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그의 아래에 깔려, 의미없는 저항을 하는 중이다.


로스릭 성을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높은 벽의 탑 그 깊숙한 곳에 위치한 성문. 이 곳의 문을 힘겹게 따고 들어와, 지나다니는 이들은 흔히 재의 귀인이라 불리우는 같잖은 애송이들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느 때와 같이 저 성문 앞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물론 이번에도 나에게 패배할 좀생이이겠거니, 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허리춤에 칼날을 꽂고선 문 앞에 선 그를 반갑게 ' 맞이 ' 해낼 준비를 간단히 끝냈다. 허나 잠깐. 무언가 이상하다. 이번은 느낌이 아예 달랐다. 아직 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않았으나, 문틈으로 서늘한 냉기가 은은히 스며들며, 몸을 짓누르는 듯한 위압감이 함께 피부로 전해온다.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대체 무엇일까, 당장이라도 저 문앞까지 뛰어가선, 녹슬은 쇳덩이가 맞부딪히며 귀가 찢길듯한 소름돋는 비명을 내지르는 저 성문을 걸어잠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여기에서 해온 것이라곤 로스릭 성으로 향하는 무례한 핏덩이들을 칼로 도려내 본 것이 전부였기에 감히 그런 행동 취하지 못했다. 그저 무능하게, 열리는 건 시간문제일 뿐인 문을 바라보면서 제발 아무것도 아니기를 이라는 말만을 중얼거리며, 목 끝으로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물 웅덩이에 이슬 한 방울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아주 큰 파동이 일기 마련이다. 쿵쾅쿵쾅, 작은 심장 뛰는 소리 하나 마저도 그녀에겐 메아리치듯 증폭되어 귓가에 울려댔다. 몇 년같은 시간이 단 몇 초만에 녹아내리듯 사그라졌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런 긴장감이 무색하게 문 틈으로 보인 ' 그것 ' 은 꽤나 낯익은 얼굴이였으니, 아니 얼굴이 아닌 이젠 몰골이라 칭해야 더 걸맞는 모습이겠지.


아까의 긴장감 덕에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대며 뛰어댔다.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으나 무희는 아무런 내색 않고 오랜만에 조우하는 그를 반겼다. 


❝ 아아 오랜만이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몇 년만이지? ❞


그러나 그는 대답이 없다. 투구 사이로 은근히 비춰보이는 그의 눈은 그저 동공이 자리했단 형태만 남아있을 뿐 초점을 잃은지 오래인 듯 해보였다.


반응 좋으면 고닉으로 점자성서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