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없다."



하경복 노인은, 오래 횡성에 살아온 통에 군데군데 넋빠진 경상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내뱉으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강원도 횡성.


한우의 고장이다.


이곳은 하늘에 구멍이 뚫려서 축사가 물에 잠겨도, 옷 말릴 새도 없이 한우의 고장이요,


지신이 노해 온 몸을 덜그럭거리느라 분뇨통이 메쳐져, 별 못 볼 꼴을 보아도 한우의 고장이다.


이곳에서 세속의 다른 가치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종교, 인종, 성별, 그 밖의 어떤 것이든,


소 밖에서 범주를 구분짓는 모든 개념은 두엄에 파묻힌 채 숨을 죽이고 산다.


그 빈자리에는 울림통 걸출한 음머어 소리가 채워진다.


한우의 고장 횡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 잘 키우는 이가 곧 좌장이 되는 곳.


그 밖의 번거로운 규범과 위계는 필요하지 않다.


첨예히 부딪히는 것이라곤 오직 쇠뿔뿐인 이곳에서 가장 소를 잘 키우는 자는, 87세나 먹은 축산업자 하경복 씨였다.


















"그러지 말고 파시라니까요. 저희만큼 섭섭찮게 쳐 드리는 곳도 없다니깐."


"나가 그렇겐 못헌다."


"선생님, 안 그래도 폐사다 뭐다 해서 제 값 받기가 어려운 줄을 내가 다 알고 왔는데, 멀쩡한 고객한테 자꾸 이러깁니까?"


"멀쩡하다꼬?"


하 노인은 슬슬 화가 난다. 진작부터 참고 있던 차였던 터다.


천수나한 손바닥 하나씩 돌아가며 뺨 맞은 것처럼, 양 볼부터 볼기까지 죄다 새빨개져서는 고래고래 고성방가다.


"느그들 눈에는 안 말쩡해 보이는 게 시상천질 다 뒤져뿌도 없제? 큰소리는 뭐를 글케 큰소리고. 느 집구슥에 거울 없나? 하긴 그러니깐 그눔 머리카락도 듭수룩해가지고 그 꼬라지 바라. 어유. 저 지럴들이니 졸개들도 저 몰골로 와가 애믄 사람 귀찮게 해싸코 앉었지."


"아니, 이봐요."


"하기사 눈깔이 옹이구멍맨치도 못한 장사치들이 뭐가 어떻노. 느이들은 팔믄 그만 아이가, 팔믄. 송아지도 송아지로 안 봬고, 그양 팔아묵을 상품이제? 그라이께 하루 끼니 때울 고깃덩이로만 보고, 도시락을 쳐 맨든다꼬 우리 송아지들 다 사간다 그러니끼니 내가 우예 안 이러게 생겼는데?"


하씨 할아버지는 담배 먹은 얼라가 벌거지 토해 내듯이, 거의 광인에 가까워 보일 만큼 저주를 퍼부어 댔다.


그의 튼실한 송아지들에 엄청난 값을 부른 일본인 유통업자들은, 뭐 저런 노망난 늙은이가 다 있나 기가 막혀하며 허탕만 치고 돌아갈 뿐이었다.


노인 앞에서도 서슴지 않고 그들은 욕지거리를 해 댔다.


왜정 시대에 이미 많이 들어서 지겨운 욕설들을 이 늙은이가 차마 알아듣지 못하리라고 꼴통마냥 내뱉고 있으니, 하씨에게는 퍽 귀여운 짓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어쩐다. 저 놈의 미친 영감 때문에 타나무라 씨가 열불을 내게 생겼으니..."


그들은 그렇게 일본어로 조금 씨부리더니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할아버지."


"느 왔나."


"팔지 않고 뭐 하십니까. 마지막 송아지잖아요.


"느도 타나무라 따까리 다 됐나?"


"그런 게 아니라 올해로 농사를 끝내기로 하셨잖아요. 이제 도시에서 살기로 하셨고."


"그래. 와?"


"그럼,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키우던 송아지일랑 되도록 빨리 처분을 해야지요. 때를 놓치면 서울 집에 모시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걸요. 이 판국에 되도않는 게임 만드는 놈들이 웃돈까지 얹어 주겠다고 성화인데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어요?"










하 노인은 담배를 끊은 지가 오래되었다. 고작 이런 일로 다시 피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지는 것을 싫어했지만, 특히 자신에게 지는 것을 가장 싫어한 호인이었다.


손자 하태석 씨와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열불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오는 한숨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고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 기제였다.


"휴우우."


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다. 아마, 나라가 망하고 상을 지낼 때도 맑았겠지.


"그래가. 나한테 조것을 팔라고."


하경복은 속 편하게 여물을 자시고 있는 어린 송아지를 가리켰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요. 눈 딱 감고 이것만 팔면 마지막입니다."


"그래가 중요한 거 아이겠나. 마지막이니까. 저런 튼실한 놈은 구경도 몬할 텐데, 마지막으로 키우는 얼라는 팔 사람도 가려보고 싶어서 그런다. 내 소원이다. 되나, 안 되나."


"그 정도는 저도 하게 해 드리고 싶지만…"


"괘않지?"


"…예. 괜찮습니다."


"그라믄. 나, 저놈한텐 팔기 싫다. 타나무라한테 우리 송아지 넘기느니 차라리 죽으면 죽고 말어."


"저 사람이 그렇게 싫으십니까?"


"머리털 나고 조런 쌍놈자식은 난생 처음이다. 하여간에 일본놈들은 강단이 없어서, 저런 게 회사를 망친다 싶으면 까짓 진작에 쥑이뿌리든 해야 하는데 소 닭보듯 하고 있으니 거짝 아가들은 뭘 보고 배울낀지도 몰겄다 나는."


"그 정도라고요? 왜 그렇게 싫으십니까?"


"느가 더 잘 알지 않나?"


"예에?"








손자 하태석 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알고 계신 걸까?








"그... 뭐더라. 그, 영혼 만드는데 있지 않나."


"…후람이지요. 후람."


"뭔 후람이고. 느 아직도 세기말이가 세기말. 고마해라. 나카믄도 못하네. 프롬 아이가. 프롬."


"예. 프롬. 그렇지요."


"느거도 그거랑 이름이 비슷한 게임 하지 않나. 스꼴라라고 있다."


"…"


"팔순 노인네가 별걸 다 알아서 놀랐나?"


"예. 솔직히 엄청 놀랍네요."


"느 나이에 아는 것도 충분히 놀라운데 기 무슨 섭섭한 소리고. 아무튼간에, 그거 아주 몹쓸 놈의 장난질이다."


"어쩌다가 알게 되신 건가요? 그.. 스꼴라 말입니다."










하 노인은 다시 작게나마 한숨을 쉬었다.


"내 버릇이가 고약해가지고, 금이야 옥이야 키운 송아지를 사간 놈들이 몬 놈팽인지 알아는 봐야지 않겠나 싶드라.


근데, 야 이거. 기가 막히든데. 야, 사람이 우째 이럴 수가 있냐? 순 야바위장이다, 타나무라란 놈.


무슨 방송에 나와가지고 자사 제품 인타뷰를 하는데, 살해당하는 착각이니 뭐니 개소리를 지리는기라. 소는 나한테 사 간 놈이..."


그는 치가 떨린 나머지 살짝 눈물이 맺힌 채로 고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게 와 그리 분한지... 죽겠더라. 눈 두 짝 다 핑 돌고. 소도 짐승이고, 짐승도 다 우리 말이랑 기색을 알아보는 법이다.


근데도 저렇게 뻔뻔스레 둔갑을 시킨단 게, 생명에 대한 존중이 털끝믄치도 없는 놈이고, 극악무도한 놈이다 싶던 차에 막 스게에. 이카거덩.


대단하기는 무슨. 살아있는 존재를 그렇게 간단하게 욕보일 수 있는 놈이 그리 많지가 않은데, 타나무라 그놈은 그러더라.


뭐하는 연놈이길래 이렇게 사람을 휘어잡나 싶어서 검색을 하다가 그걸 알게 된 거제. 그러다 인자 너도 스꼴라 하는 것두 알게 됐다는 기라."


"그것까진 어떻게...?"


"그..니 콤퓨타 있자나. 켜두고 간 걸 보니 길고 장황하게 글자 나오는 게 제목인 것 같든데. 느도 그러고 황급히 뭐라고 변명을 하더만."


"앗..."


나이 마흔의 하태석 씨는, 생전 느껴보지 못한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다. 참괴(慙愧)도 이런 참괴가 없었다.


아무튼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고, 그는 할아버지가 이 이상한 게임(실은 그것을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제갈무후 동남풍 같은 소리였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자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 게임의 존재를 아는 사람치고 타나무라에게 소를 팔아줄 만큼 양심이 없는 이는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뻗치니, 고생하시는 할아버지를 서울 집으로 모셔오고 싶은 좋은 뜻에서 꺼낸 고육책이기는 했지만 타나무라 같은 자에게 영합한 꼴이 되었다는 것은 측은지심이 있는 인간으로서 크게 반성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태석아."



"예. 할아버지."



"너그 고조할아버지, 그니까 나 할아버지 대부터 우리 집안이 농군 집안이었지만, 그 전에는 사대부의 가문이었다고 귀에 못이 박혀 못 젼디도록 들었을끼다.



거슬르서 거슬르서 올라가다 보믄, 우리 집안에서 정승도 나오고 대제학도 배출을 했으니, 사람들이 다 대경을 했다. 아이고, 경사가 어찌 이리 겹치노. 집안 사람들이 참 복 많이 받았데이. 그렇게 말이다.



가마, 도리도 알고 유학도 아는 집안이었다 이거 아니겠나. 이래가는 깨끗하게 수신을 하고 살진 또 몬하더라도, 소를 팔아도 숭악한 놈한텐 안 한다는게 내 신조다 신조.



유학이 뭐냐? 돌아갈 놈한테 돌아가게 하고, 돌아가지 말아야 할 놈한테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게 공자님 말씀이다. 세상이 암만 휙휙 바껴도 한 자도 못 바꿔 낄끼다.



그래서 난 안 판다. 타나무라한테 죽어도 안 판다. 그런 놈이 귀한 목숨 잡아가면서 개소리 씨부리는 건 공자님도 용납을 못 할거라고 내는 본다…



미안타. 서울 못 가겠다."








하경복 씨가 그 때까지 끽연을 참고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인내의 소산이었다.



그 착잡한 감정을 그페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태식은 할아버지의 뜻을 이해했다.



그는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제가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하고. 가볍게 넘길 뿐.



되려 설득을 당한 셈이어서, 타나무라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각오도 그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축사며 토지며 싹 다 정리하고, 마지막 남은 소를 팔아 조부를 호강시켜 드리려던 태식의 꿈은 그렇게 기분 좋게 박살이 나 버렸다.










"할아버지. 그럼 전 돌아가보겠습니다."


"미안타."


"아휴, 뭘 미안해하세요. 송아지, 꼭 좋은 주인을 만나기 바랍니다."


"너두 참…"






하직 인사를 나누던 두 사람은 코끝이 찡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채비가 끝난 태식이 아내와 자녀가 있는 서울 집으로 돌아가려 할 즈음,


그런 두 사람 앞에 다시 흥정을 붙이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묘령의 여자. 분명히 타나무라의 졸개겠지. 철성에서 온 시부야던가.




태식은, 시기를 잘못 만났다고 생각한 것이 반이요, 꼴 좋다고 생각한 것이 반이었다.




'이미 할아버님께선 마음을 굳히셨다. 요사스런 혓바닥으로 송아지를 사 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가 또 있나 본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리마는 값을 안 내리고, 삼은 재미가 없고, 척랑은 일인놀이고, 엘든 링도 아직 안 내준 그런 비열한 이들에게 할아버님이 소를 판다니 말도 안 되지.'




그는, 조부의 단호한 모습을 가슴 깊이 새겨두고 싶었기에, 바로 출발하지 않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별안간 하경복은 눈물을 흘리더니, 말을 뒤집어 버리는 것이었다.










"…휴우우. 그래, 여기 있소. 여기에… 여기에…"










그 말을 끝으로 영감은 곧장 소매를 적시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태식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곧 뒤따라 들어간 순간, 그의 조부는 혼절하듯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하 영감의 삶은 끝이 났다.




그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 신세를 지다가, 마지막 순간에만 정신이 돌아와 유언을 남겼다. 그는, 손자인 태식을 마지막 순간까지 두 눈에 담아 두었다.






"얘야. 나처럼 편벽하게는 살지 말아라. 때로는, 미덥지 못하고, 또 미워도, 용서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어. 사실은 죄가 없는 사람…"




그 수수께끼 같은 유언은 태식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백발이나 허리가 곧고 홍안에 신선처럼 정정하던 하 노인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의아스런 것이었으되, 그의 손자였던 하태식은 특히나 발인 날까지도 스도쿠 풀이를 하듯 유언을 되새기게 되었다.












새벽까지 식장을 지키던 태식은, 누군지 모르는,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여자가 곡을 하러 들어온 것을 보았다.




생면부지의 구슬픈 목소리.




그녀는, 다소 작위적인 소리로 억지로 짜내듯 읍을 하였는데, 이상하리만치 진정성이 있었다.




팩소주를 조금 마시고, 그녀는 조곤조곤 말했다.











"빛바랜 자가 곧 돌아올 거예요."










태식은 그제서야, 그 완고하던 노인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결국 져준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타갤 문학을 카짓해온 본 글에는 횡성에 대한 지역감정 조장의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