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끝이야!
슬슬 술을 마시던 사람들도 저마다 숙소에서 잠을 청하거나, 아니면 마시는 자리에서 잠을 퍼질러자는 밤. 잇신도 술기운을 날리기 위해 연회장을 잠시 나왔다. 어두운 숲길을 잠시 걷다보니, 나무 그림자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가 보인다.
혹시 내부의 닌자일지도 모른다. 잇신은 기습에 대비하여 천천히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술기운이 물러가고 정신은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잇신은 조용히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정체를 드러내라."
그림자는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의문 속에서 잇신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그림자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림자는...
"주군을 뵙습니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나, 세키조."
성성이는 멀리서부터 잇신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미리부터 무릎을 꿇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술기운을 날렸구만... 이라고 잇신은 생각했다.
그런데 성성이의 복장은 어딘가 좀 이상했다.
전쟁은 끝났을터인데, 온 몸에 두른 무장은 흡사 결사항전에 대비한 무사의 모습이었다.
"주군, 소인 세키조. 목숨을 걸고 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더없이 비장한 어투에 잇신도 절로 긴장했다. 세키조는 검을 뽑아들어 양손으로 공손하게 받쳐들었다. 그리고 피를 토하듯 원통한 어조로 청했다.
"평생의 숙원을 이루고자 주군의 곁을 떠나고자 합니다. 혹여 저를 붙잡아두시려거든, 이것으로 소인의 목을 치기를 청합니다."
"..."
잇신은 검을 받아들어 달빛에 칼날을 비쳐보았다. 숱한 전투 속에서 잔 상처들이 남아있지만, 여전히 시리도록 차가운 빛을 뿜어내는 검이다.
"세키조."
"예, 주군."
"내가 자네를 처음 봤을 때, 자네는 그야말로 수라였지. 그 후에도 자네 눈에는 수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네."
잇신은 검을 내려 성성이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 가겠다는 것은, 그 수라와 관련된 일인가?"
"...그렇습니다."
죽여야 할 놈이 있다. 놈을 죽이기 전까진, 자신이 죽어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하리라. 비명에 떠난 물총새를 위해서라도, 성성이는 검을 들어야만 했다.
"돌아오게."
"..."
"몸 성히 돌아오도록 하게. 어린 에마를 혼자 남길 셈인가?"
"녀석에겐 이미 도겐이..."
"반론은 듣지 않겠네."
단호한 어조에 성성이도 입을 다물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려고 하였으나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소인의 목숨을 걸고, 반드시 돌아오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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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에게 들은 사자 원숭이를 보았다는 곳은 낭떠러지 절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이었다. 과연, 숲의 군데군데에 거대한 짐승... 아마도 사자 원숭이가 거칠게 휩쓸고 지나간 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니 과연, 커다란 굴로 통하는 길이 보였다. 성성이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굴에 숨어들었다.
굴을 따라 살금살금 걷다보니 커다란 공동이 나온다. 그 커다란 사자 원숭이도 마음껏 뛰놀 수 있을만큼 충분한 공간. 또한 굴을 들어오며 발견한 사자 원숭이의 체모 또한 여기가 그것의 처소라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주었다.
"이곳이..."
놈이 살고 있는 곳인가.
성성이의 가슴 속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놈을 반드시 죽여내어, 묵은 원망을 풀어내리라.
후드득-
천장에서부터 돌가루가 떨어진다. 자연스레 위를 바라본 성성이는, 그를 바라보는 거대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놈!"
칼을 뽑아듦과 동시에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 뛰어내린 사자 원숭이가 그 거대한 손톱을 내리긋는다.
카앙-
쇳소리와 함께 성성이의 몸이 크게 뒤로 밀린다. 자세를 가다듬은 성성이가 증오에 찬 눈길로 놈을 바라본다.
집채만한 거대한 체구, 핏발 선 눈깔, 단검처럼 날카롭게 돋아난 송곳니, 흉측하기 짝이 없는 발톱.
놈이었다.
'아니, 뭔가 다른데.'
색이 달랐다. 이전에 저수지에서 물총새와 성성이를 습격한 놈은 다 타버린 재처럼 칙칙한 회색빛깔 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놈은 고목나무 같은 갈색 털이다. 그러고보면 이전의 사자원숭이보다 체구도 조금이나마 작았다.
다른 놈이었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성성이는 놈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수기 위해 이곳에 섰다. 놈에게도 자신과 같은 절망을 심어주기 위해.
-키아아아앙!!!
사자 원숭이는 괴성을 지르며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양주먹을 내려찍어 돌가루와 물방울을 사방으로 튕겨냈다.
성성이는 재빠르게 물러나 벽을 차고 놈에게 날아들었다. 우선은 한 쪽 눈을 받아갈 생각이었다.
핏-
스치듯이, 성성이의 검이 사자원숭이의 눈을 긋고 지나간다. 하지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안구는 그것만으로 터져나가, 핏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놈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러다닌다.
그 비참한 모습에 성성이의 입에 절로 미소가 스민다. 더, 더 고통스러워해라.
놈이 아무렇게나 휘둘러대는 주먹을 피해 다가가 검으로 찌르고는 다시 이탈한다. 두꺼운 가죽에 막혀 관통하진 못하지만, 놈에게 고통을 주기엔 충분하다. 찌를 때마다 놈은 점점 뒤로 물러나며 상처를 부여잡았다.
예전에는 물총새와 함께 싸워도 벅찼으나, 지금은 혼자서도 압도할 수 있었다. 성성이가 무(武)의 업을 쌓은 탓도 있지만, 그의 앞에 있는 사자원숭이는 이전의 놈에 비해 그 기량이 한참 부족했다.
성성이는 놈을 점점 구석으로 몰았다.
수시로 찔러오는 통증과 제한된 시야 탓에 사자 원숭이는 공포에 질린듯한 신음소리를 내뱉앴다.
그때,
-끼이이익...
놈이 뛰어내린 천장의 구멍으로부터 힘없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성성이의 주의가 잠시 위로 향한 그 잠깐의 찰나,
펑!
파공음과 함께 사자 원숭이의 주먹이 성성이를 날려보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충격과 함께 검을 놓쳐버린 성성이가 날아가던 중 간신히 고개를 들어 놈이 있던 곳을 바라본다.
'없다.'
대신 그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덮쳐왔다.
콰앙-!
힘도, 속도도 방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대체 무엇이 놈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충격을 흘리고자 하였는데도 온 몸의 근골이 울렸다.
사자 원숭이는 멈추지 않고 그 거대한 발톱을 사방으로 휘둘러댔다. 발톱 끝에 서린 검풍이 주변을 산산히 쪼개놓으며 성성이를 압박해 들어왔다. 그 살벌한 기세에, 성성이조차 다 피하지 못하고 옷가지와 피부가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정반대로 성성이가 벽에 몰린 상태. 절체절명의 상황, 사자원숭이의 거대한 오른손이 곧게 주먹을 날렸다.
방금까지 성성이가 기대고 있던 돌벽이 산산조각나며 파편이 비산했다.
성성이는 그 순간에 벽을 차고 뛰어올라 놈의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놈이 뒤로 후리는 손바닥을 피해 멀찍이 뛰어 거리를 벌렸다.
잠깐의 교전만으로도 만신창이. 유열에 눈이 멀어 방심한 탓인가. 뼈가 몇 군데가 부러졌는지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성성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성성이에게 조금은 틈도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괴성과 함께 다시 사자 원숭이가 달려든다.
놈의 핏발선 붉은 눈동자. 악몽 속에서 성성이가 마주했던 오니와 닮아 있었다.
휘리릭-
갈고리를 던져 검을 낚아채 자세를 잡는다.
'먹어라!'
곧게 뻗은 왼팔에서 불이 뿜어진다. 화통(火筒)의 불꽃이 잠시나마 놈의 시야를 가린다. 놈의 시야가 가려진 순간,
놀랍게도 뿜어져 나오는 불길이 역류하듯이 성성이의 검으로 빨려들어간다.
공기를 잔뜩 머금어 초고온의 불길을 휘감은 칼날이 대기를 가른다.
-끼에에에엑!!!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사자원숭이가 바닥에 몸을 뉘였다.
놈의 거대한 송곳니와 충돌한 성성이의 검이, 송곳니와 함께 놈의 얼굴에서부터 목까지 길게 갈라낸 것이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놈에게 다가가 검을 높게 들어올린다.
이대로 목을 쳐서, 회색 사자원숭이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기리라.
"?!"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자원숭이가 힘겹게 일어나더니 동굴 안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성성이는 분노에 차서 소리질렀다.
"도망치는거냐!"
성성이도 급히 놈을 쫒아 동굴 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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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을 쫒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동굴 사방에 흩뿌려진 핏자국들이 갈색 사자원숭이가 이동한 경로를 속속들이 알려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니, 구석에 쓰러져 있는 거구의 짐승이 보였다.
마침내 힘을 다한듯, 사자원숭이는 고통 섞인 실날 같은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성성이는 다시 검을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리라.
검을 내리치는 순간,
-끼긱! 끼기긱!
기성과 함께 놈의 등 뒤에서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그림자가 뛰어오른다. 성성이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끼이이익!!!
사자원숭이 놈들과 똑같은 생김새. 하지만 훨씬 작고, 털도 부드러워 보였다. 다 자라지 않은 송곳니와 발톱이 눈에 들어온다.
'새끼...인가... 그렇다면 내가 싸운건...'
이놈의 어미였던가.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싸움 도중에 그 가냘픈 소리를 듣고, 놈은 제 새끼를 지키기 위해 회광반조의 힘을 냈던 것이다.
한낱 짐승에게도 마음이 있는가.
새끼 사자원숭이는 자신의 어미와 성성이 사이를 가로막은 채 송곳니를 드러내며 연약한 소리를 질렀다.
애처로운 허세.
성성이가 검을 겨누자, 놈은 온 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절대 물러나지 않으려는 기세.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에마.'
에마였다.
자신이 수라가 되었을 때, 애처롭게 휘파람을 불던 그 모습이, 지금 저 새끼 원숭이와 놀랍게도 겹쳐보였다.
새끼 원숭이의 눈에는 원망과 공포가 잔뜩 깃들어 있었다.
"못할 짓을 했구나..."
마침내 깨닫고야 만다.
자신은 그 무엇도 이루지 못했음을.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것은, 기나긴 원망의 사슬을 끝없이 잇는 행위일 뿐이었다.
그의 마음 속을 가득 채웠던 불길이 넘칠듯 술렁인다.
그림자처럼 성성이는 떠나갔다.
다만 어미를 잃은 사자원숭이의 구슬픈 소리만이 사자 원숭이 서식지를 울렸다.
그리고 성성이가 떠나가며 남긴 붉은 반지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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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돌아왔구나, 세키조."
"예, 주군."
어두운 밤, 소리를 죽이며 왔음에도 잇신은 금새 성성이가 왔음을 알아챘다. 두껍게 한지를 바른 후스마(미닫이 문) 뒤에서, 성성이는 무릎을 꿇은 채 말을 이었다.
"떠나고자 합니다."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나."
"...너무도 많이... 죽인겝니다... 지나치게..."
생사고락을 함게한 동료를 떠나보내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성성이의 말을 듣자, 잇신도 더 이상 그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한 가지만 약조하게."
"따르겠나이다."
"아시나에 위기가 닥치면, 단 한 번, 도와줄 수 있겠나?"
성성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하에 자네가 지낼 절을 하나 내어주도록 하겠네. 그곳에 머물도록 하게."
"허나 저는..."
"에마와 가끔씩이라도 만나야하지 않겠나."
"...분부대로."
성성이는 팔을 베어준 은혜를 갚았다.
인과에 따라, 좀처럼 죽지 않았던 남자는 비로소 닌자의 삶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쌓아온 원망이 그의 내면에 잔불처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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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도 있었지."
"지금은 전부 추억이네요, 성성이."
달이 뜬 밤, 늙은 성성이는 불상을 조각하던 손을 멈추고 에마와 담소를 나누었다.
닌자로써의 삶은 이제 전부 옛날의 일. 다만 그의 의수를 이어받은 닌자가 아시나 전역을 떠들석하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에마에게서 전해들었다.
...아무래도 녀석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에마는 본래 남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이 있으면 그 닌자, 늑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둘 사이에 뭔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혹여 손주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런 성성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마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깜짝 놀라 말했다.
"별똥별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네요."
"뭣...?"
성성이는 깜짝 놀라 문 밖으로 나왔다. 과연 에마의 말처럼 하늘에는 수많은 별똥별들이 하늘을 수놓듯 떨어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 하지만 성성이의 얼굴에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
떨어지는 별들이 잇신의 별을 추모하듯 그 주변으로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잇신의 건강에 큰 변고가 있음이 분명했다.
동시에, 멀리서 폭발음과 함께 아시나 성에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성성이!"
에마가 급히 일어서며 품 속의 칼을 빼들었다. 에마는 문무를 겸비한 천재 약사이자 검사. 앞을 가로막은 적이 누구든 베고 떨쳐낼만큼 강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허나 에마는 지금 성성이를 바라보며 걱정어린 표정을 지었다.
에마 또한 알고 있었다. 성성이가 갖고 있는 병환을. 죽어가는 사람들의 원망이 쌓이면, 그는 또다시 오니로 변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
"이곳에 계셔요."
성성이가 머물고 있는 절간에는 수많은 부적들이 붙어 있었다. 성성이 내면의 오니를 묶어두기 위한 임시 방편이었다. 이곳에서라면, 성성이는 자신의 원망을 억누를 수 있었다.
"쿨럭쿨럭, 알겠다. 몸 조심하거라."
성성이의 말을 듣자마자 에마는 아시나 성을 향해 뛰쳐나갔다. 성성이는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잠깐 동안에도 아시나 성에 솟은 불길은 점점 커져가며 성을 화마에 집어삼키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잇신과 약조한 바가 있었다.
이 한 몸 불살라 약조를 지키는 것만이, 그가 마지막 충절을 바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성성이는 한 걸음씩,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화르륵-
그때마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오랫동안 억눌러온 원망이, 수많은 죽음을 장작 삼아 불타오른다.
성성이의 눈에는, 오로지 불꽃에 휩싸인 아시나만이 비추었다.
그날 밤, 아시나 성의 정문으로 향하던 내부군의 본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장에 있던 것은...
원망의 화염에 잡아먹힌, 외팔 오니였다는 흉흉한 소문만이 돌았다.
(뒈짖)
개추
셐 수라루트 탔으면 오니 미러전 각이었냐?
둘이 합심해서 아시나 밀었을 수도
오니전까지 써주지 아쉽내
성성이가 주인공인 글인데 오니 심리 묘사하다간 개판날 것 같아서 깔끔하게 끝냄
개추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