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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끼이익… 끼이익…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 절벽의 끝에서 끝까지 연결된 긴 현수교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만이 얼어붙은 협곡에 울려퍼졌다.


조금 더 집중해 들어보면 누군가가 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리라.


만일 그의 형체가 보인다면 흡사 누더기와 같은 무언가를 몸에 걸친채 이 눈보라를 뚫고 걷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의 구멍이 숭숭 뚫린 복장을 본다면 광인이라 입을 모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사자, 그을린 호수의 지옥과 같은 열기에서도, 대서고에서 책의 망령들에게 저주를 받을 때조차 지금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갑옷이 누더기가 된 것은 그의 여정의 징표와도 같은 것이다.




게다가 그의 오른손에서 은은하게 타오르는 불꽃은 회화 세계의 살을 애는 냉기마저 그의 몸을 침범치 못하게 막아주고 있었다.




끼이익…


마침내 다리를 다 건너온 그의 눈에 거대한 교회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과연 이곳에는 그가 찾는 것이 있을 것인가.




"…호오, 귀공…"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그의 시선이 욺겨갔다.


그곳에는 갑옷을 입은 누군가가 교회의 외벽에 등을 기댄 오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불 꺼진 재로군."




불 꺼진 재, 장작조차 되지 못하고 그 삶을 최초의 화로에 불살라버린 나약한 영혼의 불사자들.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좆으려던 가치가 무엇인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으나, 그의 여정에서 많은 이들이 그를 불 꺼진 재라 칭했다.


그러나 그는, 불 꺼진 재라는 명칭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외에 다른 문제는 없었다.




다만 그의 심경이 조금 불편했을 뿐.


그리고 그의 성격이 조금 포악했을 뿐.




그저 그런 정도의 문제였을 뿐이다.




"타올라라."




은은하게 타오르며 온기만을 내뿜던 그의 불꽃이 그의 말에 폭발하듯이 팽창했다.




못자리의 잔재




과거 신과 같았던 이자리스의 마녀가 혼돈에 삼켜져 변이된 혼돈의 못자리,


먼 옛날 선택받은 불사자는 그 괴물을 죽였고, 그 육신의 잔재만이 남은 것을 데몬의 노왕이 먹어치워 자신의 힘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불 꺼진 재의 손에서 신화를 재현한다.




그 형상은 거대한 화염옥과 같았으나 미처 갈무리되지 못하고 넘쳐흐르는 불꽃이 사방으로 번져나가며 태양과 같은 빛을 발했다.




그럼에도 오만한 자세의 남자, 빌헬름은 별 감흥 없다는듯이 이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가, 불 꺼진 재의 손으로부터 던져진 못자리의 잔재가 코 앞에 이르렀음에도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윽고 거대한 폭발음과 섬광, 맹렬한 공기의 파동이 침묵만이 존재하던 회화세계를 온통 뒤흔들었다.


폭발의 중심으로부터 수십 보에 이르는 거리까지 눈은 모조리 증발했으며


교회의 벽은 부서지고 녹아내려 흉한 골조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빌헬름은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역시 한낱 망자일 뿐인가…"




하는 그의 목소리만이 허공을 울릴 뿐이었다.


빌헬름의 어투에는 명백한 조롱이 섞여 있었고 이것이 불 꺼진 재의 심경을 조금 건드렸을 뿐이다.




다만 그뿐이지만


그날로 회화세계의 운명이 정해졌을 뿐이다.


그리고 빌헬름의 운명도 정해졌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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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 꺼진 재는 자신의 포악함을 과시라도 하는듯이 그 불꽃을 사방에 쏘아냈고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모조리 불살랐으며 조금이라도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모조리 도륙했다.




교회 앞의 기도하는 까마귀 인간들,


성대를 긁는듯한 기성이 마음에 안들었기에 목을 베었다.




절벽에서 그를 공격한 유귀의 무리,


그의 앞을 가로막았기에 절벽 아래로 던졌다.




더러운 하수도의 까마귀 기사,


사지를 폭발시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했다.




까마귀 마을의 이성이 남아있는 까마귀 인간,


회화 세계를 태워달라는 요청에 마을을 통째로 불태우고 파괴했다.


화마에 휩싸인 마을을 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었다고 절규하는 까마귀 인간만은 눈과 발을 불태우고 그 잿더미에 던져놓았다.




그가 걸어간 자리에는 반쯤 탄 시체들이 언덕을 이루고 그의 곁에서는 죽음의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다시 한 번 빌헬름을 마주했다.




작은 예배당 같은 건물, 그 어둠 속에서 빌헬름은 그를 비난하며 나섰다.




"…항상 어디에든 있지. 도망가는 자를 쫓아, 감춰진 것을 파헤치고 정의를 뽐내는 미치광이가."




빌헬름은 오른손에 든 대검을 뿌리듯이 휘둘렀다.


검날이 나선을 이루는듯한 특징적인 검신을 검은색의 화염이 흐르듯이 감싸기 시작했다.


흑염을 뿜어내는 대검은 지극히 아름다웠고 또한 지극히 불길한 기운을 뿜어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불길한 자태에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러나 불 꺼진 재는 로드란의 모든 현존하는 주술을 섭렵한 존재, 그런 그에게 심연에서 피어난 검은 불꽃은 자신의 몸과 같은 것이었다.


방금까지 새빨간 빛을 내던 주술의 불꽃이 이제는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흡사 심연에 떨어진 그의 영혼을 보여주는듯 그 색은 빌헬름의 흑염보다도 더욱 깊고 어두웠다.




빌헬름도 이를 느꼈는지 긴장한듯 굳은 어조로 말했다.




"그야말로 심연의 색이로군. 그래, 어쩌면 망자의 왕에 가장 적합한 존재일지도 모르지."




그리고는 품에서 성령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법도인 것을. 곧 심연의 품으로 보내주마."




파지직-


빌헬름과 불 꺼진 재의 발 밑에 보라색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동시에 불 꺼진 재의 흑염이 그 주인의 이름처럼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흑교회의 사람들은 모두 탁월한 검사이며 론돌의 침묵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한다. 그리고 검 만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이제 둘 모두 어떤 소리를 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즉 둘 사이의 싸움은 어떤 마법도 배제한 근접전만이 허용된 것이다.




그리고 빌헬름은 수많은 론돌의 검사 중에서도 필두에 위치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검과 검을 맞대는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서로의 마법을 봉한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불 꺼진 재는 당황한 기색없이 작은 방패와 단검을 꺼내들 뿐이었다.




'론돈의 기사인 나에게 나약한 주술사가 검으로 덤비려는 것인가?'




우습게 보였던 것일까, 조금의 분노와 함께 빌헬름의 검이 불 꺼진 재에게로 휘둘러졌다.


지극히 예리하고 빠른 발검, 그러나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불 꺼진 재는 단지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만으로 검의 궤적을 벗어나 있었다.




'우연인가?'




이격, 삼격, 흑염에 휩싸인 그의 검은 간격을 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 불꽃이 검의 길이를 착각하게 하고 눈을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 꺼진 재는 어찌 된 일인지 항상 한 뼘조차 안 되는 간격을 두고 그의 검을 피해냈다.




'이 자는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빌헬름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자연스레 조급함이 그의 행동을 충동질했고 충동에 이끌린 검은 실수를 유발했다.


휘두른 검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회전하며 일격.


화려하며 위력적이고 또한 빠른 검격이었으나…


뻔했다. 너무나도 뻔한 궤도의 공격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빌헬름의 검은 하늘로 쳐올려져 있었다.


불 꺼진 재는 작은 방패의 돌기로 그의 대검을 받아내며 위로 조금 쳐올렸을 뿐이다. 허나 강한 힘일수록 옆에서 가하는 힘에 약한 법.


다행이 검을 놓치지는 않았으나 품이 활짝 열렸고 이를 만회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푹-


단검이 그의 가슴에 박혔다.


그리고 단검에 심어놓은 어둠이, 그의 몸을 타고 흘렀다.




'크아아악-!!!'




그의 몸에 스며든 어둠은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나가 모든 장기를, 모든 근육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격통에 빌헬름의 허리가 꺾였다. 불사자로써, 망자로써 수없이 많은 세월을 보낸 그였지만 이런 고통은 그의 생애에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턱뼈가 빠질듯이 벌어진 그의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어나오지 못했다.


침묵의 금칙 때문이리라.




의식이 아득히 멀어진다.


그의 불사자로서의 사명은 엘프리데의 수호.


그러나 불 꺼진 재는 엘프리데를 죽이고, 이 세계를 불태우겠지.




사명을 달성하지 못한 불사자는 망자가 된다.


안타까운 마음에 빌헬름의 마지막 의식이 언어가 되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당신의 기사이면서도……엘프리데, 님…"




침묵의 금칙이 끝난 것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을 바라보며 불 꺼진 재는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쉽게 편해질 수는 없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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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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