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春 》
소녀는 족자처럼 벽에 걸린, 길다란 선지에 적힌 글씨를 바라보았다.
비록 오래되고 색 또한 바랬으나, 비단과도 같은 종이는 여전히 수수하고도 고결하게 기원의 향을 품고 있었다.
- 봄 춘.
소녀가 중얼거리듯 글씨를 읊었다. 사시사철의 구분없이, 밤에도 낮에도 부드러운 벚꽃잎이 흩날리는 이 궁궐에 어울리는 글자가 아닐 수 없었다.
모든 생명의 기원이 되는 계절.
소녀 또한 그 결에서 태어났고, 모든 오카미 대신족의 여인들이 그러했다.
- 무엇을 그리도 빤히 보고있느냐.
뒤를 돌아본 소녀에 눈에 들어온 것은 어느새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여인의 보라색 비단옷이었다. 소녀를 포함한 대부분의 오카미 여인들은 푸른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보랏빛 비단은 궁의 상원 귀족들이나 대장급 여인무사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 벽에 걸린 저것을 보느라 그만 정신을 놓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조금 놀란 마음에 서둘러 자세를 고쳐 앉았다. 춤을 추는 모습을 항상 처마 너머로 멀리서 구경하는게 다였던 여인무사를 실제로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보라색 비단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소녀는 차마 고개도 들 수가 없었다.
벽에 걸린 종이에 적힌 글자를 바라보던 여인은 머리를 조아리는 소녀에게 손을 뻗어 다정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녀는 고개를 들어 여인의 얼굴을 마주했다. 따뜻하지만 어딘가 슬퍼 보이는 듯한 미소를 짓는 여인의 머리칼은 은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신역의 가까이서 자리를 지키는 자들은 대대로 머릿결이 은빛으로 물들었으며, 아마 이 또한 용윤의 은혜일 것이다.
- 저 글씨가 나타내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 기원의 궁의 풍경과... 참 잘 맞는 글씨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녀는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여인이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더욱이 벽에 걸린 선지의 글귀가 가진 진짜 의미 같은 건 알 턱이 없었다.
소녀가 19세가 되던 해,
여인무사가 되기 위하여 치르는 기원의 성인식.
난간 처마에 손도 닫지 않는 작은 몸으로 기원의 신울림을 받아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것은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순간의 무예,
어느 이단자에 의하여 세간에 '토모에류 유파' 로 전해진 그것.
그것은 신의 움직임을 닮아 있었다.
소녀는 여인무사가 되었고, 자신이 어렸을 적 마주했던 여인의 따스한 손길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소녀에게 어머니가 있었다면 그런 느낌이었을까.
짐작 뿐이었지만, 기원의 향에게서 느껴지는 포근함과 같았던 그 손길은 어딘가 관능적인 색기를 품고 있었다.
봄 춘.
모든 소녀가 어머니를 동경하고, 여인을 동경하듯
언뜻 고귀해 보이면서도 천한 아름다움을 가진 그것을
소녀는 가지고 싶었다.
기원의 궁의 안채,
아름다운 선율의 연주가 울려퍼지고 오색의 미와 향이 가득한 분위기.
궁의 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기름진 음식들이 차려졌고, 옥으로 만들어진 술잔에는 향기로운 술이 가득 부어졌다.
아름다워 보이는가?
즐거워 보이는가?
하지만 이것은 그저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한 전희에 불과했다.
궁의 귀족들은 새로운 오카미의 장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축제의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을 무렵, 소녀는 안채 뒷편에서 걸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갈한 보라색 비단옷으로 갈아입은 소녀는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 여인은 더 이상 소녀라 할 만큼 앳된 모습도 아니었다.
성숙한 여인이 되어, 모두의 앞에 설 채비를 했다
- 그래. 잘 해낼수 있지?
- ...
여인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떨리는 모습으로 웃어 보였다.
- 긴장하지 말고, 자아, 쭉 들이켜 보게나.
그녀는 받아든 잔에 담긴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시집'
이 날만을 위해 걸어온 길이었다.
침착한 마음으로 천천히 안채 한가운데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걸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안채가 조용해졌다.
시끄럽게 먹고 마시던 귀족들은 소음을 멈추고 당의 한가운데로 걸어나오는 여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환하게 켜졌던 촛불이 하나 둘 꺼지고, 실내가 차분한 분위기에 맞춰 움직이듯 조금씩 어두워졌다.
안채의 있는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는 춤을 추었다.
부드러운 유선형의 무용은 여인의 신체 흐름에 맞추어 하나가 된 듯 자연스럽게 흘렀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예리한 도를 뽑아 들었다. 안채 뒤편 어딘가에서 망나니 같다는 야유와 낄낄거림이 들려왔다.
아랑곳하지 않고 동작을 이어나가, 높이 뛰어오른 그녀는 도신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앵무.
흐트러지는 벚꽃과도 같은
흐름을 무시하는 여유로운 동작.
벚꽃 흩날리는 날, 머지않았으니
돌아갈 수 없다면, 춤이라도 바치리.
궁의 귀족들은 하나같이 홀린 듯 여인을 바라보았다.
벚꽃잎이 사뿐히 가라앉듯
여인 또한 조용히 발끝을 땅에 내려놓았다.
당내는 조용했다.
귀족들은 서로 눈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안채가 소란스러워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 아주 훌륭한 춤사위였소.
- 자자, 진정들 하십시오. 혼란스럽겠습니다.
상원 귀족은 여인을 흘끔 쳐다보았다.
안채는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눈치를 보던 귀족들은 하나 둘 나무패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나무패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귀족들이 들어올리는 나무패에 적힌 숫자는 점점 더 커졌다.
여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 벽에 걸린 선지지에서 보았던 글자는
어째서 미(美) 자가 아닌 춘(春) 자였는지.
귀족들의 패 놀이가 끝날 무렵,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채를 빠져나갔다.
여인은 천천히 보라색 비단옷을 벗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초롱불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시집을 가기 위해
남자들에게 둘러 쌓인 채로
모든 것들을 받아 내었다.
대번에 여러명을 상대하며 몸을 섞은 그녀의 입에서는 교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렇게,
자신이 동경하던 불순하고, 천박하고, 아름다우며, 또한 고결한.
궁의 여인이 되었다.
미쳐가던 아름다운 도회지의 밤과 함께.
소녀의 이름은 시즈카
그렇게 소녀는 오카미의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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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성서 처음 써봄
오카미 여전사들이 꼴리는걸 주체할수가 없어서 써봤다
좆되네 ㅋㅋㅋㅋㅋㅋㅋㅋ
필력 좆되노
자아, 쭉 들이켜 보게나
물고기 새끼 말고 사람이라 생각하면 좀 꼴림
갑자기 야스 엔딩 훅들어오네 ㅋㅋㅋㅋ
필력 개미쳤네ㅋㅋㅋ
대체 마지막이..???
글 존나짤쓰노 ㅋㅋ
글솜씨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