 다르기에 에마는 이를 모르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더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하리라.

그런데 에마는 어디 있지?

하늘의 태양으로 시각을 가늠해본다. 슬슬 그녀가 돌아와야 할 시간이다. 평소라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늘은 왜인지 불안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에마의 흔적을 쫒기 시작했다.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