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산들바람에 벚꽃잎이 흩날려 하늘을 수놓는 마당에서 기합성과 함께 공기가 거칠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쐐액-
머리 위로 크게 들어올린 목검을 한 번 내리그을 때마다 소년의 머리에서는 땀방울이 떨어진다.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이나 휘둘렀을까. 팔다리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럼에도 소년은 멈추는 법을 몰랐다.
크게 앞으로 내딛으면서 목검을 휘두른다. 지금까지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소년이 검술을 연습하는 장소는 주변에 비해 움푹 파인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소년은 강했다. 또래 중에서는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였고, 이미 전쟁터에서 실전을 겪은 무사들과 검을 맞대어 좋은 대련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참 부족했다.
쐐액-
거친 파공음. 흔히 검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건 반만 맞는 말이다.
이름 높은 검성, 무신, 혹은 수라라고까지 불리는 그의 검술 스승, 아시나 잇신의 검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눈으로 좆기 힘든 쾌검의 궤적은 고요하기 그지 없다.
잇신은 이것은 '소리를 죽이는 경지'라고 불렀다. 아무래도 극에 달한 그의 검술은 소리조차 죽이는 경지에 이른 모양이었다.
소년의 목표는 잇신을 따라잡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요원하기 짝이 없다.
밤낮도 없고, 비바람도 가리지 않고 매일매일 수행에 매진하고 대련으로 실력을 키워나감에도 잇신이 서있는 경지의 터럭에도 못 미쳤다.
더욱더 연습량을 늘렸지만 소년의 검술 실력은 늘어날 기미가 없었다.
...무도의 길을 걷는 모두에게 찾아오는 '벽'이었다.
쐐애액-
조바심에 소리가 더욱 거칠어진다. 수련할 때의 마음가짐은 고요한 호수와도 같아야한다. 잇신의 가르침이었다.
소년은 멋들어진 동작으로 목검을 거두어 허리띠에 끼워넣었다.
힘이 필요했다. 그의 할아버지와도 같은 압도적인 강함이. 지금도 뇌리에 새겨진 끔찍한 기억은 때때로 그의 잠을 깨운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그의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은 끔찍하게 죽어야했다.
전란의 시대에 약함은 곧 '죄'다. 죽어 마땅한 죄.
비록 지금은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 되고 있지만 소년도 알고 있었다. 이 나라, 아시나는 결국 '아시나 잇신'의 명성에 기대고 있을 뿐임을.
무신이라고까지 칭송받지만 잇신도 어쨌든 인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가 늙고 병약해지면... 또다시 아시나는 외적에 의해 불타리라.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라를 지킬 힘을 길러야만 했다.
모든 것은 아시나를 위해서였다.
"겐짱."
소년이 연습을 멈추자 그림자 밑에서 쉬고 있던 소녀가 그의 애칭을 부르며 다가왔다.
"'겐이치로 공'라고 부르라 하였다."
소년, 겐이치로는 거의 경기를 일으키며 소녀를 돌아보았다. 겐이치로도 이제는 소년 티를 벗고 청년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어렸을 때의 별명으로 자신을 부르다니... 부끄러움에 그의 얼굴의 확 붉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는 주전부리를 잔뜩 담은 쟁반을 허리에 끼고 와서는 그의 손에 하나씩 쥐어주었다. 알록달록한 전병에서 그 색만큼이나 달콤한 향이 났다.
"에마가 직접 만든 전병이야?"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했지."
한 입 크게 베어물면 달콤쌉싸르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소년과 소녀는 재잘거리면서 평화로운 오후의 휴식을 즐겼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에마가 말했다.
"갑자기 좀 어두워지지 않았어?"
"소나기라도 오려나... 오늘은 연습할 때 힘들겠는 걸."
"비 올 때 밖에 있으면 감기 걸린다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창했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뇌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섬광과 폭음. 무시무시한 빛과 소리가 후원을 가득 채웠다. 벼락이 떨어진 것인가. 겐이치로가 깜짝 놀라 일어서서는 외쳤다.
"호수 쪽 벚꽃 나무에 떨어진 것 같은데?"
"구경갈까?"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재밌다는 것이 세상 진리 아니겠는가.
남들이 오기 전에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에 겐이치로와 에마는 벼락이 떨어진 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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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은 나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앞장서서 따라가던 겐이치로가 뭔가를 발견한듯 에마를 멈춰세웠다.
"잠깐."
"응?"
겐이치로와 에마는 돌을 쌓아 만든 담장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그들에게서 좀 떨어진 곳에서 잇신이 칼을 빼어들고 있었다.
그와 대치하는 자는... 언뜻 보기엔 분명 인간은 아닌 듯 했다.
가면극에 나올 법한 기묘한 가면과 구시대적인 갑옷. 보라색 비단옷 안으로 비치는 피부는 인간의 그것과 다르게 미끈미끈한 질감이었다.
게다가 인간의 것이라기엔 검을 쥐고 있는 그 손은 너무나 길고 섬세하며... 그리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겐이치로를 놀라게 한 것은,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잇신'과 검을 들고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닥의 무수한 발자국을 보아하니 이미 몇 차례 검을 맞댄 모양이었다. 저 정도의 강자가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아시나의 무사들이 보면 까무러칠 만한 장면이었다.
"방금 그 기술, 다시 한 번 써보게나, 토모에."
토모에라 불린 여인은 지체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아니, 뛰어올랐다기보단 '날아올랐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도약력이었다.
동시에 하늘에 낮게 깔린 먹구름으로부터 한 줄기 낙뢰가 내리쳐 그녀를 직격했다. 무시무시한 광경에 몰래 지켜보던 겐이치로와 에마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여인은 익숙한 듯 검을 머리 위로 올렸다. 온 몸에 샛노란 전기를 두르고 하늘에 떠있는 모습은 신화 속 뇌공, 라이진을 연상캐 한다.
곧이어 전기가 그녀의 검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싶더니, 힘찬 함성과 함께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다시 한 줄기 벼락으로 화하여 뿌려졌다. 그리고 그 뇌격의 끝에는 잇신이 당당하게 서있었다.
"위험...!"
저것은 요술이었다. 무기를 맞대는 싸움이라면 잇신의 안위야 추호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검 한 자루로 천재지변에 맞서는 게 가능할 턱이 없다. 겐이치로가 황급히 뛰어나가려던 순간, 잇신이 뛰어올랐다. 우아하게 날아오른 토모에와 달리 대포알이 발사되듯 공중에 뜬 잇신은, 자신에게 유도된 뇌격을 그대로 몸으로 받았다.
"흐읍....!!!"
뇌격이 품고있는 엄청난 열량에 그 잇신조차 순간 움츠러든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인다. 세차게, 검을 휘두른다.
늘 그랬듯이.
파지직-
공기 중 먼지를 태우며 날아간 뇌격이 이미 불타고 있던 벚꽃나무를 반파시켜버렸다.
사뿐히 내려앉은 잇신이 근육이 뭉친다는 듯 어깨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땅에 발을 딛지 않으면 다시 되돌려보낼 수도 있는게로군."
그러고선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또 특이한 기술은 없나? 보여주시게."
"정말로 베일 수도 있습니다."
"내 걱정은 마시게나."
짧은 기합성과 함께 토모에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물이 흐르는 듯한 연격.
마치 폭포수가 내리붓는 듯, 마치 강이 범람하는 듯, 마치 시냇물이 굽이치는 듯, 강렬하면서도 빠르고 또한 부드러운 검술.
하지만 신묘한 몸놀림에 도저히 검격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검무, 아니 그 형상은 오히려 신에게 바치는 춤에 가까웠다.
그 우아한 자태가 겐이치로의 눈을 현혹할 때쯤 은은한 향기가 그의 코를 간질였다.
'벚꽃향이 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토모에의 공격이 공간을 점하며 짓쳐들어갔다.
이에 맞서는 잇신은 검을 튕겨내고, 흘려내고, 맞대면서 모든 공격을 상쇄하고 있었다.
무수한 검무가 휘몰아치던 걸 입이 떡 벌어진 채 구경하던 겐이치로는 위화감을 느꼈다.
'소리가... 없다...?'
양 측 모두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필연적으로 나야하는 파공음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토모에'라는 여인도 소리를 죽이는 경지에 올랐다는 말인가? 까마득한 경지에 있는 두 강자의 싸움에 경악하는 겐이치로의 소매를 에마가 잡아당겼다.
"겐짱, 잇신님의 옷을 봐봐."
"옷?"
에마의 손 끝을 따라 잇신이 걸치고 있는 하오리에 시선이 간다. 놀랍게도 하오리의 끝단이 조금씩 잘려나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둘의 검에만 현혹되었던 시선이 조금 더 넓어진다.
토모에의 검격이 흐려보이는 이유. 밀도 높은 공기의 칼날이 검격 하나하나에 담겨 주변을 찢어놓고 있었다. 진공파는 퍼져나가면서 잇신의 하오리를 지나 지면에도 무수한 상처를 아로새겨놓았다.
겐이치로를 더욱 놀랍게 한 것은, 잇신이 여전히 여유로운, 어찌보면 굉장히 기뻐하는 표정으로 진공파를 전부 부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의 무시무시한 공방에 겐이치로와 에마 모두 입을 떡 벌리고 구경하는 수 밖에 없었다. 호각지세의 공방이 일각쯤 지났을까. 토모에와 잇신 모두 검을 거두며 거리를 벌렸다.
"오랜만에 만족스레 검을 나눌 수 있었구만. 고맙네, 토모에."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허면 약속은..."
"당연히 들어줌세."
토모에는 꾸벅-하고 가볍게 절을 올렸다. 입꼬리가 가볍게 말려 올라간 잇신이 말을 이었다.
"다 구경했으면 이제 나오너라, 말썽꾸러기들아."
분명 겐이치로와 에마를 말하는 것이렸다. 언제부터 몰래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까. 멋쩍어하면서 둘은 잇신에게 다가갔다.
토모에는 겐이치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겐이치로가 토모에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은은한 벚꽃향이 향긋하게 풍겨왔다. 분명 처음 보는, 인간이 아닌 존재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익숙한... 그리움이 드는 향기였다.
'꼭 어머니 냄새 같은...'
겐이치로는 홀리듯이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소자에게 검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말에 더 놀란 것은 토모에보다도 잇신인 듯 하였다.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잇신이 물었다.
"토모에의 검술이 나의 검술보다 네게 맞을 듯 하더냐?"
"일찍이 할아버님께선 강해지기 위해 모든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라 하셨습니다. 제가 이 분의 검술을 습득하여 아시나류 검술에 새 지평을 열어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잇신은 호탕하게 웃어 재꼈다. 검에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또한 젊을 적의 자신처럼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도 강했다. 이 아이가 아시나류 검술을 이어간다면 잇신, 자신과는 또다른 검을 만들어내리라. 잇신은 겐이치로의 머리를 헝클며 말했다.
"네가 그렇다니 그런 줄로 알겠다. 부탁해도 되겠나, 토모에."
"혹시 시간이 남는다면 성심성의껏 가르쳐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토모에와 겐이치로는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겐이치로가 검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무릎을 꿇어 절을 올렸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겐이치로 공."
토모에는 가볍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일으켜세웠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향긋한 냄새가 겐이치로의 코를 간질인다.
분명, 벚꽃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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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밝다.
구름이 걷히자 휘영청 뜬 보름달이 갈대밭을 환하게 비춘다. 달에 새겨진 얼룩무늬를 보며 겐이치로는 끓어오르는 피를 다스렸다. 그 옛날 벚꽃나무 아래서 검을 수련하던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었다.
타고난 재능, 그리고 비할 데 없는 노력.
그는 분명 천재였다. 그럼에도 자만하지 않고 날카롭게 자신을 갈고 닦아 한 사람의 당당한 무사로 거듭났다. 이제 아시나 전역을 통틀어 그와 검을 맞댈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때문에 겐이치로는 갈대밭을 지키고 서있었다.
이미 수하들로부터 보고는 받았다. 황자가 도망쳤다. 아마 '그 닌자'의 도움을 받았겠지. 망월루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길목은 여러 군데가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이곳을 지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주변에 쏙독새 도당으로 천라지망을 쳐놨다. 이 정도 방비라면 할아버님 정도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뚫을 수 없으리라.
딱히 황자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그를 붙잡아두려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니까.'
그의 힘이, 죽은 사람을 되살려내는 그 용윤의 힘이 아시나를 위해 필요하니까.
혹시 황자가 설득되지 않을 상황에 대비하여 '비장의 수'를 준비해두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마지막의, 마지막에 쓰는 방법일 뿐. 그 부작용도 심각하여 함부로 쓸 믈건은 아니었다.
겐이치로 스스로는 죽음조차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언젠가 할아버님이 죽으면 아시나가 무너진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두려웠다.
전쟁으로 인한 상실과 아픔은 그의 뇌리에 깊게 박혀있었다. 자신의 숨통이 붙어 있는 한은, 누구도 그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생각은 강박처럼 겐이치로를 내달리게 만들었다.
아시나 수호야말로 그의 사명이다.
바스락-
갈대숲을 해치고 걷는 소리가 들린다.
예상대로, 황자가 나타났다. 스스로 범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다는 사실도 모른 채.
미안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감정마저 죽여야 한다.
"오랜만이군 황자여. 숙부님의 무덤 앞 이후인가."
"겐이치로 공..."
설마 이곳에서 마주할지 몰랐다는 듯, 황자가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사내아이. 그 연약한 소년의 표정이 황망함에서 결심으로 바뀌었다.
"저는...!"
뭔가 말하며 나오려던 황자의 앞을 커다란 손이 가로막는다.
더 이상 말할 필요 없다는 듯, 듬직한 등을 보여주며 닌자는 검집에 손을 올렸다.
"...미안하네."
"맡겨주십시오."
여기서부턴 검과 검의 영역. 자신의 무력감을 뼈저리게 느끼며 황자는 멀찍이 떨어졌다.
한편, 닌자가 검을 빼드는 것을 보며 겐이치로는 기가 찼다.
고작해야 닌자.
망월루에서부터 어떻게든 길을 열어 황자를 빼온 것을 보면 실력이 없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닌자와 무사 사이에는 매꿀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한 평생 무(武)를 수련한 무사가 어찌 쥐새끼처럼 암습이나 하는 닌자에 비할 수 있으린가.
...그러나 방심은 하지 않는다.
저 닌자가 황자의 유일한 버팀목이라면, 전력으로 부순다. 뼈저리게 무력감을 느끼게 해준다면 황자를 회유하는 일이 더 쉬워질지도 모른다.
겐이치로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길고 긴 카타나의 검신을 따라 새겨진 물결무늬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으오옷-!"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폭풍과도 같은 검술이 달빛을 산산조각낸다.
오의-쪽배 건너기
한 호흡만에 수차례 연격을 내지르는 토모에류 검술 비장의 수.
초고속 6연격 후에 비장의 엇박자 검은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당할 수 밖에 없는 위력적인 기술이다.
과연, 닌자는 속수무책으로 뒤로 물러나며 간신히 검을 막아냈다. 속검임에도 불구하고 한 합, 한 합이 무겁다.
닌자가 검을 흘려내는 솜씨도 일품이었지만, 검끝이 떨리는게 눈에 보일 정도다.
"합-!"
카앙!
불꽃과 함께 닌자의 그림자가 뒤로 날아갔다. 자세가 무너진 극히 잠깐의 순간, 이를 놓칠 겐이치로 아니었다.
"커헉..."
순식간에 닌자의 멱살을 낚아챈 겐이치로가 반대손으로 명치를 강타한다.
발경.
최속, 최단거리로 내지른 주먹이 무방비한 복부에 꽂혀들어간다.
퍽- 소리와 함께 고통의 신음소리가 침과 함께 새어나온다.
'상대도 안 되는군.'
숨통을 끊을 생각으로 내리꽂은 검.
팍-
이것만은 어떻게든 굴러서 피하자 애꿎은 갈대만을 가르고 바닥에 박힌다.
닌자는 멀찍이 떨어져서 짧게 빠른 호흡으로 숨과 자세를 가다듬는다. 하지만 그럴 틈을 줄 생각은 없다.
보름달을 등지고 뛰어오른 겐이치로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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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악-
피분수가 잔인한 무지개를 그리며 뿜어진다.
결판이 났다.
"닌자라는 건, 이 정도인가."
별 감흥 없다는 듯 카타나에 묻은 피를 털고 돌아선 겐이치로 뒤로 왼팔을 잃은 닌자가 쓰러졌다.
저대로 방치하면 분명 죽겠지.
굳이 숨통을 끊는데 시간을 낭비할 없으리라. 한시가 급하다. 아시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바스락 소리와 함께 쏙독새 한 명이 황자를 업은 채 부복했다. 겐이치로와 닌자가 싸우는 사이 그를 기절시킨 모양.
"돌아가자."
"존명."
쏙독새를 먼저 보낸 겐이치로는 천천히 걸어가며 닌자와의 전투를 회상했다.
마지막 순간, 날카롭게 쏘아진 닌자의 검격.
결과적으론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겐이치로의 완벽한 승리. 허나 닌자는 일순간 겐이치로조차 깜짝 놀랄만한 수를 내보였다. 만에 하나 그 일격이 성공했더라면...?
닌자 따위가?
아니, 그럴 리 없지. 겐이치로는 고개를 저었다.
혹여 정말로 그랬을 지라도, 이미 죽어버린 적이나 별 수 없었다.
다만 아군으로 들이지 못했음이 조금 안타까울 뿐.
밝은 보름달을 구름이 가린다.
불사의 계약을 위한 작업은 내일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겐붕이의 삶과 죽음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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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에 부분은 전에도 읽은 거 같은데 뒷내용 이어 쓴 거임?
마자영. 그때 찍싸놓고 잊고 있다가 이번에 완성함
비겁하다곤 하지않겠지 ㅇ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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