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서 이곳에 머무르고 싶은데. 괜찮겠소?"
"마음대로 하거라. 어차피.. 아무도 오지 않는 곳. 마음을 다스리기엔 좋을테지..."
"...고맙소."
어느 새벽, 두 남자의 대화가 어느 촌 구석의 절에 울려 퍼졌다. 한 남자는.. 장군이나 쓸 법 한 위협적이고, 기품이 흘러넘치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에 반해 체구는 작고 왜소한, 몸에 기생충이라도 씌인듯 한. 아니, 실제로 "씌여버린" 남자와..
과거에 한 때 수라였던 자. 지금은 팔을 잃고, 수많은 자들을 벤 댓가로 촌구석 절에서 불상이나 깎는 노인이였다.

... 벌레에 씌인 자. 과거에 아시나 국가 찬탈전때 활약했지만, "검성"이라고 불리우는 자에게 주군을 빼앗기고, 벌레에 씌여 죽지도 못 한채 떠돌다 결국 세전함 앞에 자리 잡아.. 하는 것 없이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고, 주군을 따라가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끊임없이 자책하는 처지였다.
.. 그런 한베의 삶에 변화가 온건 그 주, 어느 날 새벽이였다.

'벌레가 씌인 탓일까. 자꾸 헛 것이 보이는군'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자주 헛 것이 보인다.
과거 한 때 전장에서 베었던 병사들.
쓰러져도, 쓰러져도 자꾸 일어나는 자신을 귀신 보듯 보던 적군들..
그리고... 벌레에 씌인 자신이였다.
자아를 잃고 무릎꿇어 앉아 벌레가 몸 밖으로 튀어나온 자신은 마치.. 벌레의 부화장쯤이나 되어보였다.

스스로의 안의 벌레를 언젠가 한 번 본적이 있다. 과거.. 작은 마을의 농민을 도와주다 싸움에 휘말렸을때.. '변약수'라고 하는 것을 마신 자와 싸우다가 칼에 꿰뚫리고.. 그 때 벌레가 한 번 내 몸 밖으로 나온걸 본 적 있었다. 그렇기에 더 자신이 두렵다. 한베 본인의 몸 속에 무엇이 사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환각에 관한 감상에 젖어있을때 쯤, '불상 조각가'쯤으로 부르기로 했던 외팔이 성성이공이 일어서서 본인에게 다가왔다.
"새벽 공기가 심상치 않군. 잠깐 산책이나 다녀오겠다. 절을 조금 보살펴줄 수 있겠나?"
"다녀오시오. 잘 보고 있겠소."
.. 그렇게 남자는, 한 손에 부적을 꼭 쥔 채로 떠났다.
금방 돌아 올테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 해가 보일 때 쯤이였다.

평소와 같이 주군을 따라가지 못 한 과거의 자신을 열심히 책망하던 한베는,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에, 잠깐 멍해져있던 정신을 다 잡았다. 아마 생김새나 무장으로 보아, 닌자쯤 되어보였다.


"오? 처음 보는 얼굴이로군.. 자네 혹시 이름이 뭔가?"
"...."
대답이 없다. 무뚝뚝하지만.. 솜씨는 확실해 보이는군.
"허나, 솜씨 좋은 닌자인것은 확실하군."
그러다 한베의 뇌리에 문득 스친 생각이 있었다.
"흠. 말해줄 수 없다 이건가."
닌자의 기술이라면..
"닌자의 기술이라면... 혹여.."
"...음"
..내 저주 받은 불사를 끊어줄 수 있을지도..?
"자네.. 괜찮다면 이 촌놈과, 한 수 겨뤄주지 않겠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칼을 빼어들었다. 이 자라면..
일부러 눈에 잘 보이도록, 참격을 날렸다. 그러자, 닌자는 바로 받아치고 반격으로 칼을 휘둘렀다.
깔끔한 참격. 위협적으로 휘둘러지는 도의 소리에 본능적으로 막으려 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꽤나 고통스러운 감촉에 그만 주저앉아버리자,
그대로 한 마리의 늑대처럼 덮쳐오는 닌자, 목이 꿰뚫리고, 잠시 몸에 힘이 풀렸다.
풀썩, 힘 없이 쓰러졌다. 하지만.. 확실한건 아직 살아있다.
기이한 자세로 일어나, 몸에 묻은 눈과 흙먼지를 털어내며, 기침으로 흙이 섞인 피를 토해내며,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투로 한베는 중얼거렸다.

"흐음.. 역시 죽지 않는구먼."
닌자는 아직까지 경계하는 것 같았다.
일어서서, 닌자를 자세히 바라보자, 어딘가 인상이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대한 복수를 갈망하는 듯 한.. 분노와, 무언가를 잃은듯 한 무력감이 서려있었다.
...그러다, 한베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스쳤다.
"자네의 칼 솜씨. 정말이지 훌륭하더군."
"네 정체가 무엇이냐."
추궁하듯 묻는 닌자였다. 아마 비슷한 처지 같은데, 어째서 저렇게 묻는지는 잠깐 넘겨두기로 했다.
"..죽지 못 하는 자, 또는 벌레에 씌였다고도 하더군."
이어 덧붙여서,
"죽지 못해서 그저 여기에 있을 뿐이야."
"자네는 어찌하여 이 누추한 절까지 오셨는고?"
.. 보아하니 고위직을 지키는 닌자 정도의 무장같다. 카타나도 상당히 고급이고. 여기에 있을만한 인물은 아닌데?
"...."
역시. 표정이 심상치 않다.
"자네 미간의 주름이 심상치 않군 그래."
한베는 이어서 말했다.
"자네 혹시, 나를 칼 수련 상대로 쓰지 않겠는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죽지 않는 몸뚱이, 몇 번이라도 베여드리리라."
"...좋다."
잠깐 고민하는 듯 한 닌자였으나, 이내 답변을 내려주었다.
좋아, 이 자의 표정도 풀어주고, 혹시나 날 이 자가 끝내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또 오게나. 쓰고 싶은 기술이 있다면 언제든 상대해 주겠네."
..이 닌자와 수련을 한지 몇 주나 지났을까, 몇개의 전서에 쓰여있는 기술을 시험해 보고 싶다며, 나에게 들고왔다. 전서는 닌자 기술 전서부터 아시나류까지 다양했는데, 아시나 일문자를 상대 할 때는 잠깐 과거의 일이 생각나 괴로웠다만, 그래도 조금 지나니 괜찮아졌다.

그리고 더 놀라운것은, 이 닌자, 실력이 눈에 띄게 빠르게 늘어나는것 같았다. 나에게 와서 전서를 잠깐동안 읽고 나서 바로 시험해보고, 본인의 "사명"을 위해 일하고 나서 다시 왔을 때, 이미 기술을 완성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것으로 모자라, 응용까지 해내는 것이였다.
..그렇게 이 닌자와의 수련은 재밌었다. 내 인생의 몇 안되는 행복한 순간이였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내게도 아들이 있었다면, 이랬을까?

...그렇게 또 몇 주가 흐른 어느날, 오후였다.
평소와 같이 그 닌자가 걸어왔다. 오늘은 무슨 기술을 시험 하려 오는것인가 싶었지만, 이내 그 생각은 뒷전이 되었다.
"... 선봉사에서 전서를 구해ㅇ"
"자네 등의 그 대태도... 그것은 무엇인가?"
... 그럴리가 없다. 진짜인가? 누군가가 나와 같은 자들을 놀리려고 만든 전설이 아니였단 말인가..?
무엇인지 모를 기대감과 동시에, 본인의 짐작이 맞다면, 드디어 주군의 곁으로 갈 수 있을것이라는 성취감이 몰려왔다.
"...불사베기다."
... 막상 마주하니 조금 두려웠지만, 주군을 따라갈 수 있으면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말했다.
"뭐라고..? 참으로 있었단 말인가...!"
...이 자와의 수련도 이제는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에 상처가 난 본인의 의복과 갑옷, 칼을 보며 과거를 잠깐이나마 되새긴 뒤에, 내뱉었다.
"그렇다면 자네.. 불사베기로 내 죽지 못하는 몸을 끝내 주겠나..?"
"...."
닌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보였다. 평소에 내가 고통을 호소 할 때 보다 훨씬 더.
..어쩐지 이 자에게 부탁하는것이 조금 미안했지만, 결단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알았다."
"...고맙네. 자네의 실력이면 고통없이 갈 수 있겠지..그렇지 않은가?"
멋쩍게 웃어보이자, 닌자는.. 무뚝뚝히
"..그래. 맡겨다오."
라고 내뱉어줄 뿐이였다.
..역시 언제나와 같이 무뚝뚝한 닌자다.
그와 동시에, 불상 조각가께도, 여기 머무르게 해준 작은 보답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외팔이 성성이공에게도 인사를 드려야지. 다음에 자네가 올 때까지 저승길 채비를 하고 있겠네."
.. 닌자가 아무 대답 없이 떠난 이후, 불상 조각가, 아니, 외팔이 성성이공에게 찾아가, 대뜸 큰 절부터 올렸다.
"... 무슨 일인가 갑자기."
"신세 많이 졌소, 성성이 공. 이제 나도 떠날 때 가 된것 같군."
그러자, 알겠다는 듯, 눈을 감으며 다시 뒤돌아 불상을 깎는 성성이였다.
"... 주군을 따라가지 못 한 한을.. 이제 풀어내는군 자네.."
"여기에 차라도 한 잔 놓고 가겠소. 시간 날 때 마시면 좋을것 같소만."
"... 자네는 없겠군. 자네를 기리며 마시도록 하겠네."

닌자를 기다며, 무릎꿇고 기디리다가, 문득 자신이 죽고싶어서 시도했던 자신의 왼쪽 어금니가 생각났다. 쓸모 없어진 이후로 뽑아 두었다가 혹시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 썼지. 도적 떼에게 둘러쌓였을때도 한 번 쓴 적 있는것 같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이지만, 아직 주군을 모시고 있는 닌자에게는 쓸모있지 않을까 싶어, 품에서 꺼내어 자신의 눈 앞에 두고 닌자를 기다리던 찰나에,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닌자가 보였다.
동시에.. 눈 앞의 닌자가 자신과 칼을 주고 받던.. 기억이 환각으로 보였다.
.. 눈을 감자. 몸 속의 벌레가 죽고 싶지 않아서 발악을 하는군.
갈 준비가 된 한베는 나지막히 말했다.
"이제야 갈 수 있겠어. 주군을 따라갈 수 없었던 한을 이제서야.."
"...마음은 변치 않았나?"
잠깐 망설이던 닌자가 묻자,
"그래.. 자네가 베어주시게.."
눈을 감은채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수천번도 더 꿰뚫린 자신의 목을 통해 의수가 들어와, 단 번에 자신의 몸에 기생하던 벌레를 꺼내었다.
그리고 단 번에, '불사베기'로 알려져 있는 칼을 꺼내어 벌레를 단숨에 찌르자, 벌레가 단숨에 숨통이 끊어지고, 자신도 의식이 흐려지는걸 느꼈다.

진작에 이렇게 되었어야 했다.
"...안녕히."

한베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누구도 그를 추모하거나, 그를 위해 슬퍼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을 만났던 사람에겐 친절히 대했던 한베는, 주군을 따라 부처님의 품에서 편히 쉬어갈 수 있게 되었다



글 쓰는게 업도 아니고 글을 자주 쓰는건 아니라서 좀 오글거리거나 읽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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