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기사가 죽었다. 병 때문이었다. 병에 걸려 사람이 죽는 건 평범한 것이었다. 음유시인들이 거를 만한 흔해빠진 이야기지만, 마녀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의 이야기였다.
그의 병은 조금 특이했다. 죽은 숙주를 살려내는 병이었다. 사람을 살려내는 병을 병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마녀는 고민했다.
하지만 그가 병에 걸려 있든 아니든 결국 그가 병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 언저리에 생긴 검은 구멍은 숙주를 살리는 무언가였지만, 그가 섬기는 성녀에게 생긴 검은 구멍은 숙주의 기억을 죽이는 틀림없는 병이었으니까.
적어도 방랑 기사에게는 그랬다.
기사는 주인에게 목숨을 바쳐야 한다. 방랑 기사의 마음가짐은 그랬다.
그래서 그는 주인의 병을 고칠 방법을 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죽었다.
죽어나갔다.
주인을 위해 바칠 목숨이 많아지는 건 기사에게 있어 영광이나 다름없다. 마녀는 짐작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미친 싸움은 대체 뭘까. 마녀는 또 다시 죽음을 맞이하는 방랑 기사를 바라보며 그가 무슨 심정일지 짐작해 보았다.
그녀는 짐작할 수 없었다.
기사도라는 건 무섭구나, 마녀는 생각했다. 몇 번을 죽어도 사명을 잃지 않고 되살아나는 집념이라니. 그녀는 기사들을 바라봤다. 망자로 전락해 끝없이 싸우는 기사들과, 그 기사들을 뚫고 길을 나아가려는 방랑 기사. 그들의 공통점은 주인을 위해 죽음을 뛰어넘어 싸움을 계속했다는 것이고, 차이점이라면 기사 패거리는 정신을 놓은 채로 주인의 망령을 쫓는 데 비해 방랑 기사는 제정신으로 주인을 위해 싸운다는 점이었다.
방랑 기사가 또 다시 죽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되살아났다. 마녀는 물었다. 다시 도전할 거냐고. 기사는 답했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니 다시 해 보겠다고.
적 기사들도 되살아났다. 승부는 다시 원점이었다.
둘 다 미친 듯한 집념이었다. 사명을 잃은 자들의 이성 없는 집념과 사명을 품은 한 기사의 집념.
어느 쪽이 더 미친 건지 그녀는 짐작할 수 없었다.
싸움의 결과로 짐작하자면, 사명을 품은 쪽이 더 미쳐있었다.
방랑 기사는 미쳐 있었다.
마녀는 방랑 기사를 미치게 만들고 싶었다. 성녀를 섬긴답시고 고상한 척 하는 그를 망가뜨리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그를 사지로 몰았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타락하지 않는 그였지만, 죽음 앞에서는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꺾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미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미쳐 있었다. 미친 상태에서 또 미칠 수는 없다. 광인이 미쳐버린다면 그건 정상인이 되는 거니까. 그는 꺾이지 않았다.
마녀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그와 동행하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럼에도 마녀는 방랑 기사를 떠나지 않았다.
망가뜨리는 유희는 즐기지 못 하겠지만, 이미 망가지는 걸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마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방랑 기사도 마녀와 동행하는 게 재미있었다. 사랑을 모르는 여자가 유혹이랍시고 하는 짓을 보는 거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고, 애초에 그녀가 없었다면 그의 여행은 부지지다 못해 아예 날이 휘어버린 검과 무게가 가벼워질 정도로 깎여나간 갑옷, 석궁만이 그의 과묵하고 심심한 동반자였을 태니까.
기묘한 이해관계 속에서 마녀와 방랑 기사는 계속해서 동행했다.
시간이 지났다. 시간에 못 이기고 불꽃은 꺾이고 있었다. 덩달아 사람들도 꺾여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계속해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꺾고 싶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그녀는 그가 어떻게 꺾일지보다는, 그가 왜 꺾였던 건지 궁금해졌다. 성녀가 어떻게 그를 꺾어버린 건지 궁금해졌고, 그는 어쩌다가 성녀에게 꺾인 건지도 궁금해졌다. 그녀는 그가 궁금해졌고, 그를 꺾은 성녀에게서 질투를 느꼈다. 자신이 무엇을 질투하는지조차 정확히 모르는 채로 사랑을 모르는 마녀는 방랑 기사를 따랐다.
그는 꺾이고 싶었다.
죽음으로 내몰아져도 좋았다. 주인의 병을 못 고치고 시간을 허비하는 자신이 마땅히 치뤄야 할 죗값으로 느껴졌으니까. 어쩌면 사명을 잃고, 완전히 꺾여 편해지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자신에 대해 자괴감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죄책감에 사지를 향해 나아갔고, 편해지고 싶다는 회한을 느끼며 쓰러졌다. 그럼에도 그는 꺾이지 않았고 방랑을 계속했다. 자신을 꺾어줄 마녀를 이끌며 방랑을 계속했다.
결국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성녀의 병이 숙주를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죽인 뒤에 살려냈다.
기억은 완전히 죽인 채로. 그게 죽음이든, 아니든, 기사가 알던 성녀는 죽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방랑 기사는 산 채로 죽었다. 미치지 않게 된 방랑 기사는 마음이 꺾였다.
마녀는 마음이 완전히 꺾인 방랑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어떤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마녀는 방랑 기사에게 제안했다.
심연을 걸으면, 성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방랑 기사는 마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금기를 통해서라도 성녀를 만나겠다고.
삶의 길을 찾아낸 둘은 계속해서 동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방랑은 계속되었다.
어두운 영혼으로부터 시작된 갈망, 분노, 고독, 공포로 시작된 방랑이었다.
방랑은 계속되었다.
방랑 속에서 그들이 쫓는 금기는 사람을 향한 선망이었다.
방랑은 계속되었다.
그녀에게 마음이 꺾인 그는 더 이상 기사가 아닌, 금기롤 쫓는 자일 뿐이었다.
방랑은 계속되었다.
그의 마음을 꺾어낸 그녀는 어둠 속에서 성녀를 찾는, 이단의 상징 속에서 이단을 감추는 자였다.
방랑은 계속되었다.
불도, 어둠도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방랑은 계속되었다.
따뜻함을 모르는 채 불을 원하는 왕이 있는 차가운 골짜기 아래에서,
사랑을 모르는 여자는 금기를 남자에게 가르쳐 주었고, 금기를 쫓는 남자는 사랑을 여자에게 가르쳐 주었다.
방랑은 계속되었다.
어느샌가, 그들은 방랑하기 위해 금기를 쫓고 있었다.
서로를 선망하는 두 사람은 계속해서 동행했다.
그리고 방랑은 끝났다.
고리의 도시까지 그들은 동행했다.
심연으로 가득 찬 세상의 종착지에 그들은 도달했다.
심연 위로 교회가 우뚝 솟아 있었다.
심연으로 향하는 그들을 법관은 막아세웠다.
마지막 목적지를 찾아낸 그들은 맞서 싸웠다.
수많은 위병들 속에서 그는 몇 번이고 죽어나갔다. 기사도 따위와는 상관없었다.
그는 또 다시 미쳐 있었다.
금기를 향해 나아가는 그는 죽고, 또 죽어도 몇 번이고 일어나 다시 싸웠다.
그곳이 사지임에도 그는 나아갔고, 이미 없어진 주인을 위해 죽었다.
마녀는 물었다. 다시 도전할 거냐고. 금기를 쫓는 자는 답했다. 다시 해 보겠다고.
그는 되살아났고, 법관도 다시 깨어났다.
허무 속에 남겨진 자들이 싸웠다.
끝없이 나타나는 위병과 끝없이 되살아나는 그, 그리고 끝없이 죽는 그.
어느 쪽이 더 미쳐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는 미쳐 있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꺾어 가며, 죽음 속으로 자신을 내몰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꺾고자 했던 마녀는 그가 더 이상 꺾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마녀는 자결했다.
그는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승리하고 그가 심연에 다다를 것을 알았기에, 심연 속에서 그가 금기를 쫓을 것을 알았기에, 금기를 쫓은 그가 선택할 사람이 누군지 알았기에, 그 선택에서 마음이 꺾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래서 그녀는 자결했다.
무엇보다도, 그가 꺾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꺾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녀는 인간성이 가득 담긴 검은 칼로 선택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않았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던 마녀는 불우한 인생 끝에서 삶의 의미를 알아냈다.
그리고 방랑은 끝났다.
그리고 방랑 기사 또한 죽었다. 음유시인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평범한 비극이었다.
그 대신 심연으로 가득한 거리에 금기를 쫓는 자는 있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금기는 심연 위에 있었다.
파란 꽃으로 둘러쌓인 땅에는 마녀의 흔적이 있었다.
그녀가 원했던 그의 타락, 그리고 그의 사명에 있어서 금기인 것을 그는 선택했다.
그렇게 방랑은 끝났다. 그가 하나의 금기만을 바라보았기에.
동행은 끝나지 않았다.
참고문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romsoftware&no=104264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romsoftware&no=104265
졸려서 뒷부분 찍쌈
알바재리추
요약 : ntr 성공
언제봐도 비극적이노 - dc App
그리고 방랑은 끝났다에서 끊는게 더 여운있고 깔끔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