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틱감성주의
그 나이대의 노인들이 흔히 그렇듯이, 아시나 잇신은 습한 날마다 무릎이 쑤시는 노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잇신이 그 나이대의 흔한 노인 취급을 받지 않는 것은 그의 무릎 통증이 단순한 관절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벼락이 칠 듯한 날씨는 쪽배를 타고 나타난 무사와 겨뤘던 싸움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매섭게, 절도 있는 춤과 같은 검격을 받아내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무릎의 통증은 싸움의 잔재나 마찬가지였다. 아시나 잇신에게는 그랬다.
그 점 때문에 아시나의 무사들은 습하고 먹구름 낀 날을 반겼다. 벼락이 치는 날은 더더욱 반겼다. 무릎 통증에 질린 건지 옛 추억에 잠긴 건지 탁주 한 병을 걸친 잇신이 무사들에게 무용담을 설파하고는 했으니까.
젊은 시절 무용담을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건 노인들이 흔히 하는 일과 중 하나였지만, 잇신은 자신의 무용담을 직접 시범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그런 차이점들로 인해 아시나 잇신은 검성이라 칭송받았다.
겨울답지 않게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이었고, 마른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토모에와의 추억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날씨였고, 천수각으로 쏟아지는 벼락을 바라보던 잇신은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싸움의 승리자와 같이 마시고 싶었으므로.
아마 늑대겠지. 잇신은 생각했다.
갑주마저 벗어던지고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하는 겐이치로의 자세는 위태로웠다. 여러 번 베인 몸으로 집념에 가깝게 몰아치는 연격은 너무나도 뻔하게 간파당하고 있었다. 회심의 기술인 토모에류의 번개마저도 막히고, 빼앗겼다. 그의 조부의 무용담을 순식간에 흉내낸 닌자에 의해서.
그에 반해 늑대는 여유로웠다. 아시나류를 전수해 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는 닌자의 기술과 섞어서 자유자재로 초식을 펼쳤다. 공중에서 일(一)자로 내리치는 이연격은 쾌검이 되어 겐이치로의 자세를 무너뜨렸고, 강인한 동작 속에서 늑대는 동작을 바로잡았다. 외팔인 그의 몸을 보조하는 의수에서는 우산이 펼쳐지며 겐이치로의 연격을 튕겨내었고, 겐이치로가 간신히 입한 상처마저도 늑대는 재빨리 약을 쓰며 치유하고 있었다.
벼락이 잦아들고 있었다. 두 합 안으로 승부가 나겠지. 에마가 늑대에게 사정을 설명해 줄 것이고, 신성한 계승자와 늑대는 재회할 것이고, 겐이치로의 야망은 여기서 끝날 것이다.
잇신은 곧 찾아올 늑대를 반기기 위해 탁주를 꺼내었다.
언제 술을 마셨었나, 잇신은 떠올릴 수 없었다. 헛것을 보는 건가, 잇신은 구별할 수 없었다. 잇신은 자신이 노망이 들었나 짐작해 보았다. 분명 베였을 자신의 손주가 천장을 건너 자신의 방으로 찾아왔으므로.
옆구리를 움켜쥔 채로 겐이치로는 잇신에게 다가와 앉았다.
"닌자와 싸웠느냐?"
겐이치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고와 환약을 찾았다. 잇신은 에마가 놓아둔 약 상자와 붕대를 겐이치로에게 건냈다.
"다쳤느냐?"
"...예."
"베인 것치곤 괜찮아 보이는구나."
"대단찮은 상처입니다."
"일어나 보거라."
관절이나 근육이 상한 건 아니기에 겐이치로는 어렵지 않게 일어날 수 있었다. 겐이치로를 지켜보던 잇신은 손을 뻗어 겐이치로의 머리카락을 넘겼다. 목이 꿰뚫린 상처가 흉흉하게 비쳤다. 배가 갈리진 상처도 보였다.
"이게 대단찮은 상처인가?"
잇신은 연고를 직접 겐이치로의 베인 상처에 발랐다. 불사가 된 영향인지, 상처 자체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아물었다. 그래도 약은 여전히 쓴가 보다. 겐이치로는 조용히 대답했다.
"아시나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변약수를 마셨구나."
"...예."
잇신은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미리 술을 마셔두는게 좋았을 거라고 후회하면서. 어색한 침묵이 방을 감쌌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두 남자는 머뭇거렸다.
"이제 어쩔 생각이지. 겐이치로."
이대로 성에 돌아가면 또 다시 늑대에게 살해당할 텐데. 닌자의 철칙은 무섭거든. 덧붙여 말하며 잇신은 침묵을 깼다.
"불사베기를 찾겠습니다."
늑대를 이기기 위해서겠지. 잇신은 맑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짐작했다.
"선봉사로 갈 건가? 눈이 더 내리면 산에 갈 수가 없으니, 서둘러야겠구나."
"아닙니다."
겐이치로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검은 불사베기를 찾을 겁니다."
검은 불사베기. 개문(開門). 용윤의 은혜를 받은 자를 제물로 써 황천에서 죽은 자를 꺼내올 수 있다는 전설의 검. 겐이치로는 그 칼을 얻겠다고 조부에게 말했다. 잇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검은 쪽이지?"
"그쪽이 더 유용하니까요. 저는 눈물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배루(拜淚), 붉은 불사베기. 눈물을 받아낸다는 검. 불사 끊기에 필요한 눈물을 얻지 않겠다고 겐이치로는 선언했다.
"그게 네 뜻인가."
"아시나를 위한 뜻입니다."
잇신은 겐이치로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더 상처가 아물었나 살핀 잇신은 겐이치로를 배웅했다. 잠시 서로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손주와 자식은 얼마 안 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어색한 배웅이 끝날 쯔음, 겐이치로가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텐데요."
잇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붕대와 상처를 만진 손을 대야에 담아 놓은 물로 행구고는 다시 정좌할 뿐이었다. 겐이치로는 검과 활이 잘 매여 있나 확인하고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사과 같은 건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왜 그랬는지 알려주실 수는 있잖습니까. 텐구가 저렇게 요란하게 돌아다니는 닌자를 놓칠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 놔둔 겁니까."
"베기에는 너무 호탕하지 않느냐.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인정해 줄 수밖에."
"그 호탕함으로 인해 아시나가 파멸하더라도?"
"그러면 베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나름대로 아시나를 지키는 셈이니까."
용윤의 저주 이야기인가. 겐이치로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저도 아시나를 지키기 위해..."
"변약수를 마셨지. 죽음도 마다하지 않기 위해서. 알고 있다."
잇신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달관한 듯한 말투였다.
"아시나를 위해 말 그대로 네 모든 걸 바쳤지. 그런 널 존중하마. 겐이치로. 이만 가 보거라."
잇신은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그 태도에 겐이치로는 어금니를 악물고 다시 잇신을 향해 돌아보았다. 헛웃음이 나오는 걸 최대한 참은 채로.
"할 말은 그게 끝입니까?"
잇신 앞에 주저앉듯 정좌하며 겐이치로는 잇신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말씀하고 싶은 게 아닙니까? 보아라. 겐이치로여. 이게 아시나를 위해 모든 걸 바친 네 결과다. 아이를 납치하고 닌자를 적대한 결과가 이 꼴이다. 나는 네가 결과를 직접 보게 하기 위해 닌자를 막지 않았고. 그래. 결과가 마음에 드느냐? 아직도 아시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무언가를 바치고 싶냐?"
잇신은 천천히 겐이치로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너는 이렇게 말하겠지. 보십시오. 조부님. 용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아시겠습니까? 한 닌자가 나라 하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또한 용윤의 잔재를 받아 그 닌자에 맞설 수 있었지요. 용윤의 힘을 받은 아시나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고,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저는 모든 걸 바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온 몸을 바쳐서라도 용윤의 힘을 아시나에 깃들게 하겠습니다."
겐이치로는 흠칫했다. 그는 앞으로 무릎을 내딛으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면 조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그래. 그 강력함을 위해 너는 많은 걸 바쳤지. 그리고 저 닌자에 의해 심판받았다. 네가 바친 게 너의 인생 뿐이더냐? 용윤의 힘을 연구하기 위해 수많은 아이를 바쳤고, 좀 전까지만 해도 한 아이의 인생을 네 마음대로 바치러 들었다. 아시나를 지키기 위해 어떤 댓가를 바쳐서라도, 그리도 힘을 얻고 싶더냐?"
"너는 이렇게 대답하겠지. 예. 지금 아시나에 필요한 것은 힘입니다. 조금이라도 아시나에 빈틈이 생긴다면 내부군은 물이 밀려오듯 아시나를 집어삼킬 겁니다. 저는 그것을 막아내고, 아시나를 지켜야만 합니다."
"그러면 조부님은 다시 말하겠지요. 그 힘을 위해 얼마나 아시나를 바쳐야 적성이 풀리겠는가? 수많은 아이를 선봉사에 넘기고, 변약을 연구하기 위해 장정을 감옥으로 불러들였다. 그럼에도 아직 힘을 얻지는 못 했다. 그때까지 도대체 몇 명이나 더 죽어야 한단 말이냐? 사람을 지키기 위한 힘을 위해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모순을 납득해야 한다고?"
"그러면 너는 이렇게 말하겠지. 힘이 없으면 유린당합니다.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필요한 희생이고, 그들의 희생은 보답받을 겁니다. 모순이 아닌 인과관계일 뿐입니다. 유린당해 죽고 나면 지킬 수도, 희생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겐이치로는 목을 떨었다.
"그러면 조부님께서는 말씀하시겠지요. 그렇게 지키고서는 뭐가 남는단 말이냐? 아이는 아비를 잃고, 아비는 자식을 잃었다. 그 희생을 누가 어떻게 보답한단 말이냐?"
"그러면 너는 말하겠지. 용윤의 힘 아래에서 우리는 죽지도 유린당하지도 않을 겁니다. 시간이 많아지겠지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방법을 찾아내고 그들을 위해 보답할 수 있을 겁니다."
겐이치로는 상처가 아직 덜 여물었나 생각했다. 연고가 쓰라렸다. 흥분 속에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겐이치로의 팔이 잇신에게 붙잡혔다. 그는 어정쩡한 자세로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리도 보답하고 싶으냐? 고아와 과부를 만들어놓고 아이까지 없애는 네가 미래를 입에 담는 걸 상상할 수가 없구나."
"조부님께서 직접 말하지 않으셨나요. 이대로라면 미래를 보지도 못하고 멸망당합니다."
"겐이치로. 나라가 망한다고 사람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니었으면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었겠느냐."
국가 찬탈의 이야기였다. 겐이치로는 마침내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대답했다.
"조부님도 결국 미래를 찾기 위해 싸운 게 아닙니까. 제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째서 꾸짖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잇신은 혀를 찼다. 목소리가 높아진 잇신은 호통을 치듯이 말을 이었다.
"내가 일어난 까닭은 단지 나라를 되찾기 위함은 아니었다. 외지인들이 멋대로 찾아와 아이를 학대하고 부녀자들을 범했지. 나는 그걸 참지 못했다. 이렇게 살 미래를 감당할 수 없었지. 그래서 일어났다."
호통으로 시작된 말에는 점점 경멸이 실렸다.
"너는 이 나라의 미래를 스스로 없애고 있다. 나는 너와 내부군 중 누가 더 사람들에게 이로울 지 모르겠구나."
겐이치로는 묵묵하게 붙잡혀 있었다. 조부의 눈을 바라보던 겐이치로는 말을 이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저와 제 무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울 듯한 목소리였다. 모든 것을 바치고도 얻지 못한 자의 목소리.
"조부님도 아시겠지만, 내부군이 아직 공격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당신 때문입니다. 당신의 힘 때문입니다. 저는 그만한 힘을 얻는 것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잇신은 더 이상 손주를 꾸짖을 수가 없었다. 가진 게 오직 나라밖에 없고, 그걸 위해 모든 걸 바친 자를 더 이상 꾸짖을 수가 없었다.
"가 보거라."
이제는 다시 지켜볼 뿐.
겐이치로는 곧 그의 방을 떠났다.
단순한 힘의 논리를 택한 겐이치로였다.
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힘을 쓰는 늑대와 계속 부딪히게 되겠지.
잇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릎의 쑤심은 가셨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개문. 부활의 수단. 겐이치로가 개문을 찾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 죽고 침공이 시작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을 살려내 다시 힘을 쓰게 할 것이다.
아시나의 밤을 끝내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지.
그렇게 되면 나에게는 무엇이 최선일까. 잇신은 떠올려 보았다.
용윤을 온 나라에 뿌리는 게 최선일까, 단순한 힘의 논리대로 싸워 베이는 게 최선일까.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불사베기로.
가여운 손자의 부탁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고 잇신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은 개어 있었고, 눈에 띄는 주홍빛 옷을 입은 닌자를 볼 수 있었다. 갈고리를 타고 원숭이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던 닌자가 향을 보고는 잇신의 거처를 향해 날아들었다.
"신성한 계승자님의 목숨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닌자는 빠르게 용건부터 말해 왔다. 아무리 에마와 황자에게 설명을 들었다지만 말재주가 참 없는 친구다. 직설적이라 오히려 좋지만.
"그 전에, 술을 들라!"
그러면 자신도 직설적으로 답해 줘야지. 잇신은 생각했다.
왜 용운임
용운 파쿠리하려고 하는게 변약이잖아 겐붕이 계속 황자한테 찝적대면서 정식계약 맺으려들고
용윤아님?
용운이 아니라 용윤이라고
뎃
3줄요약좀
1.겐이치로 병신새끼 2.잇신 병신새끼 3.겐이치로 병신새끼
문학추
첫줄보고 게이문학인줄
스토리 너무 뇌속에서 굴려서 별로임...
이걸 먼저 써버리넹 개추
대답하겟지~ 말하겟지요~ 그냥 빼버리는 게 더 깔끔하고 좋았을거같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