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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거친 금속음을 내며 거대한 검이 병사의 몸을 쪼갰다. 그렇게 왕이 사라진 옛 왕국의 잔재를 지켜 오던 전사의 몸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사내는 검을 치켜올리고는 검에 묻어 흘러내리는 병사의 소울을 회수했다. 이가 몇 개 나갔군. 전쟁의 신을 숭배하는 갑옷을 입고 수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방패를 등에 걸치며, 소울을 통해 생긴 괴력으로 대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는 사내는 검의 상태를 보더니 피곤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내는 소울을 집어삼키고는 에스트 병을 한 모굼 음미하며 마셨다. 반지를 고치느라 수리 분말을 다 써버린 걸 떠올린 그는 누군가에게서 받은 그 대검이 조금 더 버텨주길 바라며 앞으로 나아갔다.




왕의 증거를 보여라.




옛 왕국의 잔재들을 박살내가며 앞으로 향하던 사내의 앞을 웅장한 문이 가로막았다. 환청인지, 아니면 진짜로 문에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겠는 기묘한 목소리에 사내는 허리춤을 뒤지더니 옛 왕과 그의 충신이 지켜오던 반지 하나를 꺼내들어 문 앞에 보였다. 잠깐 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왕의 증거를 본 문은 덜커덩 소리 몇 번을 내더니 스르륵 길을 내주었다.




이 앞에는 무엇이 있을까, 강한 적? 더 위험한 지역? 그 앞에 있는게 무엇이든 간에, 더 많은 소울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내는 들떴다.




하지만 문 뒤편의 어두운 길에서 사내를 맞이한 건 적도 거대한 소울도 아닌, 녹의를 입은 어떤 친숙한 여자였다.






"저의 여행은 이미 끝났습니다."




여자는 녹색 후드를 내리며 피곤하면서도 만족한 듯한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사내는 문뜩 그녀가 후드를 벗고 얼굴을 완전히 보여준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 이름은 샤날롯. 그건 이름을 가지지 못한채 태어난 저에게 용이 붙여준 이름."




사내는 또한 자신이 그녀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 샤날롯은 왜 이제 와서야 자기에게 얼굴과 이름을 가르쳐 주는 걸까, 사내는 생각했다.


그리고 흐릿해진 기억을 헤집으며 아주 오래 전부터이자 방금 전까지 해오던 여정을 간신히 떠올려냈다. 저주를 극복하기 위해 이 낯선 땅까지 온 자신의 여정을.


이름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이제 내가 망각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는 짐작했다.




"저는 사람이 만든 용의 아이. 오래전 정해진 인과를 초월하려 한 자들…. 그들이 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내의 짐작과는 다르게, 왜 이제 와서야 이름을 알려줬는지는 샤날롯 자기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가 왕좌에 앉아 차갑게 식어가는 세계에 불꽃을 지펴 준다면 그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타 장작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왕좌에 앉지 않는다면 그는 저주에 빠져 그녀의 이름과 함께 자기 자신마저도 잃고 망자가 될 것이다.


어느 쪽이라도 그녀의 이름은 잊혀질 것이고, 사내 또한 사라질 것이다.


즉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싶었다.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저는 실패작이었습니다. 인과는 지금도 변함없이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습니다."




샤날롯은 자신을 만들어낸 남자를 떠올렸다. 심연의 파편에 대항하려는 건지, 자기 형을 도우려는 건지, 단순한 자기만족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녀를 통해 용을 다루고자 했다.


용은 인과를 초월한 존재. 용을 다루는 것은 곧 인과를 초월하는 것.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용을 만들어내며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용을 만들고 용의 아이까지 만들어냈어도 그는 그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뒤틀린 세계에서 원죄에 속박당하며 사는 것을 끔직이 싫어하던 그는 실패하였고, 그 실패에서 꺠달음을 얻은 듯 인과를 넘어서 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원죄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녀 앞에 있는 사내를 지켜보며 답을 찾고자 하였다.


샤날롯은 자신이 지금 하는 행동이 인과를 벗어나고자 하는 그 자의 행동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과는 지금도 변함없이 사람들을 옮아매고 있고, 그녀 앞의 사내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앞으로 나아가면 나샹드라가 당신을 공격하겠지요. 그 왕좌에 도달하여 불을 계승하는 자가 되는 것. 시작의 불의 위대한 소울을 손에 넣는 것이 그녀의 바램이까요."




샤날롯은 화방녀로써 사내를 지켜봐왔다. 처음 만났을 때의 사내는 약했다. 단순 신체능력으로만 따지면 자기보다도 약했다.


그녀는 사내 또한 드랭글레이그에 도전한 다른 불사의 저주를 가진 자들과 마찬가지로 금방 죽어 망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몇 번을 패배하고 몇 번을 쓰러지고 몇 번을 죽더라도 그는 다시 일어나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왕좌의 앞까지 도달해내고 화방녀의 사명에 속박된 그녀를 해방해 줄 수 있는 위치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인과를 벗어날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불을 계승하는 자, 저주를 그 몸에 이어받는 자…. 당신이 불을 계승한다면, 다시금 소울이 충만해지고 같은 일이 반복되겠지요. 그것을 바라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당신이 결정할 일입니다.


왕이 될 자여, 왕좌로. 그 앞은 당신만이 볼 수 있답니다.




샤날롯은 입을 열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그녀는 사내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 힘으로 이제 끝내달라고. 세계를 다시 따스하게 만들어 저주를 없애고, 자신의 사명을 끝내달라고. 왕좌로 향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샤날롯은 뒤늦게 꺠달았다. 자신은 그 사내가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랬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주길 원했다.


그의 강함에 매료된 건지, 그 근성에 매료된 건지, 단순히 오랫동안 그를 지켜봤기에 정이 싹튼 건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사내와 더 많이 함께하고 싶었다.




"나샹드라를 쓰러뜨리세요."




그렇기에 그를 보내면서 그녀가 꺼낼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사내를 보내고 난 뒤 샤날롯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한참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오래된 용이라면 이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녹의를 다시 뒤집어쓰며 그녀는 마침내 발걸음을 옮겼다.


화톳불로 향하게 해 주는 오래된 새의 깃털을 이미 사내에게 건내주었기에 그녀는 직접 화톳불로 걸어가 불꽃의 온기에 몸을 싣고 그녀의 벗이자 스승이자 부모인 그를 만나기 위해 제사장으로 향했다.


"용은 어디에...?"


하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제사장에서 그녀가 보게 된 것은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용이 사라진 것이다.


오래된 용이 있던 자리에는 새까맣게 그을리고 여기저기 깨지고 움푹 파이고 무너진, 전투의 흔적밖에 없었다.


"네년이 용을 죽게 만들었나?"


용의 방 뒤편의 계단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용기사들이 계단을 지키며 서 있는 가운데, 용을 본떠 만든 금빛 광채의 갑옷을 입고 대검과 방패를 찬 그들의 우두머리격 용기사가 다가와 뒤를 돌아본 녹의의 멱살을 붙잡았다.


"당신은 비아드... 대체..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내가 먼저 물었다. 대답해라. 용의 아이여. 네가 사람을 보내 용을 죽이게 만들었나?"


용의 어금니라 불리는 용기사는 더욱 강하게 녹의를 붙들어맸다. 샤날롯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 동안 생각하고는 말을 꺼냈다.


"제가 보낸 남자가...용을 죽였습니까?"


"드디어 실토하는군." 용기사가 냉소를 지으며 샤날롯을 바닥에 내팽겨쳤다.


"네 남자가 용과 '대화'만 할 것이라고? 그 자는 우리들의 시련을 통과하고 나서 용과 '대화'를 나눴지. 그래. 땅이 울리고 불꽃이 뿜어져나오고 비명이 들려오는 '대화' 말이야."


샤날롯은 마침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혼란과 배신감에 휩싸였다.


"우리는 용의 아이인 너의 부탁을 들어 줬고, 그에게 시련을 주어 용을 만날 자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용을 죽였지. 우리는 용을 만날 자격이 있는 사람을 원했던 거지, 소울에 미친 정신나간 망자를 원한 게 아니었다고."


그는 칼 손잡이를 손 끝으로 만지작거리다 녹의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격을 시험하지도 않고 모조리 달려들어 그 녀석을 찢어죽였을 거다. 지금이라도 찾아내서 쳐죽이고 싶군. 하지만 우리는 제사장을 지켜야 되는 몸. 용의 아이여. 네년이 대신 책임을 져야겠다."


"책임...?"


샤날롯은 심상치 않은 용기사들의 태도에 두려움을 느끼며 물었다.


"용의 아이를 낳아라. 용을 죽게 만들었으니 새 용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나?"


"그게 무슨..............!!"


용기사의 말에 경악하며 샤날롯은 뭐라도 말을 해 보려고 했지만, 어느샌가 그녀를 둘러싼 용기사들이 샤날롯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에게 닥칠 일을 직감하며 녹의는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쳤지만, 용을 따르기 위해 매일같이 단련하는 용기사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용기사들은 녹의를 계단 아래로 끌고 내려가, 제사장의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용의 아이는 차가운 금속의 손길이 자신의 몸을 뒤덮은 것과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끼며, 원망과 배신감, 절망에 휩싸였다. 망자로 전락할 때 느끼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마침내 걸음을 멈춘 용기사들이 샤날롯을 으슥한 건물 바닥에 내팽겨쳤다.


마치 제단처럼 생긴 무언가를 향해 붉은 카펫이 깔린 방이었다.


그리고 용기사들은 각자 갑옷과 각반을 벗거나 차분한 성격의 몇몇은 '차례'를 정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검과 방패의 용기사는 그들의 리더답게, 제일 먼저 녹의에게 다가왔다.


"오래된 용이 이러길 바랬을 것 같느냐?"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공포에 몸이 떠는 것을 숨기며, 가까스로 몸을 세운 샤날롯은 그를 바라보았다.


"안 그랬겠지? 그런데, 그리고, 딸년이 소개시켜준 이상한 망자한테 허망하게 죽고 싶지도 않았겠지."


그는 코웃음을 치더니 수그려 앉아 녹의와 눈을 맞췄다. 그러고는 녹의의 뺨을 세게 쳤다.


"그리고 별볼일 없는 화방녀인 너가 '용의 아이'가 아닌 한낱 계집 취급당하길 바라지도 않았겠지?"


다시 한번 녹의의 뺨을 치며, 리더격 용기사가 조금씩 언성을 높였다.


"우리들은 조금이라도 용을 따르기 위해, 더 가까워지기 위해, 한번이라도 그 모습을 보고 알현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짝,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녹의는 쓰러졌다.


"너는 '용의 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얻은 특권을 마음껏 누리고 있지."


뺨을 치기 어색한 구도가 되자, 용기사는 다시 일어나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


강철 각반의 묵직한 발길질에 녹의는 배를 부여잡고 신음을 토했다.


"이제...그만..."


"오, '그만?' 너는 화방녀잖아. 불을 지키고 불꽃에 이끌리는 사람들을 인도해야 하는 몸인데, 우리를 인도해줘도 모자랄 판에 '그만'? 용의 아이의 어명이니 용기사들은 반드시 따를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나?"


한번 더 녹의를 걷어차고는, 배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녹의에게 용기사는 다시 앉아 녹의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다시 주먹을 꺼내기 전에 입 닥치고 얌전히 있으면 좋겠군."


샤날롯은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흐느낌에 가까운 신음 소리를 냈다.


용기사는 그런 샤날롯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더니, 주변 용기사와 같이 자신도 각반을 벗어던지고 그녀의 녹의를 찢었다.


두려움에 저항조차 못하고 옷을 찢겨 마침내 맨살을 드러낸 샤날롯은 수치심에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겁에 질리며 눈물을 흘리는 샤날롯을 구경하던 용기사들이 키득거리며 그녀의 모습을 비웃었고, 그러면서도 망자의 땅이 된 드랭글레이그에 매우 드문 멀쩡한 여자의 몸에 군침을 삼켰다.


도담한 가슴, 눈물로 얼룩지고 일그러진 표정이지만 그래도 꽤 예쁜 얼굴, 안기 좋게 적당히 살이 붙어 있는 몸.


고된 수행을 하며 욕정을 억누르고 살아온 용기사에게 있어서 그녀는 사랑의 신 노마가 내린 축복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좋은 음식일수록 천천히 먹어야 그 맛을 온전히 느끼는 법이라고 생각하던 비아드였지만, 그녀의 관능적인 몸을 보자마자 솟아오른 '흑룡의 대검'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로 그녀를 덮쳐버렸다.


"크, 으읏." 흑룡의 대검을 꽂는 것과 동시에 남자가 먼저 신음을 흘렸다. 이런 쾌락을 놔두고 바보같이 수행이나 해 오다니. 그는 그녀의 강렬한 자극에 자신은 인생의 절반 넘게 손해보고 살아온 것 같아졌다.


대검을 카운터로 엊어맞은 듯한 고통에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샤날롯의 허리를 붙잡고, 그는 스태미너 생각조차 안하고 마구 흑룡의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 아으, 아, 흐응, 샤날롯이 뒤늦게 신음을 토해냈다.


조금이라도 더 그녀를 맛보고 싶어하며 비아드는 게걸스럽게 그녀의 '깊은 계곡'을 대검으로 휘져었고, 그러면서 그녀의 젖가슴과 입술을 훔쳤다.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부여잡은 샤날롯은 그의 몸을 밀며 어떻게든 그와 떨어지려고 하였지만, 용기사인 비아드에게 그런 힘 빠진 저항은 오히려 귀엽게만 느껴졌다.


"제발 그만... 그만둬주세요... 제발..."


용의 아이로써의 자긍심은 내다버리고 결국 용기사에게 울면서 비는 샤날롯이었지만, 비아드에게는 이런 반응이 오히려 그를 더 들뜨게 하였다.


정복욕을 느낌에 따라 더 큰 쾌락을 얻은 그는 마침내 '절정'을 향해 스태미너를 마구 쓰기 시작했다.


비아드의 대검이 샤날롯의 '연성로'를 노리며 그 안쪽을 계속해서 파고들었고, 샤날롯은 그 감각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인간으로써 추구하는 원죄와도 같은 교미의 쾌락을 느꼈다.


으...하읏.....


그렇게 비아드는 스태미너를 다 쓰고 탈진함과 동시에 '소울 공명'을 그녀의 연성로에 박아넣었다.


흡족함을 느끼며 비아드는 직검 크기로 수축되어가는 자신의 대검을 그녀의 깊은 계곡에서 빼내었다. 그녀의 '연성로'를 다 채우고 남은 소울이 검은 계곡을 넘쳐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이제 다른 녀석들도 즐기게 해 줘야지. 비아드는 일어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너 조루였냐. 글쓴놈 필력 수준처럼 떡씬 찍 사버리네. 몇몇 용기사들이 비아드를 보고 비웃으며 바닥에 널부러진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제 끝난건가, 떠나는 비아드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잠시 내쉬었던 샤날롯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용기사들을 보고는 다시 절망했다.


샤날롯의 모습에 흑룡의 직검이 대검이 되버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앞에 나선 용기사들이 잠시 서로의 눈을 마주보았다.


이제 와서 다시 차례 정하기도 그러니, 한번에 같이 하는거 어때. 좋지. 구멍은 많으니까.


그러면서 용기사 한 명은 그녀의 얼굴 쪽으로 향했고, 두 명은 그녀의 하반신으로 향하고, 눈치를 보던 한 용기사도 앞으로 나섰다. 나는 일단 이년 손이라도 빌려서 한발 뺴야겠다. 이름 모를 용기사는 씨익 웃었다.


샤날롯은 자신을 에워싸고 범하는 용기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 사내는 대체 왜 나를 배신한 걸까. 그도 결국 소울에 미친, 원죄에 속박된 망자였을 뿐인가.


그런 생각 끝에 결국 희망을 잃은 순례의 녹의라고 불리던 여자는 원죄에 휩싸여 버렸다.














일단 막무가내로 판을 벌이긴 했는데, 이젠 어쩐담.


건물 안의 교성을 들으며 바깥바람을 쐬던 비아드는 생각했다.


샤날롯을 범하기 위해 새로운 용의 아이를 만들자고 선동한 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꽤 지나자 오래된 용과 그 총애를 받던 용의 아이에 대한 충성이 남아있던 용기사들이 조금씩 반발하기 시작했다.


일단 평범한 계집은 아니니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만 아이를 밸 수 있다고 선동해서 시간을 조금 벌기는 했지만, 그런 변명도 슬슬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뭐 어때. 제단에서 주워온 매끈매끈한 돌을 조물딱거리며 비아드는 생각했다. 조금 더 선동해서 파수병들도 한발 빼게 해 주거나, 정 안되면 수호룡이랑 교배시키면 된다고 선동하고 그녀를 좀 더 가지고 놀아도 될 터였다.


그렇게 비아드는 기분 좋은 망상을 하며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수음이나 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의아함을 느낀 비아드는 건물 안으로 재빠르게 돌아왔다.


침입자? 용의 제사장에 침입할 만한 얼간이는 그가 기억하기론 얼마 전에 한 망자새끼 하나 뿐이다. 그는 복수할 기회를 잡았다는걸 꺠닫고 검을 고쳐잡으며 계단 아래를 바라봤다.


계단 아래에는 소울만을 남기고 먼지로 바스러져가는 용기사들과 파수꾼들의 시체, 그 시체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샤날롯, 그리고 그 근처 상자를 열고 반지를 챙기던 사내가 있었다.


곧바로 달려들려고 하는 비아드였으나, 사내와 사내가 들고 있는 철퇴와도 같이 비정상적으로 큰 검에 묵사발이 난 그의 동료들을 보고 전략을 고쳤다. 정면승부는 안 되겠군.


잠시 생각한 끝에 영체가 되어 다른 세계로 튀고 기습을 하려던 비아드였지만, 사내는 어떻게 알았는지 계단으로 뛰어들어와 그에게로 향했다.


"젠장, 들켰나!"


도망칠 준비를 하다가 전투 준비가 늦어져버린 비아드의 머리통으로 그레이트소드가 공기를 찢고 부웅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용기사로 단련해온 그는 대검 정도는 두세 방 정도는 견딜 수 있으니, 버텨내고 반격을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내는 대검을 여섯 번 가까이 휘둘렀고, 터무니없는 공격횟수와 무지막지한 힘과 기량에 뭐라도 해보려던 비아드는 그대로 머리통이 날아갔다. 마치 망자를 사냥하듯 매섭게 꽂힌 공격이었다.


전에 만났을 떄는 이렇게 강하지 않았었는데? 그는 머리가 떨어져나가며 생각했다. 허무한 최후였다.


샤날롯은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진 걸 느끼고 주변을 둘러봤다. 용기사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지? 갑자기 바뀐 상황에 멀뚱거리며 그녀는 한참동안 범해져 감각이 둔해진 몸을 가듬었다.


잠시 뒤 계단에서 내려오는 사내를 마주쳤다.



"................"


"................"


생각치도 못한 상황에서 서로를 마주친 두 사람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저주받은 그대여, 당신이 왜 여기에..."


설마 속죄, 사과라도 하려고? 아니면 자신이 여기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아내고 구해주려 온 건가?


떨떠름하게 순례의 녹의라 불리우던 여자를 쳐다보던 사내는 어색하게 손을 들어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세 번째 용의 반지. 용의 가호를 받게 된다고 알려진 용의 봉랍인이 세 개 새겨져 있는 반지였다.


"..........."


설마 그거 하나 찾자고 제사장에 돌아온 건가? 샤날롯은 생각했다. 진짜 망자인가?


사내가 성벽의 도시로 향하다가 뒤늦게서야 세 번째 용의 반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건 모른 채로.


"아니, 그 이전에, 당신은 왜 오래된 용을 죽이신 겁니까. 제 친구라고, 그러니 싸우지 말라고 얘기해줬는데, 대체 왜?"


진짜로 망자라도 된 건가? 갑작스럽게 끓어나오는 증오와 울분을 삼키며 샤날롯이 말을 꺼냈다.


사내는 샤날롯의 말을 멀뚱거리며 듣더니 어깨를 으쓱이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고는 거인의 소울을 꺼내 먹었다.


"그대마저도... 소울에 미친 망자가 된 겁니까...?"


사내가 무사하다는 건 나샹드라가 패배했다는 것일 테고, 그럼에도 사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사내가 왕좌를 포기하고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내는 자신이 무엇을 쫓아 드랭글레이그에 온 건지도 잊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아니면, 그 사람을 만났습니까?"


아니면 원죄를 탐구하게 된 그의 꼬드김에 넘어간 건가?


묵묵히 말을 듣던 사내는 아주 격렬한 몸짓으로 OK라는 뜻을 표현했다.


"그랬군요...당신도 원죄를 탐구하기 위해 뭐든지 하게 되었군요..."


순례의 녹의는 또다시 배신당한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사내는 이번엔 여유롭게 고개와 팔을 내져으며 NO라는 의사를 보였다.


그러고는 품 속에서 화툿불의 탐구자를 꺼내 그녀에게 보였다.


그러고는 다시 소울의 힘으로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달라는 듯이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소울이 담긴 손을 내밀었다.


"............"


샤날롯은 자기 내키는 대로 마구 행동하는 사내가 질렸다. 그 손을 뿌리쳤다. 저의 여행은 끝났다고 말했을 탠데요.


그 말에 놀랐는지 사내는 살려달라는 양 미친듯이 절하고는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깃털이나 돌려주시죠. 그렇게 말하고 샤날롯은 도망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사내의 힘이 너무 강했다.


이거 놓으세요, 라고 말하려던 샤날롯은 뒤를 돌아보고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사내는 화난 듯 투구를 집어던졌다. 그 속에 있던 기괴하게 부풀어오른 볼과 창백하다 못해 새하얀 듯한 기괴한 피부, 그리고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빛나는 두 눈과 초록빛 머리숱을 가진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우리가 서로 남남이라면, 이제 내가 네 말을 들어줄 이유도 없을 탠데. 그렇게 말하는 듯 사내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바닥에 널린 용기사들의 잔해를 한번 살피더니, 사내는 각반을 벗어던졌다.


소울을 안 받겠다면, 강제로 넣을 수밖에. 사내는 자신의 소울을 모아 부랄에 집중시켰다. 터무니없이 거대한 소울을 느끼고는 샤날롯은 기겁했다. 누구도 모르는 곳을 99번 넘게 탐구하며 너무나도 거대해진 사내의 소울이 부랄에 들이차기 시작했다.


저런 걸 받았다간 '거대한 소울 공명'정도로는 안 끝난다, 틀림없이 한번에 '절정'에 이른다. 샤날롯은 자신이 위험하다는 걸 느끼고는 사내의 손을 할퀴고 깨물고 발로 걷어차고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그러나 거인의 왕을 백 번 가까이 잡으며 강해진 사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내의 거대한 '용철 망치'가 그녀의 '연성로'를 강타했다.


그 충격으로 샤날롯은 순식간에 기절했고, 그렇게 기절한 샤날롯을 사내가 마구 범하며 그의 소울을 뿌렸다.


끝없는 소울과 녹화의 반지에서 나오는 지구력으로 사내는 시간이 흘러도 끊임없이 순례의 녹의였던 여자를 범할 수 있었다.


사내의 소울을 미쳐 다 받아들이지 못한 '연성로'가 소울을 뭉쳐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마치 알 같은 모양새였다.


그리고 몇번이고 '절정', '거대한 소울 공명'을 나누던 두 사람의 몸이 서서히 알 형태의 소울과 거대한 부랄에 삼켜져 하나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사내의 옛 친구가 건내주었던 검도 그 사이에 휩쓸렸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호오, 연성로를 발견했나 보구나."


난쟁이 루드레스가 사내가 건내준 것을 호기심 넘치는 눈빛을 하며 받았다.


"꽤나 낡았지만, 뭐,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겠어. 그래, 너. 이형의 소울을 가져오너라."


연성로를 만지작거리며 장작의 왕이 장작의 왕이 되려하는 자에게 말했다.


"[연성]이란 소울의 특질을 응고시켜 뽑아내는 업. 이형의 소울을 연성하면 그에 어울리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이다.

너는 왕을 찾아내, 그리고 죽이지. 이제 와서 금기에 신경쓸 것도 없지 않느냐?"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루드레스가 말을 이었다. 그 말에 사내도 웃더니, 두 개의 소울을 루드레스에게 건내주었다.


망치와, 칼이군.


연성로에 품어진 강력한 소울이 알처럼 뭉치더니 아이를 낳듯 무기를 내뱉었다.


무기를 챙기고는 사내는 화툿불로 루드레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떠났다.


다시 홀로 왕좌에 남은 루드레스는 연성로를 만졌다.


예전에도 소울을 연성하던 사람이 있었나 보군. 왜 금기인지 알기는 하고 그랬을까?


오랜만에 일거리를 찾아낸 루드레스가 연성로를 보며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원죄를 탐구하다 나무가 되고, 화툿불을 탐구하다 부랄이 되었다는 어떤 머나먼 대륙의 얼간이 이야기는 아니겠지.


옛날 이야기를 떠올리며 루드레스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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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게 첫 녹의 점자성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